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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과 성적 자기결정권의 쟁점들 상담소 ㅣ 2005-09-16 ㅣ 4235

성폭력과 성적 자기결정권의 쟁점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지난 1월 24일(금) 저녁 7시부터 "성폭력과 성적 자기결정권의 쟁점들"이라는 제목으로 첫번째 월례포럼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날 발표되었던 내용과 토론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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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내용 : 성폭력과 '성적 자기결정권'의 몇 가지 쟁점

신상숙(국민대 강사)

1. 성폭력은 자명한가? : 성적인 것의 혼돈

일상적인 섹슈얼리티와 비일상적인 폭력의 안전거리가 선험적으로 확보되지 않는 '성적인 것'(the sexual)에 대한 혼돈은 성폭력 문제의 변방이 아니라 성폭력의 모든 쟁점들이 응축되어 있는 문제의 본령이다. 그러므로 죽음, 고문, 강제, 폭행과 같은 전형적인 폭력의 기호들과 맞물린 성폭력 사건들이 아니라 오히려 친교, 우정, 연애, 사랑과 같은 친밀성의 기호들에 둘러싸인 섹슈얼리티로부터 어떻게 폭력이 발생하며 그것이 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2. 성폭력이란 문제틀의 계보학

한국사회의 반성폭력운동은 (1)성폭력범죄의 주제화와 성폭력특위의 활동(1991-1993), (2)성희롱문제의 주제화와 반성폭력운동의 급진화(1993-1999), (3)반성폭력운동의 급진화와 시민사회의 젠더 갈등(1999-현재)시기를 거쳐왔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성적 보수주의가 경향적으로 퇴조하는 것과 달리 자유주의 패러다임이 성담론이나 법담론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성에 관한 보수주의 담론은 여성의 성적 욕망과 쾌락을 부정한 채 순결과 모성을 강조함으로써 재생산의 기능을 전유하고자 하지만, 성적 자유주의자(sexual liberal)들의 담론은 성해방을 여성해방과 동일시하고 프리섹스에 동의하지 않는 여성을 미성숙한 개인들로 치부함으로써 쾌락의 기능을 전유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성의 이중규범에 반영된 성녀/창녀라는 착종된 여성상이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라는 '현대'의 두 이데올로기를 통해 각각 재현되면서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적 자기결정권'에 입각하여 성폭력을 규제해야 한다는 여성주의의 문제의식이 자리잡을 수 있는 입지점은 상대적으로 좁아지게 된다. 보수주의는 역사적으로 실정화된 특정한 성도덕을 규범으로 절대화함으로써 개인들의 성적 자유와 자율성의 자리를 남겨놓지 않으며, 자유주의는 개인의 성적 자유를 절대화함으로써 상호적인 관계의 규범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3. 성폭력과 성적 자기결정권 : 쟁점과 현안

1) 성적 자기결정권의 딜레마
성적 자기결정의 권리를 개인들 각자가 이미 똑같이 소유한 권리로 간주하는 자유주의의 해석틀 안에서 성폭력 문제는 피해자와 가해자간의 권리충돌의 논리적 악순환을 끊임없이 맴돌게 된다. 남성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추구할 자유와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 여성이 성적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과 갈등하고, 여성이 강간과 성희롱을 주장할 때 남성은 합의한 성관계와 친밀감의 표시를 주장하거나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때 공정성을 표방하는 법이 누구의 권리를 우선하며 누구의 판단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결국 추상적이고 원자적인 개인을 상정하는 자유주의 국가의 중립성은 성폭력 문제 해결에서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여성주의 법학자들이 젠더 중립적인 '합리적인 개인'(reasonable person)의 관점이 사실상 남성의 관점이라고 비판하면서 '피해자의 관점'(the victim's perspective)이나 '합리적인 여성'(reasonable woman)의 관점 등을 모색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사실상 추상적이고 원자적인 개인을 상정하는 자유주의의 패러다임으로부터는 이 '피해자의 관점'을 도입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기 어렵다. 자유주의는 개인들이 자유의지로 선택한 계약적 관계(가령 혼인계약, 고용계약 등등)의 구속성만을 인정할 뿐 개인에 선행하는 다른 사회적 맥락과 권력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중립적인 공정성과 정의의 기준만으로 개인들의 권리분쟁을 판단하고자 하는 반면, '피해자의 관점'은 피해자를 위치짓는 젠더의 권력관계에 대한 이해와 고려, 그리고 구체적인 타자의 윤리적 관점에 대한 인정과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 성폭력의 기준 : 거부 vs 동의
성적 자유주의자들은 강요된 성관계는 성폭력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자발적이고 합의적인 성관계이며, 여성의 '거부' 표시가 없으면 성폭력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부'가 성폭력여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거부를 표시하기 이전의 상태를 '무언의 동의'상태로 전제하는 것이다. 즉 남성들이 여성의 성적인 자율성을 인정하면서 의견을 묻는 의사소통의 과정을 생략하거나 무시한 채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일방적으로 투사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남성중심의 이데올로기이다. 또한 이는 성폭력에 대한 모든 해명과 입증의 책임을 피해자 여성에게 전가하는 셈이 된다. 문제가 되는 최초의 행위에 대해 가해자에게 해명과 입증의 책임을 물는 방식이 적당할 것이다.

3) 성희롱과 성폭력의 개념 연관
우리 사회의 현행법 체계가 취하고 있는 '성폭력 범죄'와 '성희롱'의 이원적 규정은 여성주의에서 상정하는 성폭력 개념과 혼선을 빚기 쉽다.
이에 대해 가능한 대안으로, 먼저 성희롱의 두가지 의미(직장 및 단체 내의 성폭력과 일상생활의 경미하고 사소한 성폭력)가 별개의 표현으로 구별될 필요가 있으며, 성폭력 범죄가 일반 성범죄로부터 분리되어 나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정련된 각각의 범주들은 '성적 자율성의 침해'와 '성차별'의 문제의식을 결합한 상위의 성폭력의 개념, 즉 성적인 자율성과 성평등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는 성폭력의 개념 아래 체계적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4) 성적 자율성과 성평등
개인의 자아정체성은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며 이 관계적 자아의 성적인 욕망과 정체성은 미시적인 권력의 효과라든가 부당한 동일화의 압력, 그리고 폭력 등에 노출되어 있다. 성적 자율성은 정체성의 이런 취약한 위상을 보강하기 위해서 필요하며,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는 더욱 더 절실한 규범적 요청이다.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의 평등은 이 성적 자율성에 대한 상호인정이 없이 실현될 수 없으며, 성적 자기결정권은 바로 이 상호인정의 권리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성폭력은 한 개인의 성적 자율성을 부정함으로써 타인의 정체성과 떼어놓을 수 없는 성을 수단화하고 자아의 경험에 상처를 내는 행위이다. 또 사회문화적으로 젠더화된 섹슈얼리티에 내재하는 권력의 불평등과 성차별의 사회질서가 성폭력의 발생과 연루되어 있는 한, 성폭력은 현대 민주주의가 약속한 시민권의 보편적 평등이란 관점에서 비켜갈 수 없는 집단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이다. 성폭력의 문제제기에는 이처럼 자율성과 평등의 요청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성폭력과 성적 자기결정권의 쟁점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지난 1월 24일(금) 저녁 7시부터 "성폭력과 성적 자기결정권의 쟁점들"이라는 제목으로 첫번째 월례포럼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날 발표되었던 내용과 토론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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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내용

최근 논의들을 지커보면서

최근 논쟁이 되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나의 성적 자율성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존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받아야 하는 것은 일부의 여성이라고 생각되었다면, 이들 사건들 이후 '그 잘난 여자가 왜 성폭력을 당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제는 '나'도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넓히게 되었다.

여성의 성적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성폭력(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적 자율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의 자율성을 존중하도록 훈련하는 것이 방법이다. 단, 여성들이 '거부'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을 자율성 존중이라고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이런 행위가 성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상황을 이해하고 그런 행위를 하지 않도록 하는 규칙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상호적 관계를 고민하는 규범, 즉 상대방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규범이 자리잡을 수 있어야 한다.
공동체안의 규칙 즉 학칙이나 사칙 등이 만들어짐으로써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 방법과 수위가 다양화되어야 한다. 존중하는 '문화'와 '규칙'이 동시에 만들어져야 한다.

성적 자율성과 성폭력 여부의 판단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의 자율성을 존중했느냐 아니냐를 가해자에게 따져 물어야 한다.
그 순간 동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중요한 것은 '니가 나로하여금 자율성을 갖을 수 있도록 했느냐?'하는 것이다.

성적 자기결정권?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단어가 모든 것을 다 포괄하고 있는 것이라는 믿음에 대해 다시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를테면 친밀한 관계의 성폭력에서 한번의 '결정'(선택) 이후에 계속 일어나는 폭력을 용인하게 되는 문제가 있어보인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우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고 이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여성주의적인 '자기결정권'인가? 여성주의적인 입장에 맞는 성적 자기결정권의 조건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좀 더 정교한 해답을 내올 수 있어야 한다.

국가/법의 개입 문제에 대하여

국가의 개입과 중재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며 어디까지 이루어져야 하는가하는 문제, 그리고 모든 문제가 공권력의 힘을 빌거나 법정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면 법정으로 가지 못한 피해의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법, 국가의 개입은 어디까지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답으로 법 안에 윤리적 문제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입법활동에서 기본적인 용어를 실어넣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피해자로 하여금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를 물어보는 방식이 아니라가해자에게 입증케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행위 발생 이후가 아니라 발생하기까지의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러한 행위 맥락을 파악하여 판결토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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