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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성폭력특별법 10년, 변한 것과 변해야 할 것 상담소 ㅣ 2005-09-16 ㅣ 2255


성폭력특별법 10년, 변한 것과 변해야 할 것

성폭력특별법 제정 10주년을 맞아 제정이후 현재까지의 개정과정을 간단히 짚어보고, 지난 10년은 어땠는지, 또 이후의 10년은 어때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사진 아래는 성폭력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위 장면, 사진 위는 2003년 3월 8일 여성대회 때 남성들의 성폭력 추방운동 동참을 요구하는 거리 캠페인 장면




- 법은... 여전히 멀다.


93년 제48차 UN총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남녀간의 불평등한 힘의 관계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여성의 종속적 지위를 고착시키며, 여성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선언된 이후, 95년 제4차 세계여성회의에서 채택된 ‘북경행동강령'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 현상을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성을 고려하지 않는 법 또는 사법적 시행상의 관습을 주요하게 지적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5차에 이르는 CEDAW 이행보고서를 통해 이와 같은 여성 폭력에 대해 국내에 이행된 사법적 대응장치 마련과 여성피해자 보호를 위한 지침 제정 등의 성과를 보고한 바 있다. 1994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1999년 남녀차별금지법 제정과 각 법안의 개정작업, 법안에 따른 각급 단위의 예방교육과 피해자 보호, 가해자 처벌 등의 내용이 그것이다.

성폭력, 성희롱 관련 법제화를 두고, 정부보고서에서는 여성폭력관련정책의 뚜렷한 성과라 기술하고 있는 반면, 상담현장에서 만나는 피해자들은 여전히 문제제기의 어려움과 문제제기시의 인권침해를 호소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여성폭력과 관련한 법적․제도적 장치마련이 몇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것은 분명한 성과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피해자체를 말하기 어려우며, 피해를 말했을 때 ‘피해’라고 인정받기 어려움을 토로한다. 또한 문제제기이후, 수사재판과정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침해와 성차별적 관행의 문제, 피해자를 둘러싼 피해자 비난론과 여성비하적 발언을 통한 피해자의 인격권침해 문제 등이 여전히 심각한 수준으로 보고되고 있다.

“한국은 외양상 인권선진국이다. 상대적으로 조약의 가입과 비준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매우 중요한 조항을 실제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UN의 권고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국은 회의가 열릴때만 열심히 하는 나라처럼 보인다.“(2004.3 월간「인권」) - 한국에 대한 제네바 UN인권기구 실무자의 이러한 평가는 명문화된 여성폭력관련 법제화와 별개로 여전히 피해자의 권리확보를 위해서는 초기단계에 머물러있는 미흡한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피해자들이 호소하고 있는 위와 같은 문제현상은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권한과 지위를 가지는 사람들의 다수가, ‘여성의 정조를 중시하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시키는’ 우리사회의 이중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성문화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않다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피해를 인정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현 제도에서 그 원인을 짚어볼 수 있다.

차별적 권력관계와 여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입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범죄의 처벌 뿐 아니라 피해자 권리회복을 위해 법이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래에서는 성폭력특별법 제정 10주년을 맞아, 그간 성폭력관련 법안 제/개정의 쟁점들이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는지 살펴보고, 피해자 권리 확보를 위한 이후 과제들을 짚어본다.

- 성폭력관련 법안 10년


피해사실을 꺼내어 얘기한 몇몇 피해자들의 용기와 여성단체들의 법제정 촉구를 위한 노력은 90년대 초반, 기존 형사법체계의 ‘강간과 추행의 죄’ 규정만으로는 성폭력 범죄에 대처하는데 한계가 많다는 사회적 문제의식을 이끌어내었고, 94년 특별법 제정을 추동해 내었다. 제정된 법안은 이후 몇 차례의 개정 과정을 통해 가해자처벌과 피해자권리 확보의 외양들을 갖추어왔는데, 제․개정의 내용과 관련법의 흐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94. 1. <성폭력특별법>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 관한 법률. 성폭력의 규제 범위를 넓히고 형량을 높이는 방향, 수사/재판 등 사법처리절차에서 특례를 인정하는 방향의 특별법 형태로 제정.
- 존속 등 연장의 친족에 의한 피해, 신체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피해를 처벌하도록 하고. 이를 모두 비친고죄로 함.
- 전화/우편 등 통신매체 이용 음란, 버스/지하철 등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 처벌 조항.
- 성폭력범죄를 사회보호법에 의한 보호감호대상범죄로 보도록 함.
- 수사/재판에 관여하는 자의 피해자에 대한 사생활비밀누설 금지
- 피해자의 신청시 심리 비공개

1997. 8. <성폭력특별법>
근친간, 미성년자 등에 대한 범죄의 처벌과 피해자 보호절차를 강화한다는 취지로 개정.
- 특수강도 등의 가중처벌 대상에 야간주거침입절도등의 미수범에 의한 범죄 추가하는 한편, 최고형에서 사형 삭제.
- 친족관계에 있는 자에 의한 강간 등에서 친족의 개념을 ‘4촌이내의 혈족’에서 ‘4촌이내의 혈족과 2촌이내의 인척’으로 범위 확대.
- 장애인에 대한 준강간 처벌에 있어 피해대상을 신체장애인에서 정신상 장애를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
-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강제추행 등을 가중처벌하고 이를 비친고죄로 함.
-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과 동석할 수 있는 제도
- 18세 미만의 사람을 보호, 교육, 치료하는 사람이 보호받는 학생의 피해사실(비친고죄에 해당하는)을 알게 되었을 경우 신고의무화.
- 피해자 치료를 위한 전담의료기관 지정에 있어 민간진료시설 포함

1998. 12. <성폭력특별법>
카메라, 비디오 등을 이용한 몰래카메라 범죄 처벌

1999. 2. <남녀차별금지법>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 제정 : 성차별적인 사항에 대한 조사, 구제 등의 기능을 갖는 남녀차별개선위원회를 설치.
- 고용, 교육, 재화/시설/용역 등의 제공 및 이용, 법과 정책의 집행 등 분야에서 남녀차별을 금지하고 성희롱을 차별로 간주.

1999. 2. <남녀고용평등법>
직장내 성희롱의 예방과 피해근로자를 보호를 위해 직장내 성희롱의 예방을 위한 교육의 실시, 가해자에 대한 징계 및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조치금지 등을 골자로 개정.

2000. 2. <청소년성보호법>
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제정 : 성매매와 성폭력 행위의 대상이 된 청소년을 보호․구제하려는 취지로 청소년의 인권보호와 성매수자 신상공개를 골자로 제정.
- 위계/위력으로 혹은 이를 동반하지 않더라도 청소년에 대한 강간, 강제추행한 범죄의 경우 가중처벌

2001. 5. <청소년성보호법>
사회통념상 성인으로 간주되고 있는 사람의 자율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청소년의 연령을 만 19세 미만으로 조정.

2003. 5. <남녀차별금지법>
차별의 개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직접적 차별 이외에 결과적인 간접차별 개념 도입.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그 가해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
- 공공기관의 장 및 사용자가 피해자에 대하여 불이익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도록 함.
- 남녀차별개선위는 공공기관의 장 및 사용자에게 성희롱행위자에 대한 징계 또는 이에 상당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할 수 있도록 함

2003. 12. <성폭력특별법>
피해자가 수사/재판과정에서 인권침해받는 일이 없도록 현행제도의 미비점 개선을 위한 취지로 개정.
- 특히 취약한 계층인 13세 미만이거나 장애인일 경우에 관련된 것으로 수사기관에서 진술내용과 조사과정을 영상물로 촬영, 보존하고 이를 증거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의무적으로 신뢰관계에 있는 자를 동석하도록 하는 것, 공판기일에 출석이 어려울 경우 증거보전 요청을 하도록 하는 것을 포함.
-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문하는 경우 비디오 등의 중계장치에 의해 신문할 수 있도록 함.』

성폭력특별법은 기존 사법체계에서 보다 성폭력의 규제범위를 넓히고 사법절차상의 피해자의 권리를 특례로 인정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성희롱 관련 법안은 형사법적 규제에서 나아가 직장내에서의 남성과 여성간의 차별적 권력이 성희롱의 형태로 나타남을 인식하고 이의 해결을 위한 장치를 만들었다는 데에서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

그간의 동향에서 보듯, 90년대 이후의 성폭력피해자의 피해호소와 권리확보를 위한 관련 법안은 범죄행위의 처벌에서 나아가 피해자의 권리확보와 인권침해 방지의 차원으로 확장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법이 형벌권 뿐 아니라 피해로부터의 진정한 극복을 위한 기능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는 사법개념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정부의 CEDAW 이행 보고서의 기술과 같이 어느정도 외양을 갖춘 부분이라 평가될 수 있다. 그렇다면, 범죄의 처벌과 피해자 보호라는 입법 취지에 충실하다면, 상담현장에서 접하게 되는 전반적인 법적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고충, 인권침해가 자행되는 법적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 이후 10년의 기대

특별법과 성폭력관련법의 일정정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법적현실이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이유는 크게 집행상의 한계와 명문화된 법의 한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집행상의 한계로 주되게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수사/공판 담당자의 성폭력에 대한 이해의 부족, 관계자의 통념과 태도에 기인한 문제 등으로, 이는 법적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부당하게 가해지는 2차적 인권침해일 뿐 아니라 나아가 판결자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례로 강간 범죄로 재판을 받던 중 피해자와의 결혼을 합의 조건으로 제시했다는 이유로 감형을 한 사례는 가해자가 책임지겠다고만 하면 충분히 정상 참작될 수 있다고 본 것으로 판시를 통해 피해자의 결정권을 다시 한번 침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회일반의 실정’, ‘경험칙’에 근거한 판단이라고 판시되고 있는 판례들이 주되게 비판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처럼, 판시된 경험의 주체가 기실 여성인권에 불감한 남성중심적 경험을 근거로 하는 데에 있다.

명문화된 법적 한계는 앞으로 개정과정을 통해 수정되고 확보되어야 할 부분으로 성폭력의 범위가 여전히 협소한 부분, 친고죄 규정의 문제, 성폭력 개념이 불명확한 부분, 피해자의 권리확보가 미흡한 부분 등이 지적될 수 있다. 일례로 이 중 권리확보 부분을 살펴보면, 신뢰관계에 있는 자의 동석, 18세 미만 피해자에 대해 인지한 피해사실 신고 의무화, 피해자의 신원과 사생활누설금지 등은 피해자에 대한 특례로 제정되었으며 실제로 피해자의 권리차원으로 인식되고 있는 조항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최근 2003년에 신설된 영상물 촬영/보존 조항 등은 수사/재판과정에서의 인권침해 방지를 아예 개정 취지로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신뢰관계에 있는 자의 동석 조항 등은 취지의 긍정성과는 달리 실제 현장에서 이 조항이 지켜지지 않았을 경우 별다르게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고, 권리침해시 구제수단이 없어 명분에만 그칠 수 있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또한, 영상물 촬영 조항에 따라 피해 어린이의 진술을 녹화하여 반복진술로 인한 어려움을 최소화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법원에서 이를 증거로 채택할지의 여부는 전혀 별개의 문제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 특별법의 권리차원으로 인식되는 조항의 대부분은 선언에 그칠 수 있는 반쪽자리 조항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명문화된 법의 한계는 법 집행상의 한계와 더불어 이후 개정작업을 통해 주되게 수정되어야 하는 과제이다.





지금까지의 10년이 성폭력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사사롭고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온 사회의 인식과 싸우면서, ‘성폭력은 범죄다’ 라는 당연한 사실을 법제화하는 시기였다면, 앞으로의 10년은 피해자는 피해사실을 존중받아야 함과 더불어, 더 이상 침해되어서는 안되는 권리가 있는 주체임이 법제화되는 시간이어야 할 것이다.


정유석(본 상담소 상담*인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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