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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잔인한 말버릇'에 하고 싶은 말들 상담소 ㅣ 2005-09-16 ㅣ 2076


'그 남자의 잔인한 말버릇'에 하고 싶은 말들
- 변혜정(본 상담소 부설 성폭력문제연구소 소장)

서 동진 선생님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잘 모르지만 존칭 '님께'를 썼습니다. '님'이 항상 존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서 '님'이 의미하는 바는 형식적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예의를 표현합니다. 이렇게 말이라는 것은 때로는 사용하는 이의 의도와 유관하게 혹은 무관하게 그 사회에서 흘러 다니는 의미를 통해서 선생님과 저와의 관계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이렇게 시작하는 것은 선생님의 글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일정 부분 불편한 부분이 있어서입니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남자'의 말이 타인의 설 자리를 지워 버리고 더욱 폭력적이라는 것은 저도 동의합니다. 예를 들어 모 신문의 시평을 조금 인용합니다.
-나이로 보자면 아버지와 딸 정도의 차이가 있으니 차 시중들었다고 그리 흉하게 보일 것도 없다. 설령 그런 시중이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성폭행과 같이 파렴치한 행위도 아닌데 공개적인 서면사과는 무엇이고 전교조는 거기에 왜 끼어들었는가?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이번 사건은 -(중략)
이런 글은 정말 "자신의 말이 허용하는 규칙 안에서만 숨쉬게 하며" 더 이상의 여지를 가지지 않습니다. 이런 글을 읽으면 너무 가슴이 답답하여 목소리가 더욱 커집니다.

그러나 이런 말만큼이나 저를 답답하게 하는 것은 '남자의 말의 폭력'에 대한 선생님의 아량(?)입니다. 물론 선생님의 의도는 이것이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말이 선생님이 말 한대로 관계를 헤아리는 것이라면 저는 괜히 선생님을 의심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바람핀 아내에게 남편이 할 수 있는 '화냥년/갈보'라는 말/욕은 분명 '사실'이지요. 바람피운 아내는 분명 이 사회의 화냥년입니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여자임'을 선언한 멋진 말이지요. 그래서 어떤 후배는 자기 ID를 역설적으로 화냥년으로 사용하기도 합디다. 그러니 이 말을 듣고 그 여자가 상처받는다면 정말 바람 필 자격도 없지요. 모두 맞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여자들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이 자기에게 가장 이익이라는 것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아니 그렇게 하기 어렵습니다. 그 여성이 멋진 여성이고도 싶고 어머니 아내임을 포기하지 못하기도 하는 욕심쟁이라서 그 말에 불쾌했을까요? 저는 여성이 욕심쟁이라도 되면 좋겠습니다. 무력한 피해자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습니다(실제로는 그렇지 아니하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많은 여자들이 한심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너무도 많은 남자들이 그냥 관습적으로 말을 뱉고 여성들에게 무례하게 행동하지요. 정말 그 말, 그 행동에 엄청난 나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보통대로, 양말 아무데나 뒤집어놓듯이 말도 던져버리고 여자의 옷도 벗깁니다. 그것이 그 남자의 사랑방식이기 때문이지요. 어떻게되든 그 여자와 소통하고 싶은 그 남자만의 방식으로요. 비뚤어진 것이지만 소통을 향한 욕망을 품고 있는 그 말이, 그 행동이 그러나 여성에게는 '소통'이 아닙니다. 저는 선생님과 이런 이야기를 더 하고 싶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여자들은 왜 이리 이것을 벗어나지 못할까? 언제나 레퍼토리가 같아' 라고 생각한다면 저는 깊은 한 쉼만 쉴 것입니다. 통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선생님은 그러시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통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글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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