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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 현실에서의 같은 말, 다른 의미 상담소 ㅣ 2005-09-16 ㅣ 2317


폭력적 현실에서의 같은 말, 다른 의미

1971년 프랑스 "Nouvel Observateur"라는 잡지는 낙태를 한 343명의 여성에 관한 기사를 다루었다.
"숙녀는 자기 남편과 피임에 대한 것을 입에 올려선 안된다."는 당시의 여성관과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에 대해서도 여성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원치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은 의사에게 거부당하고 스스로 낙태를 하려다 심한 출혈과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획되었던 위 잡지의 기사는 이후 독일에서 '고백하기운동'으로 이어지면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위의 그림은 독일 Stern지 / 표제 '우리는 낙태를 했다')

기사에 실린 여성들은 당시 "schlampe, slot(더러운 여자, 잡년)"이라 불렸는데, 피임에 대한 상대방의 공동책임과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얘기한 해당 여성들에 대한 비난과 부정, 멸시가 담겨져 있는 표현이었다.
99년 독일 spiegel지와의 인터뷰에서 Benoite Groult라는 한 여성은 당시 사회적 비난을 감당할 수 없어 스스로 "잡년"이라 고백하지 못했음을 얘기했고, 지금은 그 대열에 용기내어 들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이제는 스스로 세상에서 얘기하는 소위 "잡년"이 되고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주변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이런 식의 표현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때로 그것은 말하는 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남성 혹은 남성중심적 사회가 그 주체가 될 때 그 말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행사함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여성들 스스로가 여성을 멸시하고 비하하는 말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주체가 될 때 그것은, 남성들이 요구하는 여성의 모습에, 남성의 요구에 갇혀 스스로를 억압하는 상태에 더 이상 머무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그녀들의 그 도발적인 선언과 힘에 멋진 박수를 보내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그녀들의 힘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한 인격으로서 존중받고자 하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욕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부정되고 억압되는 폭력적인 현실에서 기인하는 힘이다.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음'에서 나오는 자기부정을 통한 긍정에의 전복적 시도이다. -상담소 소식지 "나눔터"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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