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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7. [한겨레21] #오빠미투...작은 목소리라도 말해야 산다 관리자 ㅣ 2019-08-28 ㅣ 53
기사제목 : #오빠미투...작은 목소리라도 말해야 산다

보도날짜 : 2019년 8월 27일

언론신문 : 한겨레21

보도기자 : 전정윤 기자
 
기사원문 :

8월19일 늦은 오후, 제1273호 ‘#오빠 미투’의 계기가 된 소녀 Y를 만났습니다. Y는 지난 5월 정신과 진료를 받다가 오빠 성폭행 사실을 털어놓은 이후 지금까지 집 밖을 떠돌고 있습니다. 요즘은 고시원에서 지낸다고, 아버지가 입금하는 주 3만원이 생활비의 전부라고 했습니다. Y는 “(신고의무제로) 경찰에 사건이 접수되고 석 달이 지난 최근에야 수사관이 ‘사건이 진행 중임을 통보한다’고 문자를 보내왔다”며 생각보다 더딘 수사 상황을 불안해하는 듯 보였습니다. 방송사에서 Y를 인터뷰하고 싶어 한다고 전하자 “그러다 경찰에서 제가 무고라고 하면 어쩌냐”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처음 오빠 성폭행을 털어놓을 때와 달리 풀이 죽은 모습이었습니다.

Y와 마주 앉아 Y가 먹고 싶다는 모차렐라치즈돈가스를 먹었습니다. 고개를 들면 Y의 눈에 맺힌 그렁그렁한 눈물이, 고개를 숙이면 Y의 팔에 새로 생긴 자해흔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직 실밥을 풀지 않은 상처도 있었습니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고, Y 앞에서 눈물을 참기 힘들어 서둘러 식사를 마쳤습니다.

Y가 오빠 성폭력을 말한 건 잘한 일일까요? 아니면 끝까지 말하지 말았어야 했을까요? 말하지 않았다면 예전처럼 부모의 보호와 지원을 받으며, 최소한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Y는 살 수 있었을까요?

‘말하기’가 Y의 삶에 어떤 결과로 남을지… 착잡했습니다. 우선은 경찰 수사와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고 Y가 이 시련을 극복하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기자가 Y를 보며 오빠 성폭력, 친족 성폭력 생존자의 ‘말하기’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반면, 당사자인 생존자들은 그게 아니라고, “말해야 산다”고 확신하며 기자를 찾아왔습니다.

지금 고통받는 피해자들에게는 당연히, 관찰자인 기자의 고민보다 당사자인 생존자들의 경험이 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호에는 스스로 말하기를 선택하고, 말해서 치유되고, “함께 살자”며 다른 생존자의 말하기를 독려하는 아빠, 오빠 성폭력 생존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봤습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8월6일 <한겨레21> 회의실에서 푸른나비, 초원, 민지가 ‘#오빠 미투’ 기사가 실린 제1273호 위에 서로 맞잡은 손을 얹고 ‘파이팅’을 다짐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007년부터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성폭력 생존자들의 작은 말하기’ 모임을 열고 있다. 2003년부터 매년 한 번씩 여는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큰 말하기)’를 조금 더 안전하게, 조금 더 일상 속으로 가져온 모임이다. 여성주의 상담팀 유호정 활동가는 8월7일 전화 인터뷰에서 “요즘은 한 번 모일 때마다 10~15명이 참여한다”고 전했다.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이도, 일회성으로 참여하는 이도 있다. 다만 참가 자격은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미리 신청한 성폭력 생존자’로 엄격히 제한한다. ‘다른 생존자의 이야기를 절대 외부로 옮겨선 안 된다’는 엄격한 규칙 탓에 모임 안에서 오가는 말은 ‘대외비’로 유지된다. 생존자들이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안전함을 느껴야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한 번도 언론 취재가 허락된 적이 없다.


작은 말하기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세 생존자가 8월6일 오전 <한겨레21>을 찾아왔다. ‘#오빠 미투’ 기사(제1273호)를 보고 용기를 냈다고 했다. 작은 말하기 활동명 ‘푸른나비’(50대 초반), ‘초원’(40대 후반), ‘민지’(20대 후반) 모두 가해자가 친족이다. 세 사람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작은 말하기 취지처럼 ‘말할 수 없음’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뒤, 내면을 대면하고 다른 생존자들과 교감하면서 치유와 연대의 가능성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아직 말 못할 고통에 신음하는 생존자들에게 “말해야 산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친족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며 작은 말하기에서 나눴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나 혼자가 아니었다

초원은 중학교 때 단체관람으로 영화 <컬러 퍼플>을 보고 너무 놀랐다. 아버지가 딸을 만지는 장면이 나왔다. ‘세상에서 나 혼자만 겪은 일인 줄 알았는데….’ 충격은 이내 실망으로 변했다. <컬러 퍼플> 속 아버지가 의붓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역시… 친아버지한테 이런 일을 당한 건 나밖에 없구나….’

초원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2 때까지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부모님과 초원, 여동생이 한방에서 자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밤이면 초원 옆으로 넘어와 딸의 몸을 만지거나 딸의 몸에 성기를 비볐다. 초원은 그때마다 잠을 깼지만, 눈을 뜨면 아버지가 한 행동을 자신과 아버지가 서로 알게 되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그 때문에 선택한 생존 전략은 ‘자는 척’이었다. 엄마한테 들킨 이후 아버지는 그 일을 멈췄지만, 초원은 어디에도 제 마음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아이’가 되었다.

작은 말하기에서 수많은 친족 성폭력 생존자를 만나면서 초원은 비로소 ‘나 혼자만 겪은 일’이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알았다. 초원과 속내를 나누는 푸른나비는 8살부터 10년간 아버지에게 심각한 성폭력을 당했다. 어머니는 “애 대학은 가야 한다”며 고3 때가 돼서야 아버지를 말렸다. 아버지가 자신의 몸을 만지거나 성기를 핥게 한 것은 기억나지만 중2부터 고2 때까지 4년의 기억이 없다. 아마도 그 시기 삽입 성폭행을 당했으리라 짐작하지만, 기억을 지웠다. 그것이 살기 위해 선택한 ‘해리’라는 걸 상담을 받고서야 알았다. 푸른나비는 굳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 세월이 다 기억나면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것 같아서다. ‘기억아 올라오지 마, 기억아 올라오지 마’ 푸른나비는 지금도 살기 위해 기억을 달랜다고 했다.

푸른나비는 말했다. “언론에서도 잘 안 다루니까 피해 당사자들도 소수의 일인 줄 알아요. 2015년 작은 말하기에 처음 갔을 때 제 앞에 친족 피해자가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친족 성폭력 피해자가 나 말고 또 있다니!’ 작은 말하기에 와서 생존자들이 서로를 보고 놀라요. ‘너도 친족이니?’ ‘어떻게 너도 친족이야?’ ‘이렇게 많을 수가!’ 요즘은 친족이라고 뭉뚱그리기 힘들 정도로 수가 많아요. 작은 말하기 참석자 4분의 3이 친족 성폭력 생존자일 때도 있어요. 만나서 공감하는 건 좋지만, 그런 피해를 겪은 사람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유호정 활동가는 “작은 말하기에 새로 참여하신 분 중에서 친족 성폭력 피해자분들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모임에 와서 보니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는 데서 큰 위안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가부장제로 철저하게 은폐되고 고립됐던 피해자들이 ‘발화의 주체’가 되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소통함으로써 치유의 힘을 얻는다.


여성으로 사는 잔혹한 세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운영하는 성폭력 생존자 쉼터 ‘열림터’의 백목련 활동가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정 안에서 피해를 호소하기 어렵고 호소해도 말이 묻히는 경험을 한다. 집안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거짓말 취급을 받거나 무화되는(없던 일이 되는) 과정을 겪은 생존자들에게 작은 말하기처럼 ‘말할 수 있고 말을 믿어주는 안전한 공간’ 자체가 주는 힘이 있다”고 설명했다.

거듭되는 성폭력 탓에 한때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졌던 민지도 말하기를 시작하면서 점점 살아갈 힘을 쌓아가고 있다. 민지는 7살 때 기억이 거의 없지만, 친가 제삿날 중학생 사촌오빠한테 당한 그 일만큼은 잊히지 않는다. 오빠는 텔레비전을 보는 민지에게 다가와 “성기를 만지게 해주면 앞으로 잘 놀아주겠다”고 회유했다. 어린 마음에도 왠지 어른들한테 혼날 일인 것 같아 “싫다”고 버텼다. 오빠는 강제로 민지의 속옷 안으로 손을 넣었다. 민지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도 했다. 다 큰 오빠가 방바닥에 성기를 꺼내놓고 소변을 지리던 그 기괴한 장면이 너무 생생하다.

아버지 역시 “장난”이라며 민지의 민감한 부위를 만지곤 했다. 아버지가 왜 “그딴 짓”을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고 너무 싫은데 아버지는 항상 장난으로 넘겼다. 성인이 된 뒤에야 “아빠 그건 성추행이었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제야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민지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사촌오빠, 아버지 등 친족은 물론 피시(PC)방 사장, 지하철 노숙인한테도 성추행을 당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남성한테는 준강간을 당했고, 가해자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한스러울 정도로 잔혹한 세월이었다.

민지는 최초 성폭력을 당한 7살 그날 이후, 잠을 잘 때마다 성기가 가려웠다.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그 가려운 감각이 너무 싫어서 주먹으로 성기를 치거나 긁거나 찔렀다. 성기에 얼음을 갖다 대거나 젤파스를 바르기도 했다. 그러다 익숙해진 ‘어떤 느낌’에 이끌려 자위를 배웠다. 자연스러운 성적 호기심이 아니라, 성폭력 후유증으로 자위를 알게 된 것이 억울했다.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는 영상에 탐닉하면서 성적으로 흥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가슴을 잘라버리고 싶다거나 자궁을 들어내고 싶다는 혐오감에 시달렸다. 가려우니까 스스로를 때리던 행동은 칼로 살을 베는 자해로 이어졌다.


푸른나비가 상담 초기에 그린 그림. 푸른나비 제공


“당신 때문이야!” 쏟기까지 26년

민지는 팔다리가 부러지면 엑스레이로 ‘증명’할 수 있는 것처럼, 정신적 상처를 보여주는 ‘뇌 사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칼에 찔린 듯 피가 철철 흐를 텐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가족조차 그 상처를 너무 가볍게 여긴다. 민지가 난도질 수준으로 제 몸을 자해하고 나서야, 부모님은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

가족조차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자신을 오롯이 받아준 건 작은 말하기에서 만난 성폭력 생존자들이었다. 민지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자, 다른 생존자들도 민지와 비슷한 자기들만의 비밀을 털어놨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 ‘어쩔 수 없는 거였구나’ 안도감이 찾아왔다.

초원은 위로 오빠가, 아래로 여동생이 있다. 오빠는 이른바 ‘스카이’ 대학을 갔다. 동생은 막내라 사랑받았다. 중간에 낀 초원은 존재감이 없었다. 집에서 말 잘 듣고, 순응하는 ‘포지션’으로 사랑받으려 애썼다. 아빠 성폭력을 애써 묻은 채, 취직해서 부모님 보태드리고 오빠 등록금 대주고 동생 용돈까지 챙겨주는 효녀로 살았다.

아무 일 없는 듯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았다. 연년생 아이를 키우면서부터 체력이 달리고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 그 무렵 부모님이 집에 오셨다. 분주하게 부모님 드릴 음식을 만드는데, 아이가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치댔다. 감당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불쑥 ‘자해 같은 행동’이 튀어나왔다. 아버지는 딸의 행동을 보고 화내며 가버렸다. 무의식 속에 억압돼 있던 분노가 폭발했다. “당신이 나한테 화낼 자격이 있어?”

여동생과 통화하다가 준비 안 된 #미투를 해버렸다. 동생도 어렸을 때 아버지가 무릎 위에 앉혀놓고 딱딱한 성기를 비빈 적이 한 번 있다고 했다. 그 뒤로 동생은 ‘아빠가 그런 쪽으론 이상한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아버지와 둘이 있는 일을 피했다고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버지의 성추행에 대해 좀더 자세히 털어놓고 싶었지만 동생은 대화를 회피했다. 초원은 “우리 가정이 순기능적 가정이 아니라 역기능적 가정이란 걸 동생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고 느꼈다. 얼마 뒤 추석, 초원은 친정집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아빠한테 애교를 부리는 동생을 보고 배신감을 느꼈다. 그 뒤로도 동생은 “언니가 부모님을 이해해야 한다”거나 “언니 성격이 꼬였다”는 등 받아들이기 힘든 말로 초원에게 2차 가해를 했다.

초원은 비슷한 시기 처음으로 유명 미술치료 상담사의 심리 강의를 듣게 됐다. 상담사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 다른 내담자들과 함께 상담자와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었지만, 뜻하지 않게 상담을 강제로 종료당했다. 그때부터 화살이 아버지에게로 향했다. 아버지한테 한 번도 반항한 적이 없었는데 그제야 원망과 분노가 솟구쳤다. 너무 떨려서 우황청심환까지 먹고 친정으로 쫓아갔다. “당신 때문이야!” 이 말을 쏟아내기까지 26년이 걸렸다. 내친김에 주먹으로 아버지 어깨도 몇 대 쳤다. ‘개’와 ‘소’가 들어간 욕지거리도 한 번 했지만,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먼저 패륜을 일삼은 건 아버지였다.

푸른나비는 피해자의 ‘착함’이 가해자와 가족들에게 ‘약함’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네가 착해서 그랬다”고 성폭력 이유를 언급한 적이 있다. 실제로 푸른나비는 아버지의 성폭력, 어머니의 학대를 심각하게 겪으면서도 ‘내가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했다. 성격장애를 가진 어머니였기에, 가해자가 아닌 긍휼의 대상으로 여겼다. 무엇보다 장녀로서, 동생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된 뒤에야 여동생에게 “나 다음 네 차례가 될까봐 견뎠다”고 털어놨다. 동생은 “언니가 착해서, 반항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딱 부러지게 선을 그었다. 가해자인 부모의 행동보다 동생의 말이 더 큰 충격이었다. ‘내가 착해서였다니… 내가 착해서 그런 일을 당했다니….’ 어릴 때부터 푸른나비가 돌봐준 동생이기에 당연히 함께해주리라 믿었다. 동생의 말은 푸른나비에게 사형선고 같았다. 어린 딸을 두고 자신이 먼저 죽어버릴 것 같은 심정에 상담을 시작했다.


쉽게 ‘용서’를 말하는 사람들

푸른나비가 믿었던 종교, 그리고 상담사들은 친족 성폭력 생존자에게 너무 쉽게 ‘용서’를 언급했다. 내적 치유를 위해서는 부모를 용서하는 길밖에 없다는 조언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푸른나비는 “남한테 따귀 한 대 맞은 것도 용서 못하는 사람들이, 친족 성폭력을 용서하라는 말을 참 쉽게도 하더라”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다 제 잘못인 줄 알고 다 용서해야 하는 줄 알고 살았는데, 그렇게 용서하려던 것 자체가 상처로 되돌아왔다”고 말했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에게 시달렸던 푸른나비는 알코올중독과 양극성장애를 가진 남편한테도 극심한 가정폭력을 당했다. 이혼도 안 하고 17년을 견디며 교회의 가르침대로 ‘돕는 배필’로서 열심히 기도하며 남편을 품었다. 남편은 ‘현모양처’ 푸른나비에게 감동받아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편이 아무런 행동 변화 없이 “나는 이제 하나님한테 다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걸 듣고 신앙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결혼 17년이 되던 해 ‘이렇게 18년까지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 푸른나비는 “18 더는 안 산다” 하고선 딸과 함께 가정폭력 쉼터로 도망쳤다. 푸른나비는 좋은 상담자를 만나 “화내도 된다”는 위로의 말을 듣고서야 심리적 안정을 되찾았다.

세상은 ‘용서’를 재촉하지만 생존자들은 “드러내기가 치유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민지는 열아홉 살 때부터 공황장애로 숨을 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괴로워서 차라리 죽고 싶었다. 실제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 가슴을 조이던 증상이 목으로 올라와 성대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민지의 목에는 지금도 길고 굵은 자해 상처가 남아 있다. 피해 사실을 털어놓고 연대할 만한 사람을 찾고 싶었지만 힘들었다. 한 온라인 성폭력 생존자 네트워크에서 푸른나비를 만났지만 카페 운영이 활발하지 않았다. 그 뒤 작은 말하기에 와보니 푸른나비가 먼저 와 있었다. 말하기를 시작하면서 증세는 많이 나아졌다. 민지는 “말하면서 스스로 정리되고, 내 말을 듣는 다른 생존자들의 표정이나 탄식을 통해서도 위로를 받는다”며 “서로 다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 가능한 그런 공감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푸른나비는 “민지와 글로 소통할 때는 민지가 정말 자살할 것 같아 두려웠다”고 했다. 그는 “‘우리 자살하지 말고 꼭 자연사하자, 광화문에서 촛불 들고 만나자’ 했는데 이렇게 실제 만나 웃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푸른나비는 작은 말하기에서 처음 피해 사실을 얘기할 때 웃고 있었다고 했다. 가면성 우울증이었고, 자신이 그 정도로 아픈 줄 모르고 살았다. 그때 다른 생존자 한 명이 푸른나비의 손을 잡고 펑펑 울었다. 푸른나비보다 21살이나 어린 친구였다. 가해 유형도 달랐는데 푸른나비의 상처에 깊이 공감해줬다. 그 친구가 우는 걸 보고서야 푸른나비의 눈물샘이 열렸다. 그 뒤 3년 내내 그 친구가 푸른나비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들어줬다. 피해 양상, 고통의 경험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생존자들끼리 말하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는다. “그때 네가 내 손 안 잡아줬으면 어떻게 됐을지…” 지금도 만날 때마다 나이 어린 친구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민지가 그렸다. ‘2차 가해’(왼쪽부터)와 ‘선’을 주제로 그린 그림, 단체대화방 성폭력 근절 캠페인의 하나로 카카오톡 이모티콘 만들기에 도전해 그린 캐릭터 ‘불편냥’. 민지 제공


웃으면서 피해를 말했을 때…

초원은 “나만의 경험이었던 것이 말하는 순간 보편적인 경험이 된다”는 점에서 말하기의 효능을 찾았다. “혼자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그것을 극복하려고 굉장히 치열하게 노력했지만, 스스로 물결을 거스르는 연어처럼 고달픈 적이 많았다.” 꿈쩍도 하지 않는 기둥에 묶어놓은 고무줄에 발목이 매인 것처럼 자꾸만 자꾸만 과거 상처로 되돌아가는 자신이 힘들고 싫었다. 가족 안에서는 물론, 친구 안에서도 관찰자처럼 아웃사이더처럼 겉돌기만 했다. 초원은 “고아처럼 정서적으로 아무 지원 없이 혼자 살았는데,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생존자 모임에서 소통하며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다.

정기적으로 작은 말하기에 참여하는 생존자들은 자신의 피해를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푸른나비는 “초원이 기자님에게 한 말을 저는 열 번 넘게 들었다”며 “그래도 들을 때마다 처음 듣는 듯이 공감한다”고 웃었다. 초원은 “처음 집단상담에서 내 얘기를 꺼냈을 때는 머리가 뜨거워지고 손발이 차가워지면서 신체 마비 증세가 나타날 정도였는데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한다”며 “똑같은 얘기지만 말할 때마다 점점 괜찮아지는 걸 느끼고, 일단 상처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치유의 절반”이라고 조언했다. 백목련 활동가는 “생존자들은 오랜 시간 말을 참아왔기 때문에 감정이 해소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말하기는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상황과 신뢰 수준에 따라 조금씩 이야기를 진전시키면서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생존자들은 친족 성폭력이 단순한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임을 강조한다. 가부장제하에 직조된 ‘이상한 정상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며, 사회의 용인 아래 묵인되고 확대재생산돼왔기 때문이다. 민지가 “화목한 듯 보이는 가정 안에 얼마나 더러운 일이 벌어지는지 아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초원이 “덮어도 되는 집안일이 아니라 처벌해야 하는 범죄”라고 강조하고, 푸른나비가 “제발 가부장제를 깨달라”며 언론이든 시민단체든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을 찾아다니는 이유다.


‘가족 신화’의 피해자들

푸른나비의 어머니는 사실상 아버지와 공범이었다. 푸른나비가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걸 지켜보면서도 10년이나 방조했다. 푸른나비를 딸이 아닌 ‘연적’으로 여겨 질투하기도 했다. 푸른나비는 어머니 역시 가부장제의 희생양이었다는 걸 알지만, 지금도 남편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여성들을 보면 화가 치민다.

초원의 가족 사이에는 힘의 불균형이 있었다. 권력은 늘 아버지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어머니는 딸을 성추행하는 남편을 신고하지도, 그런 남편에게 화를 내지도 않았다. 행여 사춘기 아들이 엇나갈까 눈치를 보며 타이르는 엄마처럼 “애가 사춘기라 이제 그러면 안 된다”고 남편을 살살 달랬다. 초원에 대한 성폭력으로 유지되던 부모의 평화는 자녀들이 모두 출가하면서 무너져내렸다. 심각한 부부 갈등으로 어머니가 쉼터로 가출해 이혼조정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아버지가 폐타이어로 어머니 목을 조르는 일까지 벌어졌지만, 법원은 경제적으로 무능한 어머니의 이혼조정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초원은 “법원은 나라가 세금으로 먹여살려야 하니까 이혼도 못하게 하나” 싶었을 정도로 이해가 안 갔다. 어머니는 ‘돈이 드는’ 이혼소송을 포기한 채, 초원 몰래 다시 아버지 집으로 들어갔다. 초원은 이후 어머니와 연락을 끊었다.

민지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사촌오빠의 성폭력 사실을 털어놓았다. 부모님은 “왜 그때 말을 안 했냐” “이제 와 말하면 어쩌라는 거냐”고 민지를 꾸짖었다. 아버지는 평생 친척 눈치를 보며 살았다. 멱살을 잡아도 시원치 않을 딸의 가해자를 만나서도 보통의 조카를 대하듯 “잘 지냈니?” 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민지가 명절이나 제사 같은 가족모임 때 큰집에 가기를 거부하자, 아버지는 민지가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아프다” “중국 갔다”는 말로 친척들에게 둘러댔다. 민지가 성폭행을 당했을 때, 민지 어머니는 “네 몸을 간수 못한 너도 잘못한 거다, 네 동생을 길러보니 남자가 이해된다”며 피해자인 딸이 아니라 가해자인 남성에게 감정이입을 했다. 민지는 결국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는 이 모든 상황이 “정말 끔찍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푸른나비는 자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만지기’까지 포함하면 세 집 건너 한 집꼴로 친족 성폭력이 존재할 거라 믿는다. ‘암수범죄’(범죄 통계에 잡히지 않은 범죄)라 드러나지 않을 뿐, 심각한 수준의 강력 친족 성범죄가 많은데도 #미투 운동에서조차 ‘소수’처럼 여겨지는 게 억울하다. 푸른나비는 2015년부터 작은 말하기에 참여하면서 여성들이 피해를 말할 때를 손꼽아 기다렸지만, 정작 2018년 #미투 국면에서는 알게 모르게 소외감을 느꼈다. 푸른나비는 그 배경에 ‘가족 신화’가 작용한다고 믿는다. 그는 “한국 사회에는 가족주의와 가부장제에 대한 신앙 같은 신화가 있다”며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가족주의를 벗어던지고 가족 안의 성폭력까지 드러내야 ‘온전한 #미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푸른나비는 <한겨레21> 기사를 보고 전국에 친족 성폭력 생존자 보호 쉼터가 4곳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친족 성폭력 생존자가 얼마나 많은데 고작 4곳인가’ 싶었다. 친족 성폭력 생존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시민단체가 없는 것도 의아한 대목이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 단체도 성매매 여성 단체도 있는데, 어떻게 친족 성폭력 생존자 단체는 없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개인의 아픔을 말하면 공공선이 이뤄진다

푸른나비 자신이 ‘성실한 사회인’으로 잘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것 역시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는 “친족 성폭력 생존자를 만나보면, 몸과 마음이 아픈 분도 있고 현실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사는 분도 있고 너무 다양한 분들이 존재하는데, 상담가들조차 ‘생존자는 아프고 이상할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며 “더 많은 생존자가 자신의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하고, 생존자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 푸른나비는 ‘개인적 분노가 아니라 공공의 선을 위해서만 운동을 해야 한다’고 여겨 차마 ‘돌’도 던지지 못했다. 이제는 ‘개인의 아픔을 말하면 공공의 선이 이뤄진다’는 걸, ‘개인이 모여 운동이 되고 정치가 된다’는 걸 안다. 별자리로 본 푸른나비의 운세는 “부모 복도 없고 나라 복도 없는데, 불행을 자랑해야 산다”였다. 운세를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니지만 “너의 불행을 자랑하라”는 말만큼은 신념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푸른나비는 “큰 불행은 말을 해야 작아진다”며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일단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절대로 수치스럽지 않고, 말해야 산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푸른나비만 친족 성폭력 생존자의 ‘큰 목소리’를 꿈꾸는 것이 아니다. 작은 말하기에 참여하는 많은 생존자가 다른 생존자를 돕고 함께 목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집담회 때 미처 할 말을 다 못한 막내 민지는 며칠 뒤 따로 정성껏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그는 생존자들을 향해 “성폭력 생존자였던 저는 한 걸음 한 걸음 치유의 과정을 밟고 있다”며 자신에게 이제 생존자가 아닌 치유자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 저와 같은 성폭력 생존자들이 자책과 수치심, 분노의 늪에서 벗어나 한 걸음 한 걸음 치유의 과정을 걷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라고 전했다. 그는 “저와 같은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돕고 함께 연대하여 우리 사회의 수많은 성폭력과 성차별을 근절하는 것, 생존자 치료를 더디고 힘들게 하는 ‘성폭력을 둘러싼 편견’을 전복하는 것, 그것이 저의 또 다른 꿈이자 사명”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푸른나비가 그린 ‘어린 시절 내 모습’. 어두운 방에서 홀로 밤을 새운 아이가 새벽 창가에 비친 빛을 잡으려 손을 내밀고, 다른 생존자들이 음식과 선물을 놓아주며 “힘들었지?” “여기서 나가자”고 응원하는 그림. 푸른나비 제공


생존자가 아닌 치유자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밝힌 ‘작은 말하기의 철학과 지향’에서도 말하기는 치유이자 곧 운동이다. “성폭력에 대해 침묵을 강요했던 사회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해석할 만한 언어를 갖기 힘들 뿐 아니라 지지받고 공감받기 어렵다. 하지만 ‘말하기’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들을 찾아가고 이로써 자신을 들여다보고 위로하고 긍정할 수 있는 치유의 힘을 얻는다. 또한 말하기는 성폭력을 일으키고 묵인하는 기존 질서를 비판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운동이기도 하다. 치유였던 말하기가 운동 영역으로 나아가고, 세상을 바꾸려던 운동이 치유 효과를 얻으면서 서로의 의미가 교차하고 더 큰 영역으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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