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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난 상담소

2019.05.09. [오마이뉴스] "성폭력 재판 받고 계신가요?" 후원자에게 묻는 이유 관리자 ㅣ 2019-05-20 ㅣ 57
기사제목 : "성폭력 재판 받고 계신가요?" 후원자에게 묻는 이유
 
보도날짜 : 2019년 5월 9일

언론신문 : 오마이뉴스

보도기자 :  안선민 기고, 김혜리 편집

기사원문 :

"퇴직금을 받았는데 약 1000만 원 정도를 이곳에 후원하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직접 입금하고 기부확인서 같은 걸 받고 싶습니다." 전화를 받았다. 

우리는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어쩐다. 어찌할까? 전화를 끊은 후 후원담당 활동가들은 갑론을박을 시작했다. 

성폭력 가해자가 감경을 목적으로 기부하는 일이 수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확인하는 프로세스를 가동했다. 그러나, 그런데, 그래도 1000만 원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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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 재정은 언제나 어렵다. 1000만 원은 우리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퇴직금 중 1000만 원을 후원하기로 하는 것은 큰 결심이다. 그게 맞다면 이 중대한 결심을 꼭 여러 번 확인해야만 할까? 나는 말했다. 

"후원 그렇게 쉽지 않아. 1000만 원씩이나 누가 후원을 해. 아무리 가해자라고 해도 그렇게 큰 금액을 낼 리가 없지. 정말 중대한 성폭력 범죄자라면 모를까. 선의의 후원이 맞아!?" 

수일간 우리는 후원하고자 하는 분과 소통했다. 고민 끝에 마지막 전화에서 최후의 질문을 했다. 

"이런 질문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저희가 꼭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어서 여쭤봅니다. 혹시라도 성폭력 관련 재판을 받고 계신 중인가요?" 

심장이 쿵쾅거린다. 아니기를 바랐지만 전화로 건너온 대답은 "네"였다. 쭈뼛 겸연쩍은 말투로 그는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니고 친척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아, 네.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저희는 받을 수 없습니다. 저희는 감형받을 목적으로 내는 후원금은 받지 않습니다." 

확인 후 마음은 오히려 개운했다. 손톱 만큼의 미련도 없어졌다. 이걸 확인하지 않고 받았더라면 어쩔 뻔 했을까. '얼마나 중하고도 명백한 성폭력을 저질렀으면 저리도 큰 금액을 후원하려 했겠는가'에 생각이 멈췄다.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로서 후원을 감사히 받지 못하는 고충
 
 재판부는 여러 차례 성범죄 피해자들의 마음에 반하는 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 지금부터라도 법원은 성폭력 가해자가 감형을 목적으로 후원하는 것을 인정해선 안 된다. 그것은 진정한 사과나 반성이 아니다.
 재판부는 여러 차례 성범죄 피해자들의 마음에 반하는 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 지금부터라도 법원은 성폭력 가해자가 감형을 목적으로 후원하는 것을 인정해선 안 된다. 그것은 진정한 사과나 반성이 아니다.
ⓒ 박정훈

           


6년 전 상담소에 처음 입사했을 때, 나는 20여 년간 인연을 이어온 나의 옛 직장 동료들을 만나는 자리에 후원신청서 5장을 들고 나갔다.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대기업에서 모두 부장, 차장 직급을 달고 있으니 월 1만 원 후원은 누구랄 것도 없이 들어줄 거라고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작성해서 보낼게"라고 하는 동료도 있었고, 난처한 얼굴을 하는 동료도 있었다. 후원신청서를 버리면서 아주 불편한 표정을 하는 선배를 봤을 땐 매우 당황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후원받기가 너무도 어렵다'는 것을.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후원은 소중하고, 후원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 반갑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도 상담소는 언제부터인가 선뜻 감사한 마음으로 후원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왜 우리는 후원자를 의심해야 하고 선의의 후원자를 감별하는 이 이상한 확인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

2015년 성폭력 가해자의 감형 사유로 상담소 이름이 판결문에 적시되면서부터 꽤 높은 금액의 후원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100만 원, 200만 원, 500만 원 등. 가해자들은 일단 후원금부터 입금하고 당장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당당히 말했다.

"상담소는 기부금 영수증 발급의무 단체이니 즉시 발급을 해주세요."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지 가해자들은 다른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회사에 제출하면 인사고과에 반영되기에 지금 당장 필요하다." 

우리나라 어느 기업체가 그런 감사한 일을 한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각에도 수천, 수만의 직장인들이 후원금을 입금할 것이다. 

후원금을 입금하려는 분들께 혹시 '성폭력 재판을 받는 가해자냐, 가해자의 지인이냐'는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하는 것도 우리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매번 그런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하는 것도 힘들지만 그런 질문을 들어야만 하는 후원신청자 분들의 입장에서도 얼마나 황당하고 불쾌할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질문을 멈출 수 없다. 그리고 생각한다. '선의의 후원자라면 분명 우리의 이런 고충도 이해해 줄 거'라고.

법원은 가해자의 후원을 감형 사유로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이쯤 되면, 후원금이 대체 무얼까? 본질적인 질문을 되짚게 된다. 상담소에 처음 후원 신청을 하면서 지인은 "소소한 사회 참여"라고 말했다. "꼭 필요한 일인데 혼자서는 못하겠어, 그러니 너희 단체 사람들이 해주었으면 해"라고 말한 친구는 월 3만 원이라는 큰 금액의 후원 약정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랬다. 후원금 기부와 자원봉사는 일반 시민들이 내가 사는 이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행위다. 누구는 금전으로, 누구는 직접 발로 뛰어서 하는 행위다. 

법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법질서를 지키는 이유는 내가 속한 이 세상이 공정하고 바르며, 우리 모두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이길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정의로운 판결을 내릴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여러 차례 이런 후원자들의 마음에 반하는 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 지역봉사단체에서 총무로 적극적으로 활동한 점, 복지단체에 활발한 후원 활동을 다짐하고 있는 점, 복지단체에 꾸준히 기부활동을 해왔던 점,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정기후원금을 내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점 등을 사유로 성폭력 가해자에게 감형 판결을 내렸다. 

혹자는 얘기한다. 재판부가 가해자의 후원을 감형 사유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 거지, 상담소가 왜 후원금을 걸러서 받아야 하느냐고. "못된 짓을 한 범죄자들인데 돈이라도 내게 해야지"라고. 

누구는 진지한 반성을 가해자들에게 기대한 거냐고 묻는다.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법원도 제대로 판결하지 않는다면 후원금이라도 받아 다른 피해자를 돕는 데 쓰는 게 나은 것 아니냐"고.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 의견과 감정에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후원은 그렇게 악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원은 성폭력 가해자가 감형을 목적으로 후원하는 것을 인정해선 안된다. 그것은 진정한 사과나 반성이 아니다. 오히려 피해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손쉽게 죗값을 면피하려는 꼼수일 뿐이다. 

후원은 수많은 사람이 법에 거는 기대와 함께 자신들의 후원이 선순환되어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행위다. 재판부는 이를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법이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것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기자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원문링크 : http://omn.kr/1j4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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