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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03.13. (주간경향) 미투 이후, 또 눈물 흘리게 해선 안된다 관리자 ㅣ 2019-02-11 ㅣ 119

기사제목: 미투 이후, 또 눈물 흘리게 해선 안된다

보도날짜: 2018년 3월 13일

언론신문: 주간경향

보도기자: 류인하 기자

기사원문:

미투 운동으로 성폭력 피해사실을 숨긴 채 살아온 여성들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폭로와 고소·고발에 대해 가해자들이 오히려 ‘사실 적시 명예훼손’, ‘무고’ 등의 방식으로 반격하기도 한다.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아야 하는 이유다. 

3·8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한 여성이 미투운동의 상징이자, 인간의 존엄성을 상징하는 흰 장미를 들고 있다. /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3·8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한 여성이 미투운동의 상징이자, 인간의 존엄성을 상징하는 흰 장미를 들고 있다. /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지난 2월 27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519호 법정. 재판장이 피고인 이모씨에게 질문을 던진다. “피고인은 같은 동네에서 태권도장을 오래 운영한 것이 맞습니까. 태권도를 배우는 학생의 인적사항을 잘 알고 있었겠네요. 그러면 피고인은 최모양이 부모님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닙니까.” 황색 수의를 입은 피고인은 고개를 숙였다. “네 알고 있었습니다.”

검찰은 이씨에게 징역 5년에 신상정보공개를 구형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태권도장을 다니는 여아 2명을 두 차례에 걸쳐 강제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법정 안에는 피해자 변호사도 출석해 법정 맨왼쪽 좌석에 앉아 있었다. 피해자 변호사는 검찰의 구형이 끝난 후 두 피해아동을 대신해 의견 진술을 시작했다. 이 사건은 이미 두 피해아동의 법적 보호자가 이씨와 합의하고 처벌 불원 의사표시를 한 상태였다. 

“최양은 부모가 없이 외조모의 손에 커 왔고, 박양 역시 엄마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일반가정에 비해 두터운 보호를 받기 어렵습니다. 피고인은 학원장으로서 아이들의 연락처와 주소뿐만 아니라 개인정보를 굉장히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이미 (아이들이) 원치 않은 소문이 많이 나 있어 학교생활에 2차 피해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피고인과 피해자들의 주거지가 멀지 않아 보복의 우려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피고인에게 재판장님이 강력하게 경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날 서울고법 505호 법정. 특수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기소돼 이미 1심에서 각각 징역 8년과 징역 6년을 선고 받은 두 피고인의 변호사가 재판장을 향해 발언했다. “재판장님, 피고인 최OO은 현재 피해자와 합의가 진행 중이고, 인천지법에서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이 있어 병합을 신청합니다.” 

피해자의 국선변호인은 그러나 피고인 측 변호사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피해자 변호사는 재판장의 의견서 진술 요청에 따라 피해자 측 입장을 진술했다. “피고인들은 현재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지 않고, 이미 2차·3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합의부분 역시 1심 선고 후 피고인 최OO로부터 한 차례 합의 요청이 온 적이 있을 뿐입니다. 또 합의금액 역시 피해자의 피해에 비해 경미한 수준이어서 금액 조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자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합의의사가 없습니다. 현재 피고인은 공판이 하루속히 끝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재판이 길어지면서 2차 피해가 양산되고 있습니다(실제 또다른 피고인 최◇◇는 재판 중 피해자에게 협박편지를 보내 타 법원에서 징역 1년을 추가로 선고 받았다). 절차를 조속히 종결해주시고, 현재는 합의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미투운동이 점점 각계로 확산되면서 가해자들의 추악한 행태들이 계속 폭로되고 있다. 공소시효가 끝나 이미 법적 처벌은 어려워졌더라도 이들에 대한 여론재판은 진행 중이다. 그러나 문제는 ‘유명세’가 없는 가해자에 의한 성범죄 피해자들이다. 미투운동은 일반시민들 사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여론재판’도 불가능하다. 또 대부분의 성범죄가 그렇듯 피해자의 주장만 있을 뿐 명확한 증거가 없는 일도 많다. 이에 따라 그동안 잠잠했던 가해자들의 ‘반격’ 역시 시작되고 있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성폭력 피해사실을 숨긴 채 살아온 수많은 여성들의 폭로와 고소·고발이 ‘사실 적시 명예훼손’, ‘무고’ 등의 방식으로 또다시 공격당하는 것이다. 법조계를 중심으로 미투운동이 실질적으로 보호되고, ‘미투 이후’를 위한 법·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보호장치 피해자 중심으로 보완해야 

현재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가해자를 고소한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도 존재한다. 바로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한마디로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존재하는 변호사를 말한다. 형사재판에서 재판 당사자는 검사와 피고인(변호사)이다. 누구보다 재판 진행과정과 가해자 처벌에 관심이 높을 피해자는 배제된 채 재판이 진행되는 셈이다. 게다가 피고인 측 변호사는 피고인의 무죄 주장 또는 형량감경을 위해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거나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주장으로 피해자를 모욕하기도 한다. 수사과정에서도 2차 피해가 발생한다.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는 이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법무부는 2012년 12월 성폭력특별법을 전면개정하면서 동법 제27조에 피해자 변호사 조항 신설을 시작으로 수사기관 및 사법기관에서의 피해자 지원을 해 왔다.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아동학대처벌법, 성폭력특별법상 피해자를 지원한다. 검찰은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수사단계에서부터 피해자를 지원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8년 현재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전국에 603명이 활동하고 있다(2017년 말 기준). 피해자 국선변호사 선정절차는 다음과 같다. 성폭력 피해자가 경찰에 피해사실을 말하면 경찰이 국선변호사 제도를 설명하고, 선임 여부를 묻는다. 피해자가 원할 시 관할 검찰에 요청서를 보내 국선변호사가 지정된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재판이 종결될 때까지 교체되지 않아 피해자가 여러 차례 피해사실을 진술하지 않도록 한다. 또 피해자를 대신해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의견을 진술한다. 수사기관에서 벌어질 수 있는 2차 피해를 막는 것 역시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역할이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여전히 성폭력사건의 재판 당사자는 아니지만 법정 내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피고인이나 변호사에게 상당한 부담을 준다. 재경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피해자 변호사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피고인이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법정에서도 피해자를 모욕하는 발언을 상당히 많이 하는 편이었다”면서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정말 다툼의 여지가 있지 않은 이상 법정에서 피해자를 음해하는 방식의 변론은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즉 합의를 위해서라도 적어도 피해자 국선변호사가 있는 법정 안에서는 피해자를 모욕하는 발언을 자제한다는 것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주최로 지난 2월 23일 '달라진 우리는 당신의 세계를 부술 것이다 - 강간문화의 시대는 끝났다' 집회에 참석한 여성들이 성폭력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 김영민 기자

한국여성민우회 주최로 지난 2월 23일 '달라진 우리는 당신의 세계를 부술 것이다 - 강간문화의 시대는 끝났다' 집회에 참석한 여성들이 성폭력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 김영민 기자


가해자들의 방어용 무기인 무고죄 

이같이 성폭력 피해자가 수사기관과 사법권 안으로 들어와 보호 받을 수 있는 장치는 마련돼 있지만 정작 성폭력 고소·고발 또는 ‘미투운동’과 같은 형태의 SNS(사회관계망 서비스) 상의 폭로가 가해자의 맞고소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여전히 보호 받기 어려운 처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무고죄다. 무고죄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신고한 자를 처벌하는 형법규정이다. 기소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대부분의 성폭력 가해자들은 피해자로부터 고소를 당하면 무고죄를 대응무기로 삼는다. 실제 경찰청 통계 등을 살펴보면 성폭력 범죄 가해자가 상대방을 무고죄로 맞고소하는 비율은 전체 무고죄의 37~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지난 2016년 2월 자신이 일하는 유흥주점에서 지인들과 함께 온 JYJ 박유천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며 박씨를 고소한 ㄱ씨는 박씨로부터 무고죄 맞고소를 당했다. 검찰은 박씨의 범죄사실에 대해 혐의 없음 판단, 불기소처분을 내리고, ㄱ씨를 무고죄로 기소했다. ㄱ씨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 판단은 무죄였지만 1심 재판이 시작된 2017년 7월 4일부터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진 12월 22일까지 ㄱ씨는 171일간 아무 죄도 없는 박씨를 성폭력범으로 허위고소한 ‘꽃뱀’으로 살아야만 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또 ㄱ씨를 ‘룸살롱녀’ 등의 단어로 비하하면서 사실상 ‘2차 가해’가 이뤄졌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인생>으로 ‘제2의 전성기’라는 수식어를 단 배우 박시후 역시 지난 2013년 2월 연예인 지망생 ㄴ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고소당했지만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처분을 받은 바 있다. 당시 박씨는 피해여성 ㄴ씨를 무고죄로 맞고소했다. ㄴ씨는 결국 박씨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박씨 역시 맞고소를 취하하며 사건은 일단락됐다. 2013년 6월 친고죄가 폐지되기 전 사건인 덕분에 박씨는 ㄴ씨의 고소취하만으로 재판까지 가지 않는 ‘행운’을 얻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그 사실을 털어놓고 수사기관에서 조사 받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심적 부담이 생긴다”면서 “사실을 진술하고 있더라도 상대방이 무고죄로 맞고소하면 그 자체로 이미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로서는 소송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해자로서는 ‘다퉈볼 만하다’는 법적 조언만 얻으면 일단 무고죄로 맞고소를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며 “어찌보면 무고죄가 고소당한 성폭력 가해자에게는 훌륭한 방패가 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민주당 의원 9명과 노회찬 정의당 의원,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 등 11명은 2016년 12월 20일 검사와 사법경찰관 또는 법원은 성폭력 범죄 피해자가 무고혐의로 고소 또는 고발되는 경우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종료되거나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기 전까지 맞고소된 무고죄 관련 수사 및 재판을 유예하는 내용의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2년째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용기를 내서 성범죄자를 고소한 피해자가 최소한의 법적 보호장치도 없이 가해자로부터 맞고소를 당하고, 성폭행 피해사실을 피고소인의 입장에서 또다시 수사기관에 진술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조은희 활동가는 “무고죄를 유예하는 법안이 통과된다면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힘이 돼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다수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사건을 형사고소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무고로 맞고소당하는 것을 고민하고 힘들어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도 장애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 역시 성범죄 피해자의 폭로 및 고소를 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형법 제307조는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현재 SNS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미투운동’의 피해여성들 역시 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기소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비록 위법성 조각사유로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 공공의 이익에 관할 때는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 역시 기소 후 재판과정에서 입증돼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큰 실익이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대학생 ㄷ씨는 최근 미투운동에 동참했다가 가해자로부터 맞고소를 당했다. ㄷ씨는 지난해 11월 경기도 안산의 한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매니저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한 내용을 폭로했었다. 경찰은 그러나 ㄷ씨의 폭로사실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종결하고, ㄷ씨를 기소의견(명예훼손 등)으로 수원지검에 송치했다. 조사과정에서 ㄷ씨는 “왜 진작 성희롱 신고를 하지 않았느냐”는 등의 2차 피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은 실제 무고죄보다 더 훌륭한 가해자의 방어무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무고죄는 피해자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절차가 있지만 사실 적시 명예훼손의 경우 ‘범죄사실’을 외부에 공개해 가해자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주장만으로 기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로서는 자신이 피의자가 될 수 있다는 부담만으로도 성폭력 피해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지 못하게 되는 기재로 작용하는 셈이다. 실제 여성가족부의 2016년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신고율은 2.2%에 불과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과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해 <성폭력 역고소 피해자 지원을 위한 안내서>를 발간, 피해자 지원에 나서고 있다. 안내서는 ‘성폭력 역고소란 성폭력 가해자가 피소 이후 피해자를 무고로 고소하거나, 성폭력 피해자의 고소 여부와 상관없이 피해자를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폭력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자신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도록 협박하거나 더 이상의 문제제기를 못하도록 위협하는 수단으로 역고소를 활용하고 있습니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해당 안내서는 역고소의 유형별 특징부터 역고소 과정에 따른 대응방법, 도움되는 판례 및 자료, 도움 받을 수 있는 기관 등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사실 적시 명예훼손 폐지’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2월 26일 밝혔다. 남인순 젠더폭력대책TF 위원장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폭로로 인해 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되지 않는 법안을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 처벌규정을 폐지해야 한다는 법개정은 역대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된 바 있지만 대부분 의안폐지됐다. 금태섭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11명은 지난 2016년 9월 20일 사실에 관한 명예훼손죄 처벌규정 및 모욕죄를 삭제하고, 명예에 관한 죄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냈지만 이 역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조은희 활동가는 “가장 중요한 것은 성폭력사건을 다루는 수사관부터 재판장까지 성폭력 피해자들이 갖게 되는 두려움이나 혼란스러움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라며 “법 정비도 좋지만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성 인식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원문링크: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_id=201803051740511#csidx21c0c85eaaeecc7b994eee4df7fa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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