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화운동
행진을 멈추지 말자
- 3.8 세계여성의날 맞이 연대의 런데이를 제안하며
3월 8일은 1975년 유엔이 선포한 세계여성의날이다. 세계여성의날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맞서 노동권과 참정권 보장을 외쳤던 여성노동자들의 궐기에서 유래됐다. 1908년 의류산업에 종사하던 1만 5천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이 공장 화재로 죽은 여성노동자들을 기리기 위해 뉴욕의 러트거스 광장에 모였다. 유례 없는 여성들의 대규모 시위였다. 1910년 국제여성노동자대회에서는 세계여성의날을 제정하자는 제안이 나왔으며 1911년 3월 8일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인 집회가 열렸다.
더 이상 참지 않고 ‘빵(생존권)과 장미(인권)를 달라’고 외치며 동료들과 거리로 나섰던 여성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피켓과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걷고 달리고 점거하는 움직임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왔다. 성적 억압과 불평등에 맞서서 수십, 수백, 수천, 수만 명이 한 데 모여서 외치고 행진하는 행동은 변화를 만드는 힘이었다.
지난 광장을 기억한다. 우리는 성차별·성폭력에 분노하며 광장에서 #미투를 외쳤다.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며 헌법재판소 앞에 모였다.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하며 거리로 나섰다. 성폭력을 조장하는 권력의 카르텔을 해체하고 성평등한 사법정의를 요구하는 페미시국광장을 열었다. 삶을 옥죄는 성차별과 성폭력에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추모 문화제를 열었다. 함께 존재함을 확인하며 걷고 노래하고 춤췄다. 인간답게, 자유롭고 존엄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코로나19는 집회하고 행진하기 어려운 시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광장이 닫혔다고 해서 저항도 멈춘 것은 아니다. 어떤 이름의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몸과 공간과 위치를 가진 모든 순간 차별과 폭력과 관계의 불평등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집에서, 거리에서, 일터에서, 친밀한 관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울 수 밖에 없다. 동시에 자신의 자리에서 싸우며 다른 이들에게 연대와 안부를 전하는 이들을 만난다.
행진을 멈추지 말자.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각자의 자리에서 나의 의제와 함께 걷고 달리자. 서로에게 릴레이 편지를 쓰는 것처럼 걷자. 매일 지나는 거리에서 불평등의 정치를 걷어차며 달리자. 존엄한 존재로서 살아있는 나의 몸과 움직임과 힘을 느끼자. 싸우는 우리가 여기에 있음을, 낡고 부정의한 그들의 정치는 틀렸음을 세상에 보여주자.
2021. 3. 8.
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