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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 변화

성폭력 및 여성 인권 관련 법과 제도를 감시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법 제·개정 운동을 소개합니다.
[단호한 시선] 성폭력은 성차별 사회의 일상이다 여성폭력방지·피해자지원 분산이관 반대한다 성평등 전담 부처 확대·강화하라
  • 2022-04-11
  • 2038




[2022. 4. 11. 한국성폭력상담소 단호한 시선]

성폭력은 성차별 사회의 일상이다
여성폭력방지·피해자지원 분산이관 반대한다
성평등 전담 부처 확대·강화하라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고, 여성가족부가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며 폐지론을 주장했다. 강력범죄는 처벌을 강화할 것이며, 폭력피해자지원은 문제없도록 이관할 것이라는 계획이 당선 이후로도 이야기된다. 

지난 30년간 피해생존자와 함께 성폭력에 맞서온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평등 전담부처의 폐지, 여성폭력방지와 피해자지원 업무의 분산이관(안)에 반대한다.

1. 성폭력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먼저 성차별 구조를 넘어야 한다

당선인은 성폭력을 성차별 문제와 떨어뜨리고 ‘강력범죄’로 형사처분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성차별에 대한 대응 노력없이 성폭력에 대응하는 것이 가능한가? 절대 불가능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 2021년 상담통계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살펴 보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직장 내 관계(37.7%)다. 다음은 친족 및 인척(15.9%), 그다음은 친밀한 관계(10.2%)다. 성폭력은 ‘폭행 또는 협박’, 그중에서도 ‘저항이 현저히 곤란할 정도의 폭행·협박’보다는 신뢰 관계, 일상적 위력, 사회경제적 상태를 이용하여 발생하는 폭력이다. 직장, 가족, 친밀한 관계에서 여성이 처한 직급, 고용상 위치, 평가받는 방식, 경제적 의존-통제 상태, 성적 낙인, 재생산과 돌봄에서의 불평등은 피해자가 성폭력에 지속해서 노출되는 매개가 된다. 그러나 성폭력을 판단할 때 이러한 불평등을 고려하는 재판부는 현저히 드물다. 현행 형법체계는 여전히 피해자에게 얼마나 저항했는지 묻고 있다. 한국의 고용, 가족, 연애-결혼-재생산 환경은 성평등한가? 환경이 성차별적일수록 2차 피해 발생 가능성 또한 크다. 한국 사회는 2차 피해가 심각하고 만연하며, 사실상 이를 피해자 개인이 감당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범죄로 ‘인정’되는 성폭력은 무엇인가. 대검찰청 「2021년 범죄분석」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 중 성인범의 피해자와의 관계>는 고용관계 2.2%, 애인 5.5%, 친족 3.4%, 타인 59.3%으로 나타났다. 수많은 피해자가 성폭력상담소에서 직장, 가족, 친밀한 관계에 의한 성폭력을 상담하지만, 정작 수사기관에서는 고용관계, 애인, 친족에 의한 성폭력을 고소하기 어렵거나 수사과정에서 배제당하고, 타인에 의한 성폭력 59.3%만 남는 현실이다. 즉 실제 일어나는 성폭력은 범죄통계에서 누락되고 있다. 

성폭력을 성차별과 떨어뜨려 범죄로서 처벌 형량만 높인다면 어떻게 될까? 피해자가 살아가는 일터, 학교, 가족, 온라인, 길거리는 그대로인 반면 가해자의 처벌을 줄이기 위한 법률 시장은 커질 것이다. 가해자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보다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법적 판단을 뒤집으려 할 것이다. 이에 더해 국민의힘은 성폭력특별법에 무고죄를 신설하겠다고 공약했다. 가해자가 성폭력 통념과 ‘피해자다움’에 대한 편견을 이용해 피해자를 ‘꽃뱀’, ‘무고사범’이라고 주장하는 전략에 힘을 실어주며, 보복성 역고소를 더욱 쉽게 할 수 있도록 명분과 장치를 마련해주는 셈이다. 공약대로 된다면 성폭력 수사·재판 과정은 ‘강력범죄’ 대응이 아니라 더 많은 권력과 자원을 가진 가해자가 돈과 시간과 인맥을 총동원해 실체적 진실을 왜곡하며 피해자를 괴롭히고 비난하는 또 다른 폭력 행사의 장이 될 것이다.

대검찰청 2021년 「범죄분석통계」상 성폭력의 <범죄자 성비>는 남성 95.7%, 여성 3.8%이며, 한국성폭력상담소 2021년 상담통계상 <가해자의 성별>은 남성 89.8%, 여성 2.6%(미상 7.6%)이다. 성별에 따른 권력 차이가 성폭력 피·가해와 그 이후 대응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똑바로 보지 않으면 격차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고 개인적 범죄만 있다고 강조할 때 피해자는 불리한 환경에서 혼자 입증책임을 떠안게 되며 일상을 회복하기 더 어려워진다.  

2. 여성폭력방지 및 성평등 전담부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었을 때 대중, 국회, 언론 등은 “여성가족부는 뭐하는가?”라고 질타했다. 아무도 “법무부는 뭐하는가? 행정안전부는 뭐하는가? 교육부는 뭐하는가? 보건복지부는 뭐하는가?” 라고 질문하지 않았다. 여성폭력 방지와 피해자 보호·지원 문제는 여성가족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모두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가 없어지면 어떤 부처가 이 역할을 대체하고 책임질 수 있는가?

대한민국에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있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여성폭력방지와 피해자 보호·지원 책무가 있으며, 여성폭력방지정책을 종합적·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 법의 기본이념은 “여성폭력방지정책의 추진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공공 및 사적영역에서 여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폭력 없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여성폭력”이란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신체적·정신적 안녕과 안전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관계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성희롱, 지속적 괴롭힘 행위와 그 밖에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폭력 등”을 말한다.

그러나 「성폭력처벌법」, 「가정폭력처벌법」, 「성매매처벌법」, 「스토킹처벌법」 등으로 각각의 행위를 범죄화하는 기존 법만 가지고는 여성폭력의 현실을 포괄할 수 없다. 어떤 여성폭력은 차별과 불평등한 구조 속에 꽁꽁매어 세상에 드러내지 못한 채 수십년이 지난다. 특히 데이트폭력, 스토킹, 디지털성폭력 등은 먼저 피해 상황이 드러나고 수많은 피해자가 죽음까지 이른 후에야 보호 역할이 시급하게 요청되었고 뒤늦게 법안이 마련되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실태를 조사하고, 통계를 작성하고, 종합계획을 수립·점검하고, 명시적으로 홍보해야 여성폭력에 대응할 수 있다. 이러한 대응을 실효성 있게 하려면 예산을 수립하고, 정부입법을 할 수 있는 ‘전담 부처’가 존재해야 한다. 1995년 UN에서 채택한 「베이징행동강령」은 정부가 여성정책을 전담하는 국가기구를 설립·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하며, 해당 국가기구는 “명확하게 규정된 임무와 권한을 가져야” 하며, “정책에 영향을 행사하고 또한 법률을 입안하고 검토하기 위한 적절한 자원과 능력 및 자격”이 중요한 요소라고 밝힌다. 

한편,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2017년 발표한 일반 권고 35번은 ‘Gender-based violence against women’ 즉 ‘젠더-성차별 구조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개념을 명시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만 하면 여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와 원인, 대책을 간과하기 쉽고,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라고만 하면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별화된 폭력이라는 대상 구조가 간과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에 따르면 성폭력,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온라인에서의 여성혐오, 스토킹, 성착취, 인신매매, 성매매, 아동 청소년에 대한 그루밍, 여성살해 등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위 권고는 장애, 이주, 전쟁, 성소수자 등 교차적 상태에 있는 피해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시야를 촉구한다. 더불어 여성폭력 방지활동을 하는 사람에 대한 폭력도 여성폭력 구조 안에 포괄한다.

한국은 「여성차별철폐협약」을 가입, 비준하고 있는 국가다. 「여성차별철폐협약」, 「사회권규약」, 「자유권규약」, 「고문방지협약」 등에 입각하여 성폭력 구조적 방지, 피해자 지원, NGO와의 협력, 법제도의 개선은 국제기구의 정기적인 점검 대상이다. 여성폭력방지 및 성평등 업무를 분산이관하고 전담 부처를 폐지하겠다고 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이해받을 수 없으며,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온 한국의 시민들도 이해할 수 없다.
 
3. 여성폭력방지는 전국 각계 각층의 모니터링, 참여, 실천을 통해 가능하다

“이제 성폭력 별로 없잖아?”, “우리 직장에는 성희롱 없는데?”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많은 시민들이 우리 사회가 변화했다고 느낀다면 다행이다. “여성가족부는 부처의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는 윤석열 당선인의 말이 혹시 성폭력 문제가 일상에서 개선되었다는 뜻이라면, 이를 위해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도 얼마나 많은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지 확인해보라.

대표적인 사회적 변화 시기로 #미투운동이 있다. 전국에서 정치, 학교, 문화예술, 체육, 종교, 친족 등 모든 영역에서 성폭력, 성차별, 2차 피해 말하기가 터져나왔다. 피해자들이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며 사건을 공론화했고, 시민들은 함께 성폭력 사건을 지탄했다. 언론은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 젠더데스크 등을 만들고 지키며 피해자의 신상이 아닌 성폭력 관련 법제도 대책을 보도했다. 시민들은 2차 피해의 심각성을 인식했고, 문화예술계를 비롯한 학교, 체육계, 종교계 등에서는 해당 분야의 관련자들이 자발적으로 모니터링과 연구 모임을 꾸리고 정부에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여성가족부는 법무부, 국방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인적자원부 등을 모아 성폭력 특별신고기간을 열고, 범정부 대책과 법안 마련을 총괄했다. 중앙 정부는 총괄 대책을 수립했고, 서울, 경기 등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체적으로 성폭력 통계와 연구 결과를 내고, 대응기구와 센터를 설립했고, 이러한 지역적 정책과 실행은 방방곡곡에서 점차 벤치마킹되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겨우 법과 제도, 정책, 예산, 부처가 있는 사회로 변화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변화는 평등하지 않다. 서울과 다른 지역은 격차가 크다. 언론이 주목하는 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은 결과도 다르게 느껴진다. 개방적인 조직과 폐쇄적인 조직은 성희롱·성폭력 처리 절차도 차이가 크다. 아동성폭력과 친밀한 관계 내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은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받는 대우가 다르다. 가해자가 동원하는 돈과 인맥에 따라 피해자는 2차 피해와 보복성 역고소에 처하며 보호와 권리의 망에서 이탈된다. 아직 법과 제도가 인지하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여성폭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피해자나 피해 상황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변화는 저절로 이루어지거나 특정 시대에 완수되지 않으며, 멈추는 순간 퇴행한다. 성차별을 해소하고 성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사법부, 입법부와 협력해야 하며, 국가는 공공기관, NGO, 기업, 언론, 사회문화, 체육, 국방 등 전 영역이 서로 연결되어 대안을 논의하는 구조를 만들고 유지해야 한다. 시민들은 정책과 제도와 판결을 모니터링하며, 변화의 주체로서 실천하고 참여해야 한다. 

우리는 여성폭력방지 및 성평등 전담 부처를 요구한다. 여성가족부를 존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확대·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윤석열 당선인과 새 정부는 응답하라.

2022. 4. 11.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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