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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 변화

성폭력 및 여성 인권 관련 법과 제도를 감시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법 제·개정 운동을 소개합니다.
[단호한시선]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전면 폐지하라! 본질은 연령이 아닌 관계에 있다 - 친족에 의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법안의 여성가족위원회 통과에 부쳐
  • 20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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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전면 폐지하라! 본질은 연령이 아닌 관계에 있다

- 친족에 의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법안의 여성가족위원회 통과에 부쳐


2025년 9월 24일, 친족에 의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안(의안번호 2202208. 정춘생의원 대표발의)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현 성평등가족위원회)를 통과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관련 법안이 단 한 건도 통과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22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노력이 빛난다. 가장 중요하게는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의 오랜 투쟁이 만들어온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통과된 법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로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에게 해당하는 조항이 된다.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과 함께 통과될 때 의미가 발생한다. 불법적인 성적 영상물 '소지죄'가 아청법에만 있다가 성폭력 처벌법 조항으로 보편화되었듯, 친족 성폭력의 문제는 연령의 문제이기보다 유형과 구조, 특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2024년 상담 통계에 따르면, 친족 및 인척에 의한 피해가 15%로 전체 유형 중 두 번째로 높다. 이는 상담 통계에서 지속해서 나타나는 양상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성인 피해자가 10명 중 1명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친족 성폭력은 결코 아동·청소년에게만 국한되어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이는 친족 성폭력의 본질이 연령이 아닌 관계성에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친족 성폭력은 친부, 의부, 조부, 친형제, 의붓형제, 삼촌, 사촌, 형부, 시부모로부터의 성폭력으로, 혈연관계뿐만 아니라 결혼제도로 이어진 가족관계에서 발생하는 범죄이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공고한 한국 사회에서 가족구성원은 각자의 역할과 위치를 가지며 위계적인 구조에 놓여진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친족관계는 가해를 보호하고, 피해를 은폐하며, 폭력을 드러낼 수 없게 만드는 특수성을 가진다.


친족관계의 특수성은 피해 신고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친족 성폭력 생존자가 피해를 알리는 일은 경제적·정서적 독립의 문제와 직결된다. 가족을 고발한다는 사회적 낙인과 친족관계로부터 2차 피해를 가장 먼저 직면,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높은 성별 임금 격차, 청년 실업률과 여성의 고용불안, 높은 주거비, 가족 중심의 복지 지원체계와 같은 사회적 조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생존자가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구조적으로 어렵게 만든다. 이는 미성년자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적용되는 현실이다.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전면 폐지는 국내만의 요구가 아니다. 국제사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정부에 변화를 촉구해 왔다. 2021년 UN 인권이사회가 채택한 <강간에 관한 특별보고서>는 강간에 관한 법적 소송 절차를 개시하는 데 공소시효가 있어서는 안 되며 강간에 관한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와 같은 국제사회의 권고는 피해생존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의 방향을 제시하며,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전면 폐지는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부합하는 조치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친족 성폭력에 대해 공소시효 없이 수사·처벌하겠다는 사회적 체계 마련을 위해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한 공소시효 전면 폐지 활동을 생존자와 함께 이어왔다. 생존자의 꾸준한 말하기는 입법 과정에도 변화를 이끌어냈다. 22대 국회에서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관련 법 개정안이 4건 발의된 것이다. 하지만 제도적 움직임은 여전히 미흡하다.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만료로 피해가 구제되지 않는 실태 파악에 대한 국가 통계는 부재하며, 법무부는 ‘신중 검토’ 의견을 되풀이하고 있다.


생존자들은 오랜 시간 용기를 내어 말해왔다. 이제 22대 국회가 답할 차례이다. 법제사법위원회는 친족 성폭력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법안을 빠르게 논의하고, 신속하게 가결하라.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는 정춘생 의원 대표발의(202209)를 위시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아동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함께 논의하고 통과시켜라. 성폭력 피해의 특성과 구조에 대응하여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구제하는 것은 국가의 최소한의 의무다.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전면 폐지하라. 생존자의 권리를 언제부터라도, 그 어느 때일지라도 보장하라!


2025.10.28.

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