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인터뷰: 활동가들의 2022년은?
안녕하세요. 한국성폭력상담소 기자단 ‘틈’의 자원활동가 은화입니다. 어느새 2022년이 지나가고, 또 한 해가 밝았습니다. 상담소에서도 활동가들이 2022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2023년 맞아 새로운 활동들을 기획하고 또 지난 활동들을 발전하며 준비 중에 있습니다! 유난히 바쁘기도 했지만 그만큼 함께 싸우고 연대하며 보람된 일도 많았던 2022년. 상담소 활동가들은 지난 1년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또 2023년을 맞이해 활동가들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요?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경진(여성주의 상담팀), 동은(성문화운동팀), 산(회원홍보팀)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지난 2022년, 활동가 분들께는 어떤 한 해였나요?
동은: 지난해 2월 상담소에 입사해 이제 약 1년을 맞이하고 있는데요. 대통령 선거 당시, 선거 대응에 한창이던 시기에 상담소에 들어와 토론회와 집회에 참여했고, 차별금지법 제정 연대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과 농성 투쟁을 지원하며 봄과 여름을 보냈어요. 여름에는 미투운동 중간 결산에 기획단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여가부 폐지 대응과 적극적 합의 프로젝트도 함께 했네요. 그 과정에서 벅찬 순간들이 많았어요. 생존자들의 목소리나 여성들의 목소리가 너무 강렬하고도 힘 있어서 벅차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진짜 버거워서 ‘헉’ 하기도 하고. “벅차고도 벅찼다”는 말로 한 해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경진: 여러 일이 있었던 해인 것 같아요. 정권이 바뀌고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한 이슈가 나오면서 내담자들께서 단순히 ‘지원을 못 받는다’가 아닌 ‘내가 안전하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 말하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 이런 부분에 대한 큰 걱정을 드러내셨어요.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많이 고민하던 해였던 것 같아요. 또 새로운 프로그램를 기획하기도 했어요. 성폭력 역고소가 피해자를 넘어 조력인에게도 확대되는 상황에서 ‘조력인자조모임’을 한 번 해보자 해서 진행을 했는데, 처음인 만큼 우여곡절도 많고 우당탕탕 진행됐던 부분도 있었지만 조력인을 위한 자리를 만들었다는 시도 자체가 의미 있었던 것 같아요. 성폭력 사안과 관련해서는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이 올해 2월을 기준으로 거의 3년 가까이 대법원에 장기 계류돼있던 상태였어요.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여군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해군 공대위)에서는 이러한 대법원 장기계류 또한 명백히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이 과정을 함께하여 ‘다양한 방식으로도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구나’ 깨달았던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산: 다채롭게 바빴던 한 해였어요. 구체적으로 뭘 했는지 떠올려보면 너무 많은 순간들이 순식간에 지나가서 되레 말이 없어지는데, 말 그대로 다채롭게 바빴던 것 같아요. 반복되는 일은 그것대로 처리하면서, 어떤 이슈나 안건이 생겼을 때에는 또 그에 맞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그리고 회원홍보팀은 올해 신설되었다보니, 회원 관리·예우와 홍보 측면에서 점검도 하고 새로운 논의를 하기도 했어요. 팀 내실을 다지기 위한 시간도 종종 가졌습니다. 개인적으로, 힘 있고 역동적인 상담소의 활동을 함께 하면서 여러모로 많이 배우고 성장한 시간이었어요.
Q. 상담소에 있으면 항상 활동가분들께 바빠 보이셨어요. 2022년 이슈가 많았나요?
경진: 저도 이제 12월에 2년이 채워진 활동가인데, 사실 이런 다양한 이슈는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굵직한 성폭력 사건들에 대해 대응하고 공대위 같은 조직이 구성되기도 하는데, 올해는 특히 여성가족부와 관련해서 긴밀하게 움직여야 했던 사안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스토킹 처벌법이 작년 10월 21일에 시행되었는데, 이후 신당역 사건이 발생하면서 성문화운동팀에서 긴급 액션을 진행했던게 기억이 나네요. 매년 다양한 이슈들이 있었는데, 올해 유독 긴급히 움직여야 했던 일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동은: 상담소에 지난해에 들어와 비교가 조금 어렵지만, 성문화운동팀에서 5년간 일하고 있는 앎 활동가가 올해가 역대급을 바빴다고 말하더라고요. 앎이 오랜 연차가 되면서 업무량자체가 많아진 영향도 있겠지만, 여가부 폐지 긴급 대응이나 ‘낙태죄’ 폐지에 대한 대안 입법 촉구 긴급행동, 젠더 폭력 사망 사건에 대한 긴급 액션들이 진행되면서 여러 여성단체나 시민단체들과 급하게 연대체를 구성해야 했던 활동들이 많았던 게 지난해의 특징이지 않을까 싶네요.
Q: 활동을 조직하고 또 진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경진: 해군 공대위에서 담당으로 활동 중인데,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 사건의 대법원 선고일이 3년 가까이 잡히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선고일이 확정된 것을 확인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급하게 해군 공대위 단위체들과 긴급회의를 진행하고 기자회견을 기획하였습니다. 가해자가 두 명인 사건이다 보니 두 건 모두 파기환송되거나 또는 상고기각되거나 한 건은 파기환송, 다른 한 건은 상고기각 이런 식으로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도 있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판결 당일 기자회견을 준비할 때 여러가지 가능성에 따라서 각각에 해당하는 발언문을 모두 준비했었어요. 선고결과는… 한 가해자에 대해서만 파기환송이 결정되었어요. 공대위에서 ‘반쪽짜리 판결’이라고 분노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한 것이 기억납니다. 이 파기환송심은 아직 진행 중이라 공대위는 활발히 활동 중에 있습니다. 어려움이라면 사건의 법적과정이 장기화되면서 예전에 비해 집중도와 관심이 떨어진 것 같아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이건 이 사건 뿐만 아니라 장기화되는 다른 사건들도 비슷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동력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 것이 공대위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Q. 올 한해 상담소에서 변화된 게 있다면?
동은: 성문화운동팀의 2인체제가 3인체제로 변화한 거? 회원홍보팀이 신설되는 동시에 성문화운동팀은 원래 2인이었는데, 이제 3인으로 늘어나면서 제가 함께하게 됐어요. 또 회원홍보팀도 2인팀으로 개설되면서 회원들과 만나고 대중들과 만나는 활동들을 넓혀가고 있는 것 같아요
올해 또 변한 게 경진 활동가가 상담소 내 고양이 밥을 안정적으로 주는 변화가 있었어요. 이게 상담소 활동가들에게도 큰 변화인 것 같아요. 활동가들이 다 동물을 좋아하고 해서, 아이들이 와서 밥 먹고 하면서 분위기도 좀 더 좋아진 것 같아요.
Q. 2022년에 진행된 적극적 합의 프로젝트에 대해 돌아보자면?
동은: 적극적 합의 프로젝트는 2017부터 시작됐는데요. 성폭력 사건의 판단을 폭력, 폭행, 협박이 아닌 동의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판결이 캐나다에서 나왔고, 그 판결문의 “Affirmative consent”를 “적극적 합의”로 번역하면서 시작을 했죠. 지난해에는 적극적 합의와 관련해서 지금까지 만들어진 내용들을 정리하고 그 내용을 성폭력 예방 교육 강사 분들이나 청소년 교육하시는 분들, 혹은 시민단체에 전달하며 내용을 확산시키는 데 주력했던 것 같아요.
사실 여성 운동, 반성폭력 운동에서 성폭력을 유형력 폭행, 협박이 아니라 성적 자유 결정권 침해를 기준으로 하자, 즉 개인이 동의하지 않는 성적 침해를 성폭력이라 하자는 주장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중요한 담론이고, 실제로 미투 운동 이후로 법적으로도 강간죄를 개정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있었어요. 그런데 실제 시민들에게 성폭력의 개념이 무엇인가 했을 때 한국 사회에 동의 담론이 아직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이 개념을 알려야 한다는 것에서 어려움이 있기도 했던 것 같아요. 동의라는 게 수락과 거절, yes or no가 아니라 적극적인 합의 과정, 서로 여러가지 조건과 상황 속에서 합의하고 합을 맞춰 나간다는 의미여야 하고 이게 꼭 성적 동의 뿐 아니라 시민적인 규범으로서 가져가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적극적 합의라는 개념을 사용했는데, 아직 동의 담론이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적극적 합의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모르겠다”, “감이 오지 않는다” 이런 반응들이 있었어요. 동의 개념을 발전해야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내외부적인 조언들도 있었고요. 한국에서 참고할 만한 논의가 부족하다보니 논의를 만들어가는 데 어려움이 있는데, 한편으로는 그 동의 담론을 처음부터 만들어 나간다는 자긍심도 있어요. 미투운동 이후 반성폭력 운동에서 새로운 이정표로서 힘있게 가져가자 해서, 풍부하게 논의를 만들어가고 있는 상황이에요. 남은 과제가 많지만 새로 만들어간다는 설렘이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Q. 2022년 미투운동 중간결산이 진행됐어요. 미투운동 5년 후 한국사회에서 어떠한 변화가 있었을까요?
경진: 2017-2018년 미투운동이 활발했을 때는 제가 다른 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성매매 피해 상담소였고 서울 지역이 아니다 보니 그 당시에는 미투운동이 일어나는 건 알겠고 온라인상 변화는 엄청나다고 느꼈는데, 막상 오프라인상의 변화는 체감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돌아보면 시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주력하려 하기도 했고, 나름 국가가 사회적인 문제에서 어떠한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또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미투운동을 기점으로 피해자분들이 용기를 내서 말을 하기 시작한 거잖아요. 말하기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 말하기 또한 하나의 피해자의 권리로서 받아들여지게 된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피해자들의 다양한 말하기 만큼 가해자들의 백래시도 심화됐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어떤 성폭력 문제가 있을 때 문제의 해결이 점점 법적 중심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피해를 법적으로 인정을 받아야만 이기는 거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 분위기나 인식 등 공적인 영역보다는, 유명하고 선임료가 비싼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등 해결 방법이 점점 개인적인 영역으로 발달되는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법적결과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아진 것 같아요. 예를들어 직장 내 성폭력 사안 발생하면 법적 절차와 별개로 사내 절차에 따라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요즘은 판결이 끝날 때까지 이 조사를 유보하겠다 이런 경우가 많아요. 또한 성폭력피해 치유, 회복의 다양한 방법들이 간과된 채 법적 해결으로만 귀결되는 게 우려스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Q. 2022년 회원홍보팀이 신설됐어요. 회원홍보팀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산: 그동안은 닻별 활동가가 몇년 간 여러 팀들을 전전하면서 관련 업무를 맡아왔는데요. 회원 관리와 상담소 홍보를 전담하는 팀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2022년에 회원홍보팀을 신설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회원홍보팀만의 고유의 사업을 만들어 나가기보다는, 나눔터, 회원놀이터, 기관 연계 자원활동가 관리 등 팀 성격에 맞는 기존 사업을 가져와서 체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활동을 해왔어요. 어떻게 하면 회원들과 더 많이 만나고 자주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요. 내년부터는 이런 고민 속에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들을 본격적으로 시도해볼 예정입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Q. 2022년 행사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행사는?
산: 지금 떠오르는 건 10월에 진행한 ‘여성가족부 폐지안 규탄 전국 집중집회’예요. 어쩌다보니 퍼포먼스를 담당하게 되어, 다른 기관에서 윤대통령의 얼굴 탈을 빌렸던 추억이 있는데요. 집회에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왔는데, 그 사람들과 종로 일대를 행진했어요. 귀를 막거나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고, 행렬에 들어오지는 않으면서 계속 사진을 찍고 쫓아오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다들 그런 것에 별로 개의치 않고 되레 더 크게 외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걸었던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요.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그 행렬 안에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든든한 마음이 들었어요. 서로가 서로의 용기가 되는 동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이었죠.
동은: 올해 7월에 3년 만에 열렸던 서울 퀴어 문화 축제가 기억에 남아요. 항상 참여자로 함께하다가 올해 담당자로 참여하기도 했고, 저희가 퀴퍼 프로그램으로 적극적 합의 타로카드 만들기를 했거든요. 그것도 원래 성문화운동팀 앎 활동가와 제가 타로에 관심 있어서 회의 때 타로 카드 만들까요? 이렇게 하다가 진짜 디자이너를 섭외해서 타로카드를 만들게 됐거든요. 너무 영성 페미로 보인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웃음), 당일에 타로 카드 꾸미는 참여자 분들이 즐거워하시는 것 같아서 그게 기억에 남아요. 또 그날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퍼레이드가 진행됐잖아요. 폭우 속에서 비를 즐기며 퍼레이드를 하시던 참여자들도 기억에 남고 그렇습니다.
경진: 올해 피해생존자 자조모임 ‘작은말하기’ 담당자였는데요. 원래 이 프로그램이 3월부터 12월까지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에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건데, 20년, 21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아예 만남을 못 가진 시기도 있었어요. 올해는 코로나 19가 다소 완화되어 성폭력피해생존자 치유회복프로그램으로 작은말하기 뿐만 아니라 글쓰기와 집단상담 프로그램도 오프라인에서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어요. 작은말하기의 경우 2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송년회를 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내담자분들이 참여해주시고 너무 좋아하시기도 해서 저도 기운을 얻고 올 한해를 잘 마무리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확실히 오프라인에서 만나니까 에너지가 다르기도 하고 그래서 그게 기억에 남아요.
Q. 활동가분들의 2023년 계획이나 목표는 무엇일까요?
경진: 이번에 해군 사건도 그렇고 이런 사건이 어떤 군 문화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직장 내 성폭력 피해이잖아요. 실제로 상담소 통계를 보면, 피해 유형 중에 제일 많은 게 직장 내 피해기도 하고 가해 유형 중에 상사가 가장 많다는 걸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상담팀에서는 매년 통계 작업을 하는데 이번에는 직장 내 피해를 주제로 잡고 해보려고 해요. 직장 내 피해 성폭력에 대해서 법적 해결 말고도 노동부 진정, 인권위 진정 등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피해자분들께서는 어떤 경로로 해결하고 계신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또 2021년부터 경찰이 불송치 권한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지금 불송치되는 사건도 너무 많고, 송치가 되더라도 검찰 측에 보안 수사를 요구하는데 그 이유를 명확히 모르는 상황들이 많이 체감되고 있어요. 또 경찰조사가 지연되는 일도 많이 일어나는데, 이게 단순히 지연 문제를 넘어 피해자분들의 권리랑도 연결이 되는 부분이잖아요. 이것들이 아직 통계로 수치화 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경찰의 불송치 권한이 생긴 이후에 수사 변화들에 대해 통계를 내보고자 합니다. 어떤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아직 초기 계획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저는 내년 초에 해야 하는 중요한 업무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산: 일적인 면에서는 상담소 소식지, 나눔터의 개편을 꼭 해야겠다는 것. 올해 그 논의가 있었는데, 다른 업무들에서 우선순위가 계속 밀려가지고 제대로 진행을 못했어요. 그래서 내년엔 더 읽고 싶고, 더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소식지를 만드는 작업을 제 업무 중심에 두고 일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드럼을 배워보고 싶어요. 저는 가끔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밴드 음악을 듣는데요. 큰 소리로 터지는 드럼 소리가 정말 좋더라고요. 가끔은 정말 ‘드러머는 스트레스 쌓일 새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더구나 제가 싸워야 하는 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뭔가 답답하고 분한 일이 많은데, 다른 누군가를 두드릴 수는 없으니 그렇다면 드럼을 두드려보자 하는 생각입니다.
동은: 개인적인 목표는 운동을 해야겠다. 사실 목표보다는 이제 살기 위해서 하는, 약간 신이 나지 않고 해야 된다 하는 그런 목표인데요. 그래서 운동 중에서도 근력을 키우고 근육이 탄탄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운동 센터에 다닐 예정입니다. 그리고 일적으로는 이제 저희 팀에서 오래 함께해왔던 앎 활동가가 내년에 안식년에 들어가기도 하고 또 경진과 함께 했던 유랑 활동가가 함께 하기도 하는 등 팀 변화가 조금 있는데요. 어떻게 될까 걱정되면서도, 저도 이제 2년차에 접어드니까 팀에 잘 적응하고 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활동 잘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소망이 있습니다.
Q. 나에게 한국성폭력상담소란?
동은: 나에게 상담소란 지리산이다로 하겠습니다. 사실 지난해는 제가 “지리산 종주보다 출근이 더 힘들다”라는 한 문장을 얻은 한 해였는데요. 지난해 처음 들어왔기도 하고 제가 낯가림이 심한데 새로운 사람들,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돼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또 상담소에서 관심있고 주의 깊게 보는 이슈들이 제 삶이 실제로 콕 박히는 것 같은 그런 이슈이기도 하고, 그런 이슈들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보자 제안하는 업무다 보니까 생각보다 큰 마음이나 힘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그러면서 마치 지리산을 등반할 때 능선마다 새로운 풍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그 과정에서 많은 앎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지리산으로 하겠습니다.
경진: 삶의 변화 지점? 제가 예전에 다른 상담소에 있다고 했었는데, 그때는 인원도 적고 활동 스타일도 달랐어요. 또 대학다닐 때도 페미니즘 관련 활동 경험도 없고, 친구들 중에서도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사람도 비교적 많이 없었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오게 되면서 여러 페미니스트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주변에 페미니스트가 이렇게 많은건 처음인거 같네요. 상담소 활동가들은 각자의 가치관과 삶의 지향점도 너무 다르고,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성격도 제각각 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 가치관이 좀 더 건강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저한테는 상담소가 하나의 긍정적인 변화 지점이 된 것 같아요.
산: 상담소를 뭐라고 정의내리기가 힘드네요. ‘상담소를 이제야 알 것 같다’고 생각하면 또 금방 새로운 게 보여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상담소를 ‘메타몽’이라고 할게요. 포켓몬 메타몽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상담소의 외적인 모습이 바뀐다기보다, 제 마음에 따라 상담소가 제게 주는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 개인적으로 자신없는 일을 앞두고 있을 땐 그저 크고 거대하고 막막한 일터 그 자체로만 느껴지기도 하고, 이런 저런 활동을 통해 스스로가 자라고 있다는 게 느껴질 때는 경진 활동가의 이야기처럼 삶의 변곡점으로 보이기도 해요. 가끔은 놀러나오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상담소 활동가들 간의 관계가 그저 일적인 ‘동료’나 ‘친구’로 딱 떨어지게 정의할 수 없어서요. 그 관계성이 일의 무게를 상쇄할 때 그런 기분이 들어요. 상담소는 단순히 직장을 넘어 여러모로 매력이 있어요. 좋은 곳입니다.
<이 인터뷰는 자원활동가 은화 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