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상담소 후원회원인 조이입니다. 이번에 기후정의행진에 함께 참여했는데요, 아직 더위가 모두 가시지 않은 9월 초의 그 날을 소개해볼게요.
어쩌다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했는가 하면… 이제 저에게 기후위기는 더 이상 뉴스에서만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정말 제 삶에서 일어나서 매일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올 여름도 많이 더웠지요. 저는 비교적 건강한 성인과 함께 살고 있기에, 우리 집은 최대한 에어컨을 틀지 말아보자! 선풍기로 가능한 버텨보자! 라고 결의했는데요. 6월도 되기 전에 그 결의가 허무하게 무너졌어요. 에어컨을 틀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겠더라고요. 에어컨을 틀면 그만큼 기후위기에 더 영향을 줄텐데도 말이에요. 전기요금은 어떡하나 하는 현실적인 걱정도 함께 하면서, 에어컨을 켤지 말지, 끌지 말지 고민하는 순간들로 가득 찬 여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에 에어컨을 설치하다가 더위에 방치되어 죽음에 이른 한 노동자의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저에겐 올 여름이 전기요금에 대한 걱정이었다면,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위협이었을 거에요. 다만 저는 에어컨을 틀 수는 있었지요. 그로 인해 바깥 온도는 조금 더 올라갔겠고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장혜영 님의 노래 가사처럼, 죽임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이번 기후정의행진의 문구가 정말 마음에 들었답니다.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 맞아요, 문제는 세상이에요. 기후위기를 초래한 것도, 그리고 기후위기로 인한 결과로 누군가는 더욱 취약해지는 이유도, 바로 이윤을 위해 타인을 착취하는 세상이지요. 그 답을 조금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참여했습니다.
이번 기후정의행진은 강남에서 열렸습니다. 강남역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언제쯤 서울의 이런 복작거림에 익숙해질까, 속으로 중얼거리며 사람들 사이로 밀려 나오던 중에 저 멀리에서 깃발들이 보이니 참 반가웠어요. 생각보다 정~말 많고 다양한 단체가 참여했더라고요. 여성단체를 포함해서, 장애, 노동, 청년, 청소년, 대학생 등 다양한 시민단체들의 깃발이 가득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기후위기의 당사자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그렇지만, 이 많은 단체들의 의제가 어떻게 함께 연결될 수 있을까? 살짝 궁금증도 일었습니다.
이어진 연설 시간에 조금은 해답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다양한 단체들이 각자의 다양한 의제를 말했는데요, 그 모든 의제에는 공통된 문제의식이 깔려 있었습니다. 자본 성장 중심의 사고방식이 가져오는 불평등이었습니다. 성장을 우선시한 기업들은 산림을 없애고 탄소를 배출하여 오늘날의 기후위기를 초래했고, 이윤을 추구하는 시스템은 노동자들이 그 더위에 방치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왜 ‘세상을 바꾸자’는 문구가 나왔는지를 다시 한 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수 이랑님이 나와주셨는데요. <늑대가 나타났다> 노래로 시작해주셨어요. 정말 멋진 노래니까, 아직 모르셨던 분들은 꼭 한 번 들어보세요! 이번에 직접 라이브로 들어보니 가슴이 뜨거워지더라고요. 시위로 인해 불편을 겪었다고 화를 내던 시민 분들께 이 노래를 꼭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거랍니다! 이 땅에는 충격이 필요합니다!’ 이어서 불러주신 <좋은 소식, 나쁜 소식>이라는 노래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너무 시의적절한 가사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지구는 사탄이 만들었다, 못 믿겠다면 아무 신문이나 사서 읽어보라는 내용인데요. 최근 신문에 난 뉴스를 생각해보니… 너무 맞는 말인 거에요. 그러게요, “고작해야 백 년이나 살까” 하는 우리들은 어쩜 이렇게 서로를 착취하는 데 바빴을까요.
사실, 고백할 것이 있어요. 저는 그 날, 행진을 하면서도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실천을 완벽히 행하지 못했어요. 종이 박스로 직접 만든 피켓을 들었고, 텀블러에 물을 미리 가득 담아 가져갔지만, 가방이 문제였습니다. 습관적으로 들고 나갔는데, 가죽으로 만든 가방인 걸 그때 깨달았어요. 아마 인조 가죽으로 만들었을 거에요… 그렇지만, 인조 가죽이 잘 썩던가? 쓰레기 처리 과정에서 문제는 없던가? 제가 들고 있는 핸드폰 케이스는 플라스틱이었어요. 아, 어쩔 수 없이 이 케이스는 진짜 오래 써보자, 생각하면서, 제가 이 사회에서 착취당하지만 또 무심결에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행진 마지막에는 다이인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약 1분 정도 바닥에 드러누워서 죽음을 표현하는 퍼포먼스였는데요. 처음에는 드디어 누울 수 있다! 는 안도감으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모두와 함께 사이렌 소리만 들리는 묘한 침묵 속에서 누워 있자니 숙연하고 아득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의 소비 방식과 생활 양식을 하나씩 점검하면서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어요. 무사히 살아서 늙을 수 있을까? 다음 세대가 이어질 수 있을까? 어떻게 살면 좋을까?
너무 무거운 고민과 질문이었지만 사람들과 수다를 나누고 웃고 걸으면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조금씩 머릿속에 그려보았어요. 이렇게 뜻을 함께 하고 연대하는 순간들이 조금씩 쌓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뒤풀이에서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고생했다고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도 좋았고요. MBTI를 핑계로 이야기의 물꼬를 틀고, 오늘 행진에서 마음을 울렸던 지점을 같이 나누는 시간들 말이에요. 완전히 윤리적인 소비를 할 수 없는 조건이지만, 이 소비가 어떤 소비인지를 계속 기억하는 게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최대의 실천은 역시 연대라는 것! 의미 깊은 행진에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환대해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하며, 함께 손 잡고 무사히 할머니가 되기를 빌어봅니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조이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