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대행진’이라는 행진의 제목을 보고 주저 없이 참가 신청을 했습니다.
혐오정치를 일삼던 정부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잊지 말고 새로운 정치는 페미니즘을 전제로 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자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요구가 소수의 외침이 아닌 국민의 요구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꼭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행진의 거리가 길어 중간에 합류하여 마무리하였지만 약 두 시간 동안 나눈 연대의 힘은 많은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특히 계엄령 사태를 겪으며 변화한 행진의 분위기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사진_금시원(FFF)
불편에서 연대로: 행진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
행진을 하면서 시민들의 분위기가 계엄 사태 이전과 다름이 느껴졌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버스와 정류장 사이를 긴 행렬이 지나가면 소리를 지르거나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시민들이 많았습니다. 우리의 행진이 갖는 의미를 보기 보다 지금 내 앞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민들이 겪는 불편함보다 행진의 의미를 생각하고 우리의 걸음을 응원하며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습니다. 페미니스트 정치인을 요구하는 구호에도 함께하며 힘을 더해 주었습니다. 특히 행진을 할 때 나오는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고 환호해 주는 시민들을 보며 이제 행진은 정당하고 평화로운 권리 표현의 하나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진_금시원(FFF)
권리의 쟁취에서 권리의 실천으로
이전에도 행진에 참여하는 것이 저의 권리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 당연한 권리를 외치는 제 목소리가 사회로부터 지지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늘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 자체가 과한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여유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번 행진에서는 달랐습니다. 나의 권리가 부정당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그리고 함께 외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이 저를 더욱 편안하게 만들었습니다. 과거에는 마치 권리를 ‘쟁취’하듯 행진했다면 이제는 그 권리의 존재 자체를 증명하려 애쓰기보다는 우리가 들고나온 이슈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러한 변화 덕분에 행진의 순간순간을 더 온전히 즐길 수 있었고 그것이 곧 권리를 누리는 사람의 모습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_금시원(FFF)
서로를 지탱하는 존재들: 공동체 속의 나
이번 행진을 통해 저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힘을 깊이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변화가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함께 걸어온 걸음들이 축적되고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덕분에 처음 만난 상담소 활동가 분들과의 대화도 편안했고 행진 이후의 식사 자리에서도 그 유대감은 이어졌습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걷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연대 속에서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자 용기가 되었습니다. 페미니즘 대행진은 단순한 행진을 넘어 ‘우리’라는 공동체가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