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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 인터뷰] 35년째, 아직도 페미니즘이 재미있습니다 / 정경애 후원회원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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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째, 아직도 페미니즘이 재미있습니다. 

정경애 후원회원 인터뷰




정경애 후원회원님과 한국성폭력상담소 1층에서 진행된 인터뷰.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문을 열기 전부터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35년. 정경애 후원회원님은 상담소가 문을 열기 전부터 함께하며 상담소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긴 시간을 함께해 왔습니다. 손으로 장부를 쓰고, 후원회원의 밤과 일일 호프, 여악여락을 기획하며 상담소의 살림과 사람을 연결해 왔습니다.

그뿐인가요. 여성주의 자기방어를 가르치고, 여성주의 카페를 운영하고, 여성 예술가들과 함께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만들어오기도 했어요. 35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온 지금도 페미니즘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함께 재미있는 일을 궁리하는 건 여전히 즐겁습니다. 

3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상담소와 함께해 온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재미있는 일을 함께 해볼 수 있을까요? 정경애 후원회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터뷰 시작 전, 활동가들과 콩국수부터 한 그릇


Q. 상담소와의 첫 만남부터 이야기해볼까요?

저는 상담소가 정식으로 문을 열기 전부터 함께했어요. 준비하는 기간이 있었거든요. 그때부터 활동가들과 인연을 맺었고, 나눔이(자원활동가)로 활동을 시작해서 나중에는 상근 활동가로도 일했어요.

처음에는 재정 쪽 일을 맡아서 손으로 장부를 썼어요. 지금처럼 컴퓨터로 딱딱 입력하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적어가면서 살림을 꾸렸죠. 그러다가 기획조직부에서 활동하면서 일일 호프, 여악여락 같은 행사도 같이 만들었고요. 

돌이켜보면 상담소에서 참 여러 가지 일을 했네요. (웃음) 특히 여악여락은 단순히 콘서트를 연다는 의미를 넘어서, 비영리 단체의 재정 자립과 홍보를 위한 활동이면서 동시에 여성운동의 한 방식이기도 했어요. 당시에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여성 아티스트들이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웠잖아요. 그런 여성 아티스트들을 여성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고,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무대의 중심에 세우는 일이기도 했어요.  


Q. 여성주의 자기방어 활동도 오래 하셨다고요.

네. 제가 여성주의 자기방어 1세대예요. 원래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해서 여러 가지 무술이나 운동을 배우기도 했고요.

여성들은 자기 몸이 가진 힘이나 능력을 굉장히 많이 삭제당하고 살잖아요.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말 속에서 몸을 작게 쓰게 되고요. 그래서 여성들이 자기 몸의 힘을 다시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반응이 굉장히 좋아서 꽤 오랫동안 가르쳤어요.


Q. 상근 활동 이후에는 여성주의 카페 ‘고마’를 운영하셨다고요. ‘고마’는 어떤 공간이었나요?

그때는 여성들이 편안하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정말 없었어요. 어디서 맥주 한잔을 하려고 해도 성희롱이나 성폭력이라고 말할 일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벌어지던 때였고요. 담배 피우는 여성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거나, 어떤 학교에서는 담배를 피우던 여성의 머리에 화분을 던지는 일도 있었어요. 여성들이 자기 방식대로 편안하게 머물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여성들의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계속 나누다가 “우리 공간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한 거예요.

당시 상담소에서 함께 활동하던 두 명의 친구와 또 다른 친구까지 네 명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돈도 조금씩 마련해서 ‘고마’를 만들게 되었어요. 가게에서 ‘상징적인 음경을 떼어놓고 들어오세요.’ 같은 문구를 쓰기도 했는데, 이게 기사화되면서 ‘남자들은 성기를 떼어놓고 들어오세요.’ 라는 식으로 굉장히 자극적으로 소개된 적이 있어요. (웃음) 아무래도 기자님이 저희가 한 말을 잘못 이해하신 것 같아요. 저희가 의도한 건 단순히 ‘남자는 들어올 수 없다’가 아니라, 그 안에서는 성별이 사람 사이의 위계나 불편함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의미였거든요. 

‘고마’에는 여성운동단체 활동가부터 대학생, 예술가, 여성주의에 관심 있는 사람들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왔어요.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로운 일을 같이 해보기도 하고, 누군가 문제를 가지고 오면 함께 궁리하면서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기도 했어요. 실제로 그때 ‘고마’에 드나들던 사람들 가운데 나중에 여성단체 활동가가 된 사람들도 상당히 많아요.

여성주의 문화행사와 여성 예술가들의 전시도 열었고, 고정희 시인을 기억하는 추모제도 매년 열었어요. 연말에는 ‘여성운동가의 밤’​을 열어서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무료로 초대하기도 했고요. 다 같이 공연도 하고, 음악도 듣고, 술도 마시고, 춤도 추면서 신나게 놀았어요. 


Q. 운영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셨나요? 

성폭력 가해자와 이야기를 나눠야 할 때 안전하게 만날 공간이 마땅히 없었는데, 그럴 때 ‘고마’를 이용하기도 했어요. 가해자가 들어오면 여자들이 다 쳐다보고 있으니까 주눅이 들어서 최단기간에  합의가 이루어진 적도 있었죠.(웃음) 성폭력 문제뿐 아니라 다른 폭력이나 관계의 문제를 가지고 온 사람들도 있었고요.

운영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흡연자들에게는 정말 편안하고 해방감 있는 공간이었지만, 흡연 공간과 비흡연 공간을 나누기 어려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이 오래 머물기 힘들었어요. 손님이 줄어드는 문제도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계속 고민이 있었어요.

그래도 그 공간을 운영한 건 정말 좋았어요. 누군가 혼자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데 힘들면 와서 이야기하고, 자꾸 만나다 보면 서로 알게 되고, “요즘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있어”, “그럼 우리 이거 같이 해볼까?” 하면서 또 다른 일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사람들이 만나서 꽁짝꽁짝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Q.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하셨죠. 활동가들에게 서울 지도를 펼쳐놓고 부동산 유망지를 짚어주시기도 했다고요. 

여성의 경제적 자립, 너무 중요하죠. 저는 경제적 자립이 삶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장기적으로 내 삶을 지속해나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토대니까요.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려면 그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삶의 기반이 있어야 하고요. 경제적인 자립이 되어 있지 않으면 삶이 너무 불안하고, 미래에도 자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점점 줄어들고 삶이 위축될 수밖에 없잖아요.

특히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월급도 많지 않고 일도 많으니까요. 지금 당장 먹고사는 것만 생각하다 보면 미래의 안정된 삶에 대해서는 준비하지 못하기 쉽죠. 그러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앞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생각하고,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서 조금씩 준비해 나가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예전에 활동가들에게 집을 잘 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서울 지도를 펼쳐놓고 부동산 이야기도 했어요. 지금 청약통장 있으세요? 그냥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민간분양에만 쓸 수 있는 건지 LH 같은 공공주택에도 활용할 수 있는 건지 알아보셔요. 알아두면 나중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아지잖아요. 실제로 주거와 관련된 정책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까, 내가 접근할 수 있는 제도를 알아보고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경제적 자립 이야기에 귀가 쫑긋한 회원홍보팀 겔라, 상아 활동가


Q. 지금은 ‘젠더정의행동 고마’에서 활동하고 계시다고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젠더정의행동 고마에는 젠더폭력과 관련한 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함께하고 있어요. 여성농민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고, 교육을 직접 하지는 않지만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사람도 있고요. 각자 하는 일이 조금씩 다르지만, 젠더와 폭력에 대해 고민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특히 남성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어요. 젠더폭력의 문제를 여성의 문제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남성성과 남성 중심적인 성역할이 어떻게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남성들이 성역할 때문에 고통받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가해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이로운 남성성’으로 전환해가는 인식과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관련된 교육을 하는 강사들을 대상으로 함께 공부하고 교육하기도 하고, 남성성에 관한 책을 읽는 모임도 하고 있어요. 청소년을 대상으로 남성성과 관련한 캠프를 진행하기도 했고요. 교도소 안에서 가해자 재범 방지와 인식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한 사람의 인식이 달라지는 것이 그 사람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가할 수 있는 피해를 줄이는 일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 변화가 하나씩 쌓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상담소도 이제 35주년을 맞았어요. 앞으로 상담소가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요?

상담소를 거쳐 간 사람들이 정말 많잖아요. 처음 자원활동을 했던 사람들, 초창기에 상담했던 사람들, 1990년대에 활동했던 사람들, 그 이후에 일했던 활동가들까지. 상담소를 정말 좋아했던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이 지금도 상담소를 좋아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서로 다시 연결될 계기가 없는 거예요. 저는 그 연결고리를 다시 만들어보면 좋겠어요.

오래된 후원회원, 중간 세대, 최근에 후원을 시작한 사람들까지 세대별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요. 서로 다른 시기에 상담소와 만난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함께했는지 들어보면 상담소의 35년도 더 풍성하게 보이지 않을까요?


Q. 마지막으로, 지금 활동하고 있는 후배 페미니스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그런 건 없어요. (단호)



유쾌함과 진지함을 오가는 후원회원님의 이야기에 어느새 정신없이 빠져든 활동가 둘. 

Q. 너무 듣고 싶습니다…


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걸 잘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한 개인으로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얼마나 많아요. 특히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건 더 그렇잖아요. 이 지구상에서 페미니스트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정말 많지 않아요. 어렵게 어렵게 이 세계 안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 너무 귀하다고 생각해요.

서로 입장이 조금 다르다고, 작은 차이가 있다고 해서 갑자기 차가워지고 관계를 끊어버리면 너무 아쉽잖아요. 사소한 실수나 작은 문제 하나로 손절당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우리끼리는 조금 더 서로를 아껴주고, 조금 더 넓게 포용할 수 있었으면 해요. 꼭 후배 페미니스트들에게만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저희 세대에게도 똑같이 하고 싶은 말이에요.

상담소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그렇게 서로 다시 만날 수 있고, 시간이 지나도 함께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관계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귀하니까요. 어렵게 만난 사람들이니까, 서로에게 조금 더 힘이 되어주면서 오래 만났으면 좋겠어요.




글 | 상아 활동가

사진 | 전민주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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