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OO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활동
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안OO 전 충남도지사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을 알게 된 것은 2018년 3월 4일이었습니다. 세계여성의날 여성대회를 마친 저녁, 긴급하게 모인 세 명의 활동가들은 평소 연대하던 여성폭력 전문 변호사에게 해당 사건을 듣게 되었습니다. 단체마다 이 일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논의하게 되었던 다음 날 3월 5일, 피해자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하여 그 사실을 말했습니다. 고발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변호사 상담을 받던 중, 신변이 우려스럽다면 방송을 통해 고발을 공고히 하는 것이 좋겠다는 변호사의 조언에 며칠 고민하던 피해자가 다급하게 나간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피해 이후 출근하지 못한지 며칠, 관련 내용이 뉴스에 나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돌았는지, 그날 오후부터 피해자의 핸드폰으로 부재중 전화가 수십통 걸려왔습니다. 전 직장인 공공기관 상사까지도요. 묵살, 은폐, 회유와 그 이외의 상상을 수없이 해오던 피해자는 그 날 생방송이 아니라면 신고는 시도할 수 없다는 다급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평소에는 성폭력 피해자의 방송 출연이나 얼굴, 실명 노출 말하기에 대해서 안전한 환경인지를 확인하고 신중을 기하며 지원하는 단체 활동가들로서 아주 불안한 환경이었는데, 그 불안 너머에 더 큰 불안이 있는 상황. 첫 번째 만나게 된 권력이 움직이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 날로 꾸려지게 된 공동대책위원회는, 경찰서, 변호사사무실, 단체 사무실 어디에든 진을 친 언론을 피해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이하 전성협)를 대표로 건 채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적으로, 지역별로 논의체계가 구성되어 있던 전성협의 발빠른 의사결정과 움직임이 결정적이었지요. 변호사 선임과 고소장 제출부터 시작하여 1심 재판을 받기까지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미투운동에서 우리는 수많은 '위력'의 보유자, 대법원 판례의 문구대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권세를 가진' 사람, '우월적 지위자'의 모습을 보았지만, 사실 권력은 어떤 개인에게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기만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문법과 방식을 가지고 작동되고 있으며 수사기관도 그 자세한 장면을 알아야 하고, 지원자도 마찬가지로 그 현장과 어법을 알아야 합니다. '군대'라는 상위 개념에서 3군, 사단, 해군, 함선, 격실이라는 하위 개념과 장면들로 내려가며 그 현장과 맥락을 파악해가듯, 예술 영역에서, 교육기관에서, 정치 분야에서 '권력'의 작동 방식을 알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정치 분야는 다른 분야와 좀 비슷하게도 혹은 다르게도 '팬덤'으로 정치를 치환하거나 대체하는 양상을 지녀왔습니다. 어떤 정치인을 '지지'하느냐, 어떤 정치인이 '인기'가 많느냐로 대중과 정치가 만나고, 의제, 각론, 주장, 토론을 좋아하는 (유사)정치인에게 위임하는 형태가 주를 이루기도 합니다. 안OO 전 충남도지사이자 대권주자였던 사람 역시 인기가 많은 정치인이었는데 그에게 '인권'이나 심지어 '페미니즘' 가치도 위임했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인권을 말했던 사람이 그럴리가 없다"라는 반응에는 인권을 선언할 수 있는 것도 권력이 생산할 수 있는 여러 모습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점이 간과되어 있습니다. "피해자가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라는 반응은 빠르고 많고 쉽게 이루어지는 반면, "권력자가 거짓말을 해왔던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은 피해자에 대한 반응만큼 빠르거나 많거나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소위 '팩트주의'는 이 차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 '팩트'가 내용의 사실관계 이전에 화자의 위치에 대한 평가일 수 있음을 드러내게 됩니다.
1심 재판부는 '위력은 있었으나 행사되지 않았다', '성적자기결정권을 법이 보호하고 있으나 성인 여성에게 성적자기결정권은 스스로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이니 왜 행사하지 않았는지/못했는지 더 엄격하게 살펴야 한다' 등을 선고의 골조로 삼았습니다. 제재되지 않은 권력행사, 갑질 등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때로는 '극혐'하지만, 그것을 자세히 살피고 따져 묻는 질문은 없고, 방법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묻지 않은 것을 넘어서 결국 권력의 부당한 행사에 대해 1차적으로는 책임을 회피하고, 2차적으로는 피해자/신고인에게 전가하는 그 경로를 제시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1심 선고 당일 500명의 여성들이 서부지방법원 앞에 모여들었습니다. 그 날 밤 '가해자는 감옥으로'라는 구호가 울려퍼졌고, 며칠 뒤 8월 18일 서대문 역사박물관 앞에서는 미투시민행동의 긴급집회로 2만 명의 여성들이 모여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안OO은 유죄다'라고 외치며 집회와 행진을 하고 횃불을 들었습니다.
2심 재판부터는 6명의 변호사들이 더 참여하여 9명의 피해자 변호인단을 구성하였고, 공동대책위원회가 확대되어 수많은 여성, 인권사회 단체가 참여했습니다. 2심 재판이 열리는 고등법원 앞에서 개최한 2심 첫 기자회견의 제목은 "보통의 김지은들이 만드는 보통의 기자회견 - 지켜본다 바꾼다"였습니다. '보통의 김지은들'은 이 문제를 노동현장에서의 불안정성, 나 아래의 사람을 동등한 시민에서 제외하는 위계구조, 자의적인 욕망을 실행하고 불이익과 연결시키는 남성 중심의 일터 성애화 문제로 보았습니다. 2019년 2월 1일,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위력에 대한 그 동안의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피해자와 가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때 상황과 맥락을 삭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2심 이후 '그 권력'은 또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불륜설, 꽃뱀담론, 피해자다움 등은 보수적인 문화적 담론이면서 반사회적인 담론이기도 합니다. 업무상 위력에 대한 성폭력을 규율하는 법을 현실과 괴리시키고, 침묵하던 피해자들의 용기와 고발을 의심으로 몰아넣고, 수사 재판과정에서의 절차를 불신임하자고 독려합니다. 미투운동을 권력이 아닌 '성스캔들' 문제로, 구조가 아니라 '개인들 간의 일'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 담론이 더 익숙하고, 설득력 있고,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성폭력은 나쁜 것이지만 개인이 회피하고 감당해야 할 문제'라며 성폭력을 사회적 의제에서 치우고 있습니다.
7월 말 정도로 예상하고 있던 대법원 선고일은 더 늦어질 듯 합니다. 시간과의 싸움에는 결과라는 무게추가 매달려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법원의 판단 결과에 전적으로 기대게 되는 상황, 위력을 고발한 피해자에게 값없는 큰 불안을 안기는 사회가 왜 문제인지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에게 묻기 전에 권력자에게 더 먼저, 더 촘촘히 질문하는 사회, 너무 요원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성큼 향해가는 중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