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미투(#Me Too)에의 응답,
강간죄를 개정하라!
지난 3월 21일 본 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 현행 형법 297조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과 협박'에서 '동의'여부로 개정하기 위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가 출범했습니다. 우리 상담소는 연대회의 사무국을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도 그래(Me Too)"운동은 성폭력이 특정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경험이며, 성폭력과 맞서는 싸움에 함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자 서로에게 보내는 힘과 용기, 지지의 메시지입니다. 나아가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우리 사회의 변혁을 요구하는 강력한 목소리이고 실천이며 감동적인 연대입니다. 그럼에도 #미투 이후 피해자들의 일상은 바뀌었는가? 특히 형사사법절차를 선택한 경우 법에 의해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가? 나아가, 법은 객관적이고 정의로운가? 현행법 체계에서 성폭력의 판단 기준을 보면, 형법 297조 강간죄의 구성요건은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폭행·협박이 필요한 것으로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반면, 강간에 대한 국제적인 기준은 동의 여부를 주요한 판단 기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UN의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2017년 일반권고 제35호(e)에 "강간을 포함하여 성폭력을 신변 안전 및 육체적, 성적, 정신적 온전성(integrity)에의 권리에 반하는 범죄로 특정 짓고, 부부강간, 지인강간, 데이트 강간을 포함하여, 성범죄의 정의가 자유로운 동의의 부재에 기반을 둔 강압적인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장하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작년 3월, 우리 정부에 현행 형법이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성범죄를 판단하는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시정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2018년 들불처럼 타오른 #미투를 보며 20대 국회에는 비동의간음죄의 신설에 대한 9개의 형법 개정안이 상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국회의 파행운행으로 법 개정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강간죄'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에서는 지난 3월 30일에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개정할 것을 촉구합니다"라는 의견서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에게 보냈습니다. 이어 법무부 형사법제과 법안 담당자의 면담도 진행했습니다. 또한 7월 9일에는 전국성폭력상담소들에서 최근 받은 상담 사례 중 폭행·협박 없는 강간이 71.4%에 달한다는 통계를 기반으로 현행법의 문제점을 분석하여 법 개정의 필요성을 논증한 2차 의견서를 보냈습니다. 이후 관련 법안 마련 및 토론회 등을 통해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정부와 입법부에 법 개정을 압박할 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이를 알려내는 카드 뉴스 제작, 기자회견, 집회 등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그동안의 성폭력 관련법 제개정 과정을 돌아보면, 어떤 변화도 저절로 오지는 않았습니다. 수많은 피해자들의 용기와 여성운동단체들의 연대로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시작한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 운동은 법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매우 기본적인 일입니다. 더이상 피해자들에게 피해 당시 폭행·협박이 있었음을 증명하도록 요구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들에게 피해자의 명확한 동의가 있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은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중심적인 시각에서 형성된 법의 '합리성'이나 '객관성'이 얼마나 피해자의 경험과 목소리를 배제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성찰이기도 합니다. 여성운동 현장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셀 수 없는 감동의 순간들, 특히 2018년 #미투운동은 우리에게 연대의 힘이 얼마나 강력하고 아름다우며 힘을 내게 하는지를 절감하게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강간죄 구성요건을 변화시키는 법제화 및 우리 사회 성문화를 바꿔 가는 운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에서는 강간죄를 판단하는 단 하나의 기준이 '적극적 합의'임이 법조문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상식이자 일상의 실천이 되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