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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는 무대가 멀게만 보여 잠시 쉬어가는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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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는 무대가 멀게만 보여
잠시 쉬어가는 후기

이산 | 마임배우,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연극연출가 이윤택 성폭력 사건 항소심 기자회견
연극연출가 이윤택 성폭력 사건 항소심 기자회견 <"오랜 관행"이 아니다 성폭력이다>

2019년 7월, 대법원은 전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이윤택의 유사강간 및 강제추행 범죄에 대해 징역 7년에 성폭력프로그램 80시간 이수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하였습니다. 2018년 2월 피해생존자들의 미투운동이 일어난 후 1년 6개월 만이었습니다. 지난 11월 26일,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이윤택 성폭력사건 대응의 의의와 쟁점 <분노가 지나간 자리, 다시 무대에 서다>가 열렸습니다.

공동변호인단의 서혜진, 장경아, 이명숙 변호인, 공동대책위원회 사무국을 맡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이미경 소장, 공동 고소인단 중 김수희, 이재령 고소인, 그리고 글쓴이가 본 사건 대응과 공대위 활동에 대해 발제했고,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의 김영옥 대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장임다혜 연구원이 각각 문화와 법을 연구하는 학자의 관점으로 토론하였습니다.

본 토론회장의 발제와 토론내용은 상담소 블로그에 실린 후기로, 언론보도로, PDF 파일로 게시된 자료집으로도 남아있으니 충분히 다른 경로로 전해지리라 생각하여, 그 자리에서 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로 후기를 대신해보고자 합니다.

토론회 홍보물을 만들기 전, 토론회 제목을 정하기 위한 몇 개의 후보가 있었습니다. 여차저차 하여 최종 제목이 정해졌지만, 저는 그 제목이 참 아득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분노는 언제 지나갔고 누가 다시 무대에 서고 있는 것인지, 얼핏 보면 희망을 말하는 것만 같은 이 문장이 저에게는 참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2018년 2월 연극하는 사람들을 폭풍처럼 휩쓸었던 분노와 충격이 점차 가라앉아 가고, 여성예술인들의 더 멋지고 거침없는 작업들이 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공허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스스로 더듬어 나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윤택 성폭력사건이 발생한 극단 연희단거리패는 수백여 명의 연극인들의 작업과 생계와 관계망의 장이었습니다. 2018년 2월,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하던 연극인들은 성폭력과 위계폭력과 부당한 착취에서 벗어난 동시에, 함께 대본을 읽고 연습실에서 몸을 풀고 무대에 서는 감각을 익히며 보람과 고단함을 나누던 동료와 헤어졌습니다.

성차별적 사회구조 속에서는 위계와 위력이 있는 곳이라면 성폭력 역시 만연합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반성하기에 앞서 '문란한 연극계'라는 비난을 던졌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연극의 연출이나 예술감독, 제작자가 여성배우와 스탭을 강간과 추행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처럼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단기적인 계획을 남발했고, 언론은 안마를 빌미로 피해자의 손을 성기로 잡아끈 성추행을 '성기 안마' 따위의 성립되지 않는 말로 포장하여 스캔들인 양 다루었습니다.

인터뷰로, 자문으로 '연극계 특수성'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찾아 헤매는 정부와 언론을 보며 묻고 싶었습니다. 종교계에, 학계에, 의료계에, 정계에, 군 내, 사회복지시설 내에는 이러한 유형과 규모의 성폭력 사건이 없었나요? '정계 특수성', '종교계 특수성'은 찾지 않던 이들이 왜 갑자기 '문화예술계 특수성'을 찾고, 이 특수성을 왜 자꾸 피해생존자와 여성들에게 물을까요? 가해자가 국내 최대 규모의 극단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왔던 시스템을 추적해보면 권력이 축적된 경로가 눈에 뻔히 보일 텐데 말입니다. 이윤택은 심지어 자신의 여성혐오를 전혀 숨기지 않고 활동해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기론 저서에서 고전극의 내용을 예로 들면서 '자기 부인을 손님에 바치는 것이 내가 얼마나 여유 있는 인간인가를 보여주는 것'1이라는 표현을 썼고, 인터뷰 대담집에는 추모 미사에 참석했다가 참석한 여성들이 입은 치마저고리를 보고 섹스가 하고 싶어 성구매 업소를 찾았다는 이야기2가 실렸습니다. 출판된 저작물에서 이런 표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면 연습실에서, 회의실에서, 언론 인터뷰에서도 차고 넘치지 않았을까요.

이윤택 성폭력사건 대응의 의의와 쟁점 토론회 발제자와 토론자들
<이윤택 성폭력사건 대응의 의의와 쟁점 분노가 지나간 자리, 다시 무대에 서다> 토론회 발제자와 토론자들

이윤택의 성폭력에 대한 제보나 신고를 받고도 묵인했던 언론과 경찰, 이윤택의 여성혐오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를 보고 들었음에도 각종 공공지원금과 지원금 집행에 관여할 수 있는 직함을 주었던 지자체와 정부 부처 그 어느 곳도 자성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극단이 사라지면서 동료와 부대낄 기회를, 무대에 설 기회를 잃어버린 연극인들은 이윤택이 저지른 성폭력에 대한 비난까지 떠안아야 했습니다. 연희단거리패 단원이라는 이유로 수업이나 공연에서 배제되어 생계를 잃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복사하고 붙여가며 기사는 쌓여갔지만, 미투운동으로 게시된 글 내용과 공동대책위원회가 배포한 보도자료 외에는 심층 취재한 기사조차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연희단거리패에 몸담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윤택 성폭력 사건이 흥밋거리나 책임회피용 과제로만 다뤄지는 사회의 냉혹함을 감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을 종종 맞이합니다.

어째서 연희단거리패가 해체된 것은 '미투 때문'이 아니라 이윤택의 성폭력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이리도 적을까요. 그가 한국의 연극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활동해온 경로와 단원들을 경제적으로 성적으로 정서적으로 착취해 온 경로는 똑같은데, 왜 어떤 사람들은 거장으로 활동해온 것을 성폭력에 대한 면죄부로 여길까요. 연희단거리패를 거쳐 온 연극인들이 폭력 피해를 견디고도 애써 작업에 참여해온 인내심과 용기는 왜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까요? 왜 침묵으로 피해를 방조했다는 자책감은, 소리를 질렀다 해도 극단에서 쫓겨날 뿐 피해를 막을 수는 없었을 사람들만 떠안고 있을까요. 저는 이윤택 성폭력 사건이 언론과 정부 부처에게 소비의 대상이었을 뿐, 연희단거리패에 머물었던 수 백여 명의 연극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중 그 무엇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여성들이 생계나 작업의 기회를 박탈당했을 때, 또는 그 기회를 포기하고 난 이후에 성폭력을 문제제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전까지 성폭력이 참을만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속해있던 당시에는 성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협상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윤택의 성폭력을 미투로 알렸던 예술인들은 다른 곳에서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배우이거나 자신의 극단을 꾸려가고 있는 연출가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다시 무대에 서기 위해 이들은 자신의 무대를 직접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 사건은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의 의무를 정상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고소인단이 폭로라는 희생을 치르지 않아도 훨씬 더 빨리 중단시킬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고소인단은 지난 2년 동안 성폭력을 멈추기 위해 이윤택을 고소하고, 성폭력을 용인했던 구조를 바꾸어나가기 위한 질문에 끊임없이 답해왔습니다. 저는 이제 사회가 피해생존자에게 묻기 전에, 스스로에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수희 님의 토론회 발제문 중 '질문하지 않으시는 분들을 만나는 하루가 하루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문장을 기억합니다. 이재령 님은 토론회장에서 밝은 미소와 목 메이는 떨림이 교차하는 노래로 청중을 위로하였습니다. 그 위로의 힘이 실질적인 노력과 제도와 사회적 안전망이 되어 모든 고소인들에게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영혼과 물질-이윤택연기론』, 이윤택 저, 도요, 2011

2 『난세를 가로질러 가다-이윤택 연극작업 대담집』, 김남석 편저, 연극과인간,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