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6개월 육아휴직을 마치면서
감이 | 두 아이 엄마이자 페미니스트 활동가
2월 25일부터 9월 1일까지의 육아휴직이 끝났다. 출근을 7시간 앞두고 잠이 오지 않는 9월 1일 새벽, 6개월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해두기 위해 남겨둔 기록을 상담소의 회원분들과 나누고자 한다.
나는 두 아이를 모두 출산한 이후에 입사를 했고, 이전의 직장들은 파트타임으로 일했기 때문에 한번도 출산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었던 작년 말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시댁이 어린이집과 가까워서 두 아이의 하원에 도움을 절대적으로 받고 있었는데, 입학을 하고 나면 어린이집과 학교 마치는 시간이 각기 다르고, 학교는 시댁에서 버스로 15분(총 이동시간 20분 소요)이 걸려 시부모님께 두 아이를 모두 부탁드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이가 만 8세가 되기 전에 신청하면 1년 동안 사용 가능한 육아휴직 제도를 알게 되고 나서 바로 상담소 사무국에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초등 1학년은 빠르면 12시 반, 늦어도 1시 반쯤 정규수업이 끝난다. 6시에 하원하던 어린이집과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시간 차이가 발생했다. 학교 돌봄교실을 신청했지만 그마저도 4:40에 끝나기 때문에 시부모님이 직접 하교 지원을 해주시지 않으면 사교육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3년 동안 사교육을 지양하는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의 하교 이후에 어떤 사교육을 선택할 것인지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정보도 부족했다. 취학통지서를 받고 예비소집 즈음해서 학원을 알아보고 등록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적절한 타이밍이 지나 있었다.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한 채로 입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의 작은 언니는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사회초년생으로 몇 개의 회사를 거쳐 IT기업에 입사했고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유능한 직원이었다. 하지만 2년 터울의 두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과정에서 너무 고단하고 힘든 8년을 보냈다. 그러다가 언니의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1학기를 마쳤을 즈음인가에 언니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작은 언니 말고도 내 주변에는 첫째 아이가 1학년일 때 퇴사를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한 달에 4일 정도 꽤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해야했지만, 이모님(양육지원자)이 안정적으로 아이들을 키워주셨고, 언니도 IT계의 대기업 수준인 회사에서 꽤 인정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언니가 퇴사를 선택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우리 식구들은 모두 언니의 퇴사를 말렸는데 특히 엄마는 미취학 아동을 양육하는 시기에 직장맘이 겪는 고충을 경험적으로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언니의 어려움에 누구보다 공감하시면서도 퇴사만은 하지 않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언니는 아이들을 키우는 내내 너무 힘들었고, 퇴사 즈음해서는 몸도 마음도 완전히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작은 언니의 경우를 비롯해서 주변에 너무 많은 이 시기 퇴사자들을 보면서, 경험적으로 아이의 취학이 여성노동자의 노동 경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대체적으로 야근이 잦고, 업무에 대한 집중도가 크게 요구되는 현재의 노동강도/상태와 취학아동에 대한 집중양육이 동시에 잘 기능할 수 있을지 많이 불안했고 두려웠다. 둘 다 제대로 못할 것이고 특히 학부모로서 빵점을 받을 것 같았다. 일에 집중하지 못할 거라 예상하지는 않았다. 다만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라서, 소소하게 챙겨야 할 것이 많은 1학년 아이의 학교생활에 지속적으로 빈틈(준비물 빠뜨리기, 숙제 확인 안하기, 교육비용 관련 결제 빼먹기 등등)이 생겨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가장 염려되었다. 그리고 그런 빈틈으로 인해 아이가 방임되고 있다 여겨지지는 않을까도 걱정되었다. 공동육아어린이집을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내가 빼먹는 수많은 것들을 자기 일처럼 챙겨주고 그 틈을 메꿔주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제 학교에서는 더 이상 그런 도움을 기대할 수 없기때문에 절망스러웠다. 아이의 아빠나 양육을 도와주시는 시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지만 주양육자로서 내가 챙기고 감당해야 하는 역할이 너무 컸다.
이런 이유로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오롯이 8세 취학아동의 엄마로서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들에 집중하기 위해서. 그리고 사실은 5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상담소 활동가로서의 활동 기간을 되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했다. 그동안 나는 근무시간 외에도 우리의 이슈와 활동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그것들에 더 집중해서 글을 쓰거나 좋은 아이디어를 완성시키는 비혼/무자녀(?) 활동가들에 비해 늘 뒤처지고 부족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매일 새벽마다 잠든 아이들 옆을 떠나지도 못한 채로 스마트폰 밝기를 제일 어둡게 하고서 전날의 기사들을 챙겨 읽으며 퇴근 이후에 생길 수밖에 없는 육아로 인한 공백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었다. 솔직히 쉬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활동경력이 쌓이고, 조직 내에서 책임이 커지고, 동료들에 대한 애정이 더해질수록 마음의 여유가 없이 더 많은 업무를 수행하고, 신경 쓸 것들이 더 많아졌다. 그런데 내 능력이 발전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지워지질 않았다. 주변의 기대는 커지는데 나는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잠시 좀 내려놓아야 하는 시기였다.
그렇게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입학식에 가고,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고 학교가 주최하는 각종 부모교육이나 회의 등에 참석했다. 돌봄교실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데리러 가고, 알림장을 챙기고, 진득하게 앉아서 숙제를 할 수 있게 도와주고, 밥을 챙겨주고, 갖가지 집안일을 했다. 휴직 기간 내내 가장 좋았던 것은 아이들과 진득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씻고 나가기 바쁘고, 저녁에 시간 맞춰 하원해서 밥 먹이고 씻고 잠자기 바빴던 지난 날들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여유가 생겼다. 기존 등원보다 1시간 반이 빨라진 등교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아침 시간이 여유로웠다. 아이들을 웃으면서 깨울 수 있었고, 소리한 번 지르지 않고 집을 나서는 날이 많았다. 아이들이 없는 낮시간에 그간 소원했던 엄마와 함께 영화도 보고 점심도 먹으며 얘기도 많이 나누었다. 어린이집 운영위원장 역할을 맡게 되어서 어린이집 사람들도 만나고, 관련된 업무도 처리하면서 일과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온 아이의 다음 일정 전까지 간식을 챙겨주고, 눈을 맞추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었다. 아빠의 칠순을 맞이해서 미국에 3주 동안 여행도 다녀왔다. 아이의 여름방학에는 단둘이 데이트도 많이 했다.
아이들과 24시간을 붙어있어야 하는 날들이 쌓여갔다. 예전 같으면 하루이틀만 같이 있어도 너무 힘들어서 지쳐버렸을텐데, 내가 마음의 여유가 생긴 덕분인지, 아이들이 많이 커서 그런지 힘들기보다는 재미가 더 커진 느낌이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더 잘 들렸고,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첫째 아이가 좋아하는 청하의 <벌써 12시>라는 노래는 어떤 언니가 알려준 건지, 빵집에 가면 둘째 아이가 가장 먼저 찾는 빵이 뭔지, 학교에서는 왜 남자아이들과 친해지기 어려운지, 음악 줄넘기 수업을 왜 듣고 싶은지, 둘째는 밥 먹다가 왜 갑자기 배가 아픈지, 왜 잘 놀다가 갑자기 삐지고 우는지... 전에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답답했던 것들의 이유를 알게 되자 재미있어서 자꾸 웃음이 났다. 아이들의 마음과 행동도 "아는 만큼 보인다".
지난 6개월 동안 휴직을 하면서 7년 만에 처음으로 육아에 전념해보니 참 좋았다. 일하면서 놓칠 뻔했던 아이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선물 받은 느낌이다. 이제 상담소로 돌아가면 또 금세 잊어버리고 활동가 감이와 엄마 노선이 사이에서 종종거리며 바쁘게 뛰어다니겠지? 그래도 전보다 마음은 한결 가벼워질 것 같다. 아이들에게 미안해하기보다는 고마움과 사랑을 더 표현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이렇게 보석 같은 시간을 선물해준 상담소와 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애쓴 동료 활동가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