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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폭력 이슈파이팅 :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바라보며
  • 감이_여성주의상담팀 활동가
이렇게 활동했습니다 ① · 디지털 성폭력 이슈파이팅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성폭력의 실상을 알고, 성폭력 없는 세상 만들기에 동참할 수 있을까?" 반성폭력운동의 가장 오래되고 기본적인 고민일 것입니다.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의 고민을 들어보실래요?

감이 | 여성주의상담팀 활동가

최근 온라인 메신저 플랫폼 텔레그램을 이용한 성착취 사건이 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흔히 'n번방 사건'이라 불리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2019년 말부터 대학생 여성 두 명으로 구성된 <추적단 불꽃>의 심층취재를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리셋(ReSET)>은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관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게시하여 단기간에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 국민동의청원 1호"로 등록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피켓팅과 퍼포먼스, [강남역부터 n번방까지: 성폭력 규탄 이어말하기] 등을 진행하는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 n번방 성착취 가해자에 대한 강력처벌을 촉구하는 집회를 준비 중인 <n번방 성착취 강력 처벌 촉구 시위> 등 많은 시민들이 각자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해결을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성폭력처벌법 개정 내용을 알리는 한국성폭력상담소 게시물
2020년 4월 29일 통과되어 5월 19일부터 시행된 성폭력처벌법 개정 내용을 알리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게시물 "#2020_05_19_오늘부터 #자기촬영물_비동의유포_처벌 #불법촬영물_소지구입저장시청_처벌 #촬영물이용_협박강요_처벌"

그동안 국가는 여성에 대한 폭력 그중에서도 특히 디지털 공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과 성착취에 대해서는 언제나 뒷짐을 지고 지켜보기만 해왔습니다.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도 해외 사이트라서 수사하기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해 온 경찰, 피해자의 존재나 피해 경험에 관심이 없는 검찰, 한 번의 실수쯤은 눈감아줘도 된다며 가해자를 두둔하는 재판부, 여성 국민이 원하는 법안은 제정할 생각이 없는 입법부 등 모두가 수수방관하는 사이 여성들의 삶에는 불법촬영, 성착취, 디지털 성폭력과 관련한 불안과 공포 그리고 분노가 깊숙이 들어와 버렸습니다. 더이상 국가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스스로 행동에 나섰습니다. 분노한 여성들이 직접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세상에 알리고, 적극적으로 해결해나가면서, 실질적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보통의 여성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이 시대의 명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박사', '갓갓', '와치맨' 등 성착취를 주도한 핵심인물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조직적 가해 행위를 한 사건이고, 그 가학성과 해악성은 지금까지 알려졌던 여느 성폭력 사건들을 총망라하는 양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민적 공분을 살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26만 명'이라는 공범 집단의 규모를 통해 피해자들이 겪은 피해가 더 구체적으로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이 숫자는 지금껏 많은 여성들이 불안과 공포로 체감하면서도 짐작만 할 뿐이었던 디지털 성폭력의 근원, 즉 남성연대 안 강간문화의 규모를 선명히 보여주었습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암암리에 공유하고 있던 불법촬영물들이 어떻게 제작/공유/유통되고 있는지도 명확해졌기에, '처벌을 해야 한다'라는 공통된 목소리로 이어질 수 있었던 거겠지요.

역대 최다 동의를 받은 것으로 기록된 청와대 국민청원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에는 30일간 2,715,626명이 동의하고 참여했습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이렇게 많은 이들이 함께 분노하고 그 분노를 변화의 힘으로 이어간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뒷짐 지고 있던 국회를 움직여 디지털 성폭력과 관련된 법안들을 빠르게 통과시켰으니까요. 실제로 지난 4월 29일 20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에서 성착취물 소지·구입·저장·시청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 자기 촬영물 비동의유포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등으로 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과 범죄수입은닉규제법 등의 개정안이 통과되어 5월 19일부터 순차적으로 공포 및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간 디지털 반성폭력 운동 단체들이 정부 주무부처와 간담회나 토론회 등을 아무리 해도 실질적 입법까지 이어지지 않아 답답했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통과되어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간 피해자들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된 디지털 성폭력을 뿌리 뽑기 위한 노력과 이번 n번방 사건의 공론화를 통해 직접 행동에 나선 시민들이 일구어낸 소중한 변화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를 마주하는 활동가의 마음속에는 몇 가지 고민이 남아있습니다.

첫째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피해자들이 느끼는 재유포 피해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너무도 크다는 것입니다. 텔레그램을 모니터링하던 활동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처음 이 사건이 보도되었던 2019년 말부터 2020년 2월경에 텔레그램 성착취 방들에 새로 유입되는 인원이 증가했었다고 합니다. 언론을 통해 텔레그램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이 성착취/불법촬영물을 보기 위해 들어온 것이죠. 개인적 경험으로는 그즈음에 제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사람 중에서 남자 지인들이 갑자기 텔레그램에 가입했다는 알림이 많았어요. 그 알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괴롭고 절망적이었습니다. 우연일 수 있지만,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이었던 거죠.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수록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한 검색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가해자들의 가해 행위만이 아니라, 피해자를 검색하거나 피해촬영물들을 찾아보는 재차 피해들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생기는 것입니다. '가해자의 처벌과 재발 방지'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는 공론화이긴 하지만, 그로 인해 실제 피해자들의 피해가 더 확대된다는 것은 너무도 큰 고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박사'나 '갓갓' 등 핵심 주동 인물들이 검거되면서 구체적인 피해 사실까지 언론에 공개되는 사례들이 늘어났는데, 보도에 촬영물들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특정 키워드들을 이용하면 곧바로 피해촬영물을 검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포털 사이트 검색 결과에 피해촬영물들이 그대로 올라와 피해자들이 큰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었습니다. '박사' 조주빈과 공범들의 재판이 시작된 이후, 텔공대위에서 언론에 가장 간곡히 당부했던 것 역시 피해자들을 특정할 수 있는 키워드들을 기술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텔공대위에서 가해 집단 문화를 재구성해 공개한 카드뉴스
텔공대위에서 가해 집단 문화를 재구성해 공개한 카드뉴스. 순화를 했음에도 너무 적나라한 내용 때문에 '트리거가 있을 수 있다'라는 알림을 기재해야 했다. (출처 :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페이스북 갈무리)

둘째로, 국민적 공분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가해집단의 성착취 문화를 알리기 위해 여성을 성적대상화하고 멸시, 혐오하는 강간문화를 재현하는 것에 대한 부담과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간 여성단체들은 성폭력 사건을 포르노그래피적으로(자극적이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방식) 소비하는 언론 보도 등의 재현 방식에 대해 오랫동안 문제제기 해왔습니다. 피해 내용을 너무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기술하는 것을 지양하고, 성폭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그리고 개별의 관계와 맥락을 드러내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는 언론 보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성적 실천'으로 바라보지 않고, '권력 관계에서 상대방의 동의에 반하여 일어난 성폭력'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가져야 함을 강조해왔습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텔레그램 성착취의 방법과 과정들을 설명하기 위해, 가해집단이 공유하는 어휘, 공모 및 가해 방식, 여성(피해자)를 대하는 태도 등을 보여주기 위한 여러 콘텐츠가 활용되었습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 집단 내에서는 너무도 일상적이고 평이한(!) 어휘들이지만, 대중들이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수준의 대화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들이 얼마나 잘못된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콘텐츠들이었습니다.

텔공대위에서 발행한 카드뉴스를 예로 들어볼까 합니다. 텔레그램 기본 바탕화면을 배경으로 실제로 가해집단이 나누는 대화를 재구성한 총 9종의 카드뉴스를 제작했습니다. 직접 텔레그램을 모니터링한 활동가들의 경험을 1/10 정도 순화시킨 내용이었는데도 저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어요. '걸레', '암0년', '발육', '떡', '얼싸', '육덕', '0변기' 등 가해자들이 사용하는 은어들이 페이지마다 수차례 등장했는데, 피해자 혹은 여성집단을 멸시하는 태도가 적나라해서 카드뉴스 이미지를 보기만 해도 분노가 일어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콘텐츠 업로드를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텔레그램 사건의 문제를 알리려는 목적의 콘텐츠가 자칫 성착취 문화를 배울 수 있게 하는 창구가 되지는 않을지 염려가 됐습니다. 그리고 트리거 워닝***이 필요할 정도로 이와 유사한 피해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힘든 경험을 되새기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우려스러웠습니다.

이러한 강간문화의 재현이 자칫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불필요한 정보와 자극을 주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대중들에게도 과도한 정보와 자극이 되어 또 다른 피해를 만들어내는 창구가 되지는 않을지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여러 고민과 숙제가 남겨져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페미니스트로서 다양한 고민을 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긴 싸움이 될 것입니다. 잊지 말고, 지치지 말고, 서로 어깨 다독여가며, 기회가 된다면 함께 만나 고민을 나누기도 하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함께해서 결국은 승리의 경험을 나누어 가지길 바랍니다.

*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이하 '텔공대위')_ 2020년 2월 14일에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탁틴내일,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여성위원회 그리고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주축으로 구성된 여성인권운동단체들의 연대체입니다. 출범 이후 '박사' 조주빈이 검거되고 나서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더 많은 여성운동단체들이 함께 연대하고 있습니다. 텔공대위는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의료적 지원뿐 아니라 성명 및 논평 발표, 기자회견, 공판 모니터링, 입법TF 구성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 한겨레, 2020.03.25.일자, "당신이 모르는 'n번방' 폭로의 진짜 공로자들"

*** trigger warning. 총의 방아쇠를 뜻하는 사격용어인 트리거는 비유적으로 촉발제나 스위치와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어떤 콘텐츠를 보여주기 전에 이 콘텐츠를 열람하는 것이 힘든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붙이는 경고. 그런 주제에 대해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다. (페미위키 참고 femiwi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