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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소식지

[폴짝기금] 2026또우리인터뷰③ 내가 믿는 아주 작은 영원
  • 2026-10-22
  • 24

폴짝기금은 열림터를 퇴소한 생존자('또우리')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기금입니다.  


올해는 10명의 또우리가 프로젝트에 함께 하고 있어요.


자립의 과정에서 마주하는 경험과 변화하는 마음을 담은 또우리들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세 번째 주인공은 구구 입니다.



폴짝기금 또우리 인터뷰③ 내가 믿는 아주 작은 영원

 

🧙‍♀️신아: 작성해준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더 구체적으로 요즘 근황을 물어보고 싶어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구구: 전 비교적 단조롭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게 되어서 별 걱정없이, 직무변경도 없어서 동일한 업무를 하면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

 

🧙‍♀️신아: 어떤 일을 하시나요?

 

🔛구구: 대감집 노비라고, 대기업 계약직으로 있어요. 00에서 일하는데 은행창구가 아니니까 대면 업무는 하지 않고 각 영업점에서 문의 오면 해결해주고 매뉴얼 안내해주는 그런 역할이에요. 콜센터랑 비슷한 느낌이기도 합니다.

 

🧙‍♀️신아: 일은 잘 맞으세요?

 

🔛구구: 아니요. 잘 맞진 않는 것 같아요.

 

🧙‍♀️신아: 액티브한 일 잘 어울리시는 것 같아서!

 

🔛구구: 맞아요! 그렇게 봐주시다니 기분이 좋네요. 저도 비빌 언덕이 없으니까, 급여가 안정적으로 나온다는게 큰 메리트인 것 같아요. 일이라는 게 처음엔 현타도 오고 다들 이렇게 사는건가 싶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치만 저 말고도 많은 경우 본인이 하고 싶은 일과 실제 돈벌이가 이어지는 경우가 잘 없잖아요. 직장이 있어서 내가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그래서 취미도 할 수 있고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게 좋은 일이다, ‘괜찮다, 잘 풀렸다’ 하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신아: 구구답고 멋집니다. 이번 폴짝기금 사용 계획으로 브이로그 촬영용 카메라를 산다고 보았어요. 조금 더 설명해주신다면요?

 

🔛구구: 진짜 별 생각 없이 계획했어요. 디지털 쓰레기를 만드는건 아닐까 솔직히 걱정이 되기도 해요. 솔직히 몇 명이나 보겠어요. 그래도 나에 대한 기록용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하는 일이 워낙 단조롭고 똑같잖아요. 저는 이 현타를 어떻게 이길까 고민해요. 그런데 제가 자격증 공부하거나 더 나은 급여를 위해서 뭔가 더 대기업에 도전하거나 그러고 싶지는 않거든요. 저는 즐기며 살고 싶단 말이에요. 그래서 취미쪽으로 눈을 계속 돌리게 되고, 이것저것 해보고 있어요. 다이어트라며 식단도 자주 바꿔봐요. 제가 비만도 아니고 건강에 큰 문제는 없어요. 그런데 미션처럼 할 일을 저에게 주고 이것을 지켜나가다 보면 어떻게 해야 내가 나아질까, 삶이 좋아질까, 발전적으로 삶을 유지할까 이런 걸 계속 고민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신아: 이런 관점에서 유튜브도 시작한 걸까요?

 

🔛구구: 네. 릴스를 하든 숏폼을 하든 뭔가 찍어서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요즘 셋로그 유행이잖아요. 저도 친구들이랑 하는데 유튜브를 생각했을 때에도 비슷한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감옥, 판옵티콘에 갇힌 사람처럼 누군가 나를 본다는 의식이 있으면 더 열심히 하는데 그런게 없으면 나태하게 지내는 것 같아요. 인생을 낭비 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되고요. 저는 열림터에서 지냈을 때 오히려 모범적으로 잘 지냈거든요. 자기 전에 스트레칭 매일하는 게 루틴이었고 마스크팩도 자주하고 다이어리도 꾸준히 쓰고요. 뭔가 계속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같이 있었던 생활인들에게 내가 괜찮다는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어요. “구구 언니 대단해” 이런 말을 들으면 좋잖아요. 그래서 식사 차리는 것도 좀 더 신경쓰고 계획을 세워서 생활하고. 열림터 살 때 이런 게 좋았던 것 같아요. 애써서 무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잘 살게 된다는 것. 그런데 혼자 살면서는 그렇게 생활하지 않았거든요. 생각은 했지만 막상 혼자 있으니까 안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유튜브를 하는 것이 나 스스로를 위해서 괜찮지 않을까 해요.

 

🧙‍♀️신아: 나를 관심있게 지켜보는 사람의 힘이 있네요.

 

🔛구구: 맞아요

 

🧙‍♀️신아: 이전에도 폴짝기금을 사용한 적이 있는데, 그때 어떤 것에 사용했었어요? 폴짝기금이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구구: 반신욕기를 샀었는데 접이식 자전거처럼 지금은 옷을 쌓아두고 있답니다. 겨울에 한 두 번 쓰고 안쓰고 있어요. 처음 샀을 때는 되게 열심히 썼었고 갈수록 잘 안 쓰게 됐네요. 그래도 반신욕 몸에 좋으니까요 해야죠.

 

🧙‍♀️신아: 그럼 올 겨울에 다시 한번 여쭤볼까요? 지켜보고 감시하는 역할로요

 

🔛구구: 그것도 좋아요(웃음)

 

🧙‍♀️신아: 올해는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 힘이 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고 해요. 또우리에게 현재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한 번에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최대한 떠올려봐 주세요. (만약에 ‘사람’ 중에서 생각나지 않는다면 반려동물도 좋아요)

 

🔛구구: 저는 안하무인 같을 수도 있고 외롭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 자신인 것 같아요. 가장 크게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끊임없이 의식을 하는 것도 저 자신인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 남자친구도 아니고, 엄마랑 사이를 많이 회복하긴 했지만 엄마도 아니에요. 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면서 힘을 받아요.

 

🧙‍♀️신아: 이상적인 구구님은 어떤 사람이에요?

 

🔛구구: 이번에 세계의 주인 영화를 통해서도 그렇고, 혹시 <치치새가 사는 숲>이라는 책 읽어보셨어요? 둘 다 성폭력생존자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최근에 했던 지브이 오셨었나요? 지브이에서도 느끼기도 했는데, 생존자들이 열악하고 힘든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지만 불안정하고, 오히려 공격적이거나, 우울감이라거나,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모습도 있어요. 저도 그런 시간이 있었고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저도 그렇겠죠. 그걸 보면서 속상했어요. 피해가 우리 잘못도 아닌데 그걸 결국에 넘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분명 생각하지만 그냥 한 발자국 떨어져서 봤을 때에는 ‘어떻게 다 그러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저는 <세계의 주인> 이라는 영화가 생존자들을 많이 대변한다고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봤어요. 생존자들과 회복의 과정은 다양한 모습이 있으니까. 그래서 지브이에서 나왔던 견해가 어느 정도 납득하기 어려웠고, 의견을 낸 생존자가 본인 위주의 생각에 아직 갇혀서 그런 것 아닐까 속상함도 있었고요. ‘성폭력’이 예민한 주제이지만 노력해서 따스한 시선으로 만든 것에 대해 더 지지하고 싶은데 그 자체를 공격하게 된 것이잖아요. 저는 성폭력 생존자에 대해서 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고, 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치치새의 숲>이라는 소설은 표지에 속으면 안 되는 어두운 소설이에요. 짤막하게 설명드리면 주인공은 중학생인데 집 형편이 어려운 애에요. 주인공 아이는 엄마가 받아온 물방울 무늬 팬티만 입는데, 바깥 사물함에 일부러 그 팬티가 보이게, 생리대 붙인 날개가 보이게끔. 아빠다리 하고 앉아요. 남자들이 나를 쳐다보는지 의식하는 이런 친구에요.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에는 내가 남자친구랑 키스하고 성관계도 하면 다른 예쁜 친구보다 내가 더 잘 나가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해요. 그러다가 언니가 다니는 공장의 남자 과장님에게 강간을 당하죠. 그런데 이 아이는 강간이라고 생각안하고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강간과정이 SM 플레이처럼 나오고, 중학생을 데리고 이렇게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폭력적인 느낌을 줘요. 언니가 결국엔 둘의 관계를 알아내고 신고를 하고 재판받는 과정이 나오는데 이 친구는 본인이 겪은 게 강간이라고 생각을 안 해요. 자신이 굴복하게 된 순간을 사랑의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탄원서를 써주기도 해요. 그러다 재판 과정에서 갑자기 외삼촌이 어렸을 때 저를 함부로 만졌다고 고백해요. 한페이지 넘게. 그때 언니도 같은 침대에서 자다가 깨어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고, 날 강간한건 외삼촌이지 이 남자가 아니라고 고백을 하는거에요. 너무 힘든 가정환경이었기 때문에 합의금을 받고 넘어가는 식으로 마무리가 되어요. 표지는 평화롭고 싱그러운 느낌인데 충격적인 전개만 되다가, 이 아이는 왜 이럴까, 싶다가 뒷부분을 보면 이해가 되더라구요.

 

🧙‍♀️신아: 너무 있을 법한 이야기에요.

 

🔛구구: 맞아요. 이 책이 100% 좋다는 아니에요. 묘사가 과하기도 하고 포르노도 아니고 고민되는 부분도 있어요. 이 책을 친구들과 독서모임으로 읽어서 같이 얘기할 시간이 있었는데, 이 작가는 생존자도 아닌데 이 글을 왜 썼을까 하는 거에요. 그런데 저는 무조건 생존자이여야만 생존자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저런 다양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나오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고, 더 많이 바뀌고 있잖아요. <세계의 주인>에서는 주인이가 밝고 곧게 자라는 아이잖아요. 누가 봐도 응원해주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 그런데 치치새 숲 이 아이는, 치치림이라고 본인을 칭하는데, 치치림은 마지막에 가족들이 식사하러 가서 꽁치김치조림 메뉴를 봐요. 이것도 줄이면 치치림인데, 이게 얘 같거든요. 퀴퀴하고 쩐내나고 그런데 일상적이고. 어떻게 보면 더 많은 생존자들은 치치림에 가까워요. 이런 이야기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상태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에도 저는 의미를 많이 두고 싶어요.

 

🧙‍♀️신아: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구구는 어떤 과정을 지나왔는지 궁금해요.

 

🔛구구: 저는 책 읽고 영화 보는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일기를 썼다고 했잖아요. 나중에 보면 읽을 수가 없어요. 저도 정신적으로 너무 몰려서 문장이 완성이 안 되는 거에요. 나중에 가서 보니까 이야기가 반복되고 문장이 꼬여있고 이때 내가 잠깐 아팠구나, 지능이 떨어져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지금은 그런 순간을 지났잖아요. 어느 정도 일기를 잘 쓸 수 있고 책 읽는 것도 문제도 없고 객관화를 스스로 할 수 있어서, 피해가 있기 전에 내가 진짜 좋아하던 것, 글 읽고 쓰고 뭔가 그런 걸 만들어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고, 이 상태가 저는 이상적인 것 같아요. 그걸로 소통도 가능하고. 저는 제가 썼던 그 일기를 보고 너무 충격이었어요. 제출했던 독후감 같은 것도 몇 년 뒤에 읽으니 다시 보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 같았으면 기록으로 남겼을 텐데, 꼴도 보기 싫다고 다 치운 게 아쉽기도 하네요.

 

그래도 제 사건은 재판을 잘 받았어요. 그때 다행히 언론도 그렇고 많은 도움을 받아서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해요. 벌써 시간이 꽤 흘러 가해자는 세상에 나왔죠. 폐지 줍는 노인 하나 늘어났구나 싶기도 하고. 소송과 재판을 해냈다는 것에 대해서 많이 해소가 되었어요. 다음 페이지로 나갈 수 있었어요. 지금 저는 생존자로서 저에 대해 의식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에요. 제가 생존자라는 것을 평소에 생각하거나 의식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다른 그녀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있고 어쩔 수 없이 성폭력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은 일상에서 있어요. 지금의 저는 이런 이야기가 더 많이 생기면 좋겠고 다양한 관점으로 보면 좋지 않을까 이런 단계인 것 같아요.

 

🧙‍♀️신아: 그 시간을 버티고 지나오게 한 원동력은 어떤 것이었어요?

 

🔛구구: 가해자가 처벌 받을 거라는 확신. 승산 없는 싸움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운이죠.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라 모두에게 공평하진 않으니까. 저의 사건은 시기나, 대중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된 흐름을 타서 운 덕분에 그렇게 좋게 풀렸어요. 그 다음에 나는 완전히 후련해졌는가, 보면 그렇진 않았어요. 갑자기 사람이 말짱해지는 건 아니에요. 그 이후로도 상담을 꽤 오래 받았어요. 저의 상태에 대해서 스스로 못 받아들이는 것도 있었어요. 항상 제가 좋은 상태, 나은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어느 정도 강박같은 것도 있는 편이에요. 그래서 상담소 나오고 혼자 지내면서 외롭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고. 외로운데 나는 잘 지내야 되고 좋게 보이고 싶었어요.

 

결국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저는 뭘까요. 이 질문에 대해 답변하기 위해 아주 멀리 돌아온 느낌인데요. 폭식증, 거식증, 음식중독에서 벗어난 사람. 내 몸과 화해하고 아껴줄수 있는 사람. 사람들과 연결되어 소통하는 사람. 내가 생존자임을 의식하진 않아도 거부하지 않으며 발전하길 바라는 사람. 내 손으로 무언가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결국엔 나도 평범하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살길 바라는 것.

 

🧙‍♀️신아: 나를 아끼는 마음이네요. 이제 거의 마지막 순서의 질문이에요. 성폭력 생존자들의 자립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사회적 시스템이나 제도나 문화 등등.

 

🔛구구: 자립을 위해서는 집 아닐까요.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 그냥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

 

🧙‍♀️신아: 마지막으로 열림터에 하고 싶은 말은요?

 

🔛구구: 오늘 열림터 오면서도 생각했는데 여기서 제가 지낸 기간은 1년 이었지만, 친정 같은 기분이 들어요. 마음의 고향같은 느낌. 일하는 분들 바뀌지만 이 공간의 상징적인 의미가 그래요. 그래서 올 때마다 좋고, 항상 고마운 마음이 크고요. 여기는 언제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문을 닫진 않겠죠?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이 공간이 있으면 해요. 제가 믿는 아주 작은 영원이에요. 언제든 올 수 있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저의 작은 비빌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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