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화운동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 대안적인 관계, 일상, 실천을 만들어가는 성문화운동을 소개합니다.
[2008]11.26 섹슈얼리티쟁점포럼 3rd 성별/규범 어떻게 넘나들며 운동할까
- 2008-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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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6일 08년 섹슈얼리티 쟁점포럼의 세 번째 시간이 열렸습니다. 장애여성 공감,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와의 만남에 이어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와의 만남으로 마련된 자리였지요. 주제는 ‘성별/규범’ 어떻게 넘나들며 운동할까 로, ‘성별’과 관련된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지렁이의 운동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성별은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상담소에 접수되는 상담만 보아도, 여성이 성폭력 피해의 대다수이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는 여성들의 문제로 이야기 되곤 합니다. 역시 상담소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가해자들도 남성이기 때문에 많은 경우 상담소 활동가들은 가해자들의 ‘남성다움’에 대해 피로감과 분노를 갖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성들이 무기력하기만 한 피해자로 남아있지 않고 놀라운 힘과 생명력을 가진, 변화되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처럼, 사실 가해자 역시 그런 변화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임을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질문은 종종 가해자 교육을 진행하는 상담소의 몇몇 활동가들이 갖게 되는 질문입니다. 피해자는 ‘상담’을 하고 가해자를 ‘교육’을 하는 우리 운동의 임의적인 구도가 사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변화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고민이 됩니다. 상담이 지지와 치유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교육이 인식 개선의 내용으로 채워진다면 우리는 종종 피해자에게도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고, 가해자에게도 변화의 용기를 독려하기 위한 지지가 필요함을 느끼기 때문이죠. 운동은 사람의 변화 가능성과 사람의 좋은 기운을 믿는 것이기도 하고요. 피해자의 분노에 공감하는 것이 가해자에 대한 분노, 남성(성)에 대한 분노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어떤 연결 고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반영된 자리였습니다. ‘잠재적 가해자’는 곧 ‘잠재적 피해자’를 상정하는 것임을 활동의 과정에서 많이 느끼기도 하기 때문이죠.
이런 고민은 지렁이와 한국성폭력상담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남자와 여자라는 구분이 뭐지?’
‘(지난 3·8 세계 여성의 날 시청 앞 광장에서 들었던 피켓에 <남자다움, 여자다움? 그런 것 웃겨요~>라는 내용을 썼지만, 그 구분이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되는 것을 과연 우리가 상상할 수 있지?’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지탱하는 성별 규범과 제도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비판하지?’
‘우리는 남성성, 여성성 이라는 말을 운동의 구호에서 어떻게 사용해왔지?’
예를 들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여성주의 자기방어 운동’이라는 타이틀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성폭력을 이슈로 하는 우리 단체에서 격투를 배우고, 지리산을 종주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사람들과 나누고 그 내용을 소중하게 축적하는 이유는 성폭력에 반대한다는 운동의 구체적인 내용 중 하나를 ‘여성에게 강요되는 성별 규범에 도전하고 그 규범을 벗어나는 몸을 실험해보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것은 피해자 여성들의 ‘피해자성’이 아닌 다른 ‘성별 규범’을 상상해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렁이의 고민은 이와는 또 다른 것이었습니다. 같은 키워드로 이렇게 다른 운동의 내용과 고민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참 흥미로운 일입니다. 매일 매일 활동에서 반복되어 단순화되기 쉬운 ‘운동의 지향’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하고, 활동가들의 문제의식을 날카롭고 풍부하게 해줍니다. 특히 ‘성폭력’이라는 정의를 성별과 관련하여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지렁이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은 ‘뇌를 들었다 놨다’해야 할 정도로 성별에 대한 세계관을 다시 고민하게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트랜스젠더 남성의 경우 지하철에서 자신을 남성으로 인식하고 (성적 불쾌함을 느끼는) 여성을 보면서 자신의 ‘남성 성별’을 인정받은 듯 한 뿌듯함을 느꼈다면, 이것은 성폭력일까요?
트랜스젠더 남성의 성폭력 피해의 내용이 ‘여성이 아니라 남성으로 취급받으며 (항문 강간을 당했기 때문에) 성폭력을 당했기 때문에 그나마 낫다’라는 것으로 구성될 때, 이것은 상담소의 상담에서 어떤 상담 내용으로 구성될까? 이에 대해 상담소 활동가들은 어떤 상담에 대한 구상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낯섦의 이유, 어렵다고 느끼는 이 감정이 근거한 우리 활동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지나면서 참석자들이 한국성폭력상담소, 지렁이, 혹은 섹슈얼리티/성별과 관련한 운동에게 기대하는 내용들을 공유하였습니다.
성별은 남성과 여성만으로 나뉠 수 없지요.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의 수많은 성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별이 세상의 많은 폭력, 행복, 관계의 역동을 만드는 중요한 키워드임을 인식하는 것의 중요성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변화가능성을 믿는다는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변화를 믿는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성별/규범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들 역시 성찰해야 하는 것이겠죠.
상담소의 운동이 피해자의 변화가능성을 ‘성별 규범을 넘어서기’라는 ‘여성성에 대한 도전’으로 상상해왔다면, 지렁이와의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더해진 상상은 ‘삶의 구체적 현장을 살아가는 개인들의 경험을 화석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성별/규범에 대한 고정된 상을 갖는 것에 대한 끝없는 경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트랜스젠더 남성의 성별 정체성이 (동일인의) 피해와 가해의 경험에서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화하는지를 들으며,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피해의미/가해의미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이후의 전망을 고민하고 싶습니다.
* 발제문은 본 게시물에 첨부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