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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화운동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 대안적인 관계, 일상, 실천을 만들어가는 성문화운동을 소개합니다.
[김민혜정]보다 근원적인 성평등을 위하여(09.3 민주노총 '노동과 세계' 기고)
  • 2009-03-13
  • 2963
보다 근원적인 성평등을 위하여
 
‘성평등’, ‘성인지’라는 말이 우리 곁에 등장한 지 못잡아도 15년이 흘렀다. 언론에, 국가정책에, 우리 일상에서 이런 말들을 보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떨까?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이 터진 후 한 여성 활동가는 “성평등한 조직이 되지 않고는 성폭력은 또 일어난다”라고 말했다. 이런 진단을 듣고 “아니, 도대체 성평등이 뭐란 말인가?” 라고 새삼스러운 고민과 의문에 깊이 빠졌다면, 당신은 이제 찬찬히 성평등에 대해서 돌아보고 생각할 때다.
 
‘성인지’ ‘성인지적 관점’을 듣고 ‘성인잡지인가?’ ‘성인의 지적인 관점인가?’ 라고 반문하는 이를 보면서 씁쓸한 박장대소를 한 적 있다. 정책상으로, 국제법상으로 보편화된 말이 일상에서는 의미조차 아직 전달이 안되어 있나보다. 혹은 신문을 봐도 저런 용어가 등장하는 면은 죄다 건너뛰어 왔다거나. 그러나 너그럽게 생각해서 사실 이런 용어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성평등’이라고 용어를 정리하고 접근해도 무방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속에 자리잡은 성평등에 대한 오해들부터 전면 재검토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여성상위 시대 아닌가?
 
대한민국이 더 이상 양성평등이 뭐가 필요하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무슨 일만 있으면 ‘여성부 폐지’ ‘꼴페미’ 댓글을 다는 활약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적으로 ‘불편한’ 순간을 자주 마주친다. 나이 50줄에 들어 제사를 더 이상 모시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형수 혹은 아내를 봤을 때,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연장자에게 큰소리로 자기 할말 따박따박 하는 여자조합원을 봤을 때, 식당에 가서 숟가락 하나 놓는 시늉 안하고 자기 밥만 딱 먹고 일어나는 친척 조카를 봤을 때. 당신은 대놓고 “여자들 무서워 어디 살겠나” 혹은 “아니 여자가 어디서” 하고 손을 올리지 않더라도 속으로 ‘이제 여자들의 천국이 왔구나’ 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법시험 결과를 알리는 언론보도에 ‘여성상위시대’ 라고 대서특필될 때의 결과는 여성 합격률 40%에 불과했다. 여성 법관이 어느 정도여야 그들은 ‘평등’이라고 말할까? 30%? 20%? 여성상위시대를 말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금도 하루에 수없이 행사하고 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돌아보지 않는다. 그런 ‘사고’를 치기까지 그녀들이 살아온 역사와 그 후에 맞이하게 될 후유증에 대해서 짐작해본 적 있는가? 그런 인식이 행하고 있는 무수한 차별이 지긋지긋해서, 그런 세상에서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남기 위해 그녀들은 결혼을 미루고, 아이를 낳지 않고, 공무원 시험에 열을 올리고, 일상에서 한번씩 미친척 지르고 싸움닭이 되고 있다. 정작 여성들은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는 ‘여성상위시대’ 농담과 선언은 지금도 싸우고 있는 누군가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성평등은 ‘배려’지?
 
강의를 나가면 “그러니까 서로 배려해야죠” 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참 좋은 말이고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자리를 빌어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배려라는 것은 더 깊숙한 변화에 다다르지 않는 속편한 발상이기도 하다. 배려의 대명사 ‘장애인 먼저’ 라는 캠페인을 떠올려보자. 이는 지하철을 탈 때, 신호등에서 길을 건널 때 장애인이 먼저 가도록 배려하자는 캠페인으로 히트쳤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는 배려받아야 할 존재 이전에 스스로 교육받고, 움직이며, 발언하고, 돈을 벌며, 사회정책을 비판하며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내가 누리는 자원과 권리 사회적 관계를 동일하게 나누어야 하는 존재다. 이것을 막고 있는 구조에 함께 맞서 싸우지 않으면서 ‘배려’를 감행할 때, 그것은 가진자의 여유, 횡포일 수 있다. 그들의 ‘배려’는 그들이 편한시간에,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 그들의 기준대로 일방적으로 행해진다. 장애인을 위한 것이 ‘배려’라고 인식한 사람들은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받았을 때 “배려해준대도 싫다니!”라고 화를 내며 더 큰 복잡한 갈등을 만든다.
여자 후배들에게는 좀 더 부드럽게 말하고, 가끔씩 아내의 설거지를 도와주며, 추울 때 옷을 벗어 걸쳐주는 그런 ‘레이디퍼스트’ 정신 혹은 ‘젠틀맨’ 행동으로는 바꿀 수 있는 세상이 별로 없다. 배려받아야 할 존재는 왜 그런 조건과 위치에 머물러 있는지, 나는 왜 배려를 행할 수 있는 여유와 자원을 가지고 있는지 그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발언권을 여성조합원에게 먼저 주는 것을 넘어, 사회자는 누가 해 왔는지, 명절에 설거지를 돕는 것을 넘어 며느리는 왜 시집의 일손이 되어야 하는지, 성폭력 피해자에게 보호와 동정을 베푸는 것을 넘어 왜 나는 살면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적이 없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성평등에 대해 토론하고 고민해야 할수록, 그것은 현재 우리가 성평등 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무언가를 만났을 때, 그것이 왜 불편함을 주었는지 깊이 곱씹어 보면 그 속에서 우리가 함께 싸워야 하는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권력의 지형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총 한 지부에서 정규직 남성노동자가 파업중인 비정규직 조합의 투쟁을 ‘엄호’하다가 “아줌마는 뒤로 빠져!” 라고 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 설왕설래는 참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왜 도와줬는데도 뭐라고 하는지?‘ ’여자들은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아줌마를 아줌마라고 한 것이 뭐가 문제인지?‘ 등. 성평등에 대한 여러 가지 시각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변사람들과의 토론을 권장드린다. 물론 보다 ’근원적인‘ 토론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김민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

댓글(2)

  • 지나가던이
    2009-03-23

    민주노총 성폭력사건 해결이 근원적 성평등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한다고 하는 주장이 왜 '남자를 포함하지 않은' 평등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자보다 남자가 차별당한다 이런 식의 논리를 주장하시기 전에 여자다움, 남자다움이 강요되는 것에 대해 함께 문제제기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시면 좋겠습니다 남자 평균키가 커야한다는 고정관념, 남자가 돈을 내고 여자는 빌붙는 그런 세상을 지향하는 그런 운동을 하는 곳이 여성단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렇다면 대단한 오산입니다요.

  • 제발
    2009-03-17

    제발 성평등이 여자를위한 평등이아니라 남자도포함해서 평등이길바랍니다. 남자는 여자들이 아무리 엉덩이만져도 남자가 여자뽀뽀 1번 하는것보다못합니다. 이게 남녀평등입니까? 남녀차별 남녀차별하는데. 요새는 여자보다 남자가 더 살기 드러운세상입니다.연예할떄 돈은 기본으로 남자가 내는게당연,그리고 남자 평균키도 모르고 180이상은되야한다는 고정관념 거기다 얼굴은 기본이고 능력은 필수인시대입니다. 남자한테 기대살려고하는 여성 1위가 대한민국 여자입니다. 시대를파악하세요 몇십년전과달리 지금은 모든조건에서 여자가 우위를치고있는게 상당히많습니다. 이젠 여성을위한이아닌 모두가 평등한을 지향하시는시대로 바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