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화운동
교수 성폭력 근절하려면
김두나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교수 성폭력 사건에 대한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모 대학 총장이 공개석상에서 제자를 공공연히 성희롱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교수가 버젓이 학교에 재직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었다. 이런 보도를 접할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동안 교수성폭력 근절을 위해 수많은 피해자들이 문제제기를 해왔고, 대학 내 여성단위들과 여성단체들이 끊임없이 노력해왔지만 교수성폭력 근절은 여전히 멀기만 한 것 같다.
교수와 제자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적인 권력관계는 교수 성폭력의 핵심이다. 한국 대학에서 교수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자 또는 연구자의 위치를 넘어 학생들의 성적·진학·논문·취업에까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를 갖는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통제할 수 있는 관계는 폭력과 갈등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교수 성폭력 사건에서 대부분의 피해자가 논문을 지도받는 대학원생이나 조교, 학생이라는 점에서 교수의 권력이 교수 성폭력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수와 제자 사이의 위계적 권력관계는 교수 성폭력의 핵심적인 원인일 뿐 아니라 교수 성폭력 사건에 대한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어렵게 한다. 교수 성폭력의 여러 조건들을 유지·재생산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실제로 상담소에서 교수 성폭력 사건을 지원하다 보면 피해자들이 교수와의 권력관계 때문에 가해자에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피해자들은 가해교수의 무리한 요구나 행동에 당혹감과 불쾌함을 느끼면서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가해자가 평소 깍듯이 예의를 지키며 스승으로 모셔 온 ‘교수님’ 이라는 점 때문에, 자신의 학업이나 진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 때문에 문제제기를 주저하거나 포기하는 것이다.
교수 성폭력을 문제 삼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 교수와 제자 사이의 위계적 권력관계는 더욱 견고해진다. 그리고 학생은 교수 성폭력에 더욱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교수 성폭력 근절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대학의 소극적인 태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피해자가 자신의 학업이나 진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며 가해교수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대학 측이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의지와 태도를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이보다는 가능한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하고, 피해 학생보다 교수의 편을 들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해자의 인권이 침해당한 것보다는 가해자인 교수의 지위나 명예 실추에 유감을 표시하는 것이 대학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이처럼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감싸주는 대학 풍토 속에서, 피해자들은 사건처리과정 중 더 큰 고통을 겪는다. 교수 성폭력 사건을 책임 있게 해결해야 할 대학이 오히려 또 다른 가해자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교수 성폭력을 근절하기 어렵다.
교수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선 대학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대학이 교수 성폭력 문제를 ‘일부 잘못된 교수’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성폭력 근절에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교수와 제자 사이의 권력관계와 피해학생들의 고통에 근거해 교수 성폭력 문제를 접근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래야 피해자 중심의 관련 내규를 확립하고 철저히 집행할 수 있다. 아울러 교수들에 대한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강의평가에 교수의 성인지도 평가항목을 추가하는 등 교수 성폭력 근절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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