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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화운동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 대안적인 관계, 일상, 실천을 만들어가는 성문화운동을 소개합니다.
[윤상] 낙태가 살인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여성신문 2010. 02. 12)
  • 2010-08-18
  • 2480
낙태 논쟁 특별기고
낙태가 ‘살인’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법 체계에선 생명권 모두 동등하지 않아
강간범이라고 살인미수죄 적용하는가
생명권의 온전함과 위대함. 세상의 어떤 권리가 감히 생명권과 이해관계를 다툴 수 있을까? 그 어떤 경우에도 생명권보다 우선하는 권리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을 규제하고 있는 우리 법에서는 모든 생명체의 생명권을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뇌사상태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견해다. 인공적인 힘을 빌려 호흡은 하고 있지만 뇌사한 인간에게 생명이 있는가, 없는가? 뇌사자의 장기기증을 인정하고 독려하는 우리 사회는 일단 없는 것으로 합의를 본 듯하다. 요즘 많은 불임 부부가 시술받고 있는 인공수정은 다태아 임신인 경우 다태아 축소술을 받게 된다. 임신을 하기 위해 선택한 다태아 축소술은 살인인가 아닌가?

다툼의 여지가 없는 절대영역처럼 보이는 ‘생명권’이 실은 다분히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을 낳고 있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의 세상사 사정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며, 이 때문에 생명의 시작점과 끝나는 점에 대한 숱한 과학적·사회적 입장과, 이들을 둘러싼 끝나지 않는 논란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태아는 생명이니 낙태가 살인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 법체계에서 태아 생명이 갖는 지위는 사람의 것과 확연히 다르다. 태아의 생명권을 사람과 동등하게 보았다면 낙태죄의 형량은 살인죄와 동등해야 할 것이며, 강간과 (임신 계획 없이) 피임하지 않는 성관계는 마땅히 살인미수죄의 수위로 처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체 안에서 태아의 생명이 유지되어 출산되기까지 태아는 모체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생명권과 그 법적 지위를 동등하게 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낙태죄를 살인죄와 동등하게 취급할 수 없고, 태아 생명 수호의 의무를 개인의 인격권을 초과하는 정도로 요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태아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태아에게 생명권의 주체로서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서로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 개인이 마치 도덕적 책임감이 없고, 자기 삶에 벌어지는 불편함을 견디기 싫은 이기적인 존재인 양 낙태 비난 여론을 조성하고, 생명보다 우선되는 사회·경제적 사유가 어떻게 있을 수 있냐며 낙태권 논쟁을 오염하는 주장이 숱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임신 종결은 태어날 아이, 이미 태어나 있는 가족과 주변인, 여성이 감내하는 삶에 대한 통합적인 고찰 끝에 내리는 ‘책임 있는’ 결론이라는 사실은 쉽사리 무시된다.

안전하게 아이를 맡길 곳 하나 찾기 힘들어 늘 폭력과 사고의 위험에 내몰려 있는 아이를 둔 일하는 어머니의 불안함, 자신을 성폭행한 가족이 살고 있는 가정이라는 공간 외에는 달리 갈 데가 없어 오늘도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현실에 대한 뼈아픈 고민은 과연 누구의 몫인가?

한 번의 성관계로 만들어진 수정란이 ‘사람’이 되기 위해 여성의 몸은 10개월간 겉모양뿐만 아니라, 혈압, 호르몬 등의 극적인 신체적 변화를 견뎌야 하고, 출산 후에는 24시간 아이에게 매달려 생명 유지를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일에서부터 갖가지 감정노동과 돌봄노동을 투여해야 한다. 그리고 이 생명을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상당한 훈련과 교육을 거쳐야 한다. 이처럼 수많은 시간과 노력, 사회적 지원과 투자 끝에 태아는 비로소 ‘사람’이 된다.

수정란이 사람이 되는 과정이 바로 우리의 ‘삶’이며, 이 삶을 온전하게 영위해야 할 권리와 의무 때문에 우리네 삶의 고단함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이 존재한다.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는 순간이나 배아가 세포분열을 하는 과정을 절대화하고 비현실적인 살인논쟁을 하는 데 힘쓰기보다는, 태아가 우리 사회에서 숭고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사회공동체가 함께 나누어야 할 의무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럴 때에만 감히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글은 2008년「2008 릴레이시민토론」(주최: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발표한 "낙태권, 가부장제 국가와 싸워라"와 2009년「낙태 불편한 진실 이대로 둘것인가?」토론회(주최:홍일표 의원실)에서 발표한 "생명보호 어떻게 해야할까?"의 글을 토대로 재작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