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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화운동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 대안적인 관계, 일상, 실천을 만들어가는 성문화운동을 소개합니다.
[이윤상] 폭력을 묵인하는 사회 (경향신문 2010. 07. 01)
  • 201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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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어린이성폭력 피해 사건에 국민들의 분노와 염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왜 이렇게 세상이 점점 무서워지는지, 이런 위험한 세상에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하다. 정부가 쏟아내는 대책도 다 거기서 거기일 뿐, 무엇하나 속 시원한 것이 없는 듯하다.

사실 어린이성폭력 피해는 성폭력 상담을 하는 현장에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가해자는 대체로 어린이 가까이에 있는 아는 사람인 경우가 많고, 따라서 피해 장소도 학교, 가해자나 피해자의 집 등 어린이들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성폭력 예방뿐 아니라 어린이들의 안전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생활공간을 아우르는 돌봄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많은 이들의 노력과 후원으로 방과후교실, 상담소, 쉼터 등을 일구었고 더욱 책임있는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회의 인권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긴 안목을 가지고 문화와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교육에 예산과 인력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도 이미 오랜 일이다. 하지만 정부의 투자는 늘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가해자에 대한 정책에도 철학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피해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가해자를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지는 늘 뜨거운 쟁점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죄를 저지른 범죄자는 어느 정도 처벌해야 하는지, 처벌을 지금보다 강화해서 오늘 일어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인지, 얼마나 철저하게 감시해야 재범을 예방할 수 있을지 등의 논란은 늘 처벌을 강화하는 것으로 매듭이 지어진다. 형벌강화론 뒤에는 성폭력범죄 가해자가 정신이상자, 사람이기를 포기한 자 등 비정상적이고 예외적인 사람이라는 전제가 공고하게 버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며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된다. “왜 죄 없는 어린아이들에게 못할 짓을 하느냐”며 분노하지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강자와 약자가 뚜렷이 나뉘고, 약자에 대한 배려와 책임의식이 없는 사회는 폭력을 묵인하고 더 나아가서 용인하는 사회다. 어린이들에게 예의라는 이름으로 권리가 아니라 복종을 가르치는 사회, ‘어른’이라는 사실을 책임이 아니라 권력남용의 기회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라면 폭력은 이미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남성이 여성에게, 힘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행하는 물리적·언어적·정서적 폭력은 정신이상자나 인면수심의 사람만이 하는 행동은 아니다. 사람도 아니라며 손가락질 당하는 가해자는 갑작스럽게 생겨난 이상한 존재가 아니라, 바로 이런 사회에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이다.

마음 아픈 사건 앞에서 분노하고 성토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가해자를 실컷 욕하고 강력하게 처벌한다고 해서 내 아이의 안전이 보장된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더욱이 처벌되지 않는, 처벌하지 못하는 가해자가 더 많은 현실은 형사처벌의 한계를 보여준다. 처벌은 가해자가 죗값을 치른다는 것에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안전을 담보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폭력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폭력이 더 큰 폭력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려는 용기와 결단, 철학과 노력이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는 길은 점점 멀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