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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화운동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 대안적인 관계, 일상, 실천을 만들어가는 성문화운동을 소개합니다.
[2018 2월 단호한 시선] 성폭력 인정은 어렵고 무고 인정은 쉬운 사회: 이진욱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 대한 무고 2심 판결에 부쳐
  • 2018-02-21
  • 2922


2월의 <단호한 시선>

 

성폭력 인정은 어렵고 무고 인정은 쉬운 사회

: 이진욱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 대한 무고 2심 판결에 부쳐

 

배우 이진욱을 무고한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던 여성이 지난 7,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무고란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행위를 일컫는다. 그렇기에 성폭력 무고혐의를 따질 때 피해자가 신고한 성폭력 사실이 허위인지 아닌지, 신고 시 어떤 목적이 있었는지 보게 된다.

쟁점이 되는 허위사실 판단에 있어 대법원은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도 신고자가 진실이라고 확신하고 신고하였을 때에는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으며, “비록 신고내용에 일부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고 하더라도단지 신고사실의 정황을 과장하는 데 불과하거나 허위의 일부 사실의 존부가 전체적으로 보아 범죄사실의 성립 여부에 직접 영향을 줄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는 내용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무고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고 판결내린 바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피해자가 성폭력이라고 확신하고 신고했을 때 무고가 아니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무고 혐의를 둘 때 성폭력 통념에 근거해서 생각하기가 너무 쉽다. 우리는 성폭력 통념에서 자유로운 사회를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는 성관계였다면 피해자가 더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싫다는 표현을 했을 것이라거나 피해자의 어떤 행동들을 동의의 표현으로 해석하는 일 모두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에 해당한다. 성폭력 문제제기의 이면에는 합의금을 받기 위해서거나 상대방에게 복수하거나 해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 역시 성폭력 통념이다. 이러한 통념에 근거할 때 피해자의 말을 의심하게 되며, 가해자가 적극적인 동의를 구했는지, 가해자로부터 어떠한 성폭력의 시도도 없었던 것인지 묻지 않게 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심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근거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무고했다고 판단했다.

무고죄가 성립하는지는 성관계 당시 **씨가 항거가 불가능할 정도로 폭행, 협박이 있었는지를 봐야 한다

성관계가 **씨의 내심에 반해 이뤄진 측면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지만, 강압적인 수단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

통상적인 상식을 가진 **씨는 단순히 내심에 반하는 성관계와 강압적 수단에 의해 이뤄지는 강간의 차이를 모르지 않았을 것

“**씨가 이를 고소한 것은 객관적인 사실에 반하는 허위고소

재판부는 피해자의 피해가 항거불가능할 정도의 폭행·협박을 동반한 강간이 아니었고, 오직 그러한 피해만이 성폭력이라는 것은 상식이고, 그러한 상식에 근거할 때 성폭력이 아님에도 신고한 것은 허위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여기서 거론된 통상적인 상식에 성폭력 피해자 다수의 경험이 온전하게 포함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의사에 반해 이루어진 성관계를 성폭력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상식 아닌가. 또한 무고 판단과 성폭력 판단은 별개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무고한 것이 아니기 위해 법적으로 성폭력이 입증되어야 하는지, 법적으로 인정되는 항거불가능할 정도의 폭행·협박에 의한 강간은 아주 일부의 피해경험에만 해당될 뿐인데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거나 증거가 충분하지 않는 경우 당연하게 무고 의심의 대상이 되는지 의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온당한가?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에 의해서 무고나 명예훼손으로 역고소 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무고를 판단할 때 피해사실과 신고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왜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지 적극적으로 들어야 한다. 잘 듣기 위해서는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 통념이나 피해자다움의 편견에 대해 인지하고 개입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최소한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무고판단에 있어서는 마치 피해자에 대한 의심과 비난이 공정한 판단과 합리적 의심이라는 명목 하에 아무런 성찰 없이 쏟아지는 듯 보인다.

페미니스트 이론가 샌드라 하딩은 기존의 남성중심적 과학지식계에 누구의 과학이며 누구의 지식인가되물었다. 재판부가 공정한 판결을 위해서 참고한 상식과 사실은 누구의 것인가? 정말 합리적이고 공정하기 위해 의심해야할 것은 재판부가 갖고 있는 상식과 관점이 가해자의 것은 아닌지이다.

 

 

2018.02.21.

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