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화운동
[후기] 피해와 생계사이 연속 집담회
지도받을 권리, 지배받지 않을 권리
교육 훈련 과정 내 성폭력에 대하여
2019년 6월 20일 오후 7시부터 9시 30분까지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 연속집담회 <피해와 생계 사이> 2회차가 ‘지도받을 권리, 지배받지 않을 권리’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사회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앎이 맡아주었고 패널로는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위원장),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 문아영 (동덕여자대학교 H교수 성폭력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의장) 님이 참여하여 각 분야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실무수습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진과 여흐물이 이번 집담회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1. 다양한 분야, 각 영역의 특수성에 대해 우리가 알게 된 것들
진)
극단 미인의 대표이신 김수희님께서 극단의 특수성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셨는데, 한 명의 스승이 한두 명의 제자를 가르치는 ‘도제 방식’에 대해 설명해 주셨어요. 스승의 말을 듣고 감내하는 것이 되지 않을 경우 극단을 나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있다고 해요. 스승을 바꾸는 건 ‘배신행위’로 여겨지고, 이런 극단 내 분위기에서는 스승으로부터의 성폭력 피해사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극단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은 거죠. 특히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 같은 경우 연극계에서 거장이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해당 감독을 마주치는 일들이 일어날 수 밖에 없고요. 또, 모든 배우는 캐스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작업을 하기 힘들다고 하셨어요. 캐스팅 권한을 가진 것이 바로 연출이고요. 이러한 권력을 가진 연출에게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운 구조가 존재하더라고요.
학교에 대해서는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WeTee)의 위원장이신 양지혜님께서 이야기해 주셨어요. 학교라는 공간에서 청소년은 또래 학생들, 그리고 교사들과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죠. 학교는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 공간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친밀한 공간체’이기 때문에 더욱 강한 통제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학생의 나이가 어리고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교사가 학생을 통제를 할 수 있는 권력관계가 존재하는거죠. 교사-학생이라는 권력 구조가 존재함과 동시에 그를 뛰어넘는 성별 권력 구조도 존재한다고 하셨어요. 그 예로 ‘페미니스트 교사 테러 사건’이 있고요. 또, 성폭력이 ‘또래 문화’가 되어있다고 하셨는데, 학내 성폭력을 성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여흐물)
동덕여대 H교수 사건의 경우에는 대학이라는 공간이 제가 지금 속한 사회여서 그런지 더 공감이 됐어요. H교수 사건 뿐만 아니라 언론이나 교내의 관심을 받는 사건들의 경우, 가해자를 특수하게 악한 사람으로 만들면서 권력구조 자체에 대한 논의는 공론화장에서 멀어진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근본적인 위력 상황과 권력의 문화를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저질렀던 교수의 수업을 피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셨는데요. 문제의 교수가 전공 필수 과목을 진행하는 경우에는 해당 과목을 수강해야만 졸업할 수 있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신입생이나 타과생인 경우에 학기 초에는 모르고 있다가 학기말이 되어서야 교수의 성희롱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강의를 수강하고 있는 학생들은 학점을 쥐고 있는 교수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결국 궁극적으로 이런 권력 구조가 해소되려면 성폭력을 더욱 예민하게 인식하고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체육계의 대해서는 새로운 사실을 많이 배웠어요. 역사적으로 국위선양만을 강조하는 체육 정책이 계속되어 왔고 그로 인해 체육계의 구조도 경기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모든 것이 맞춰져 있다고 합니다. 경기실적만으로 입시가 결정되고 출석일수의 3분의 2만 채워도 졸업이 가능합니다. 운동만 해도 성공할 수 있다 보니 반대로 성공하려면 운동만 해야 되는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같이 합숙하고 운동하는 지도자와 동료 외에는 다른 관계가 형성되지 않다보니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그루밍이 이루어집니다. 함은주님은 이러한 관계를 ‘유사가족’이라고 표현하셨는데요. 지도자가 선수들에게 부모와 같은 존재가 되고 또 경기 실적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 보니 선수들과 선수 부모들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선수들에게 몰성정체성을 요구하고 ‘여자’가 아닌 ‘선수’라고 지칭하며 신체 접촉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선수를 오히려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2. 영역 내부의 '특성'이 피해자의 문제제기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
진)
체육계 같은 경우 앞서 말한 ‘유사 가족’의 관계에서 선수들은 지도자로부터 폭력에 예민하기 힘들게 교육된다고 해요. 선수들이 지도자에 의한 신체 접촉에 민감하게 반응 할 경우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것으로 믿게 만들기 때문이죠. 훈련의 한 형태라며 예민하게 반응하는 선수에게 ‘여자인 티 내지마’라고 하는 등 비난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 있어도 쉽게 문제를 제기하기 힘든 거에요. 또 스포츠계에서도 극단계에서처럼 ‘도제 방식’이 있다고 하셨어요. 스포츠계에서 선수들은 ‘(지도자의 이름) ~새끼’로 불리기도 하고 본인의 지도자의 말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고 해요. 이러한 상하 구조에서 지도자에게 문제제기를 하기란 매우 힘들죠.
동덕여대 H교수 사건 같은 경우, 학교에서 H교수에 징계처벌을 내리는 것에 매우 소극적인 것,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한 학교차원의 노력이 없는 것이 매우 문제적이라고도 말하셨어요. 또 피해자의 고발 이후에 재판이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H교수는 개인전을 열었다고 해요. 마치 무고로 고생하고 고난을 겪은 예술가인 것처럼 새로이 활동을 하는거죠. 동료인 평론가들은 미투 후 ‘새로운 예술의 시작’이라는 프레임으로 평론을 써주고요. 여기서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여흐물)
문화계에서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 영역에서 일을 하지 않겠다는 각오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워낙 폐쇄적이고 작아서 언제든지 가해자를 마주칠 수 있기 때문인데요. 가해자가 처벌을 받고 돌아와서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다시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또 피해자가 배우인 경우, 직업 특성상 한번 피해자로 인식되면 대중에게 박힌 이미지 때문에 맡을 수 있는 역할이 한정된다고 합니다. 주변인들도 피해자가 문제제기 하는 것을 만류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연극 같은 문화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대부분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진행되는데 피해자의 문제제기로 더 이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을 우려해서라고 합니다.
스쿨미투의 경우 피해자가 익명으로 온라인을 통해 성폭력을 공론화 하는 방식을 택하는 주요 이유로 공식적인 신고 체계가 피해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현실을 들었습니다. 위클래스같은 공식절차에 따라 신고하더라도 경찰 수사 과정에서 피해사실을 묵인하거나 피해자를 설득하는 경우도 많고, 정부 홈페이지에는 피해자가 신고를 할 때 실명 인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학교에 문제제기를 하면 학교는 학생이 아닌 부모와 얘기하고 입시 등의 이유를 들어 사건을 무마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습니다. 사건해결 과정으로 넘어가더라도 교육청이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징계 내용을 밝히지 않아 고발자나 학생이 가해자가 어떤 징계를 받았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식적인 절차에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양지혜 위원장님이 모범적인 사례로 인천교육청의 조사절차를 설명해주셨는데요. 인천에서는 교육청 직원이 학생 한 명한 명과 1대1 면담을 통해 성희롱 성폭력 상황을 점검하는 절차를 거쳤다고 합니다. 이때 비밀 보장을 약속하고 이후의 징계절차를 설명해주면서 학생과의 신뢰를 구축했다고 합니다.
3. 이러한 문제들에 해결방법은 없는 걸까?
진)
문화연대 집행위원 함은주님께서는 성폭력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었을 때 피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고 하세요. 성폭력 피해를 입었어도 계속 운동을 할 수 있어야 하고요. 피해자들로부터 문제 제기가 있었을 때는 가해자가 적법한 절차를 통해서 처벌을 받는 등 정당하게 해결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체육계 내 기존의 성폭력 신고 시스템에는 그 실효성에 문제가 있으니, 보다 강력한 피해자 보호와 지원을 위해서는 독립적인 스포츠인권기구의 신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셨어요. 또, 선수들이 오직 스포츠만을 하는 것이 아닌, 다른 교육을 받고 이를 통해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하셨고요.
학교 같은 경우, 양지혜님께서는 피해학생들이 고발을 하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고려를 한 시스템이 구축 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에 대해 말하시면서 고발자가 용기 내는 것이 아니라 학교, 교육부, 정부가 물어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학생인권법 제정에 관련해서도 이야기 해 주셨어요. 그리고 성평등 교육에 대해 언급하시며 주입식 교육이 아닌 학생들이 고찰하는 형태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하셨어요.
여)
문화계에서는 최근 CTS, Chicago Theatre Standard,를 우리나라 연극계에 맞게 적용한 KTS, Korea Theatre Standard,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해요. 예술 활동이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에서 예술가 개인의 도덕성에만 기대어서는 성폭력을 제대로 예방할 수 없기 때문에 애초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극장 안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연극 연습 중에 잘 풀리지 않는 장면의 경우 즉흥을 통해 해결하기도 하는데 배우는 연출이 만족할 때까지 계속해서 무대에서 즉흥 연기를 해야 합니다. 이때 무조건적으로 배우를 상황에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연출이 확실한 플랜을 가지고 배우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권력구조를 형해화 시키는 규칙들을 정리하고 제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더해 각 단체에서 성폭력 예방 소위원회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여성작업자가 많아져야 한다는 언급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동덕여대의 경우, 일단 학교 규정 개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좋은 규정이 있음에도 피해자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문제도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개정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규정들이 제대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또한 피해자가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당했을 때 학교가 나서서 피해자 보호를 할 수 있도록 절차를 도입하고, 기존의 성희롱 예방 교육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이 나왔으므로 교육 과정을 개선해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4. 서로 알고 연결된 우리들, 이렇게 연대합시다
진)
함은주님께서 성폭력 피해 시 주변인들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 주신 것이 기억에 남아요. 동료가 피해를 입었을 경우 주변인들이 목소리를 내고 가해자의 행동을 지적 할 수 있어야, 가해자를 말릴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외면하거나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방관하거나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와 지지가 필요하다는 중요한 말씀이었어요.
여흐물)
문화계, 체육계, 대학교, 학교 모두 특정 공간 혹은 특정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특히 문화계나 체육계의 경우 그 곳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치부하고 분야 ‘특수성’에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많습니다. 함은주님도 ‘특수한 분야’라고 하면 사람들이 남의 일처럼 여길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오늘 나눈 여러 얘기들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사례의 유형이 다를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형태만 다를 뿐 성폭력은 사회 전반에 팽배한 젠더 권력 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분야의 특수성에 매몰되어서 근본적인 원인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사회와 문화, 그리고 페미니즘을 다층적인 시각에서 봐야겠다고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리마인드 시킬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