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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화운동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 대안적인 관계, 일상, 실천을 만들어가는 성문화운동을 소개합니다.
[보통의연대] 024. 피해자의 편을 들어 싸웠지만…… 나중에는 후회됐다는 햇님의 인터뷰
  • 2020-01-30
  • 1710

[보통의 연대] 함께 할 준비되셨나요?


▶ [보통의 연대]란?


성폭력을 '피해자'나 '가해자' 개인, 혹은 '여성'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고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캠페인이에요. 모든 사람은 성폭력 주변인이 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사람들이 성폭력에 대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터뷰하고자 해요. 성폭력이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여러분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세요.


▶ 성폭력이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동의 없이 성적으로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언어적·정신적 폭력을 뜻합니다. 동의 없는 성적 행위로 강간, 강제추행뿐 아니라 시각적·언어적·비언어적 성희롱, 스토킹, 피해자의 거부에 대한 불이익 조치, 불법 촬영, 비동의유포,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적 괴롭힘 등이 포함됩니다.



※ 성폭력 주변인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윤문 및 편집 외에는 인터뷰 참여자의 말을 충실하게 실었습니다. 저마다의 관점과 논점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인터뷰 취지에 맞게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인터뷰 참여자에 대한 인신공격 등이 있을 경우 수정 또는 삭제 요청드리거나 관리자가 삭제할 수 있음을 안내드리며, 반성폭력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용기 있게 경험을 나눠주신 인터뷰 참여자 분들께 비난과 질타보다는 지지와 격려를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보통의연대] 024. 피해자의 편을 들어 싸웠지만…… 나중에는 후회됐다는 햇님의 인터뷰


햇님이고요. 현재 일하면서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어요.


Q.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나요?


성폭력 주변인이라는 정의에 대해서 확실하게는 몰랐는데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성폭력을 되게 생소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내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또 나에게도 언제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Q. 스스로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생각하나요?


네. 사실 그걸 항상 염두에 두지는 않아요. 잊고 살다가 주변 사람들이 이런 경험이 있었다고 얘기하면 갑자기 문득 체감되는 거죠. 아무래도 제가 여성이다 보니까 그런 걸 계속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고요.


Q. 본인의 삶과 성폭력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 것 같나요?


0부터 10까지 있다고 하면, 그래도 7 정도에는 속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건 큰 사건은 아니지만, 최근에 들은 얘기인데요. 친구가 같이 일하는 사람의 행동 때문에 굉장히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하는데?’라고 물어봤더니, 점심시간에 다른 사람들이 점심 다 먹게 만든 다음에 둘이 먹으려고 한다든지, 대놓고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는데도 꽃다발을 사다 준다든지. 굉장히 힘들고 불쾌한데 상사이다 보니까 일하는 동안에는 뭐라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이런 일도 하나의 성폭력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성폭력은 어떻게 보면 강자가 약자한테 하는 것이에요. 그 강자가 남자-여자가 아니라 상사-부하직원일 수도 있고. 나보다 강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일도 다 (성폭력에) 속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진 출처 : 한국여성민우회


Q. 성폭력과 관련된 언론 보도를 보거나 들은 경험이 있나요?


미투 운동이 굉장히 강하게 일어났었잖아요. 제가 연기를 전공했는데, (연극계와 영화계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 있었단 말이에요. 그 주제로 엄마와 엄마의 지인들과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어느 정도 피해자도 그럴 만한 행동을 했다’라는 식으로 분위기가 흘러가는 거예요. 저는 되게 충격적이었어요. 제가 그 상황에 있지는 않았지만, 예를 들어 제가 배우고 어떤 감독의 작품에 나오고 싶다면, 어쨌든 강자와 약자잖아요. ‘싫어요’라고 얘기할 수 있는 약자가 얼마나 될까 생각이 들었거든요. 피해자와 같은 여성이고, 다들 엄마뻘이고 딸이 있으신데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나는 심각하게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구나’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Q. 혹시 연기 전공하면서 성폭력과 관련된 소문이나 분위기를 미리 감지한 적은 없었어요?


굉장히 많고, 굉장히 빈번하죠. 미투 운동이 일어났지만 지금도 많아요. 영상 쪽은 캐스팅 디렉터라고 해서, 예를 들어 광고를 찍는다면 광고주에게 프로필을 넘기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이 어떻게 보면 권력자라고 할 수 있겠죠. 그분들이 프로필을 걸러내다 보니까, 만나면 잘 보여야 하고, 프로필 넘기면서 ‘잘 얘기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런데 그분들 중에는 (안 그러는 사람도 있지만) 대놓고 술 먹는데 나오라고 하거나, 술 따르라고 하거나, ‘나랑 같이 있을래?’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어요. 제가 당해본 적도 있고, 제 주변 사람들도 많이 당해봤어요. 감독이 그러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일은 항상 일어나죠.


예를 들면 술자리에서 나를 캐스팅한 사람이 성적인 발언을 하면 ‘뭐하시는 거예요, 기분 나빠요, 하지 마세요’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고요. 그렇게 얘기하면 당연히 작품은 못 하겠죠. 올바르게 살 수는 있는데, 그 길을 선택하면 내 실력이 정말 좋아도 돌아갈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죠. 꼭 성관계에 응하지 않더라도 ‘죄송해요, 제가 오늘은 뭐 어쩌고저쩌고해야 해서요’ 이런 식으로 웃으면서 받아쳐야 하는 상황인 거잖아요. 거절하더라도 웃으면서, 기분 나빠도 아닌 척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까. 이런 상황에 항상 노출되고 (피해를) 당하는 입장인 거죠.


사실 미투운동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우리 사이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오갔어요. ‘언젠가는 터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미투운동이 터진 거죠. ‘아, 드디어 터졌구나’ 그런데 제 주변 연기하는 사람들은 다 하는 소리가 ‘소용없을걸?’이라는 반응이었어요. ‘한철 지나가면 그렇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사실 터지기 전이랑 아예 똑같은 건 아니죠. 그래도 문화가 바뀌려면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진 출처 : 동아일보


Q. 미투운동이 본인에게도 영향을 주었나요?


미투운동 관련해서 댓글을 적었어요. ‘힘내세요’ 이런 식으로. (미투운동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봤죠. 지나가다 서명운동하는 거 보면 꼭 참여했고요. 그런데 약간 한철의 이슈였던 것 같기도 해요. 지금은 아무도 미투운동에 관해서 얘기를 안 하기도 하고, 이어져 간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요즘에 미투운동 얘기 많이 들어보셨어요? 저는 못 들어봤거든요.


저는 이제는 연기를 안 하려고 마음먹었어요. 저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제 주변 사람들도 그런 일이 있었고, 그런 소리를 항상 듣고 경험하고 사니까 좀 지치기도 했어요. 어느 순간 이 길은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노력을 진짜 많이 해도 내가 정말 하찮게 느껴질 때가 많았거든요. 뭔가 희망이 없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연기를 계속하려면 (성폭력이나 성적 대상화를) 당연히 감내해야 하고, 그게 싫으면 그만두거나 많이 돌아가야 하니까. 물론 그러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그냥 다 싫고 어느 순간 진력이 난 거죠. 그러다 보니까 저는 (미투운동이) 제 진로에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안 좋은 얘기만 해서 그런데, 연기를 그만두는 것에 후회도 있어요. 그래서 연기는 그만둬도 이쪽 분야로 일을 하고 싶어요.


2018년 영화산업계 성희롱·성추행·성폭력 실태 조사 결과 중. 사진 출처 : 맥스무비


Q. 내가 아는 사람이 성폭력을 겪었거나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경험이 있나요?


생각보다 굉장히 많아요. 어릴 때는 껄끄러워서 잘 이야기를 안 했는데, 크고 나서 친한 사람들끼리는 이야기하게 되잖아요. 생각보다 되게 많더라고요. 거의 반은 한 번씩 다 경험한 것 같아요. 큰 경험이든 작은 경험이든. 아는 삼촌(친삼촌은 아닌데 삼촌이라고 부르는 사람들)한테 당했다는 이야기를 특히 많이 들었고, 사촌 오빠 아니면 아는 오빠……들어보면 친밀한 관계가 많았어요. 낯선 사람들한테 당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못 들어봤고요.


사실 제 이야기는 아니니까 귀담아듣지 않거나, 부정적인 이야기다 보니까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흘려들었던 부분도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구체적인 사건보다는 그 친구가 피해 당시에 느꼈던 감정이나 충격적인 마음이었어요.


한 친구는 (성폭력 피해를 겪었을 때) 어떻게든 뿌리치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상상 그 이상으로 가해자의 힘이 너무 셌다는 거예요. 자기도 두 배 넘는 힘을 쓴 것 같은데, 가해자는 백 배 넘는 힘으로 자기를 제압했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저는 굉장히 충격이었어요. 저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정신만 차리면 어떻게든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보통 남자의 급소를 차라고 얘기하잖아요. 충분히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친구 이야기를 들으니까 정말 빼도 박도 못하고 당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굉장히 무섭더라고요.


저는 그런 상황을 맞닥뜨려보지 않았기 때문에 ‘전화를 하거나 뛰면 되겠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나갈 수 있겠지’, ‘나는 안 당하겠지’, ‘나는 예외적이겠지’ 이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실 ‘급소를 차라’는 것밖에 대처방법을 배운 기억도 안 나요. 성교육을 받으면서 누군가 나에게 강제로 하려고 하면 ‘안 돼요!’라고 소리 지르라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그거 들으면서 저는 코웃음 쳤거든요. 그게 말이 되나.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발간한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매뉴얼 <난다 뛴다 다른 몸>과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이 옮긴 <미녀, 야수에 맞서다> 표지.


Q. 성폭력 사건에 해결하는 과정에 어떤 역할로든 직접 참여해본 경험이 있나요?


참여했다고 하기는 어려운데, 제 동기가 선배랑 술을 먹다가 성폭력을 당했대요. 동기한테 그 얘기를 듣고 순간 제가 너무 열이 받는 거예요. ‘야, 미친놈아’ 소리 지르면서 그 선배랑 싸웠어요. 사실 저는 그 동기랑 별로 친하지 않았거든요. 심지어 그 선배랑 좀 친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 상황이 오니까 같은 여자가 이런 일을 당했다는 생각에 싸웠던 기억이 나요. 그 선배는 ‘너는 확실하게 내 입장은 들어보지도 않고 그러냐’며 자기 잘못을 인정도 안 하고, 너무 떳떳하게 생각하고, 미안하다고 사과도 안 하고, 오히려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게 너무 열이 받더라고요.


결국 그 사건은 법정까지 갔거든요. 자세히는 못 들었는데, 그 선배가 졌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얼마 전에 우연히 그 선배를 봤는데, 되게 공격적인 눈으로 ‘야, 잘 지냈냐’ 어쩌고 하더라고요. 같은 학교 사람이다 보니까 재판 후로 그 선배가 안 좋아졌다는 소문은 들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보니까 사람 분위기도 느낌도 달라지고 피폐해져 있는 거예요.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굉장히 오묘한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내가 그 둘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공개적으로 싸우면서 학교에 소문도 쫙 퍼진 거잖아요. 내가 너무 한쪽 편으로 치우쳐서 생각했나 싶기도 했고요. 명확하게 증거물도 있었고 재판도 졌으니까 (성폭력을 한 것은) 사실이긴 사실인 것 같은데.


Q.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그때 느꼈던 어려움은 뭐였나요?


이건 되게 부끄러운 얘기인데요. 제가 그 순간에는 그 선배랑 싸웠고, 어쨌든 그 선배가 잘못하고 그 동기가 피해자인 것은 확실하지만, 계속 그 동기한테 전화가 오고 학교에 나랑 그 선배랑 싸웠다는 소문이 도니까 뭔가 후회가 되더라고요. 사람들은 계속 그 일에 대해서 물어보고, 어떤 선배들은 ‘쟤가 선배한테 싸가지없게 했다, 성깔 더러운 줄 알았다’라고 이야기하고……그 선배 기수랑 저희 기수랑 사이가 확 틀어졌거든요. 그게 저 때문인 것처럼 소문도 돌고 그랬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갈라놓은 듯한 느낌도 들고, 나중에 어떤 선배가 작업할 때 ‘걔 어때?’라고 저를 언급하면 ‘걔 괜찮은데, 성깔이 너무 더럽더라’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거거든요. ‘내가 너무 나댔나, 내가 너무 튀는 짓을 했나, 그냥 가만히 있을걸’ 부끄럽지만, 나중에는 후회했던 것 같아요.


제가 당시에 서운하고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선배한테 당한 피해자가 한두 명도 아니고 알고 봤더니 여러 명이었더라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확실히 이 사건이 심각하고 그 선배가 뭔가 했다는 건 알고 있는데 다들 나서기는 싫어하는 분위기였어요. 같이 분개해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어떻게 내 옆사람 일인데 남 일처럼 나 몰라라 하지?’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길거리를 가다가 누가 사람을 때리면 다 방관한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체감되더라니까요. 어쨌든 따지고 들어가면 피곤한 일이고 본인 이미지도 걱정이 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겠죠. 저도 그런 생각이 안 들었던 건 아니고,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주변 사람들한테 굉장히 서운하더라고요.


사진 출처 : 한국여성민우회


Q. 혹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본인이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 것 같나요?


저는 처음에는 대화로 시작하다가 감정적으로 끝난 경우이다 보니까 좀 영리하게 대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선 그 상황에서 최대한 다섯 번이고 열 번이고 생각해보고 발언해야겠다, 녹음해야겠다, 최대한 대화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어요.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강한 대화로. 흥분하지 않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게 더 무섭고 정확한 대처방법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저는 표면적으로는 피해자의 편을 들어줬다고 볼 수 있지만, 피해자도 못 지켜준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감정적으로 대처했고, 결과적으로 그걸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나왔잖아요. 내가 올바른 대처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누가 보기에는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누가 보기에는 ‘뭘 저렇게까지’라고 생각해서 뒷말을 했던 것 아니에요.


제가 그 순간에 가해자랑 싸우는 게 아니라, 힘들어하는 피해자의 동의를 구하고, ‘내가 도와줄 테니까 먼저 대화로 얘기해볼까, 괜찮겠어?’라고 하고 차분하게 카페 같은 데서 얘기를 해야 하지 않았을까. 피해자의 감정이 수그러질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주는 게 필요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피해자가 막 울고불고하고 있으니까 나한테 도와달라는 신호구나 생각해서 바로 행동으로 나갔어요. 이게 안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지나고 나니까 두렵더라고요.


Q. 본인에게도 충분히 두렵고 힘든 상황일 수 있는데, 피해자와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용감하고 잘한 일 같아요.


뭔가 뿌듯하다. 처음으로 이런 말을 들어보는 것 같아요. 그때는 그냥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애인도 ‘너 많이 힘들었겠다’ 이 정도지, ‘너 정말 잘했어’ 이런 얘기는 사실 못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자괴감이 들었나 봐요.


사진 출처 : 국민일보


Q.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성폭력 주변인에게 필요한 태도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관련 있는 대답인지는 모르겠는데, ‘쟤 남자한테 왜 저렇게 꼬리 쳐’ 이런 얘기를 하잖아요. ‘저렇게 잘 보여서 뭐 하려고 한다’ 이런 말 하면서 막 욕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강자한테 잘 보이려는 모습이) 하나도 미워 보이지 않아요. 얼마나 간절하면 그럴까, 얼마나 자기를 버려서라도 저것을 얻고 싶으면 그럴까. 이제는 좀 보이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이제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죠. 그 사람의 사건이나 일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함부로 욕하거나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쉽게 사람을 평가하거나 험담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여성이다 보니까 여성과 관련된 얘기를 많이 했는데, 제 주변에는 남자 피해자들도 있어요. 분명히 남성 피해자도 있는데 정말 들어본 적이 별로 없거든요. 그리고 남자들이랑 여자들이랑 성폭력 당했다는 얘기를 할 때 분위기가 되게 달라요. 여자들은 ‘어떡해’하면서 공감을 해주거든요. 그런데 보통 남자들은 웃고 넘어가는 분위기인 것 같아요. 성폭력이 여자에게 일어나면 되게 심각한 일인데, 남자에게 일어나면 우스갯소리가 되는 문화가 안타깝더라고요. 어쨌든 이 피해자에게도 굉장히 충격이고 상처인데…… 피해자를 여성으로만 국한해서 생각하지 말고, 남성이 성폭력을 겪었을 때도 우스갯소리로 넘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사람이 성폭력을 당하든 긍정적인 일은 아니니까 무게감을 가지고 생각해야겠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아까 얘기하다가 막혔던 게 ‘성폭력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였는데 여성단체에서 고민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성폭력 주변인이라는 주제로 얘기하다 보니까 더 실감이 났거든요. 이런 캠페인도 더 많이 홍보도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고요.


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일대일로 깊게, 심도 있게 얘기를 하니까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요. 솔직히 평소에는 내 삶을 어떻게 벌어 먹고살까만 고민하고 내 앞길만 생각하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사실 많이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잠깐 멈춰서 생각을 해보고 깊게 인터뷰를 해보니까 굉장히 긍정적인 생각이 많이 들었고 일대다보다 일대일이 훨씬 효과적이었던 것 같아요. 내 주변 사람들이나 내 경험들이 생각나면서 다시 한번 짚어보게 돼서 주변인이라는 말이 더 와닿는 것 같아요.


(사진) Q. 성폭력 주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을 “먼저” 바꿔야 합니다.




[보통의 연대] 릴레이 인터뷰는 2019년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이 인터뷰 진행자로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 은희님이 진행하였고,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앎이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