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화운동
ONE BILLION RISING 캠페인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끝내기 위해 매년 2월 14일 전후로 춤을 추는 국제 공동행동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작년에 <싸우는 여자가 춤춘다> 춤 퍼포먼스로 참여했었죠. (뮤직비디오 보러 가기: https://youtu.be/PmUmrpJFdeo)
올해는 동아시아 에코토피아와 공동주최로 <싸우는 여자가 춤춘다, 공동 판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춤을 추는 여성들을 판화로 표현하는 워크숍이었어요. 동아시아 에코토피아는 올해 전국각지에서 13번 워크숍을 진행했고,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진행한 워크숍은 5번째 순서였습니다. 동아시아 에코토피아는 워크숍을 통해 모인 약 백여 명의 춤추는 여성 판화로 현수막을 제작하여 3.8 세계여성의날 맞이 여성대회에서 행진을 할 예정이라고 해요.
2020년 ONE BILLION RISING 캠페인 선언문 우리는 우익 민족주의, 백인 우월주의, 파시즘, 독재정치, 이민자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 여성혐오, 페미사이드(여성살해), 동성애혐오, 트랜스혐오, 기업의 탐욕, 기후 파괴가 일어나는 한 가운데 살고 있다. 우리는 파시스트, 강간범, 기후 파괴자, 약탈자가 만든 조건 안에서 그들을 이길 수 없다. 우리는 결코 그들처럼 잔인하고, 불쾌하고, 탐욕스럽고, 살기등등할 수 없다. 우리는 냉소주의, 증오, 분열, 파괴가 우리를 바꿔버리거나 침몰시키도록 놔둘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다수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행동, 예술, 연결, 상상력과 사랑을 통해 세상을 뒤흔드는 것이다. 세상을 뒤흔들자 그러니까 우리는 연기하고, 노래하고, 시를 쓰고, 춤을 춘다. 그러니까 우리는 불의에 직면하고 옳은 길을 걷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상한 불평등을 일으키는 사회구조를 말하고 더 많은 것을 준다. 그러니까 우리는 국가가 장벽, 구치소, 난민수용소를 건설할 때 마음속의 국경을 연다. 그러니까 우리는 국가가 우리 사이에 점점 더 많은 차이와 분열을 만들어낼 때, 우리의 혁명이 모든 사람을 포함할 수 있도록 손을 내민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유대가 언젠가 우리의 날개가 될 수 있도록 신뢰와 연대를 발전시킨다. 그러니까 우리는 (기존의) 자유와 힘을 뒤흔들어 새로운 힘이 새로운 미래를 가져오도록 몸을 움직인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어머니 지구와 분리되지 않음을 인지하고, 지구를 지켜보고, 소중히 여기고, 보살피고, 존중하고, 보호한다. 지구의 삶이 곧 우리의 삶이다. 우리는 함께 혁명을 일으킨다. 모든 여성(시스젠더, 트랜스젠더, 그리고 유동적인 정체성을 가진 모든 여성)을 성적, 신체적, 인종적, 경제적, 정치적, 사회문화적, 이데올로기 또는 기후 위기로 인한 폭력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하여. 강간, 구타, 친족 성폭력, 성적 괴롭힘, 여성 성기 훼손, 성 노예제와 인신매매, 아동 결혼, 여성살해, 성·젠더·재생산에 대한 억압, LGBTQIA+ 커뮤니티에 대한 폭력을 끝내기 위하여. 자본주의, 식민지주의, 인종 차별주의, 제국주의, 전쟁, 기후 재앙을 끝내기 위하여. 2020년에 우리와 함께 하자! 일어나라 저항하라 연대하라 세상을 뒤흔들자 혁명을 일으키자 원문보기 |
아래는 워크숍 참여자 단단님의 후기입니다.
후기_단단_0220.2020
가끔 페미니즘의 수혜를 받아 각성한 탓에 이 세상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기를 기대하면서도 정작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아 서글퍼집니다. 힘을 얹어 한 발 내딛기가 참 힘들다 싶은데 쏟아지는 말들은 더욱 어지럽고. 중심잡기 힘들 때 눈에 보이는 하나의 이미지는 수많은 말들을 깔끔하게 수렴시켜줄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2월 15일 한국성폭력 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는 <싸우는 여자가 춤춘다, 공동 판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습니다. 시작 시간 30분 전부터 속속 모여드는 사람들은 저마다 수줍게 처음 해보는 일에 자신이 잘 할 수 있을 지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숨길 수 없는 자신이 그려낼 이미지에 대한 상상으로 상기된 모습도 보였습니다.
워크숍은 ‘동아시아 에코토피아’에서 진행을 맡아주셨습니다. 판화 작업을 모아 ‘3.8 세계 여성의 날’ 선보일 예정이기에 이미 여러 지역과 단체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며 판화작품을 모으고 있었고, SNS를 통해 공동 판화 프로젝트 소식을 접하기도 쉬웠습니다. 시간과 장소를 재며 참가할 기회를 엿보던 중에 상담소에서 기회를 마련해주니 덥석 내 손을 잡아 끈 것 같아 열일 마다하고 참가했습니다.
손이 빠르지 못한 탓에 진행 시간을 훌쩍 넘어서도 판화 작업 마무리를 못할까 걱정되어 미리 이미지를 구상해서 참가했습니다. 그럼에도 손재주 좋은 분들은 얼마나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선들을 만들어 내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학교 졸업한 이후로는 잡아 본 적 없는 조각칼 다루는 법, 종이에 미리 스케치한 이미지를 먹지를 이용해 목판에 전사하는 방법, 목판에 그려진 이미지와는 반대로 찍힌 이미지. 알았었는데도 새롭게 각성하는 것이, 꼭 페미니즘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환호했지 뭡니까.
목판에 골고루 바른 잉크가 종이에도 빈틈 없이 찍히게 하려고 모르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발구르기를 하는 모습은 공동 판화 프로젝트의 가장 핵심적인 퍼포먼스였습니다. 저마다 다른 이미지를 생각하며 모였음에도 우리는 다르지 않았고, 함께 일어나 춤추듯 발구르는 그 순간이 곧 도래할 우리들의 시간임을 말해주었으니까요.
부지런히 그리고 파고, 찍고 말리고, 발을 동동거리면서 힐끗 남의 작품들을 엿보니 또 어찌나 제각각인지. 같은 것도 비슷한 것도 없이 그냥 우리가 다르듯 작품도 달랐고, 그래서 잘 하고 못하고 따위는 정말 상관 없구나 하는 생각에 내심 기쁘기도 했습니다.
모난 돌멩이 같은 저마다의 상상과 앞으로의 바람이 수다스럽고 요란한 손짓으로 새겨졌음에도 한데 모으니 떡하고 아귀 맞는 것은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우리의 운동 방식이 제각각이고, 각자의 고통이 크게 느껴지다 보니 본의 아니게 손잡아줘야 할 사람들을 배척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안타깝고 좌절하지만 여러 판화작품들이 한데 모인 것을 보며 서로의 상처가 깊지 않기를, 그렇더라도 서로가 나란히 서있게 되길 바라게 됩니다.
<이 후기는 워크숍 참여자 단단님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