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화운동
[SNS 발언대 코로나19 확산으로 집회 금지!? 상담소 활동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많은 일상이 위축되는 요즘입니다. 사회 곳곳의 활동이 축소되는 속도로 상담소의 활동도 축소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직후 확진자 수가 많지 않았을 시기에는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곳곳에 비치하는 등 예방 조치들을 취하면서 1월 말 정기 총회, 2월 포럼 ‘책을 뚫고 나온 페미니스트’와 동아시아 에코토피아와 공동 진행한 판화 워크숍 ‘싸우는 여자가 춤춘다’ 등 계획되어 있는 행사들을 진행하였습니다. 지나치게 겁먹지 않고 우리의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코로나19 확산이 가속화되었고 서울시에서 광화문 광장 집회를 금지한다는 소식과 함께 매년 지속해오던 3월 8일 세계여성의날 기념 한국여성대회가 잠정적으로 연기되었습니다. 상담소 활동가들이 참가를 준비하고 있던 강좌, 토론회, 학회도 연기되기 시작했어요. 매일 확진자 수가 백명 단위로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상담소도 3월 2일부터는 일주일간 ‘최소 인력만 출근’, ‘전화 상담은 지속’, ‘면접 상담은 3월 16일 이후 재개’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재택근무를 시행중입니다.
사회에 긴급한 이슈가 생겼을 때 현장으로 나가 감정과 생각을 나누고 언어를 확장하여 사회적 논의로 끌어내는 것이 우리가 움직이는 방향과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간 감염이 되는 바이러스’ 앞에서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모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실무자의 입장에서 일정이 연기되어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기기도 했지만 애써서 고대하고 공들이던 일이 미루어져 속상하기도 하고 여러 일정이 이렇게 취소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걱정도 됩니다. 역동적으로 이어지던 우리의 활동이 잠시 멈춘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운동의 속도와 방향이 달라지는 동시에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들에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코로나19의 증상으로 알려진 기침, 발열 등이 경미하게 있거나 확진자와 접촉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할 일로 알려진 것은 ‘자가격리’인데, 이 문제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간단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상담소에는 부설 기관으로 피해자보호시설인 ‘열림터’가 있습니다. 열림터는 긴급하게 주거지로부터 벗어난 성폭력 피해자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이 공간은 생존자가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집’인 동시에 공동으로 생활하며 책임, 역할, 자원, 규칙 등이 시스템화 되어 있는 사회적인 공간입니다. 쉼터에서 생활하는 생존자들은 이곳에서 사건 해결을 모색하고 치유의 과정을 가지면서 자립을 준비합니다. 열림터 활동가들은 이 과정을 지원하면서 생활인들과 긴밀하게 관계맺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약속을 취소하는 것처럼 활동가와 생활인의 관계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기란 불가능한 일입니다. 쉼터에서 생활하지 않는 사람이 코로나19 증상이 있거나 확진자와 접촉했다면 자신만의 개인 공간에 머물면 됩니다. 하지만 개별 공간이 부족한 열림터에서는 자가격리는 쉽지 않은 조치입니다. 피해자 지원 현장에서 보았을 때 ‘자가격리’는 개인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집이 있고 일정 기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대응법인 것이지요.
상담소는 현재 알려진 예방과 대응 방법을 열림터의 맥락에 맞게 시행하면서 반성폭력운동이 만들어온 돌봄과 의존의 관계안에서 모두 안전할 수 있도록 이 기간을 잘 보내고자 합니다. 장애인, 노인 시설에 대한 ‘코호트 격리’가 언급되는 가운데 이러한 이야기가 멀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장애를 가졌거나 노인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지역사회로부터 단절시켜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최선을 다해 예방하고 대응하는 방식의 복지는 불가능한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북적북적하던 상담소 사무실이 이번주는 조용합니다. 상담소 동료들도 몇몇은 일주일 후에나 얼굴을 마주할 것입니다. 3.8 여성의 날 광장에 모였다면 반갑게 인사했을 회원들, 페미니스트 동료들과 당분간은 만나지 못하겠지요. 4월 15일 총선에서 ‘여성 대표성 확대’, ‘강간죄 동의 여부로 개정’,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안전한 임신 중지 및 성재생산 권리 보장’, ‘성별임금격차해소’ 등의 성평등 의제를 힘있게 전달할 자리가 당장 부재하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말하기’를 멈출 수는 없겠죠. ‘말하기’를 통해 서로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 안에 담겨있는 의지와 용기가 공명할 수 있도록 계속 시끄럽게 떠듭시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재개될 여성의 날 행진에서 모아두었던 에너지를 발산합시다.
2020년 3월 2일
한국성폭력상담소
#38말하기
#38그냥보낼수는없다
#힘내라쉼터
#당신의이야기도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