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화운동
혐오와 차별에 참지 않고 대응 하는 사람, 연대하는 사람으로
지난 6월 13일부터 8월 8일까지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일상 대응 연습>이 진행되었습니다. 일상의 여/성폭력에 대응하고 성별 규범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몸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참가자 채연 님이 훈련에 대한 후기를 전합니다.
*본 훈련은 코로나19 감염 및 확산 예방을 위한 방역을 준수하며 진행되었습니다.
서울에서 1인 가구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일상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들과 위축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밤에 밖에 나가는 것을 꺼리게 되었고, 밤늦게 집에 들어올 일이 있을 때면 발걸음이 빨라지고 주위를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전부터 자기방어훈련을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상담소에서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빠르게 신청 버튼을 눌렀습니다. 6월부터 8월까지 총 8회에 걸쳐 진행된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일상 대응 연습>은 무기력했던 제 일상에 큰 활력이 되었고, 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변화시켰습니다.
훈련은 코로나로 인해 꼼꼼하게 발열 체크를 하고 마스크를 쓰는 등 안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첫 모임에서 우리는 각자 8주 간의 자기방어훈련을 통해 목표하는 바를 이야기했고, 저는 고민 끝에 “더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겠다”고 썼습니다. 자기방어훈련을 통해 제 몸을 이해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제 안의 힘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각자의 목표를 공유한 후에 훈련 동안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여러 규칙들을 정해서(예: 하루 전날 손톱 깎고 오기, 충분히 자고 밥 잘 챙겨먹기 등) 모두가 존중받고 안전한 분위기에서 8주 간 훈련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1. 내 몸에 대해 알아가기
자신의 몸을 사용해 움직이는 훈련이니만큼, 내 몸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데조로 선생님 수업에서는 매트에서 폼롤러 스트레칭을 하며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이를 통해 내 몸 어디가 어떻게 뭉쳐있고 불편한지를 파악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성주의 파쿠르를 배우면서 일상에서 하지 않는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고, 상대방과 몸을 접촉하면서 내 몸의 경계를 확장시켜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수업 초반과 수업 후반을 비교하면서 내 몸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민감하게 들여다보고 부드럽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몸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2. 도전하기
자기방어훈련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훈련이 많았고, 그래서 제게는 매 시간이 일종의 도전으로 느껴졌습니다. 데조로 선생님과 이회림 선생님의 수업에서 우리는 주거지 침입이나 길거리 괴롭힘 등 여러 상황을 가정해보며 대응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저는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섭고 불안해서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하지만 막상 실습에서 긴장한 제 몸은 빠르고 강하게 움직여서, 민첩하게 움직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말을 들으니 제가 그동안 제 몸을 과소평가해왔고, 범죄 두려움에 압도되어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실제 상황에서도 잘 대응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력하고 수동적인 피해자를 가정하는 상대의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 뿐만 아니라 강한 눈빛과 말, 당당한 포즈와 저항적 몸짓으로도 이는 가능합니다. 상대의 예상에서 벗어나는 대응의 일환으로 고함치는 연습을 했는데, ‘고함’을 쳐본 것은 제게 너무나도 낯선 경험이라 약간 긴장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다같이 크고 낮은 소리로 고함을 치니 해방감도 느껴지고, 스스로가 더 강해졌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두 선생님 모두 어떤 대응이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고, 우리는 그저 그 상황에서 최선(이라고 생각되는)의 대응을 할 뿐이고 결국 그것이 최선이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어떤 대응이든 대응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내 몸의 어디가 잡혔다고 상황이 끝난 것이 아니라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야하며, 휴대폰을 포함해서 내가 들고 있는 무엇이든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결국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두려워하거나 겁먹어서 위축되지 말고,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나 자신을 믿고 어떻게든 대응해보자, 도전해보자는 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3. 연대하기
자기방어훈련을 배우는 것은 나 자신의 방어를 위한 목적도 있지만, 이를 통해 주변 사람과 연대하고 더 많은 사람이 자기방어훈련자가 되어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하는 목적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박신영 선생님의 일상에서 참지 않기 수업은 나를 지키고 약자와 연대하는 법을 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원래 일상 속에서 불편하거나 불쾌한 경험이 있어도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상 속에서 ‘잘’ 싸우시는 분들이 항상 부러웠는데, 강의를 통해 내가 다치지 않으면서도 안 참고 말하고 싸우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언제 말하고 싸울 것인가를 판단할 때 ‘지금 눈앞에서 약자를 괴롭히’거나 ‘당장은 아니어도 그대로 두면 다른 약자가 피해볼 상황일 때인가’를 묻는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나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나를 지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연대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싸움의 목적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 다른 피해자를 막고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후회하거나 스스로를 책망하지 말라는 말씀이 많은 응원이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잘’ 싸우는 꿀팁들을 배웠고, 저도 일상 속에서 작지만 사회를 바꾸는 시도를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수업에서는 정혜선 변호사와 남성아 활동가께서 오셔서 성폭력 사건의 형사 사법 절차와 비사법적 지원체계에 대해 배웠습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순간에 잘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후 이를 신고하고 형사 사법 절차를 거쳐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유익한 강의였습니다. 특히 가해자를 형사 처벌하는 것은 나 자신의 피해 회복 뿐만 아니라 미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이런 절차를 미리 익혀두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끝으로 수료식 때 제가 수료증에 직접 써 넣은 글을 공유하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저는 8주 간의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을 통해 안/밖의 불안감과 두려움에 위축되지 않고 맞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상의 차별과 혐오에도 참지 않고 대응할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내밀고 연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글은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일상 대응 연습> 참가자 채연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편집 : 상담소 성문화운동팀 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