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화운동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 대안적인 관계, 일상, 실천을 만들어가는 성문화운동을 소개합니다.
경찰청이 배포한 <여름철 성범죄 예방 10대 요령> 유감
2008년 8월 계속되는 더위와 습한 공기보다 더 짜증나는 경찰청 지침을 생각하며 쓴 날적이
지난 7월 6일 제4회 밤길되찾기시위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던 그날 오전, 우리는 경찰청에서‘성범죄가 증가하는 여름철을 맞아’라는 지침을 내놓았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뭘까? 치안에 좀 더 신경 쓰겠다는 대책이 나왔을까?”라는 조금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들이 내놓은 '성범죄 예방 10대 요령'은 성폭력을 여성들의 옷차림과 부주의함으로 돌리고 있었다. 참으로 우연의 일치치고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일치다. 달빛시위는 가해자 혹은 가해 문화, 여성대상혐오범죄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는 메시지가 전혀 아닌 여성들의 행동권만을 제약하면서 성폭력의 원인을 은근슬쩍 여성들에게 떠넘기는 세상의 편견에 저항하는 운동이다. 이런 역사적인 날 여성들에게 들리는 #%$&* 소리라니!
상담소는 경찰청에 전화와 공문을 통해 문제제기를 했고 회원들에게 항의전화를 독려하며 그들의 논리가 얼마나 황당한지 비교해보도록 경찰청 주장과 똑같은 버전을 작성하여 아래 표의 내용을 회람했었다.
왼쪽 표에 있는 경찰청 가이드는 우리 사회에서 자주 듣던 익숙한 말들이다. 발생 원인을 피해자 행위 탓으로 돌리는 유일한 범죄인 성폭력에서는 ‘억지주장’가 상식이 되고 오히려 근본적인 해결책은 ‘적대적인 논리’로 취급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오히려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오른 편에 있는 내용이 실천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제해결의 핵심이 무엇인지, 무엇이 우리의 심경을 불편하게 하는지에 대해 통찰력 있는 이성적인 판단이 참으로 아쉽다.
-----------------------아래는 <경찰청에 보낸 의견서>----------------------------
경찰청이 배포한 <여름철 성범죄 예방 10대 요령> 유감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오랜 기간 현장에서 성폭력 문제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축적해온 여성운동단체로서, 이번에 범죄예방과 국민의 안전 보호를 가장 주요한 업무로 수행하는 경찰청에서 발표한 ‘여름철 성범죄 예방 10대 요령’을 보고 깊은 우려를 금할 길이 없다.
경찰청에서 제시한 10대 요령의 문제점은 ⑴내용 중 많은 부분이 사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근거하고 있지 않고 ⑵우리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에 대해서만은 유독 피해자에게 범죄의 책임을 전가하는 잘못된 통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⑶이런 지침은 결국 성폭력을 예방하기는 커녕 오히려 성폭력을 조장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요령의 예
① 어둡고 으슥한 밤길은 위험하니 야간 외출을 삼가라?
2006년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에 따르면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 피해가 무려 83.5%를 차지하였고, 이 통계수치는 지난 16년간 큰 변동이 없었다. ‘아는 사람’에는 친인척, 교사, 동네사람, 데이트 상대, 친구 등이 포함되며, 이들에 의한 성폭력 피해는 집, 학교, 이웃집 등 일상적인 생활공간에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어둡고 으슥한 밤길’은 실제로 성폭력 피해가 발생하는 시공간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내용은 아니다. 더욱이 이런 잘못된 통념을 반복하여 이야기 하는 것은 여성들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② 지나친 노출의상은 성범죄의 표적이다?
노출이 성범죄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없다. 오히려 그동안 진행된 성폭력가해자 연구에 의하면 성폭력은 자신의 억제된 분노 등을 자신보다 약자인 여성이나 어린이에게 표출하는 것임이 밝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노출을 성범죄 원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피해의 책임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돌리고, 가해자에게는 성충동에 의한 자연스러운 행위의 결과로 면죄부를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피해자에게 범죄의 책임을 전가하는 잘못된 통념을 그대로 반영하는 요령의 예
야간 외출을 삼가라, 노출의상을 삼가라 등의 요령은 마치 성폭력 피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전달하는 메시지 같지만, 실은 야간 외출을 하거나 노출의상을 착용한 경우 피해가 발생하면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의 피해자 비난 통념을 강화하는 메시지일 뿐이다.
성범죄가 낮에 발생했건 밤에 발생했던 성폭력이 발생한 원인은 밤이냐 낮이냐가 관건은 아니며, 어떤 의상을 입었는지도 성폭력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행동과 관련된 우연적이고 무관한 요인들을 성폭력 피해의 원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전달하는 것은, 우리사회에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는 성폭력은 ‘여성의 행실과 관련된 성적인 행동’이며 ‘성적인 행동이 발생하는 것은 여성의 책임’이라는 통념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이런 통념은 결국 성폭력이 '상대방의 권리를 침해한 범죄 행위’라는 인식을 약화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온다.
과음이 건강에도 해롭고 건강한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과음을 삼가라는 요령은 일반적으로 교훈적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는 있겠으나,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요령은 아니다. 성범죄가 과음한 상황에서 더욱 빈번히 발생하는지 여부는 명확하게 조사된 바가 없을 뿐 아니라,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 상담을 받은 경험에 의하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성폭력은 대부분 잘 아는 사람에 의해 일상적인 시공간에서 발생하며 음주여부와 특별한 관련을 갖지는 않는다. 음주와 성폭력을 관련짓는 통념은 가해자에게는 가해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술에 취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진부한 변명), 피해자에게는 피해의 빌미를 제공하였다(‘술먹은 조신하지 못한 여성’)는 논리로 피해 발생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악용되는 대표적인 통념에 지나지 않는다.
>>잘못된 지침이 미칠 영향
성폭력은 대부분 아는 사람에 의해서 계획적으로 발생하는데, 범죄자의 가해계획을 수포로 돌릴 수 있는 요령이 있다면 국민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은 경찰청의 주요한 업무일 것이다. 그러나 경찰청에서 이번에 배포한 10대 요령에는 그런 유익한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성폭력 가해자가 대부분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데 이번 요령은 모르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소수의 성폭력만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그나마도 현실적 분석에 근거하지 않은 내용들이 많아 실제로 도움이 되는 내용이 거의 없다. 게다가 그동안 유포되어온 여성과 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통념을 근간으로 하는 내용이 많아, 피해자에게는 유발론에 따른 부당한 비난을, 가해자에게는 가해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줌으로써 오히려 성폭력을 조장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우리의 요구사항
-이번에 제작한 여름철 성범죄 예방 10대 요령 지침서 배포를 즉각 중지하고, 배포되지 않은 것은 모두 폐기하여 주십시오.
-성범죄 예방 지침을 세우고자 할 때에는 이 문제에 대한 각계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서 신뢰할 수 있고 실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내용으로 마련하여 주십시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가해자가 엄중히 처벌받을 때에만 우리사회의 성폭력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이에 맞는 방식으로 성범죄 관련 대책을 수립하여 주십시오.
지난 7월 6일 제4회 밤길되찾기시위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던 그날 오전, 우리는 경찰청에서‘성범죄가 증가하는 여름철을 맞아’라는 지침을 내놓았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뭘까? 치안에 좀 더 신경 쓰겠다는 대책이 나왔을까?”라는 조금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들이 내놓은 '성범죄 예방 10대 요령'은 성폭력을 여성들의 옷차림과 부주의함으로 돌리고 있었다. 참으로 우연의 일치치고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일치다. 달빛시위는 가해자 혹은 가해 문화, 여성대상혐오범죄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는 메시지가 전혀 아닌 여성들의 행동권만을 제약하면서 성폭력의 원인을 은근슬쩍 여성들에게 떠넘기는 세상의 편견에 저항하는 운동이다. 이런 역사적인 날 여성들에게 들리는 #%$&* 소리라니!
상담소는 경찰청에 전화와 공문을 통해 문제제기를 했고 회원들에게 항의전화를 독려하며 그들의 논리가 얼마나 황당한지 비교해보도록 경찰청 주장과 똑같은 버전을 작성하여 아래 표의 내용을 회람했었다.
왼쪽 표에 있는 경찰청 가이드는 우리 사회에서 자주 듣던 익숙한 말들이다. 발생 원인을 피해자 행위 탓으로 돌리는 유일한 범죄인 성폭력에서는 ‘억지주장’가 상식이 되고 오히려 근본적인 해결책은 ‘적대적인 논리’로 취급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오히려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오른 편에 있는 내용이 실천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제해결의 핵심이 무엇인지, 무엇이 우리의 심경을 불편하게 하는지에 대해 통찰력 있는 이성적인 판단이 참으로 아쉽다.
-----------------------아래는 <경찰청에 보낸 의견서>----------------------------
경찰청이 배포한 <여름철 성범죄 예방 10대 요령> 유감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오랜 기간 현장에서 성폭력 문제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축적해온 여성운동단체로서, 이번에 범죄예방과 국민의 안전 보호를 가장 주요한 업무로 수행하는 경찰청에서 발표한 ‘여름철 성범죄 예방 10대 요령’을 보고 깊은 우려를 금할 길이 없다.
경찰청에서 제시한 10대 요령의 문제점은 ⑴내용 중 많은 부분이 사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근거하고 있지 않고 ⑵우리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에 대해서만은 유독 피해자에게 범죄의 책임을 전가하는 잘못된 통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⑶이런 지침은 결국 성폭력을 예방하기는 커녕 오히려 성폭력을 조장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요령의 예
① 어둡고 으슥한 밤길은 위험하니 야간 외출을 삼가라?
2006년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에 따르면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 피해가 무려 83.5%를 차지하였고, 이 통계수치는 지난 16년간 큰 변동이 없었다. ‘아는 사람’에는 친인척, 교사, 동네사람, 데이트 상대, 친구 등이 포함되며, 이들에 의한 성폭력 피해는 집, 학교, 이웃집 등 일상적인 생활공간에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어둡고 으슥한 밤길’은 실제로 성폭력 피해가 발생하는 시공간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내용은 아니다. 더욱이 이런 잘못된 통념을 반복하여 이야기 하는 것은 여성들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② 지나친 노출의상은 성범죄의 표적이다?
노출이 성범죄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없다. 오히려 그동안 진행된 성폭력가해자 연구에 의하면 성폭력은 자신의 억제된 분노 등을 자신보다 약자인 여성이나 어린이에게 표출하는 것임이 밝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노출을 성범죄 원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피해의 책임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돌리고, 가해자에게는 성충동에 의한 자연스러운 행위의 결과로 면죄부를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피해자에게 범죄의 책임을 전가하는 잘못된 통념을 그대로 반영하는 요령의 예
야간 외출을 삼가라, 노출의상을 삼가라 등의 요령은 마치 성폭력 피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전달하는 메시지 같지만, 실은 야간 외출을 하거나 노출의상을 착용한 경우 피해가 발생하면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의 피해자 비난 통념을 강화하는 메시지일 뿐이다.
성범죄가 낮에 발생했건 밤에 발생했던 성폭력이 발생한 원인은 밤이냐 낮이냐가 관건은 아니며, 어떤 의상을 입었는지도 성폭력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행동과 관련된 우연적이고 무관한 요인들을 성폭력 피해의 원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전달하는 것은, 우리사회에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는 성폭력은 ‘여성의 행실과 관련된 성적인 행동’이며 ‘성적인 행동이 발생하는 것은 여성의 책임’이라는 통념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이런 통념은 결국 성폭력이 '상대방의 권리를 침해한 범죄 행위’라는 인식을 약화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온다.
과음이 건강에도 해롭고 건강한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과음을 삼가라는 요령은 일반적으로 교훈적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는 있겠으나,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요령은 아니다. 성범죄가 과음한 상황에서 더욱 빈번히 발생하는지 여부는 명확하게 조사된 바가 없을 뿐 아니라,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 상담을 받은 경험에 의하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성폭력은 대부분 잘 아는 사람에 의해 일상적인 시공간에서 발생하며 음주여부와 특별한 관련을 갖지는 않는다. 음주와 성폭력을 관련짓는 통념은 가해자에게는 가해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술에 취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진부한 변명), 피해자에게는 피해의 빌미를 제공하였다(‘술먹은 조신하지 못한 여성’)는 논리로 피해 발생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악용되는 대표적인 통념에 지나지 않는다.
>>잘못된 지침이 미칠 영향
성폭력은 대부분 아는 사람에 의해서 계획적으로 발생하는데, 범죄자의 가해계획을 수포로 돌릴 수 있는 요령이 있다면 국민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은 경찰청의 주요한 업무일 것이다. 그러나 경찰청에서 이번에 배포한 10대 요령에는 그런 유익한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성폭력 가해자가 대부분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데 이번 요령은 모르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소수의 성폭력만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그나마도 현실적 분석에 근거하지 않은 내용들이 많아 실제로 도움이 되는 내용이 거의 없다. 게다가 그동안 유포되어온 여성과 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통념을 근간으로 하는 내용이 많아, 피해자에게는 유발론에 따른 부당한 비난을, 가해자에게는 가해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줌으로써 오히려 성폭력을 조장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우리의 요구사항
-이번에 제작한 여름철 성범죄 예방 10대 요령 지침서 배포를 즉각 중지하고, 배포되지 않은 것은 모두 폐기하여 주십시오.
-성범죄 예방 지침을 세우고자 할 때에는 이 문제에 대한 각계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서 신뢰할 수 있고 실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내용으로 마련하여 주십시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가해자가 엄중히 처벌받을 때에만 우리사회의 성폭력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이에 맞는 방식으로 성범죄 관련 대책을 수립하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