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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화운동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 대안적인 관계, 일상, 실천을 만들어가는 성문화운동을 소개합니다.
[뒤늦은 리뷰] '동의'를 의제화하기 - 현재와 고민
  • 2023-10-30
  • 1691



이 글은 올해 7월 31일 성적 동의 스터디 마무리 회차의 뒤늦은 후기입니다. 2월부터 7월까지 총 5회에 걸쳐 진행되었던 스터디 마지막 회차는 ‘동의’ 의제화의 현재와 고민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7월 25일 진행되었던 '강간죄'개정연대회의의 국회 토론회 자료들을 살펴보며 현황과 쟁점을 짚으며 토론을 하였습니다.


현황과 쟁점 - 2022년 폭행·협박 없는 성폭력 통계를 살펴보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2019년 1~3월 상담통계 분석을 통해 폭행·협박 없는 성폭력 피해가 71.4%에 이르고 있음을 짚었는데요.  2022년 1월부터 12월까지 강간, 유사 강간, 강간 미수, 준강간 피해 상담 총 4,765건을 분석하였습니다. 직접적인 폭행 협박 없는 성폭력은 62.5%(2,979건)에 달해 이번에도 과반수에 이르는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나 피해자의 상태에 따라 폭행·협박이 동반되거나 동반되지 않았습니다. 직접적인 폭행·협박 없는 성폭력은 단순대면인, 채팅상대가 직장/학교 관계보다 특히 채팅상대자(15.6%)에게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술이나 약물을 동반한 준강간에서는 40%에 달했습니다. 반면 폭행·협박이 있는 성폭력은 채팅상대자나 단순대면인, 직장/학교관계보다 친밀한 관계 (전·현 애인)에게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14.9%)  폭행·협박을 동반한 성폭력이 친밀한 관계(전/현 애인)에서 다른 경우 보다 높게 나타났다고 해서, 친밀한 관계 내의 성폭력이 비교적 잘 처벌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폭력은 가장 많이 숨겨지기도 하고, 성폭력과 피해자에 대한 통념이 작동하기도 하니까요.


상위 5가지의 피가해자 관계에서 장애, 준강간, 직접적인 폭행·협박 유무를 살펴보면 흥미롭습니다. 채팅에서 만난 상황에서의 피해는 가장 많은 유형이기도 한데, 폭행·협박 없는 성폭력이 75.8%여서 전체 성폭력에서의 비율 62.5%보다 더 높았습니다. 친밀한관계 내에서 직접적인 폭행·협박이 동반된 비율은 35.6%로, 다른 유형의 성폭력보다 높았습니다. 동급생이나 선후배 관계나 친구(42.5%), 단순대면인(44.9%), 직장관계자(43.5%)에서는 술이나 약물을 이용한 준강간 피해가 많았습니다. 채팅상대자 또는 단순대면인에 의한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에게 장애가 있는 경우가 각각 28.6%, 21.9%로, 다른 유형보다 높았습니다. (직장 6.5% 전현애인 13.6%)


폭행·협박 없는 성폭력의 경우 강요, 회유, 지위이용, 속임 등이 동반되었습니다. 각각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 강요의 내용으로는 ‘성관계를 안하면 헤어진다고 함’ ‘기습’ ‘힘으로 제압’ ‘사귀려면 성관계 해야함’ ‘억지로 요구함’

- 회유에는 ‘콘돔 없어서 거절했으나 자포자기함’ ‘음식 및 선물 등 회유’ ‘구걸 애원’ ‘심적 부담’ ‘부동산문제로 만났는데 회유해서 들어와 강간’ 

- 지위이용에는 ‘친부에 의해서, 가족붕괴될까봐, 직장, 거래처납품 취소하겠다고 하여서, 병원에서 병원관계자에게 공권력 지위이용해서’

- 속임에는 모텔에 잠깐 들어왔다 가라고 함, 이야기만 한다고 함, 고액 알바 있다고 유인함, 보드게임카페에서 음란물 상영함, 종교단체에서 교주를 신격화함


폭행·협박 없는 성폭력에서는 회유(21.5%)가 가장 높았고, 장애 있는 성폭력에서는 강요(23.2%)와 회유(22.8%)가 비슷하게 가장 높았습니다. 준강간 상황에서는 강요(22.7%)가 가장 높았고, 채팅상대자의 경우는 회유(31.2%), 전·현애인은 강요(30.5%), 친부모는 지위이용(25.3%), 모르는 사람의 경우 속임(19.3%)이 가장 많았습니다. 


2023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의 분석을 통해,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관계, 피해자의 상태나 상황에 따라 유형력을 행사하기도 술이나 약물을 이용하기도 회유나 속임수를 하기도 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비동의 강간죄 쟁점 - ‘동의’는 이미 실질적 판단 기준 


“우리 법제와 판례가 폭행·협박과 동의 사이에 어디에 위치해있는가 물으면 절반 이상 동의에 가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이다. 우리 법제 여러 특별 규정들이 피해자가 동의할 수 없는 상황을 규정하고 있음. 동의라는 관념으로 재구성하면 되는 문제이지 법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서 새로운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현재 판례가 피해자의 의사 진술 신빙성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고 상당 사례에서 동의가 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경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


“현재 무죄를 다투는 성범죄재판에서 대부분의 쟁점은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수렴되고 있는데, 이는 피해자의 동의 없이 성관계에 이른 경우 아무리 작응 유형력이 작용하였더라도 동의 없는 성관계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항거불능”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고, 신체와 신체가 접촉하는 성범죄 사건에서 아무런 유형력도 작용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근자의 성범죄 재판에서는 ‘폭행 협박’이라는 용어보다는 “유형력”이라는 용어가 더 많이 쓰이고 있다는 것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나라 수사재판부에서 폭행협박을 판단할 때 이미 이미 ‘동의’를 판단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비동의 강간죄 반대 논리에 대한 반박이자 강간죄개정운동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동의라는 기준이 도입되면 마치 피해자의 의사에 의해서만 성폭력 범죄 재판이 결정될 것이고 억울한 피고인이 늘어날 것이고 모호하고 애매한 기준이라는 여러 우려들을 반박할 수 있는 근거일 것입니다. 한편으로 비동의강간죄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수사재판부가 동의나 피해자의 의사에 대해 판단할 때 지금처럼 유형력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사건 전후 피해자의 태도와 저항유무를 연관지어 판단하고, 특히 취약한 피해자가 아니라 대등해 보이거나 성적 자율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여성들의 피해를 부정하는 문제가 그대로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여부’로 바꾸는 운동은 동의나 피해자의 의사가 법에 의해서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마주한 셈입니다. 


‘적극적 합의 운동’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까?


스터디 구성원들은 마지막 앞선 자료들을 통해 비동의 강간죄의 현황과 쟁점을 함께 살펴보고 '적극적 합의'라고 하는 '성적 동의의 새로운 기준'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이야기 했습니다.


상담소는 단지 동의가 표면상 이루어진 협상의 결과(yes 또는 no)로만 이해되지 않도록, 평면적으로 이해되지 않도록 여러 활동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가장 확실한 성적 동의는 ‘적극적 합의’라는 슬로건을 통해 동의 실천과 해석의 기준을 다섯 가지로(명시적으로, 충분한 정보와 이해를 바탕으로, 의식이 있을때, 평등하게, 모든 과정에서 항상) 제시하기도 합니다. 또한 현실의 성적 실천이 모든 주체들에게 자유롭고 평등한지 질문하면서 ‘친밀한 관계에서 동의가 고민되었던 여성들’의 경험을 인터뷰, 분석하고 있습니다. '성적 동의'가 “여성이나 소수자들이 취약해지는 조건에 대한 단 하나의 해결방법”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적 동의에 대한 원칙을 아무리 사회가 강조하더라도 “취약함의 조건 때문에 동의 여부가 후순위로 밀리게 되는 수많은 상황”들이 있을 것입니다. 주체의 조건과 상황을 포괄하여 살피는 방식의 "동의에 대한 질문과 감각"은 그 과정에서 "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서 '취약성'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취약성을 어떤 주체들에게만 국한되는 본질적인 속성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동의’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상황이나 조건으로서 ‘취약성이 어떤 고리와 어떻게 만나서 폭력상황을 만나게 되는지 그 취약성의 장면을 다양하게 그려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협상력이 약했고 자원이 빈약했고 관계에서 힘이 없었던 이들의 동의가 이루어지는/무시되는 과정을 통해 “취약성과 주체성이 배타적이지 않다는 연결지점”을 입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특히 적극적 합의 개념은 “일상에서 이 관계가 얼마나 불평등한가 질문을 남기는 언어”로서 유효합니다. '적극적 합의' 담론은 '동의'를 법적으로 성폭력이냐 아니냐의 기준으로서만 국한하지 않고 끊임없이 무엇이 불평등인가 질문하고 사람들 간의 관계에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동의 스터디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2월부터 7월까지 진행되었던 스터디를 통해 관점도 언어도 깊어지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성문화운동팀의 신아, 동은, 유랑 활동가와 함께 공부해주었던 호연, 이산, 동글, 호랑, 오매, 란에게 감사의 마음도 전합니다. 한 구성원의 짤막한 마무리 소감을 공유해봅니다.


"저는 요근래에 변화하는 성문화, 실천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성문화나 실천은 엄청 급진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것 같은데, 왜 성폭력의 발생과 작동은 이리도 클래식한가... 하는 고민이 많았는데요, 이번 스터디를 하면서 그 간극에 대해 조금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새로워보이는 실천들도 사실은 기존의 성각본과 맞닿아 있고, 성적인 관계맺음에서 '동의'가 누구의 시선에서 구성되고 있는지 등등... 그리고 저는 성적동의 스터디를 하면서 되게 오랫만에 공부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


상담소 성문화운동팀은 스터디에서 다진 언어적 기반을 토대로, 7~9월 ‘친밀한 관계에서 동의가 고민되었던 여성들 15인의 이야기’를 듣고 분석해서 지난 10월 26일 발표를 마쳤습니다. 조만간 자료집도 발행하고자 합니다. 토론회에 오지 못하셨던 분들은 자료집을 주목해 주세요. 다소? 많이? 늦은 이달의 리뷰를 마칩니다.



이 글은 성문화운동팀 신아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