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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화운동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 대안적인 관계, 일상, 실천을 만들어가는 성문화운동을 소개합니다.
[후기] '(서울광장이 하지 못한) 평등하고! 다양하며! 포용적인! 민주광장' - '성평등 도서읽기 공동행동 기자회견'과 '서울퀴어퍼레이드 YES QUEER 참여에 부쳐
  • 2024-06-18
  • 421

들어가며

자원활동 허은하


활동가 선생님과 서울 도서관 앞에 도착해서 든 생각은 "아, 여기구나! 전시행정에 의해 <책 읽는 서울광장>으로만 '사용행위'가 제한되어, 사랑이 충만한 퀴어문화축제를 불허하고 네 이웃의 몸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는 비정해진 시민광장이 여기구나" 싶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내 <성평등 도서읽기 공동행동 기자회견>이 예정된 11시가 다가왔고, 무지개빛 우산을 든 사람들은 차분히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대오를 갖춘 후, 가져온 성평등 도서를 돌아가며 읽기 시작했다. 낭독하는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의 아이들도 이 도서들을 읽고 고민하고 나아가 용기를 얻어 세상과 더 행복하게 공명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허나 그때 찬송가 합창 소리가 낭독하는 우리의 목소리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열정을 담은 발언들로 자긍심을 표현하느라 흐트러질 틈도 없었다.




(사진 1: 무지개빛 우산이 여러 개 펼쳐져있다. / 사진 2: 성평등도서가 펼쳐져있고 무지개빛 우산을 든 참여자들이 성평등 도서를 돌아가며 읽고 있다)


성평등도서는 도서관으로, 도서관을 무지갯빛으로!

...청소년은, 성소수자는, 장애인은, 취약하고 퀴어한 몸을 가진 다양한 존재들은 이 사회에서 역동을 만들어냅니다. 단단하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회에 틈을 만들고 균열을 만들어냅니다... -성소수자교사모임QTQ-  

...학생들은 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교육를 접할 기회를 빼앗겼습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디에서 배워야하는 걸까요. 인터넷을 통해 그릇된 성지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검증된 책을 읽을 권리를 빼앗는게 옳은 선택인 것입니까...-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 

최근 서울과 충남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었습니다. 이중 서울시의회에서 폐지를 주도한 김혜영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무려 신성한 시민의 정당인 본회의장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잘못된 성적 가치관을 조장한다며 공공연히 혐오논리를 재생산하고 폐지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최근의 학생인권폐지 성평등도서 퇴출 정국은 오히려 평등한 권리보장을 위한 학생인권법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

​...차별과 편견을 깨는 힘이 있는 성평등도서는 모든 어린이들이 자기 몸을 긍정하면서 사랑할 힘을 얻게 합니다. 모든 어린이는 편견과 무지로부터 자유로워야하고 모든 몸이 다양해서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혐오를 물리치고 평등과 존엄과 다양성과 포용을 가르치는 성평등도서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학교 도서관의 자율성을 적극 보장해야할 것입니다...-전교조 여성위원회-





(사진 1: "우리의 자긍심을 더 많은 평등을 원한다" 라는 피켓을 든 사람의 모습이다. / 사진 2: "6월은 자긍심의 달, 도서관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이자!" 라고 6색 무지개로 쓰인 현수막을 든 사람들이 무지개색 우산을 쓰고 서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다양성이 사라진 도서관은 특정 이념이 마치 정답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는 공공도서관 스스로 공공성을 포기한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대한 민주주의의 위협입니다...-릴레이발언, 인천여성민우회- 

​...우리는 책을 만듭니다. 책을 통해 다른 세상을 경험해왔고 다른 관점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보다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엮어내는 일을 하고자 마음을 먹었던 것은 우리가 겪은 세상과 조금은 달라져야하지 않겠냐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도서관에 들이지 말아라, 읽지 말아라 이렇게 정치가 나서서 이야기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책을 안 읽습니다...-전국언론노동조합- 

책을 검열한다고 광장을 빼앗는다고 우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얄팍한 혐오에 무너질 만큼 약하지 않습니다. 축제가 열리는 날뿐만 아니라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내내 당당히 서서 우리의 권리와 삶을 축하하고 기뻐하고 춤추고 연대하고 싸우고 결국은 승리할 것입니다... -릴레이발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쫓겨나야할 것은 책이 아니라 차별과 혐오다! 우리의 자긍심은 더 많은 평등을 원한다!...-릴레이발언, 장애여성공감-

​...도서관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책을 함부로 빼고 배제하는 이 이야기에 저항해야지 도서관이 도서관으로 살 수 있습니다...-릴레이발언, 어린이책시민연대


이렇듯 전국의 도서관에서 성평등·성교육 도서의 퇴출 및 열람제한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책을 통해 배우고 사유할 수 있는 학생과 시민의  권리 대신, 오로지 조직화되고 극단화된 민원만 고려한 차별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례로 퀴어퍼레이드(이하 퀴퍼)에 가기 위해 지하철 입구를 나오자마자 보게 된 플래카드와 퍼포먼스는 과연 사랑이시라는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라는 반문을 하게 했다.




(사진 1: "우리 자녀 지키자! 동성애 폐해 예방의 달!" 플래카드 아래, "오세훈 시장님! 인권에 예외 없듯이, 광장 사용에도 예외는 없습니다!" 라는 반박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 사진 2. 을지로입구역 7번 출구 앞에 "NO, SAME-SEX MARRIAGE"라는 몸자보를 걸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서 있다.) 


그렇게 릴레이 발언을 마친 우리들은 서울광장을 행진한 후, 기념촬영을 했다. 그때 참여자 중 누군가가 "영광 영광 할렐루야~"를 선창했고, 이내 모두가 환하게 웃으며 "곧 승리하리라"로 답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때 주변에서 인권영화제의 리플릿이 보였다. 그리고 홀린 듯이 펼친 곳에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시가 있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에 저항하는 당신의 외침에서
혐오를 넘어 맞잡은 당신의 손에서
기억을 엮고 잇는 당신의 이야기에서
누구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당신의 싸움에서
...
그래도, 그래서, 나는, 우리는

그래도 너의 곁에서 함께 싸울게




(사진 1. 서울광장에 "서울야외도서관"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고, '성평등도서는 도서관으로' 참가자들이 무지개색 우산을 들고 즐거운 표정으로 서 있다. / 사진 2. 서울인권영화제의 팜플렛을 찍은 사진이다. 세로로 길쭉한 팜플렛은 다양한 색깔로 인쇄되어 있으며 "그래도 너의 곁에서 함께 싸울게"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있다.)

이후 성폭력상담소 부스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퀴어이웃들과 함께 축제를 즐겼다. 그러다보니 차별금지법에 목소리를 더해달라며 오색끈을 묶어주시는 스님들을 만날 수 있었고, 공식 굿즈인 프라이드 뱅글을 차고 해맑게 웃으시는 수녀님들도 볼 수 있었다. 또한 행사 참가자들의 손을 맞잡고 축복기도를 해주시는 목사님들도 계셨고, 주한 호주 대사관 부스에서 받은 쿼콰 티셔츠를 들고 유아차에 앉은 아이와 좋아라하는 부모들도 보였다. 나아가 더운 날씨와 뜨거운 열기에 천원을 기증하고 받은 얼음물로 반려견을 먼저 챙기는 반려인도 보였다. 물론 퀴어 커플의 재무 설계를 위한 KB라이프파트너스 제1사업본부도 참으로 반가웠고,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원어민강사지회'의 외국인분들이 들고 있던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말고 강화"라는 피켓 역시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사진: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사장에서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원어민강사지회(KGLU Native English Teacher's Union Seoul) 조합원이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말고 강화 Strengthen, no abolish, the Students' Human Rights Ordiance"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다.)


15만명 이상의 인파 속에서 모든 부스 행사에 참여하기에는 급속도로 기가 빨리는 극 I인지라 잠시 주변 카페에 대피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성폭력상담소의 다양성정책콩을 콩나무에 붙이는 행사와 혐오를 쏟아내는 22대 국회의원들을 잘 지켜보겠다는 의미의 눈알 붙이기는 즐거웠다.




(사진 1: 여러 사람이 지나가는 가운데,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스에 비치한 퀴어콩나무에 참여자들이 붙인 스티커가 가득 붙어있다. /사진 1: 불바다 배경의 "평등을 가로막는 정치인" 피켓에 사람들이 눈알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마침내!!!

본격적인 퀴어퍼레이드의 시간이 왔다. 건트롤 타워의 "천천히" 구령에 맞춰, 바이크와 8대의 차량이 휘날리는 수많은 깃발들과 함께 행진하기 시작했다. 퍼레이드가 주는 의미를 되새기는 동시에 음악이 주는 자유를 만끽하며 몸을 흔들며 행진하다보니 거리에서, 버스에서, 카페에서, 가게 등지에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시는 분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렇게 함께 1시간 30분 정도 행진하면서 미처 보고 오지 못했던 공연팀의 멋진 리허설로 눈호강도 할 수 있었고, 사랑하는 거룩한 방파제의 규탄을 드랍더비트 삼아 우리의 구호를 래퍼처럼 즐겁게 외칠 수도 있었다.



(사진 1: 서울퀴어퍼레이드 차량 위에 오렌지색 옷을 입은 화려한 드랙퀸들이 즐겁게 인사하고 있다. / 사진 2.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사장에 여러 참여자들이 각자의 다양성을 뽐내며 서 있다)


(사진 1.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사장에 사람들이 가득하고, 사진 앞쪽에는 무지개 옷과 깃발로 치장한 사람 둘이 서 있다. / 사진 2.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사장에 여러 부스가 늘어서있고, 사람들이 가득하다) 



(사진 1. 서울퀴어퍼레이드 참여자들이 다양한 깃발을 들고 있고, 한국성폭력상담소 무지개깃발도 나부끼고 있다. / 사진 2. 서울퀴어퍼레이드에 개모차를 타고 온 귀여운 베이지색 강아지가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나오며

이 날의 퀴퍼는 퀴어이웃뿐 아니라 포괄적차별금지법, 학생인권조례, 장애인이동권, 동물권 등 사회구조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공동의 미래를 상상하는 시민들의 흔들림없는 목소리 또한 얻을 수 있었던 '(서울광장이 하지 못한) 평등하고! 다양하며! 포용적인! 민주광장'이었다. 모든 혐오를 이기는 사랑의 힘으로 충만해진 나는 집에 돌아와서 제25회 퀴어문화축제 책자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하고 웃을 수 있었다.​​


내가 나를 긍정하고,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긍정하고,
사회가 퀴어를 존중하고 긍정할 때 
우리는 반드시 더 다양하고 평등하고 좋은 사회를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혐오와 편견에서 벗어나 서로의 존재를 응원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다함께 외쳐 봅시다.

​온 세상이 부정해도 우리는 YES, QUE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