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화운동
- 202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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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장 더웠던 8월 12일, 폭주하는 열기 속에서 <폭주하는 남성성> 첫 번째 출간 기념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이 북토크는 ‘안티페미니즘 정치, 극우화의 구조에 대항하는 법’이라는 타이틀로 저자 이리예, 권김현영님과 추천사를 써주신 손희정님과 함께 했습니다. 약 50명의 참여자들과 함께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안젤라홀이 북적였는데요. 두 시간을 빼곡히 채웠음에도, 모두 이야기를 경청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답니다.
북토크는 ‘어떤 마음으로 책을 쓰게 되었는지’라는 첫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리예님은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 짤의 형태로 생산되고 퍼지는 것을 보고, 한국 인터넷 공간에서 짤이 어떤 매체로 만들어지는지를 분석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권김현영님은 2024년,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이 분명 국가적 비상사태라고 불러도 될만큼 커다란 문제로 등장했음에도 경시되었던 반면, 윤석열은 어떻게 12월을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는지를 들여다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하셨어요. 손희정님은 추천사를 써주신 분 답게! 책에 원고를 보태진 못했지만 ‘저책짱이다!’라고 계속 외쳐주셨답니다. <폭주하는 남성성>을 “여성혐오와 성폭력이 어떤 메커니즘을 경유해 돈이 되고 표가 되는지”를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해주셨는데요. 그만큼 이 책은 안티페미니즘과 극우/정치에 대한 연결고리를 두텁게 다루고 있습니다.
또 책 발간 이후, 저자들은 한 달이라는 시간을 어떤 고민과 함께 보냈는지 이야기 해주시기도 했어요. 이리예 선생님은 최근 유명 애니메이션 클립을 AI로 변형하여 성판매 여성을 희화화하는 영상으로 만드는 일군의 안티페미니즘 온라인 흐름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계시다는 고민을 남겨주셨어요. 권김현영 선생님은 25년 6월 대통령 후보 선거 때 이준석 후보가 명백한 성폭력 재확산 발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우리 사회가 이준석이 정치적으로 유효한 인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지 집요하게 관심을 갖고 추적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손희정 선생님은 2016년이 떠오른다고 하셨어요. 소라넷을 필두로 한 여성에 대한 성착취적 이미지에 ‘그럴 수도 있지, 남자들 다 한때야’ 라며 침묵하던 사회 분위기가 있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대통령 후보 선거에서 성폭력성 발언이 스스럼없이 방송되고, 그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폭력을 키우는 고리에 침묵뿐 아니라 지지, 이해, 돈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후를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후 북토크는 고어자본주의와 고어 남성성, 헤게모니 남성성의 정확한 의미를 짚는 개념적 설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논쟁적인 주제로도 확장되었어요. 총선과 계엄, 최근 대선에서 보여진 청년 남성 그룹의 보수/극우화와 안티페미니즘이 극우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패널들의 진단과 분석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여성의 얼굴을 한 극우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혐오와 차별에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지로도 넓어졌어요. 뻗어나간 이야기들은 북토크 마지막 즈음에 폭력의 연결고리를 끊고, 대안을 찾기 위한 고민과 실천 방안을 무엇인지로 모였습니다.
북토크 때 세 패널 분들이 해주셨던 말을 조금 옮겨봅니다. (후기를 쓰는 사람의 관점에서 편집/요약을 가미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손희정: 윤석열의 계엄을 비판할 때 이것을 왜 남성성의 문제로 이야기해야 할까요? 2016년 박근혜 탄핵은 단순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탄핵한 사건이 아닙니다. 박근혜가 짊어지고 있던 박정희 신화의 탄핵이죠. 박정희 신화는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 남성성입니다. 사실 박근혜를 탄핵한지 10년이 흘렀지만, 사실 우리는 헤게모니 남성성을 제대로 탄핵하지 못했던 거예요. 2024년, 윤석열이 군대를 동원한 계엄을 하려고 합니다. 군사주의는 특정한 남성만 ‘정상’적인 인간으로 취급하는 시스템이기도 하고, 거기서 미끄러지는 수많은 남성들을 비남성으로 치부하는 사고방식이기도 합니다.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신남성연대 같이 온라인에서 안티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이들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폭력적인 남성성이 돈과 표를 얻는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기에 우리가 ‘폭주하는 남성성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극우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여러 기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정치적인 입장을 수호하기 위해 폭력(계엄을 포함한)을 써도 되는가 입니다. 전통적인 극우와 뉴라이트는 이런 점에서 계엄을 찬성합니다. 하지만 소위 대안우파들은 계엄을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페미니즘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폭력을 써도 된다고 합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이들을 극우라고 진단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리예: 인터넷 공간은 오래 전부터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되어 왔습니다. 그 풍토 속에서 짤방 문화가 탄생하게 되지요. 짤방/짤이란 웃음과 공감을 얻는 형식의 문법입니다. 그렇기에 면책 특권이 생깁니다. 짤은 유머이기 때문에 논리정연한 백그라운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짤을 진지하게 비판하는 것은 멋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짤이란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우리에게 진실을 담보하는 방식이 아니게 됩니다. 감정을 자극하고, 비판을 불가능하게 하는, 정치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지요. 글을 쓰면서 2010년대를 돌아보았습니다. 201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고 2020년이 되며 백래시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정치권이 성평등에 매우 소극적이 됩니다. 여성 정책은 일가정 양립에 대해서만 다루고, 성폭력은 범죄로만 다루게 되죠. 이런 성평등 정치의 공백 속에서 공포와 분노로 가득찬 우파 페미니즘도 탄생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정치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득세하는 혐오발언을 마주하며 힘들어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 말이나 행동은 사실 듣는 사람을 민망하고 수치스럽게 만들려고 하는 말입니다. 그 말을 어딘가에 기록해두고, 남겨두면 좋겠어요. 그러면 혐오가 약간 힘을 잃습니다. 또 이런 작업을 여럿이 해야겠지요.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것도 차별, 혐오, 폭력에 대항하는 여러 사람을 만들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권김현영: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폭력적 남성성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회가 무엇이 남성성인가라는 것을 생각하는 방식을 뜻하는 것입니다. 생계부양자는 남성이라는 것처럼요. 그런데 IMF와 같이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위협당하는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든 이를 유지하고자 하는 국가적, 문화적 프로젝트가 생겨나게 됩니다. ‘아빠 힘내세요’ 처럼요. 그와 동시에 여성들이 남성에게 기생한다는 담론도 생겨나게 되지요. 하지만 남자들의 위기 이면에는 여성의 삶의 기반이 전부 무너진 상태가 분명 존재합니다. IMF 때 무수히 많은 여성들이 공식 경제활동에서 탈락하여 비공식경제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문제를 느끼며 남성 문화에서 이탈하는 존재들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이들은 남성 문화에서 이탈하는 존재이기에 헤게모니 남성성에 도전하지는 않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남성 문화에는 정말로 유해하고 폭력적인 남성성이 자리하게 되지요. 이런 유해한 남성성은 헤게모니를 가지게 되지는 않지만, 지금 우리는 윤석열과 이준석과 같은 전통적인 극우와 소위 신극우들이 이들을 일정 정도 인용하며 정치 공론장에서 이러한 유해함을 주류화하는 경로를 생산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여성, 난민… 그때마다 그 사회의 비인기 집단, 사회적 소수자를 지목해서 그들을 공격하며 자신들의 정치적인 세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극우의 동원 전략입니다. 최근 친구들이 부정선거를 믿기 시작해 난감하다는 청년 남성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집단적으로 음모론을 믿는 데에는 외로움도 영향이 있습니다. 고립 청년의 문제, 사람이 사람을 만나며 오프라인 거점에서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뒤이어 일주일 뒤인 8월 19일, 각각 친밀한관계폭력/성폭력/성매매 전문가이시기도 한 또 다른 세 명의 저자 분들과 함께 두 번째 북토크가 진행되었습니다. 두 번째 북토크 후기는 다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