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 변화
9월 28일은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을 위한 국제행동의 날 Global Day of Action for Access to Safe and Legal Abortion>입니다. 올해에는 이 날 오전 11시 30분에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 및 기자회견이 진행되었습니다.
형법 제269조 '낙태죄'는 여성의 임신중단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임신중단을 한 여성 뿐 아니라 당사자의 요청 또는 동의를 받아 임신중단을 하게 한 사람도 처벌하고, 의사 등 의료인이 임신중단을 하게 한 경우에는 가중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낙태죄'는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임신중단을 결정함에 있어서 일방 또는 공동의 책임이 있는 상대 남성은 처벌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에 '낙태죄'는 남성이 임신한 여성을 통제하거나 임신중단 경험이 있는 여성을 협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두어 예외적인 경우(대표적으로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등의 허용사유가 있습니다)에는 당사자와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알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낙태죄'의 예외적 허용사유가 얼마나 자의적인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살펴 보면, '낙태죄'가 왜 '여성의 임신출산을 국가가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평가받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낙태죄'의 적용을 두려워하는 병원들은 성폭력 피해로 인해 임신한 여성에게 먼저 성폭력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수술을 해주겠다며 즉각적인 조치를 거부하거나, 설령 모자보건법 상 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사유에 해당하더라도 당사자인 여성이 임신중단을 원하더라도 보호자 또는 배우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수술을 해주지 않는 등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한 현실입니다. 낙태죄가 폐지되지 않는 한, 여성들은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감내하거나 처벌의 위험성과 터무니 없는 비용 등을 감수하고 불법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게다가 모자보건법 제 14조는 임신한 여성을 배우자가 있는 여성으로 전제하고 있는 점, 본인이나 배우자가 장애인 또는 감염인인 경우에는 당사자가 원치 않는 임신중단을 강요하는 근거로 이용되기도 한다는 점 등 그 자체로도 문제점이 많습니다.
이번 퍼포먼스 및 기자회견을 주최/주관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2016년 10월 경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를 공동주최하였던 여성단체들을 재정비하여 올해 새롭게 발족한 연대 단위입니다. '낙태죄'는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가 인지하고 고민해야 할 문제이며, 우리 사회의 적폐 청산과 성평등 추구 등 사회 정의를 이루기 위하여 낙태죄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님 제이의 사회로,
먼저 <10명의 발언자들, 여성들의 경험을 증언하다>라는 제목의 발언 퍼포먼스가 진행되었습니다.
임신중단을 경험한 10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당사자의 목소리로 발언하는 퍼포먼스였습니다.
발언문에는 당사자가 직접 작성한 내용과 주최 측에서 실제 사례를 각색하여 작성한 내용이 섞여 있었으며,
발언자 또한 실제 당사자와 대독자가 섞여 있었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기혼 여성이 두 번에 걸쳐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게 된 경험
1996년 10월 23일. 그리고 같은 해 12월 20일. 나는 두 번의 임신중절수술을 받았습니다.
아이 둘을 가진 결혼5년차. 빠듯한 벌이에 전세 대출금 이자를 갚느라, 양쪽 부모님 뒷바라지를 하느라,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는 ‘보통의 부부’였습니다. 셋째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을 때,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남편은 퇴근 후 한밤중에만 들어와 아이들과 잠깐 눈 맞추고 쉬었지만, 저는 소위 독박육아와 직장생활로 지치고 또 지친 상태였습니다. ‘셋째까지 키울 수는 없다.’ 남편도 같은 생각이었고, 그렇게 중절수술을 위해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 의사도 우리의 결정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수술을 받은 지 불과 두 달도 되기 전에, 남편은 이번엔 괜찮다고 우기면서 피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성관계를 했고, 저는 또다시 ‘원하지 않았던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도 체력적으로 약해져 있는 제 몸이 또 한 번의 임신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 염려했고, 다른 선택을 고려할 여지는 없었습니다. 독박육아에, 이중노동에, 피임은 신경도 안 쓰는 남편을 둔 모든 기혼여성을 위해, 낙태죄의 폐지를 요구합니다.
1960~80년대 정부의 가족계획사업에 의하여 복강경 피임 시술을 받게 된 경험
1979년 9월 15일. 나는 국가에서 권하는 복강경 피임 시술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동네에서 자라, 가난한 가정을 이뤘던 저는 이십대 초반이었고, 결혼해서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언제부턴가 보건소에서 나온 사람들이 가족계획사업을 한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이제 애 안 낳는 게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이고 애국이라고 했습니다. 뭐를 수술하라고, 약을 준다고, 그렇게 하면 세금을 덜 낸다는 둥 집 구할 때 우선권을 준다는 둥 동네에 말이 많이 돌았습니다. 남자들은 정관수술 받으면 예비군 훈련에서 빼주기도 했는데, 여자들이 보건소를 들락거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하도 찾아와서 권하는 데다 무료라고 하길래 저도 배꼽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하고는 배가 너무 아프고 잘 낫지도 않는 염증 때문에 한참 고생했습니다. 그때 저희 고모도 루프 넣는 수술을 그게 뭔지도 모르고 받았는데 그 다음부터 골반에 감염이 돼서 말도 못하게 아팠다고 했고, 옆집 애기엄마는 복강경수술이 잘 안됐는지 그만 또 임신을 해서 낙태수술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보건소마다 수술 건수가 많을수록 국가에서 받는 돈도 많아져서, 제대로 설명도 없이 거의 반강제로 수술한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하고, 외국에서 검증도 안 끝내고 보내온 피임약을 막 썼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가난하고 못배운 여자라고 국가가 이런 식으로 제 나라 국민을 막 다뤄도 되는가. 부잣집 가서도 이렇게 했을 것인가. 우리는 애 낳으라면 낳고, 낳지 말라면 안 낳아야 하는 도구인가. 낳으라는 지금이나, 낳지 말라던 그때나, 다 국가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10대 청소년이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은 후 다니던 학교에서 자퇴를 강요당한 경험
2017년 3월 29일 나는 임신과 낙태를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학생의 임신은 죄인가요?
올해 1월, 임신한 걸 알았습니다. 생리가 늦어졌는데 임신일 거라곤 꿈에도 생각을 못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친구가 임신테스트를 해 보라고 말을 해줬죠. 임신테스트기라는 게 있는지, 어디서 파는지 몰랐어요. 학교에서 성교육 받을 때도 그런 건 배운 적이 없으니까요. 두 줄이 떴어요.
일주일 동안 남자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했어요. 이 이야길 들은 남자친구는 자기가 어떻게든 낙태 비용을 마련해보겠다고 하는데, 저도 남자친구도 낙태는 얼마인지 어디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아무것도 몰랐죠. 인터넷에 검색해도 제대로 나오는 게 없었어요. 낙태는 불법이라는데, 그래도 한 오십만 원 쯤 있으면 하지 않을까 짐작만 했죠. 하지만 나도 남자친구도 고등학생인데, 오십만 원이 어디 적은 돈인가요. 결국 부모님에게 이야길 할 수밖에 없었어요.
부모님에게 맞았어요. 임신했다는 이유로. 아빠는 내 얼굴을 쳐다볼 수조차 없다며 나를 딸로 생각할 수 없다고 했죠. 그래도 며칠 뒤에 엄마가 병원에 데려가주고 돈도 내줘서 낙태수술을 하기는 했어요.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누구에게라도 하소연 하고 싶어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죠. 괜한 짓이었어요.
며칠 뒤, 학교에 소문이 퍼졌더라고요. 담임이 불러내서 자퇴서를 쓰라고 하더라고요. 싫다고 했어요. 임신한 게 죄냐고, 낙태했다고 학교 다닐 권리도 없냐고 따졌어요. 그랬더니 학생이 임신한 건 죄래요. 제가 다른 학생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거라며 자퇴를 하래요. 자퇴 안 하면 제가 임신하고 낙태했단 걸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알리고 낙태는 불법이니까 법적으로도 책임을 지게 할 거래요. 남자친구에게까지 피해 가지 않게 하려면 조용히 자퇴하래요.
어쩌겠어요. 자퇴서 쓰고 나오는 길, 나는 죄 지은 거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임신은 보통 축하받는 일이잖아요. 근데 학생이 임신하면 죄인인가요? 낳아 키울 여건이 안 되면 낙태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낙태가 죄인가요? 나는 죄인이 아니에요.
임신중단이 불법인 현실 때문에 비위생적인 병원에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고 합병증에 걸린 경험
2016년 3월 24일. 나는 비위생적인 병원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습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믿을 만한 병원은 어디인지, 수술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 것인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알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으로 어렵게 찾아간 병원에서였습니다. 병원에서 하자는 대로의 수술방법으로, 달라는 대로의 금액을 주고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수술대 의자와 수술 도구에 바로 전 사람이 수술할 때 묻은 것 같은 피가 보였습니다. 순간, ‘소독 한 번 해달라고 부탁할까?’ ‘애 지우러 온 주제에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할까?’ ‘이런 비위생적인 병원에서 왜 내가 내 돈 주고 수술을 받아야하지?’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시끄러웠지만, ‘그래도 어렵게 찾은 병원인데 수술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결국 아무것도 요청하지 못했습니다. 의료진 역시 저에게 수술 방법이나 후유증에 대해서, 또 어떻게 몸을 관리하고 뭘 조심해야 하는지, 일반적인 의료과정이라면 당연히 의무적으로 알려줘야 할 부분을 전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수술 후 저는 출혈이 너무 심하고 길어서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검사를 위해 재방문하라는 병원의 문자를 받고도, 불결하고 존중받지 못했던 경험이 떠올라 다시 그 병원에 가지 못했습니다. 다른 병원에라도 가봐야 하나 했지만 임신중절은 불법인데 수술을 했다고 말해도 되는 건지, 어디까지 얘기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가지 못했습니다. 낙태죄가 존재하기 때문에, 저에겐 임신을 중단할 권리만이 아니라 건강을 유지할 기본적 권리도 없었습니다.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강요당한 경험
2010년 9월 29일, 나는 HIV 감염인으로 확진을 받았습니다.
확진과 동시에 죽음을 떠올렸기에 지난 10년은 저에게 새로운 인생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확진을 받고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을때 치료제만 잘 복용하면 남부럽지 않게 살수 있다, 많은 감염인들이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을 떨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왜 내가 확진과 동시에 죽음을 떠올렸는지를 오랫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지금에 이른 생각은 이 병에 대해 가까운 사람에게 말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그리고 이건 저만의 생각이 아니라 대다수의 감염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문제라는 것도 알게됐습니다. 저도 누군가와의 성관계를 통해서 감염이 되었고, 그 누군가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에서 정말 끝났다고 생각한 부분은 바로 사랑, 결혼, 성적 만족감, 행복감이었습니다. 감염인라는 이유로 성관계를 못할 이유는 없지만 나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알리고 그 성적 만족감을 안전하게 나눌 수 있으리라는 상상이 불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들이, 그리고 저를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저를 혐오하고 저를 내치는 이유가 바로 '문란한 성관계를 하다가 에이즈에 걸렸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저는 감염이후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강렬하게 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감염인도 적절한 조치를 하면 수직감염없이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감염내과에 가서 상담도 받았습니다. 물론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제가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추가적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했을때 그 이야기를 들은 상대방은 극렬히 반대하였고 헤어질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상대방의 가족들까지 나서서 저의 임신계획을 문제삼으면서 친척들에게 제가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함부로 알렸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제가 사랑하는 상대와 그 가족이 저를 온전히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여전히 저에게 성적인 낙인을 찍고, 어머니될 자격이 없다고 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폭력으로 인해 임신한 피해자가 합법적인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기 위해 성폭력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했던 경험
2012.12.18.나는 성폭력에 의한 임신으로 중절수술을 받았습니다.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에게 모텔로 끌려가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부모님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생리가 나오지 않아 산부인과에 갔더니 임신 4주라고 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인공임신중단수술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낙태죄’라는 법이 있어, 수술을 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은 모자보건법 상 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사유지만, 먼저 내가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폭력상담소에서 발급받은 상담사실확인서를 제출했지만, 병원에서는 가해자를 고소하고 고소사실확인서를 받아와야 한다며 수술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병원에서는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는 조건으로 불법 수술을 해주겠다며 터무니없는 수술비용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돈도 없었고, 나에게는 안전하고 합법적인 인공임신중단수술을 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액을 주면서 불법 수술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너무 억울했습니다. 어렵게 마음먹고 가해자를 고소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가해자 측은 합의한 성관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공유산을 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고소한 것 아니냐’며 고소사실확인서를 빨리 발급해주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조급해지고 너무 불안했습니다. 결국 경찰이 기소의견을 송치하고 나서야 인공임신중단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임신주수가 14주를 지나있었고 수술의 위험성이나 비용도 임신 초기에 비해 훨씬 커져 있었습니다. 수술을 받기 직전에는 “성폭력 피해가 아님이 밝혀질 경우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작성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지, 가해자가 무죄 판결을 받으면 내가 낙태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의미인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당장 내 몸이 인질로 잡혀 있는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서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삽입 섹스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임신하여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게 된 경험
2014년 6월 20일 나는 임신중단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스물 한 살 대학생입니다. 직접 나와서 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글을 대신 전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낙태를 경험했습니다. 당시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는 사귄지 얼마 후부터 틈틈이 섹스하고 싶다는 얘기를 해왔고, 저는 섹스에 대해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이 훨씬 더 컸습니다. 그렇게 남자친구의 요구를 미루고 미루던 중 하루는 남자친구와 키스를 하고 애무를 하다가 남자친구가 삽입을 시도했고, 저는 삽입은 안 되고 질입구에서 비비기만 하는 건 괜찮다고 그를 달랬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생리를 할 때가 되었지만 생리가 나오지 않았고, 저는 그제서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쿠퍼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자, 난자가 만나면 임신을 한다고 했던 성교육에서는 배워본 적 없는 말이었습니다. 전희를 통해 나오는 쿠퍼액에도 미량의 정자가 섞여있으며 임신이 가능하다는 얘기에 너무나 불안해졌고, 남자친구에게 전화했지만 삽입도 안 했고 사정도 안 했으니 조금 기다려보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교복을 입고 눈치보면서 약국에서 임신테스트기를 사는 것조차 너무 부끄러웠지만, 결과는 임신이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제 몸이 제 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준비하던 대학교, 꿈, 부모님, 학교생활 같은 것들이 떠올랐고 왜 지금, 왜 사정도 안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저히 고등학생 임산부라는 손가락질과 부모님한테 손벌려야 한다는 불효, 대학이나 취업 같이 하고 싶었던 일들을 못하게 된다는 걸 감수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저는 낙태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겨우 인터넷을 뒤져서 나온 병원들에 전화해서 나이를 얘기하자 "부모님은 아시냐." "부모님 동의 없으면 수술 못 해준다"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정말정말정말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남자친구와 제가 마련할 수 있는 돈으로는 수술비의 절반도 안 되고, 병원에서도 부모님 동의를 요구해서.. 저는 당신들 딸이 섹스를 했고, 낙태를 한다는 사실까지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자친구는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남자친구에게 임신사실을 얘기하자 아무렇지도 않게 "헐 그런 걸로도 임신이 돼?"라고 하면서 제가 낙태하겠다고 하자 알겠다며 동의해준 게 다였습니다. 낙태에 남자친구의 동의.. 솔직히 말해서 "허락"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때 알았고, 저는 제가 제 인생이 대한 고민을 통해 얻은 결론을 왜 걔한테 허락받아야 했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약 제가 고민끝에 아이를 낳겠다고 했으면 남자친구는, 그리고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청소년 여성을 위해 낙태죄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기혼 여성으로서 출산 시 제왕절개수술을 받고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경험
2015년 4월 19일. 나는 출산을 위한 제왕절개수술을 받았습니다.
결혼 전부터 일을 하고 있던 저는 결혼과 동시에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 직장인인 동시에 가정주부이자 아이 양육자의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누구나 쉽게 다하는 임신과 출산인 것처럼, 결혼과 출산이 의무인 것처럼 사회 속에서 세뇌되어 왔습니다.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제도도 너무나 빈약했습니다. 임신하는 동안 하혈, 임신성 당뇨, 아이 태동의 문제로 임신 내내 힘든 날을 보내고 양수가 터져 제왕절개수술까지 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밤에도 아기에게 2시간마다 수유를 하려면 산모가 밤에 수면이 지속되는 시간은 길어야 한 시간정도입니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체력과 지속되는 수면부족은 산후우울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놀아주고 집안 청소에 빨래에 하루 종일 반복되는 일을 하는 동안 저의 끼니는 서서 잠깐 때우거나 페스트푸드로 대신 해야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사회에서는 당연하게 엄마의 의무라고 소리높이며 맘충이라는 단어로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러나 저에겐 더 큰 걱정이 있습니다. 턱없이 모자란 양육비에 자아실현이든 뭐든 상관없이 당장 돈을 벌이가 필요한 저는 휴직이 끝나고 직장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직장에 복귀했을 때 아이가 아플 때 누가 돌보아줄 지, 야근이 생기는 날, 출퇴근시간이 안 맞을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끊임없이 육아에 대한 고민이 직장 복귀 준비보다 앞서있습니다. 그런 여성을 직장에서 반길 리도 없습니다. 육아로 인해 돌아갈 직장이 없는 여성도 다수이며 전업주부의 입장이라고 호락호락 하지도 않습니다. 가정유지를 위한 생활비를 쓸 때에도 무전취식하는 사람이 사치하는 것처럼 집안일을 하고서도 가정에서나 사회에나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국가는 여전히 임신, 출산과 육아의 어려움이나 비용을 결혼한 여성 혹은 가정 내에서 해결하도록 의무를 지우고 있습니다. 여성은 임신, 출산의 도구가 아닙니다. 국가는 저출산 문제를 운운하기 전에 여성의 임신, 출산, 양육 전반의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장애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을 것이 당연시되었으나 당사자의 판단에 따라 출산을 선택한 경험
2009년 7월 31일 나는 첫 출산을 했습니다
제왕절개 수술날짜를 잡고 그날 밤 양수가 터져서 5시간 진통해서 첫 출산을 한 날입니다.
저는 첫째를 임신하고 병원을 찾았을 때 그것도 대학병원이란 곳을 갔을 때 간호사가 절 보더니 너무도 당연하게 첫마디가 “아기 지우실거죠?”였습니다.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물론 내가 판단했을 때 낙태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낙태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국가가 마음대로 정해진 룰처럼 “낙태해야 할 몸, 낙태해선 안될 몸“으로 규정지어놓고선 여성에게는 ”아이를 낳을 권리도, 낙태 할 권리도“ 보장되지 않은 이상한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는 거 같습니다.
대한민국은 여성의 몸을 국가의 정책에 맞는 “생명권, 모성권“만을 주장하면서 누구에게는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하는 몸, 또 다른 누구에게는 ”우생학“을 주장하면서 낙태가 합법이 되는 것이 아닌 개개인이 누구나 자신의 상황에 맞게 낙태든, 임신이든, 출산이든, 양육이든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성의 몸을 국가의 몸이 아니라 “여성“ 그 자체로 존엄성을 갖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환경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장애 여성으로서 임신출산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차별당한 경험
2017년 9월 28일, 나는 이 나라에서 장애여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50여년 전 국가는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구를 관리하고 통제한다는 이유로 피임과 낙태 수술을 강요했습니다. 현재 모자보건법 14조에 따르면 ‘우생학적 사유 또는 유전적인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을 경우’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고 국가가 정한 ‘정상’적인 인구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철저하게 통제되어왔습니다. 이러한 국가의 관점에서 저는 운이 좋게 태어난 생명입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진 태아를 낳으면 안 되는 몸으로 규정된 장애여성입니다. 제가 성인의 나이가 되기 전까지 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의 장애가 유전될 수 있으니 아이를 낳지 말라”고, 그러나, 의료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불과 몇 년 전과는 또 다르게 “너는 이제 장애가 없는 아이를 낳을 수 있으니 안심하고 노력해야 된다.”는 말을 듣습니다.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로 타인에 의해 제 몸이 판단되고 강요되는 일은 너무나도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국가가 장애를 낙태허용사유로 명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이 결정한 낙태에 대해서 합법인지 불법인지 국가가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낙태가 불법화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의 의료접근성은 더욱 침해될 수밖에 없다는 것, 뿐만 아니라 장애에 대한 지식과 감수성 없음이 결국 장애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아이를 낳을 권리와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를 결정하는 것 또한 장애여성의 삶의 전체적인 맥락들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모든 여성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자 역할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발언자들은 모두 자신의 발언과 관련된 날짜가 적힌 하얀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퍼포먼스가 진행됨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임신출산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경험한 여성들이 서로 붉은 끈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발언 퍼포먼스가 끝나자 현장 자유발언이 이어졌습니다.
각자 다른 사정으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아야 했던 모녀의 경험
"저는 1998년에 낙태를 했습니다. 남자친구와 2년간 만나면서, 그의 요구로 늘 콘돔 없이 성관계했고 이로 인해 마음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임신 중절 수술 후 남자친구는 당연히 해야 할 문제를 해치웠다는 반응이었고, 또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콘돔 없이) 성관계를 요구하였습니다.
임신에 대한 공포, 낙태에 대한 죄책감 모두 저만의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의 남자친구는 자신의 욕구가 우선이라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자만 독박 처벌하는 낙태죄를 시행하는 정부는 이런 책임감 없는 한국 남자와 무엇이 다릅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저의 어머니도 낙태 경험이 있었습니다. 제가 낙태한 사실을 결혼 후 엄마에게 말씀드렸을 때, 엄마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1975년 3월, 엄마는 임신하신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태몽으로 소 꿈을 꾸었기 때문에, 집에서 낙태를 강요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엄마는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사셨습니다. 엄마에게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자유가 없었던 것이죠. 가족이라는 이유로, 시부모와 큰 집에서 이래라저래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한 죄책감은 시부모도, 큰집도, 가족 등 그 누구도 아닌 엄마만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낙태를 할지 말지는, 시부모도 정부도 결정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저 당사자의 문제일 뿐입니다."
성구매자에 의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성판매 여성의 인공임신중절수술 경험
"저는 성 판매 여성입니다. 누구인지 모르겠는 성 구매자의 아이를 임신했습니다. 출산과 육아를 원치 않았지만, 수술 비용이 없었습니다. 성매매는 성폭력이 아니기 때문에 임신중절 수술비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불안함과 하루하루 바뀌는 저의 신체 상태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저 자신이었습니다.
성 판매 여성들은 성 구매자에 의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기도 합니다. 콘돔을 하지 않으려는 남성들과 '협상'하거나, 요구를 거절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성매매 상담소에서는 계속해서 임신 중절에 대한 상담이 늘어나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낙태죄는 성 판매 여성들의 몸을 더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국가가 정한 조건을 벗어나, 스스로 임신과 출산을 결정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넌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의 인공임신중절수술 경험
"저는 넌 바이너리(Non-Binary: 자신을 전적으로 여성 혹은 남성 젠더로 정의하지 않는 사람. 여성과 남성의 스펙트럼 사이 어디쯤으로 자신을 정의) 트랜스젠더 입니다.
2011년 초기, 임신중절 수술을 했습니다. 생리할 때마다 디스포리아(dysphoria: 트랜스젠더/젠더퀴어가 정신적 성별 gender와 신체적 성별 sex의 불일치로부터 느끼는 성적 불쾌감)를 느꼈던 저는…저의 임신 사실이 두려웠습니다. 큰 혼란을 느꼈고, 제 몸이 제 몸이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주위에 임신 사실을 알리자 ‘이제 너는 여성으로서 완전한 경험을 한 것’이라는 말도 들었으나…아닙니다. 저는 넌 바이너리입니다. 저는 여성이 아닐 때도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임신중절 수술을 망설임 없이 택했고 그것은 저의 온전한 결정이었습니다. 언젠가 자궁적출 수술을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아예 임신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 제바람과는 다르게 (수술 후) 가임이 가능한 섹스를 한 뒤에는 늘 임신 공포에 휩싸이곤 합니다. 아무리 콘돔을 써도, 공포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만약 임신을 지속하였다면, 저는 죽음을 선택했을지 모릅니다. 임신중절 수술은 저의 목숨을 살리고, 제가 원하는 성별로서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낙태죄에 대해 전면 반대합니다."
각 발언이 끝날 때마다 공감과 지지의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을 대표해서 8명의 활동가가 각 한 문단씩 기자회견문을 낭독하였습니다.
아래는 기자회견문 제목과 마지막 두 문단입니다.
‘낙태죄 폐지’를 위한 연대와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국가의 인구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안에서 인공임신중절 사유를 허락받고,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머무르지 않겠다. 임신중단에 대한 합법화를 기초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우리는 국가와 사회가 감당해야 할 생명에 대한 책임을 떠넘긴 채, 우리 삶의 권리를 무시하고,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통제의 대상으로 삼아온 법과 정책을 거부한다. 우리는 더 이상 통제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에게는 처벌 대신 더 많은 자율성과 권한이 주어져야 하며, 국가와 사회는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은 전 세계에서 여성의 몸을 불법화하고 여성 건강을 위협하는 국가와 법, 제도에 맞서 저항하는 날이다. 여성의 몸을 불법화하는 ‘낙태죄’ 폐지하라. 장애와 질병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조항 전면 개정하라. 국가는 성평등 정책과 성교육을 체계적으로 강화하고, 모든 여성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피임기술과 의료시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 결혼유무,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장애와 질병, 경제적 차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모성을 실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라. 안전하고 건강하게 임신을 중단할 수 있도록 최선의 의료적 선택지를 제공하라. 진정 생명을 그토록 소중히 여긴다면 ‘낙태죄'를 폐지하고, 여성과 태어날 아이,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이 제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일에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재생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이 글은 본 상담소 성문화운동팀 앎이 작성하였습니다.>
※ 각 현장 자유발언은 별도의 원고가 없어 허핑턴포스트코리아의 기사 <여성들이 '임신 중단'을 선택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다(화보)>에서 보도한 발언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