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 변화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
최근 한 달간에만 안희정 무죄 선고,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성폭력 가해 지목인들에 의한 역고소 범람, 보건복지부의 임신중절에 대한 처벌 강화 예정 등 여성의 삶을 더 가혹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무수히도 많이 일어났다. 끝장 집회의 구호였던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는 말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국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방관, 심지어는 부추기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 속에서 여성들은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특히 권력(위력)에 의해 일어난 성폭력이자, 피해자가 용기를 내 고발하여 많은 지지와 공분을 샀던 ‘안희정 사건’이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으며 그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그래서 여성들은 거리로 나왔으며, 분노를 더 이상 참지 않고 우리의 목소리를 더 관철시키기 위해 행진을 하고 구호를 외치며 횃불을 들었다.
4시 20분
집회는 오후 5시부터 시작이었으나 내가 도착한 4시 20부터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무대와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미리 와서 집회 앞줄을 서성이는 사람들 등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는 깃발을 드는 역할을 맡아 함께 깃발을 들기로 예정된 사람들과 집회의 가장자리에 위치했다.
<사진 출처: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
오후 5시
집회 시작 시간이 됐을 때는 이미 준비된 공간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무대를 진행하는 스텝들이 올라왔고, 행사에 대한 안내를 진행했다.
<사진 출처: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
첫 번째 발언자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오매 활동가였다. 오매님은 성폭력 가해자의 대다수가 남성임에도 한국의 사법적/정치적 판단은 여전히 가해자를 위해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매님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으며, 집회에 모인 참가자들에게 집회 시작의 출발을 알렸다. 이후 이어진 발언은 변호인을 통해 전달된 김지은님의 편지였다. 사법부는 왜 가해자의 말만을 귀담아 들으며 피해자의 말은 왜 귀담아 듣지 않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김지은님이 어떤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는지가 담긴, 사법부를 규탄하는 내용의 편지였다. 뉴스로, 다른 사람들의 사법부에 대한 비판과 김지은님에 대한 지지문으로 이미 알고 있던 내용임에도 김지은님의 편지로 내용을 전해 들으니 다시 한 번 슬픔과 분노가 동시에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살아가겠다. 힘이 없는 자들이 이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겠다’는 말이 아프면서도 힘이 됐다. 집회에 참여함으로써 나도, 집회에 참여한 참여자들도 김지은님에게 힘이 되길 간절히 빌었다.
그때였다.
다음 발언자였던 여성학 연구자 권김현영님이 무대에 올라와 1차선 도로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던 펜스를 보며 외쳤다. ‘우리의 자리는 여기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왜 이 좁은 공간에서밖에 집회를 할 수 없는가. 우리는 오늘 경찰에게 자리를 더 넓혀 달라고 요구한다. 열어줘! 열어줘’ 사실 이 발언을 들으며 통쾌하기도 하면서 놀라웠다. 함께 분노했고, 그래서 집회에 참석했으면서도 경찰에게, 국가에게 어떤 것을 요구할 때 아직도 겁을 먹고 있었는데 이렇게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성으로 사회화당하며 참고 타협하는 버릇을 들였던 것이 여전히 나를 옥죄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외치자 놀랍게도 펜스가 열렸고, 3차선까지 우리의 공간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도로 옆으로,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넓은 공간을 가득 메웠고 뒤를 돌아 봤을 때 계속해서 집회에 참석하기 위한 사람들이 몰려들어왔던 광경을, 잊을 수 없다. 이후 최영미 시인의 집회와 미투를 지지하는 시 낭송과 한여전 고미경 대표님의 발언 또한 우리의 행진과 의지를 북돋우기 위한 좋은 발언들이었다.
<사진 출처: 한겨레신문(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58182.html)>
오후 6시
드디어 행진이 시작됐다. 나는 깃발을 들고 있었으므로 행진의 선발대가 됐다. 나의 깃발은 ‘편파경찰 규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른 깃발에는 ‘편파법원 규탄한다’, ‘안희정은 유죄다’ 등의 내용이 쓰여 있었다. 행진은 집회 장소였던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시작해 세종대로 사거리, 광화문 삼거리, 인사동을 거쳐 다시 역사박물관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맨 앞에서 행진을 했으므로 어디까지 행진이 이어져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뒤를 돌아보았을 때 정말로 ‘어디까지 행진이 이어져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긴 행진이었다. 안희정은 유죄다, 편파재판, 편파경찰을 규탄한다는 깃발을 펄럭이며 도심을 횡단하는 게 얼마나 짜릿한지. 거리를 걷는 사람들, 버스와 차에 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구호를 외치며 우리의 의지를 전했다. 그게 부정적인 시선이든 긍정적인 시선이든 시선의 방향성과는 상관없이 의지를 보였다는 게 중요했다. 특히, 부정적 시선을 드러내는 듯 한 사람을 보면 일부러 더 목소리를 높여 구호를 외치는 게 꽤 즐거웠다. 인사동 거리를 걷는 건 신선한 경험이었는데, 인사동에 놀러간 적은 있었어도 행진한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또, 엠프 없이 목소리로만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하는데 이미 목소리가 많이 쉬어버려서 더 큰소리를 못 낸게 아쉬웠다. 그래도 ‘여성들은 여기에 있으며, 아무도 대변해주지 않는 우리의 의견을 여기에 제시하며, 싸울 의지가 있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위풍당당하게 걸었다. 아마 다른 참가자분들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오후 7시 30분
한 시간 반 정도의 여정을 끝마치고 다시 서울역사박물관에 도착했다. 행진의 앞 대열에 있던 나는 7시 30분경에 처음 도착했지만 줄이 워낙 길다보니 모든 행진 참여자들이 몇 십 분이 지나도록 다 돌아오지 못했다. 모두가 도착하고 나서는 30M 현수막 찢기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우리를 재단하고 괴롭히던 말 들이 가득한 것이었는데, 자세한 설명이 없었음에도 모두가 이미 다 알고 있던 것처럼 현수막을 갈기갈기 찢었다. 작은 손들이 모여 거대한 현수막을 갈가리 해체하고 부쉈듯, 그 날의 집회와 ‘우리’가 모여 가해자 중심적인 성폭력 판결/판단과 남성중심적·성차별적·성이분법적 세상을 언젠가 무너뜨리길 간절히 바랐다. 현수막 찢기에 이어 횃불 들기가 진행됐는데, 그 어떤 집회에서도 횃불은 본적이 없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우리도 ’과격‘할 수 있다’, ‘우리의 의지가 이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상징이라 생각했다. 이후 자유발언들이 이어졌고 우리는 더욱 더 하나로 뭉쳐질 수 있었다.
<사진 출처: 한겨레신문(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58182.html)>
<사진 출처: 한겨레신문(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58182.html)>
오후 9시 20분
집회가 끝났다. 네 시간의 긴 여정은 이제 과거가 됐다. 하지만 이번 집회에서 우리는 거리로 나왔고 함께했고 서로가 서로를 지지함을 살을 맞대며, 마주하며 알게 됐다. 집회는 과거가 됐으나 우리는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나아갈 것이다.
<이 글은 본 상담소 젠더인턴활동가 조경림님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