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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 변화

성폭력 및 여성 인권 관련 법과 제도를 감시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법 제·개정 운동을 소개합니다.
여성가족부 가족정책 우려
  • 2005-09-16
  • 3752


여성가족부 출범을 맞아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이 여성가족부 가족정책의 기능과 역할 및 방향에 대한 의견을 발표합니다.

여성가족부 가족정책에 대한 의견서

지난 6월 14일 ‘여성가족부 직제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23일 여성가족부가 공식 출범하게 된다. 여성가족부는 여성부가 기존에 수행해왔던 여성정책, 보육정책과 더불어 가족정책을 총괄하며, 가족정책국이 신설되어 가족정책에 관한 계획 수립, 중앙 및 지방자치단체의 가족정책 조정 및 위기가족 등에 대한 기능 등을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여성가족부 출범을 맞아 그 기능과 역할 및 방향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여성가족부의 출범은 가족간호, 노인부양 등 전통적 가족기능의 약화 등 가족위기 확산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는 곧 이혼 증가, 혼인감소로 인한 가족 내의 돌봄 기능 약화를 문제로 바라보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시각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돌봄 기능은 사회와 개인이 함께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사회의 문제는 돌봄을 개인(가족)만의 책임으로 떠맡겨왔던 것이며, 문제의 핵심은 가족 내 돌봄 기능의 약화가 아니라 돌봄 기능이 전적으로 개인(가족)에게만 전가되어 왔던 것이다. 특히, 가족 내 돌봄 기능을 전적으로 여성이 떠맡고 있는 한국 사회의 구조를 비판하고 바꾸고 대안을 제시할 역할을 하리라 기대를 모았던 “여성부”에서 “여성가족부”로 전환되는 것이 다시금 여성의 위치를 가족 내에서, 가족과 연동해서 배치하게 되는 맥락을 형성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이는 명백히 후퇴라 여겨진다.

2. 최근 여성부가 건강가정기본법과 관련하여 진행하는 조치들 역시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예를 들어 건강가정기본법에 의해 설치된 건강가정지원센터를 보면 가족 상담 및 교육서비스 제공, 위기,소외 가족 지원사업을 통해 가족보호 및 사회안전망을 구축함으로써 가족해체를 방지하고 가족의 안정성 강화를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는 ‘건강가정’ 담론의 출현이 이혼으로 인한 가족해체, 출산율의 하락 등의 사회현상을 위기 상황으로 인식한 시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건강가정기본법에서 말하는 ‘건강가정’ 이란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서 특정 가족 유형에서 벗어나 있는 가족들은 건강하지 않은, 열등하고 문제 있는 가족인가? 이러한 인식과 개념은 우리사회의 특정 가족유형에서 벗어나 있는 가족들을 기능적 결함이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하여 차별을 조장하고 지극히 현실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가족의 다양한 형태를 아우르지 못한다.
이 같은 건강가정기본법이 바라보는 가족에 대한 가치를 여성가족부가 인정한다면, 여성가족부가 다양한 가족을 지원하겠다는 맥락은 ‘다양한 가족’이란 이름아래 ‘건강하지 않은’, ‘비정상적인’ 가족들을 모아 놓고 이들을 ‘건강하게’, ‘정상적인’ 가족을 만들겠다는 의미로 비춰 질 수 있다.

3. 가족해체를 방지하고 가족을 보호한다는 기조에서는 가족 구성원 개인의 권리침해, 차별, 폭력 등의 문제가 드러나기 어렵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족정책의 가족보호, 가족위기, 가족해체 방지 등의 내용은 근대 가부장적 질서에 의해 형성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킬 수 있으며, 이는 이제까지 가족 담론, 가부장 중심주의 하에서 여성 폭력의 문제의 왜곡에 맞서 싸우면서 개별 여성 인권의 문제임을 역설해왔던 지난 역사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또한 ‘건강’한 가족을 보호하고 가족해체를 방지한다는 의미는 한부모 가족, 무자녀 부부, 혼자 아이를 키우는 비혼모/부, 동성/이성 간 동거 가족, 독신가구, 비혈연 공동체 가구 등의 가족은 ‘건강하지 않은’ 가족으로 간주되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연결된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개인은 어떤 형태로든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가족은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가족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4. 가족정책과는 별로도 여성문제에 대한 특화된 정책 마련은 여전히 유효하며, 여성가족부가 놓치지 말고 갈 지점이라 생각한다. 즉, 대 여성폭력 정책, 성차별 정책, 여성주류화 정책 등을 수행해왔던 기존 여성부의 성과와 과제를 면밀히 분석, 검토하고 더욱 심화하고 발전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러 기대와 우려를 함께 갖고 출범하게 되는 여성가족부가 진심으로 우리사회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가부장적 전통가족문화 이데올로기 및 가족의 구성원이나 형태에 따른 차별들을 철폐할 수 있는 정책들과 실천적인 프로그램을 집행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가족 내에서의 가족성원의 개별적 욕구가 존중될 수 있는 사회를, 어떠한 내용, 어떤 형태로든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사회, 모두가 서로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또한 가족을 통하지 않고서도 개별 주체가 권리를 존중받고 성장을 지원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앞장서는 부처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이에 우리는 여성가족부의 가족정책 방향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제안한다.


1> ‘가족’ 개념의 전환 필요
여성가족부는 기존의 혈연중심 ‘가족’의 개념을 탈피하고 성별, 계급, 성정체성, 장애, 민족 등과 관계없이 자율적으로 가족을 형성할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가족은 사회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로서 이에 대한 정책은 제반 사회 정책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가족정책을 수립, 조정, 지원하는 전담부서로서의 정책 범위는 상당히 포괄적일 수 밖에 없으며, ‘가족’에 대한 개념의 전환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 민법에서는 혈연으로 맺어진 개인들의 공동체만을 ‘가족’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사회 ‘가족’의 모습은 법적, 혈연적 관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관계, 형태를 이루고 있다. 혈연으로 맺어진 공동체만을 ‘가족’으로 규정하거나 혈연, 성별, 나이 등을 근거로 역할을 규정하는 획일적인 개념화는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에 대한 내용을 가족정책에 반영하기 어렵다.

2> 성인지적 가족정책 수행해야
여성가족부의 가족정책은 가족생활 내의 위계적인 성별분업을 해소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정책이 되어야 하며 지금까지 돌봄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지워졌던 것을 넘어서 사회와 개인의 공동의 책임이라는 가치와 인식하에 마련되어야 한다. 더불어 가족 내의 평등한 관계를 이루기 위한 성인지적 관점을 가짐과 함께 부모, 자녀간의 수직적, 권위적 관계를 탈피하여 수평적, 민주적 가족관계 정립을 위해 힘써야 한다. 이는 제도를 넘어서 사회 전반적인 의식변화의 노력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구체적 정책과 실천적 프로그램의 마련이 여성가족부가 해야 할 일이다.

3> 건강가정기본법 대체입법 필요
건강가정기본법은 ‘건강가정’으로 상정되는 전형적인 가족형태로의 유지를 위한 지원과 이를 위해 여성이 담당해 온 돌봄의 역할을 지원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이혼을 가족해체로 보고 이를 방지하겠다는 의미를 함의 하고 있는 등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 건강가정기본법에 대한 대체입법이 절실히 필요하며 이와 더불어 건강가정지원센터의 그 목적과 방향설정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4> 사회복지의 대상은 개인으로
‘가족’을 사회구성의 기본단위로 볼 것인가, 가족을 구성하는 개별구성원 개개인을 기본단위로 볼 것인가에 따라 가족정책 방향성은 달라질 수 있다. 사회적 권리와 복지가 가족 공동체로 가는 정책방향은 변화된 가족환경과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가족형태를 모두 포괄할 수 없다.
현재 사회복지 체계는 혼인을 전제로 한 남성부양자모델 중심의 혈연 및 입양 가족의 형태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 결혼을 하지 않거나, 혈연관계가 아닌 가족의 형태에 포함되어 있는 많은 개인들은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 복지의 대상은 가족이 아닌 개인이 되어야 하며,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혜택을 통해 가족이 간접적으로 공유하는 체계로 가야한다. 이는 곧 여성가족부가 지향하고 있는 가족주기, 형태에 상관없이 가족의 기능이 원활히 수행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방향과 맞닿아 있다.

5> 각 부처의 가족정책 총괄, 조정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실질적인 영향력 갖추어야
여성가족부는 각 부처의 가족정책을 총괄․조정ㆍ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구체적인 가족정책 방향성에 대한 제시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가족과 관련되는 모든 정부부처의 정책에 대하여 가족유형별 다양성의 맥락에서 가족구조와 기능, 그리고 가족 구성원 개인의 삶의 질을 분석하고,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정부부처의 가족관련 정책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한 정책평가를 진행하여, 이를 발표하고 각 부처의 가족관련 정책이 성인지적 관점에서 수립․집행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2005년 6월 22일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이상 가나다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