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 변화
[성명]
온라인 성착취 문제 해결은 이제 시작이다
21대 국회는 온‧오프라인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여성폭력 근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20대 국회는 임기만료 직전에서야 ‘n번방 방지법’등 온라인 성착취 근절을 위한 개정 법률안들을 통과시켰다. 2018년 미투운동을 위시하여 불법촬영물 근절 대책 마련을 외쳐온 여성들의 요구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국회 문을 닫기 전에서야 부랴부랴 개정안들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로써 불법촬영물 소지‧구입‧저장‧시청 등 수요행위와 유포 협박·강요에 대한 처벌, 강간·유사강간 예비음모죄 신설,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 상향, 범죄수익 은닉 처벌,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책임 강화 등과 관련한 법안들이 개정되었다. 그 결과 늦었지만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구제를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조치들은 마련되었다.
특히, 불법 촬영물 근절과 수요차단을 위해 성착취물을 소지하거나 구입‧저장‧시청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을 신설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진전이다. 성착취물을 직접 제작하거나 판매하지 않더라도 이를 다운로드하고 시청하는 수요·소비 행위는 온라인 성착취가 횡행할 수 있도록 하는 온상으로 성착취물 제작, 판매를 조장하고 범죄의 수익구조에 일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온라인 성착취 구조를 반영하여 수요행위를 형벌 체계로 포섭함으로써, 그간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었던 온라인 성착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온라인의 특성상 불특정 다수에 의해 피해가 반복될 우려도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온라인 성착취 순환구조에서 예비적 단계라고도 볼 수 있는, ‘촬영물 등을 이용한 협박·강요’죄 신설로 실효적인 범죄 예방이나 억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에게도 불법촬영물 유통 방지를 위한 제반 조치를 취하도록 함으로써 플랫폼이 온라인 성착취의 온상으로서 기능하는 것을 막고자 하였다.
하지만 아직 개정 입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다양한 유형의 온라인 성착취 행위들이 존재하여 처벌법규의 공백이 존재하고, 온라인 성착취 피해자 보호 및 지원을 위한 체계 마련과 이를 위한 법적 근거가 미비한 상황이다. 온‧오프라인을 포괄하는 여성폭력 대책 등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명확하다. 나아가 형사 법정에서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개정된 법률로 전반적으로 형량이 강화되었지만, 사법부의 성범죄에 대한 낮은 처벌 수위를 감안했을 때 처벌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든다. 신설된 소지죄 등이 법정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 촬영물 등을 이용한 협박은 1년 이상의 유기징역, 강요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법원이 양형을 관대하게 할 경우 제대로 된 처벌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있다. 그동안 온라인 성착취는 ‘범죄가 아닌’, 남성들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접근하거나 노출될 수 있는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관련 범죄들에 대한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 온라인 성착취를 확산하고 공고화하는데 일조해 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온라인 성착취에 대한 새로운 양형기준 마련 등 처벌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같이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온라인 그루밍을 비롯해 사이버스토킹, 피해자 사칭, 피해자 촬영물 도용 등 현행법에서 규율할 수 없는 피해 유형의 행위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타인의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취득, 이용하는 행위 규제를 포괄하고, 흩어져 있는 온라인 성착취 관련 범죄행위들을 한데 묶어 체계화하며,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체계와 그 근거 등을 마련한 종합적인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 나아가 온라인은 여성에 대한 대상화와 혐오, 폭력과 착취가 오프라인에서와 똑같이, 혹은 연결되어 행해지는 범죄의 공간이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발생하는 성착취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을 포괄하고, 각종 성범죄를 관통하는 성착취의 본질을 담을 수 있는 개념 정립 및 법 체계 정비가 앞으로 남은 과제일 것이다.
21대 국회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착취를 근절하기 위한 통합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후약방문 같은 법안 개정에 그칠 것이 아니라, 국회 내 특별위원회 등의 TF 구조를 만들어 온‧오프라인의 성착취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체계를 여성‧시민들과 함께 구축해 나가야 한다. 여성에 대한 성착취 문제 해결은 이제 시작이다.
2020년 5월 29일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