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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 변화

성폭력 및 여성 인권 관련 법과 제도를 감시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법 제·개정 운동을 소개합니다.
[후기] 기자회견 <“낙태죄 전면 폐지”외의 다른 대안은 없다!>
  • 2020-11-27
  • 932


사진 제공 :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2020년 11월 27일(금) 오전 10시 30분 국회의사당 앞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 촉구 국회 앞 기자회견 <“낙태죄 전면 폐지”외의 다른 대안은 없다!>가 진행됐습니다. 기자회견은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하 '모낙폐')의 주최로 진행되었습니다.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11월 17일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이어 11월 24일 「형법」 제27장 ‘낙태죄 유지’를 골자로 하는 「형법」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여성에 대한 처벌조항, 사유제한, 주수제한, 상담의무화, 숙려기간, 진료거부권, 제3자동의 등 그간 제기되었던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안입니다. 수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입법예고 기간동안 정부입법안에 대한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정없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에 대해 모낙폐는 강한 규탄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현재 정부안을 제외하면, 발의되어 있는 권인숙의원안과 이은주의원안 모두 ‘낙태죄를 형법상 삭제’하고 ‘재생산권리보장’을 위한 국가의 책무를 담은 입장의 법안입니다.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낙태죄 폐지의 현실태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두 입법안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낙폐는 국회 앞 기자회견을 통해 낙태죄 존치안 국무회의 의결 규탄과 더불어 권인숙, 이은주 의원안 등에 대한 지지입장 표명 및 향후 투쟁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기자회견은 나영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겸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SHARE 대표가 사회를 맡았습니다. 


먼저 문설희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겸 사회진보연대 사무국장이 대표발언으로 모낙폐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11/27기자회견 대표발언 발언문


문설희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사회진보연대 사무국장)


지난 화요일 문재인 정부의 형법 일부개정 입법예고안이 국무회의를 거쳐 의결되었습니다. 낙태죄를 존치하는 정부 입법예고안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후퇴이다! 라며 필요한 것은 처벌이 아닌 권리보장이라고, 셀 수 없이 많은 여성의, 국민의 의견이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입법예고안은 낙태죄를 고스란히 담고 국회로 넘어갔습니다.

이에 앞서 모자보건법 개정 입법예고안 역시 국무회의를 통과하였습니다.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가 가능하게 되는 선진적인 법안인양 정부는 포장을 하였지만, 이는 국민에 대한, 여성에 대한 기만일 뿐입니다. 우리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기 이전부터 유산유도제 도입의 필요성을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러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로도 문재인 정부는 법 개정을 핑계로 약물임신중지 시행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는 전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뿐만아니라,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임신중지 허용이라든지 상담 의무화 절차를 통한 허용 등과 같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정부입법예고안이 그대로 의결되었습니다.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법은 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법안입니까.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이후로 사회적 논의를 위한 노력을 단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있단 말입니까. 여성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이 걸린,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권리와 연결된 이 법안이, 2020년 12월 31일을 목전에 두고서 밀린 숙제를 하듯이 이렇게 졸속적으로 개정되어야 하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그 말씀의 진정성은 낙태죄 관련 법 개정의 향방에 따라 최종적으로 평가가 될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낙태죄를 폐지하십시오. 권리를 보장하십시오. 대한민국의 절반, 여성의 경고를 엄중히 새겨들으십시오.


참담한 와중이지만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정부입법예고안 발표 이후 이를 규탄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청와대 앞으로 모이고 또 모인, 전국적으로 퍼지고 또 퍼진 공동행동으로 우리는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낙태죄 없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그 누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바로 우리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간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또한 정부의 입법예고안이 발표된 이후 이를 대체할만한 대안적인 법안들이 발의되었습니다. 정부가 후퇴안을 발표하기 이전에 국회에서 그 역할을 충실하게 임하기를 바라왔지만,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국회의 시간입니다. 남은 국회 회기 동안 임신중지 여성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가 아니라 임신중지 여성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국민의 지혜를 모아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국회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기 앞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안, 그리고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대표발의한 형법 및 모자보건법,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첫째, ‘낙태죄’를 전면 폐지했나? 권인숙 의원안과 이은주 의원안은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를 전면 삭제하는 법안을 발의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적극 지지합니다. 이제는 낙태죄와 정녕 이별하고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맞이해야 할 때입니다.


둘째, 임신중지를 권리로 명시했나? 권인숙 의원안과 이은주 의원안은 모두 인공임신중단에 관한 자기결정권 조항의 신설을 통해 임산부가 임신중지 여부를 허용주수나 사유 제한없이 충분한 정보 제공과 지원을 받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권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임신중지의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권리로 정의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정확히 부합하는 방향입니다. 나아가 이은주 의원안의 경우 ‘모자보건법’이라는 법제명을 ‘임신·출산 등과 양육에 관한 권리보장 및 지원법’으로 개정하였습니다. 여성의 임신출산만을 모성으로 규정하고 여성의 의무로 규정해왔던 법안에서 여성의 임신 출산 유산 사산 인공임신중단 모두를 모성으로 정의하고 권리보장의 법으로 역사를 새로 쓰는 시도를 우리는 적극 지지합니다.


셋째, 국가가 권리보장을 책임지는가? 권인숙 의원안은 문재인 정부안이 기초하고 있는 ‘처벌과 허용’ 프레임을 넘어서, 재생산건강과 의료접근권 등 ‘권리보장’을 위한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수술뿐만 아니라 약물에 의한 방법으로 인공임신중단 방법을 확대하고, 모든 국민에게 피임, 월경, 임신출산, 인공임신중단 등에 대한 안전하고 정확한 보건의료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규정하였습니다.

이은주 의원안 역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생식건강, 성적 권리, 임신·출산 등과 양육에 대하여 생애주기에 따른 특성 및 욕구에 적합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하고, ‘장애유형과 특성, 나이, 언어, 인종 및 국적, 소득 수준 등으로 고려하여 모든 사람이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소위 ‘사회경제적 사유’등을 예외적 허용 조건으로 규정하여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방치하고 개인에게 입증 책임을 전가하는 대신, 국가의 권리보장 책임을 부여한 것입니다.


넷째, 다양한 지원 체계를 마련했는가? 권인숙 의원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지역재생산건강지원센터’를 설치하여 통합적인 피임·성교육 실시, 임신·출산 및 인공임신중단 등에 관한 종합적 정보제공 및 심리상담 지원 등 국민의 재생산건강 증진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였습니다. 인공임신 중단에 따른 의료비 지원 등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조항도 실질적인 접근성을 높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은주 의원안 역시 ‘임신·출산 건강안전센터’의 설치와 운영 조항을 신설하고, 특히 ‘임산부등의 지원’ 조항에서 ‘임산부등의 사회적·경제적·의료적 욕구에 따라 지원’한다는 방향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접근성을 낮추는 장벽은 없는가? 권인숙 의원안은 정보 제공 및 상담을 통제의 수단이 아닌 여성의 권리로 규정하고, 의사가 인공인신중단의 방식, 상담 및 지원 등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정부안이 여성에게 임신의 지속, 출산 및 양육에 관한 상담을 받게 하고 그때부터 24시간 동안 숙고해야 하는 의무를 규정하며, 의사가 개인의 신념에 따라 의료행위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실질적으로 임신당사자인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이 실현될 수 있도록 고려한 법안입니다. 이은주 의원안은 국가의 우생학적 인구관리 목적을 드러내 온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를 삭제하였으며, ‘선천성이상아’를 ‘선천성장애아’로 개정하고 ‘장애아의 발생예방’은 ‘장애아의 조기 발견’으로 개정하는 등 법률 전반에서 장애차별을 해소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함께 발의하여 임신중지를 한 경우에도 예외없이 유·사산 휴가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는 기존의 차별을 해소하고 접근성을 제약하는 문턱을 낮추는 법안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방향이 향후 ‘낙태죄’ 관련 법률 개정안의 의결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반영될 것을 촉구합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이제는 진정 국회의 시간입니다.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마련하십시오. 국회는 국가의 책무를 여성에게 전가하는 형법상 ‘낙태죄’를 완전히 폐지하십시오. 낙태죄 폐지 외에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각계 발언이 있었습니다.


최규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은 전세계에서 '낙태죄'가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한다고 밝힌 보건의학적 통계들을 짚고, 한국에서 '낙태죄'가 일제강점기부터 108년간 이어지면서 국가 정책에 따라 인구 통제를 위해 악용되어 온 역사를 비판했습니다.


각계발언 발언문 1. 낙태죄 전면 폐지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반의학적이고 반역사적인 개정작업을 중단하라.

최규진(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


낙태죄를 유지한 채 임신 주수와 사유에 따라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내용의 모자보건법·형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습니다. 이것은 반의학적이고 반역사적인 행위입니다. 그렇기에 의학과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먼저, 저는 낙태죄 폐지가 전제되지 않는 한, 어떠한 조건을 달더라도 여성의 건강권을 온전히 보장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미 오래전에 보건의학적 측면에서 여성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저해할 수 있는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 규정을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했습니다. 또한 통계분석을 통해 임신중지를 법률로 제한한다고 해서 임신중지 건수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안전한 임신중지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촉진하는 법률과 정책이 갖추어졌을 때 임신중지율과 임신중지 건수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임신중지에 대한 범죄화와 법적 제한은, 기술적으로 부족한 시술자에게 수술을 받거나 혹은 비위생적 환경에서 수술을 받게 함으로써 여성의 건강을 위협할 뿐입니다. 실제 신생아 출산 10만 건당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에 의한 임신여성 사망률을 보면 임신중지를 비범죄화한 국가보다 범죄화한 국가에서 훨씬 높습니다. 심지어 임신중지에 대한 제한을 없애면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에 의한 임신여성 사망이 줄어들 뿐 아니라 전반적인 임신여성의 사망 자체가 감소합니다.*


이것이 세계보건기구와 관련 연구소가 지금까지 수십년간 전세계 국가들의 데이터를 모아 분석한 결과입니다. 그렇게 빅데이터를 떠드는 정부가 이렇게 확고한 빅데이터를 무시하고 낙태죄를 존치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낙태죄가 유지되는 게 여성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의학적 증거, 하다못해 임신중지율이 줄어든다는 통계학적 증거가 하나라도 있다면 제시해보십시오. 도대체 보건복지부는 뭐하는 곳입니까? 어떻게 이런 법안을 개정안이라고 내놓을 수 있는 겁니까? 법무부는 그 막강한 힘을 이런 데 안 쓰고 뭐하는 겁니까?


낙태죄가 존재하는 한 언제든지 여성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10년 전 우린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마치 낙태죄가 사문화된 것인양 눙치다가, 결국 이명박 정권이 저출산 대책이랍시고 ‘낙태 줄이기’를 추진했고, 급기야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등장하면서, 하루아침에 낙태죄가 서슬 퍼렇게 존재를 과시했습니다. 그 당시 제때 적절한 임신중지 수술을 받지 못해 수많은 여성들이 고통받고, 심지어 사망까지 이르렀던 안타까운 사건들을 우리는 목도해야 했습니다. 그 역사가 우리 기억 속에 이렇게 생생한데, 어떻게 낙태죄를 유지하는 법안을 개선안이랍시고 내놓을 수 있는 겁니까?


여러분, 우리는 역사적인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낙태죄로 여성들이 고통받은 역사가 1948년부터인가요? 아닙니다. 사실상, 1912년 일제강점기때 조선형사령에 의해 일본의 낙태죄가 조선에 적용된 게 여태까지 유지돼 온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108년만에 겨우 낙태죄에서 해방될 수 있는 상황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이렇게 도루묵을 만들다니요. 사회경제적 사유가 들어가면 다 된 건가요? (사회)경제적 사유는 일본에선 이미 1948년 우생보호법을 만들 때 들어갔던 조항입니다. 한국은 25년이나 지나 그 낡은 일본의 우생보호법을 베꼈는데, 그걸 베끼면서도 사회경제적 사유 조항만 쏙 빼놓고 모자보건법을 만들었습니다. 그걸 이제와 겨우 보완하는 게 과연 개선입니까? 아무리 사회경제적 사유가 들어가도 그 모호함 때문에 언제든 낙태죄에 의해 2010년과 같은 사태를 맞을 수 있습니다. 실제 (사회)경제적 사유를 70년 넘게 두고 있는 일본을 보더라도 낙태죄로 고발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일본변호사협회에서도 1993년부터 줄곧 낙태죄 폐지를 요구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성가족부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게 정말 최선입니까?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그토록 망신을 당해왔으면서 부처간 협의에서 몇 마디 한 걸로 손 터시려는 겁니까? 2011년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한국 정부에 “여성 재생산 건강권에 대한 우려에서, 형법상 낙태죄에서의 여성 처벌 조항을 개정하고,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로부터 보호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2018년 유엔본부에서 열린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도 “한국은 낙태죄 문제를 오래전부터 권고받았음에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호되게 질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매번 망신을 당해놓고 어떻게 이 개정안이 통과되는 걸 보고만 있습니까?


이번 개정안을 추진하는 정부 관계자분들께 정말 묻고 싶습니다. 낙태죄를 무마시키기엔 어림없는 사회경제적 사유 하나 앞세워, 주수를 제한하고, 상담·숙려기간을 의무화하고, 의사 거부권까지 집어넣은 이 개정안을 정말 개선안이라고 보는 겁니까? 낙태죄가 존재하는 한 그 어떤 걸 갖다 붙여도 개선안이 될 수 없습니다. 반쪽짜리 법안이라고요? 저는 그 말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낙태죄의 유무가 임신중지와 관련된 여성 건강권과 자기결정권의 기본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번 기회에 낙태죄를 없애지 못하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모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 다음 세대가, 그렇게 힘들게 싸워서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까지 받아냈는데 어떻게 낙태죄가 남아있는 거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역사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누더기 개정안을 내버려둬선 안 됩니다. 낙태죄 전면 폐지 외에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 임신중지와 관련된 전세계의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는 다음과 같은 문헌에 잘 나와있다. WHO. 『World Health Report 2008 – primary health care: now more than ever』. 2008.; WHO. 『Women and health: today’s evidence, tomorrow’s agenda』. 2009.; Safe abortion-technical and policy guidance for health systems Second edition, 2012.; Gilda Sedgh, et al. “Abortion incidence between 1990 and 2014: global, regional, and subregional levels and trends”, 『LANCET』 Volume 388 No.10041. 2016

** 日本弁護士連合会, 刑法と売春防止法等の一部削除等を求める意見書, 2013年6月21日


두번째 발언으로 장은지 시민건강연구소 활동가는 임신중지가 여성의 필수 의료서비스임을 강조하며, 국가가 권리 보장을 위해 논의해야 할 세 가지 과제를 제언했습니다.


각계발언 발언문 2.


장은지 (시민건강연구소 활동가)

안녕하십니까 시민건강연구소 장은지입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안전한 임신중지가 여성의 재생산권리를 보장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의료서비스라고 천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방역과 의료선진국을 자부하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여성의 필수 의료서비스인 임신중지를 보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무지한 남성 파트너의 비협조로 적극적인 피임을 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원치 않는 임신이 되었을 때에 물질적, 정서적 지지의 공백을 홀로 감내해야 했습니다. 또,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중지가 불법인 상황에서 의료이용에 도달하기까지 충분한 정보제공, 상담, 부담 없는 비용과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은 요원했습니다. 이와 같은 접근성의 장벽 때문에 더 많은 피해를 입는 이들은 역시나 여성 청소년, 장애여성, 이주 여성과 같은 사회적 취약계층이었습니다. 의학적 보호와 사회적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이 약자의 고통으로 오롯이 전가되고 있는 것입니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한 결과였으며, 여성의 신체와 건강에 대한 권리뿐 아니라 교육, 노동, 의료, 사회복지 등 포괄적 성과 재생산 권리보장을 위한 첫 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임신중지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고, 낙태죄 존치 실효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조차 부재한 정부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낙태죄 관련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대해 시민건강연구소에서는 다음 과제를 제언합니다. 첫째, 숙려기간 의무화가 아닌 포괄적 서비스 연계와 지원을 요구합니다. 불가피하게 임신중지를 필요로 하는 여성에게 불필요한 절차와 대기 기간을 강제하는 것은 안전한 임신중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만 늦출 뿐, 여성 건강 보호에 아무런 안전장치가 되지 않습니다. 상담은 여성의 선택에 의한 것이어야 하며, 임신유지와 출산에 대한 정보와 동등하게 안전한 임신중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생식건강과 관련된 상담 뿐 아니라 의료, 복지, 교육 서비스 연계를 포함하는 종합적 보호조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둘째, 외주화된 하향적-수직적 보건 사업이 아닌 전문성과 권한을 갖춘 공공의료 인프라와 인력을 요구합니다. 시설과 인력 지원없이 보건소 또는 비영리기구에 설치되는 ‘종합상담기관’은 위기 임신 지원 역량은 부재한 채 상담확인서만 발급하는 절차적 장벽으로 작동할 것입니다. 적시에 위기에 개입하고, 필요한 자원을 연계할 수 있으며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여성의 의사결정을 돕는 기관의 역할을 다하도록 민간이 아닌 공공의 영역에서 지속성 있는 사업을 시행해야 합니다.


셋째, 보건복지부의 적극적인 책무를 다할 것을 요구합니다. 더 이상 소극적이고 유보적인 입장에 머물지 않고 임신중지라는 필수보건의료서비스를 보장하는 일이 보건복지부 본연의 업무라는 인식을 가져야합니다. 또, 임신중지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지식, 사회문화적 낙인과 차별을 보건복지부가 앞장서서 개선해야 합니다. 안전한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모든 여성들에게 형평하게 제공될 수 있도록, 인구통제가 아닌 여성의 경험과 관점에서 전면적으로 정책과 제도를 개편하십시오. 가장 효과적인 낙태예방책은 처벌과 억압이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을 방지할 수 있는 피임 교육과 피임 접근성의 강화입니다. 근거를 기반으로,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어 선진국의 보건부 장관들처럼 여성을 의학과 역사의 진보로부터 소외시키는 소모적인 낙태논쟁을 끝내십시오. 피임과 임신중지 보장이 곧 여성건강 보장이며, 여성건강 보장이 곧 국민건강 보장입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앎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겸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의견서를 요약, 발췌하여 정부의 '낙태죄' 입법예고안에 포함된 '상담의무 및 숙려기간'의 문제점을 비판했습니다.


각계발언 발언문 3.

앎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안녕하십니까, 저는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이자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인 박아름입니다. 오늘 기자회견에서 저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 입법예고기간에 법무부와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의견서 내용을 요약·발췌하여 발언하고자 합니다.


'낙태죄' 관련 정부의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과 허용' 이원화 체계를 유지하고, 주수와 사유라는 임의적인 기준으로 국가가 국민의 성과 재생산을 통제하고자 합니다. 특히 정부 개정안은 예외적인 허용 사유 중 '사회경제적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여성에게 상담의무와 숙려기간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담 의무와 숙려기간은 의료접근권을 제한하고 임신중지를 불필요하게 지연시킵니다.


정부 개정안은 상담기관의 설치·운영·지정 및 상담사실확인서 발급을 필수로 따라야 하는 강행규정이 아닌 '할 수 있다'라는 임의규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상담기관이 설치 또는 지정되지 않거나, 상담기관에서 임신중지에 필요한 상담을 제공하지 않거나 상담사실확인서를 발급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한정된 인력과 예산으로 임신·출산·임신중지 등 다양한 욕구를 가진 수혜자를 대상으로 각종 업무를 수행하는 상담기관이 과연 법적으로 의무화된 상담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임신중지 허용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여성들은 서비스 제공 여부를 알 수 없는 상담 기관과 의료 기관을 전전해야 하며, 그로 인해 임신중지가 지연되는 부담과 위험은 개인이 져야 합니다.


또한, 상담기관 및 의료기관의 근무일, 운영시간 등을 고려하면, 여성들은 상담기관에서 상담을 받고 숙려기간을 채운 다음 의료기관에서 임신중지를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실질적으로는 숙려기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입니다. 여성이 학교나 직장에 다니고 있는 경우, 다른 자녀를 돌봐야 하는 경우,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상담기관 및 의료기관이 없거나 현저히 적은 경우, 상담기관 및 의료기관에 방문하기 위한 교통편이 취약한 경우, 관련 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는 경우 등에는 임신중지 시기가 더욱 늦춰질 수 있습니다.


임신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연속적 발전과정에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상담의무 및 숙려기간으로 인해 의료접근권이 제한되고 임신중지가 불필요하게 지연될수록 여성의 건강권은 심각하게 침해됩니다. 형법 입법예고안처럼 처벌조항과 주수 제한이 있는 경우에는 순전히 행정적인 이유로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할 수 없게 될 위험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정부 개정안에 따르면, 상담의무 및 숙려기간은 사실상 원치 않는 출산을 종용하려는 목적으로 규정된 독소조항입니다.


정부 개정안은 “임신한 여성이 임신의 지속, 출산 및 양육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숙고”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임신중지에 필요한 상담이지만 정작 임신의 종결에 관한 정보는 상담 내용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임신의 지속, 출산 및 양육에 편중된 정보를 제공하여 특정한 선택을 유도하고자 하며, 임신중지에 대한 책임은 여성이 “스스로 결정”했다며 개인에게 돌리고자 하는 의도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담의무 및 숙려기간은 여성의 임신중지 결정을 돌이키거나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는 데 아무런 실효성이 없습니다. 2015년 프랑스는 “여성은 의사에게 임신중지를 요청하러 가기까지 이미 충분한 숙려를 했을 것이며, 숙려기간은 여성을 불필요하게 더 고통스럽게 할 뿐이고, 오히려 숙려기간을 거치면서 임신중지 시술이 더 어려워지고 비용도 더 많이 들게 된다”라는 이유로 숙려기간 규정을 폐지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임신중지에 관한 법과 정책은 여성의 건강권과 인권을 보장해야” 하며, “안전한 임신중지를 제때 제공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규제나 정책, 제도적 장벽은 제거해야 한다.”라고 권고했습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유엔 자유권위원회, 세계산부인과학회 등 여러 국제기구도 상담의무, 숙려기간 등을 철폐하도록 거듭 권고해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상담의무 및 숙려기간은 사실상 모든 여성에게 강요될 우려가 큽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임신중지를 상담·지원해온 사례들을 고려해 보면, 상담의무 및 숙려기간은 안 제270조의2 제2항 제3호에 따른 ‘사회경제적 사유’ 뿐만 아니라 사실상 모든 여성에게 강요될 우려가 큽니다. 현행 법체계에서도 성폭력 피해자들은 「모자보건법」상 임신중지 허용요건인 ‘강간 또는 준강간으로 인한 임신’임을 입증하기 위해 성폭력상담소의 ‘상담사실확인서’나 경찰의 ‘고소사실확인서’ 등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낙태죄’가 존치되는 한, 의료기관은 처벌 위험성을 원천 차단하고자 여성에게 법이 가장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는 절차에 따라 상담의무 및 숙려기간 요건을 채우도록 요구할 것입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상담기관, 의료기관, 주변인 등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실제로는 ‘범죄행위로 인한 임신’이라도 ‘사회경제적 사유’를 주장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서도 모든 사유에 대한 상담의무 및 숙려기간에 반대합니다.


이처럼 저희 상담소를 비롯해 수많은 시민사회단체가 강력한 반대 의견을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철회하지 않고 끝끝내 국무회의에서 의결했습니다. 여성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는 정부의 태도에 대단히 유감스럽고 분노를 느낍니다.


이제 열쇠는 국회로 넘어갔습니다. 현재 국회에는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고 국민의 권리 보장을 강조하는 권인숙 의원안, 정의당 이은주 의원안 등이 발의된 상황이고,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10만 명의 동의로 성립된 < 낙태죄 전면 폐지와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에 관한 청원>도 소관위로 회부된 상황입니다. 국회는 여성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낙태죄’ 폐지 법안을 책임 있게 논의하기 바랍니다.


형법상 ‘낙태죄’는 전면 폐지돼야 하고, 앞으로는 여성의 성·재생산권, 결정권, 건강권, 안전한 의료서비스 접근권 등을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안이 논의돼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의견서 전문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형법 입법예고에 관한 의견서

http://www.sisters.or.kr/load.asp?sub_p=board/board&b_code=2&page=1&f_cate=&idx=5698&board_md=view

▶️ 모자보건법 입법예고에 관한 의견서

http://www.sisters.or.kr/load.asp?sub_p=board/board&b_code=2&page=2&f_cate=&idx=5663&board_md=view



각계 발언을 마친 후에는 피켓 퍼포먼스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국회가 '낙태죄' 관련 법 개정을 논의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다섯 가지 질문을 담은 피켓을 높이 들어올리고 낭독했습니다.


- '낙태죄' 전면 폐지했나?

- 임신중지를 권리로 명시했나?

- 다양한 지원 체계 마련했나?

- 국가가 권리 보장 책임졌나?

- 접근성 낮추는 장벽은 없나?


마지막으로 향후계획 발표와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후 기자회견을 마쳤습니다.


모낙폐는 앞으로 오는 12월 1일부터 한 달 간 낙태죄 완전 폐지 및 대안입법을 촉구하는 국회 앞 1인시위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후 국회일정에 따른 의원압박 캠페인 및 대중행동(추후공지)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한편 지난 청와대 앞 기자회견 등에 대해 소환조사로 답하는 문재인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오는 12월 2일 낮 12시30분 종로경찰서 앞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기자회견은 온라인으로도 실시간 중계되었는데, 다시보기 영상을 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 모낙폐 유튜브를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