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 변화
보궐선거 다음날인 4월 8일,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에서는 서울시장 당선자에게 ‘ 평등을 대/차/게/ 집/요/하/게/ 끝/까/지 촉구’ 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재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이유인 위력성폭력사건을 직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성평등 정책과 서울시 직장 내 성폭력/성차별 문제 해결방안이 실종되었던 보궐선거를 규탄하고, 그럼에도 우리의 목소리를 통해 당선자에게 다시 한 번 성평등한 서울을 촉구하기 위해 기획한 기자회견입니다.
기자회견의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사회자 : 김다슬_한국여성의전화 인권상담소 정책팀장 ★ 발언 1) 서울 시민, 페미니스트 유권자로 4.7 보궐선거 되돌아보다 _김은화 (페미니스트 서울시민,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2) 총평 : 보궐선거 핵심은 젠더이슈였다. 두당만 빼고 _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3) 서울시 여성노동자의 안전하고 평등한 일터를 위하여 당선자에게 고하다 _밍갱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
4) 성평등정책=보호? 보호주의 관점의 여성정책을 중단하라 _윤김진서 (유니브페미 대표)
5) 성평등한 서울! 이제는, 반드시, 성평등 정책 실현하라! _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 퍼포먼스 <성평등, 시민의 목소리로 광장을 채우다> |
첫 번째 순서로, 페미니스트 서울시민이자 한국여성민우회 회원인 김은화님이 “서울 시민, 페미니스트 유권자로 4.7 보궐선거 되돌아보다”라는 주제로 이번 보궐선거에 대한 소회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은 정쟁의 도구로만 활용될 뿐, 약자는 정책의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했던 보궐선거를 규탄하는 발언을 해주셨는데요. “어제는 무력하게 투표했지만 오늘부터는 힘내서 뭐라도 말할 것입니다”라는 마무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서울 시민, 페미니스트 유권자로 4.7 보궐선거 되돌아보다
김은화 (페미니스트 서울시민,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안녕하세요, 김은화입니다. 저는 서울 시민이자 페미니스트, 여성 민우회 회원으로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유권자가 된 이래로 이렇게 무력감을 느낀 선거는 처음입니다. 이번 서울, 부산 보궐선거는 지자체장의 성추행으로 치뤄진 선거입니다. 그러나 제가 사는 서울시의 두 유력 후보는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에 대해 제대로 토론 한번 벌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부동산 투기였습니다.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으로 시작해 내곡동, 도쿄아파트, 생태탕에 이르기까지 부동산으로 시작해 부동산으로 끝난 선거라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 오세훈 후보가 당선되었으니 공언한 대로 서울 곳곳에서 재건축․재개발이 시작되겠죠. 땅 주인은 환영하고 세입자는 쫓겨날 것입니다. 억대의 분양가를 마련하지 못하는 무주택자는, 정책의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되기는 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 과연 특수한 사례일까요? 여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도 업계 동료로부터 성추행을 당해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 역시 직장에서 교수, 활동가, 번역자 등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여성에게 안전한 일터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지현 검사, 김지은 씨, 장혜영 의원, 박원순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에게 일어난 일을, 나의 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이 존중받지 못한다면 우리도 존중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이 회복되지 않으면, 우리도 회복되지 않은 것입니다. 위력에 의한 성범죄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조직문화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를 타파하고, 2차 가해를 막고, 피해자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 후보가 있었습니까? 군소 후보들은 성평등 정책을 제안해도, 정작 거대 양당의 후보는 박원순 성추행 사건을 정쟁의 도구로만 활용할 뿐, 이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은 내놓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은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열 때까지 말뿐인 사과 외에 9개월 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습니까? 오세훈 당선인은 이렇다 할 성평등 공약조차 내놓지 않았습니다. 청년활동가 네트워크가 보낸 성평등 관련 질의서에 대해 오세훈 캠프의 이준석 뉴미디어본부장은 “시대착오적인 페미니즘을 강요하지 말라”고 밝히기도 했죠. 그랬던 오 당선인이 “박원순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가 업무에 복귀할 수 있도록 잘 챙기겠다.”고 말합니다.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지만,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기를 바랍니다. 여성을 과연 동등한 시민으로, 동료로 대하는지 끝까지 지켜볼 것입니다.
이번 4.7 보궐선거에서는 무주택자, 여성, 성소수자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사퇴한 안철수 후보가 퀴어 축제를 보지 않을 권리를 운운한 뒤로 세 분의 성소수자가 목숨을 끊은 게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오세훈 당선인이 입을 다문 것도 다 의도된 일이었겠지요. 그러나 기억해주십시오. 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은 언제고 목소리를 내고 맙니다. SNS가 됐든, 투표소가 됐든 광장이 됐든 말입니다. 어제는 무력하게 투표했지만 오늘부터는 힘내서 뭐라도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기자회견장에 섰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번째로는 “총평: 보궐선거 핵심은 젠더이슈였다. 두 당만 빼고”라는 주제로 여성현실연구소의 권김현영님이 발언해주셨습니다. 권김현영님은 이번 선거에서 응당 주요 의제가 되어야 했던 성평등과 차별금지에 대한 의제들을 짚은 뒤, 보궐선거와 그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결국 이 목소리에 대한 외면이었음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또한 선거과정에서 오세훈 당선자의 태도나 오세훈 당선자 캠프의 정책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음을, 하지만 성평등 정책에 퇴행은 없어야 하기 때문에 1년 남짓의 기간동안 오세훈 서울시장의 행보를 꼼꼼히 지켜보겠다는 말씀으로 발언을 마무리해주셨습니다.
총평 : 보궐선거 핵심은 젠더이슈였다. 두당만 빼고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났습니다. 여기 모이신 분을은 이 선거가 치뤄진 이유를 알고 있으실 겁니다. 네 맞습니다. 이 보궐선거는 권력형 성범죄가 원인이 되어 치뤄졌습니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그게 무슨 권력형 성범죄냐며 볼멘 소리로 항의하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의 댓글을 읽고 왔습니다. 권력형 성범죄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지 전혀 업데이트가 되지 못한 결과,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지난 10개월여 동안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고 오늘의 선거결과는 그에 대한 응당한 심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알려진 권력형 성범죄는 그동안 알려진 권력의 모습, 성범죄의 양상과는 달랐습니다. 신체적 구속을 동반한 폭력이나 특권으로 착취를 정당화하며 강자의 기득권을 마음껏 휘두르는 권력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매일매일 보도되는 여성에 대한 잔인한 폭력과 불법촬영 유포 협박 등의 성범죄와도 달랐습니다. 서울시장의 선거를 치르게 된 권력형 성범죄는 일상적 권력에 대한 성찰없음을 토대로 이루어졌고 직장내 성적 괴롭힘이라는 뚜렷한 피해를 야기했습니다. 아마 그걸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었을 겁니다. 다시 말해, 권력형 성범죄, 직장내 성적 괴롭힘은 여성을 동등한 동료시민으로서 존중하지 않는 조직이라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성평등을 시대의 기본 상식으로 장착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을 것이고 또다시 이런 일은 반복될 것입니다. 인식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청에서 일하는 여성공무원들 협업해온 여성서울시민들을 펜스룰로 분리하는게 아니라 존엄하게 공존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그러나 성평등 정책에 대한 정책질의에 대답조차 하지 않고 성추행 의혹에 여자가 아예 없었다는 응답은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여성의 대표성과 의사결정구조에의 동등한 참여, 직장내 성적 괴롭힘에 대한 지원시스템과 조직문화에 대한 상시적 일상적 점검, 코로나 재난 상황에서 여성의 노동권과 돌봄절벽 문제, 디지털 성범죄 및 스토킹 방지 입법 이후 제대로 된 시행을 위한 플랜, 혐오와 차별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조례 등 이번 선거의 주요 의제가 되었어야 마땅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오세훈 캠프 정책에서 이런 정책은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양당정치에서 더욱 입지가 좁아진 군소후보들은 성평등과 차별금지를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단언컨대 이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질겁니다. 저는 이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바뀐 시정에서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외면이 이 선거를 만들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1년 남짓의 임기동안 오세훈 서울시장의 행보를 아주 꼼꼼히 지켜보겠습니다. 성평등 정책에 퇴행은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 번째로는 한국여성노동자회 밍갱 활동가가 “서울시 여성노동자의 안전하고 평등한 일터를 위하여 당선자에게 고하다”라는 주제로 발언해주셨습니다. 밍갱 활동가는 위력성폭력사건 피해자의 일상회복과 복귀를 위한 노동환경 조성, 서울시 내 잘못된 조직문화 및 성차별적 괴롭힘 관행 뿌리뽑기, 성평등 서울을 위한 구체적 대책 수립이라는 당선자에 대한 요구사항과 함께 당선자가 서울시의 모든 여성노동자에게 안전하고 성평등한 서울을 만들어가도록,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대차게, 집요하게, 끝까지 싸울 것임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서울시 여성노동자의 안전하고 평등한 일터를 위하여 당선자에게 고하다
밍갱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
선거 과정은 실망의 연속이었습니다.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으로 인해 치러지는 보궐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에 대한 고려와 성평등 서울을 만들어야 한다는 가치는 도무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은 단지 득표를 위한 정쟁의 도구가 될 뿐이었습니다. 주요 후보들의 공보물에서는 ‘성평등’, ‘성폭력 대책’과 같은 단어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젠더 이슈로 치러진 보궐 선거에서 젠더가 실종된 현실을 보며, 서울 시민들은 깊은 회의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당선자 또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따라서 당선자는 성평등 공약의 부재를 당선 이후에도 반복하여 서울 시민들에게 더욱 큰 실망감을 안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당선자에게 피해자의 안전한 복귀와 성평등한 서울을 만드는 일에 더욱 힘쓸 것을 요구합니다.
먼저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는 자신이 당선한 것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서울 시민들이 당선자를 선택한 것은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에 대한 심판이자,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성평등한 서울을 만들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특히 서울시민들은 오세훈 당선자가 선거 기간 동안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하던 것에 비해, 정작 당선자의 공약 어디에서도 성평등에 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 무척 큰 실망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오세훈 당선자는 이에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 할 것입니다.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은 박원순이라는 한 유력 정치인이 성폭력 가해를 한 사건이기도 하지만, 피해자가 몇 년 간이나 몸 담았던 직장에서 벌어진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건 이후 피해자에게 자행된 수많은 2차 피해들은 피해자에게 무척 큰 상처가 되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에게도 참담한 심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직장 내 성폭력과 성차별적 괴롭힘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서울시에서는 더 이상 이와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지난 1월 서울시 등 관계기관에 피해자 보호 및 재발방지를 위해 개선 권고를 결정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서울시 내의 잘못된 조직문화와 성차별적 괴롭힘 관행을 개선하라는 요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직장 내 성폭력이 다름 아닌 조직 내의 성차별/성폭력적 관행과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라는 점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직장 내 성폭력은 성차별적 괴롭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사라질 수 없습니다.
당선자는 이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서울시 내에서 잘못된 관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서울시는 이미 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대책을 마련하였고, 인권위 권고를 수렴하여 성평등 노동 실현을 위한 대책을 수립한 바 있습니다. 당선자는 수립된 대책들이 서울시 안에서 더욱 강화된 형태로 이행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시장의 성폭력으로 인해 치러진 보궐선거 당선자의 제 1 사명이자, 성평등한 서울을 꿈꾸는 서울시민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길일 것입니다. 또한, 당선자는 이러한 일이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현실의 문제라는 점을 알고, 서울시가 여성 노동자들에게 보다 안전하고 성평등한 도시가 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에 당선자에게 요구합니다.
첫째, 당선자는 명확히 피해자의 편에 서서 피해자의 회복을 돕고, 피해자가 안전하게 복귀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들어라.
둘째, 당선자는 서울시 내의 잘못된 조직문화와 성차별적 괴롭힘 관행을 뿌리뽑아라.
셋째, 당선자는 모두에게 성평등한 서울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수립하라.
당선자가 서울시의 모든 여성 노동자들에게 안전하고 성평등한 서울을 만들어가도록,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대차게, 집요하게,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윤김진서 유니브페미 대표가 “성평등정책=보호? 보호주의 관점의 여성정책을 중단하라”는 주제로 발언해주셨습니다. 윤김진서 대표는 여느때보다 많은 여성 후보가 출마하고 성평등 공약을 제시하는 와중에 거대 양당 후보들은 여성을 분리하고 보호하는 공약만을 내놓았던 점을 비판하면서 정치가 삶의 문제가 되고 성평등이 상식이 될 때까지 ‘지독하게 나대고 싸우고 오지랖 부릴’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성평등정책=보호? 보호주의 관점의 여성정책을 중단하라
윤김진서 (유니브페미 대표)
안녕하세요,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의 대표 윤김진서입니다.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가해와 궐위로 인해 치뤄진 이번 보궐선거는 그 시작부터 젠더와 평등 의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2,30대 페미니스트들이 이제는 정말 성평등한 서울이 절실하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 후보들이 출마하고 성평등 공약을 제시하는 와중에 거대 양당은 여성을 분리하고 보호하는 공약만을 내놓았습니다. 여성주의 감수성을 지닌 후보들의 공약과 비교해보니 그 수준은 더 처참했습니다. 거대 양당 후보들이, 그리고 서울시장 당선자가 안전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남녀 공용 화장실을 완전히 분리한다고, 여성이 탄 택시의 실시간 이동 경로를 ‘보호자’에게 전송한다고, 경비원과 CCTV, 긴급벨을 더 많이 배치한다고 여성이 안전해집니까? 대체 왜 여성의 이동 경로를 ‘보호자’가 확인해야 합니까? 여성이 집까지 가는 길을 경비원과 CCTV에게 감시당해야 합니까? 이 공약들은 여성들을 따로 분리해서 감시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여성의 안전은 ‘보호’를 명목으로 여성을 남성으로부터 분리하고, 가부장이나 공권력으로 하여금 감시하게 한다고 보장되지 않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애초에 왜 여성이 혼자 택시를 타거나 골목길을 걷거나 늦은 시간에 집에 가는 것이 위험한 일이 되었는지 고민해본 적이 있는지 의심이 듭니다.
저는 1인 가구 여성입니다. 소위 말하는 잘 사는 동네에 살지도 않고, 보안이 철저한 비싼 집에 살지도 않습니다.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 집에 갈 때면 불안하고,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누군가 골목에 서있으면 괜히 기다렸다 들어가거나 길을 빙 돌아갑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한 쪽 이어폰을 빼고 걸어야 한다, 친구와 통화를 하면 된다는 말이 조언처럼 나옵니다. 하지만 항상 결론은 같습니다. 내가 내 집 가는데 왜 이렇게 벌벌 떨어야 해? CCTV 50대가 내 귀갓길을 비추고, 전담 경찰관이 내 뒤를 봐주면 내 불안은 사라질까요? 아닙니다. 여성이 겨우 귀가 하나 하는 데에 별개의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말 자체를 의심해야 합니다. 제가 제 집 가는데 벌벌 떨지 않으려면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으리라는 확신, 이 길을 지나는 누구도 나를 ‘그래도 되는 사람’으로 보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안전은 평등에서 시작합니다. 이 문제의식이 당선자에게는 철저하게 결여되어 있습니다.
보호는 억압의 다른 이름입니다. 여성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을 보호하고 감시하지 마십시오. 그 정성으로 공공기관 성폭력을 해결할 방법을 찾고, 모든 교육과정에 포괄적 성교육과 인권 교육 도입해서 여성을 동료 시민으로 인식하게 하십시오. 여성의 안전이 왜 위협받는지 근본적으로 고민하십시오. 여성이 안전한 도시는 여성의 귀가에 수천가지 기술과 기계, 보호자가 달라붙어 관여하는 곳이 아니라, 여성이 언제든 어디에든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평등해야 안전하고, 안전해야 평등합니다. 안전에 대한 썩은 패러다임은 좀 버리고, 배우고 고민해서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으십시오.
사실은 비참합니다. 공공부문 성폭력에 대응하는 공약 하나, 여성의 안전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하나 없는 후보가 ‘정권 심판’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서울시장이 되었다는 사실이, 2016년부터 끈질기게 해왔던 안전과 평등에 관한 이야기를 2021년이 되도록 지겹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 비참합니다. 나의 삶은 재개발이나 투기가 어떻게 된다고 바뀌지 않는데, 더불어 민주당이 정권을 잡든 국민의 힘이 정권을 잡든 나아지는 거 하나 없는데. 친문 반문 아니면 쳐주지도 않는 이 정치가 저를 매번 비참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독하게 나대고 싸우고 오지랖 부릴 심산입니다. 정치가 삶의 문제가 되고, 성평등이 상식이 되도록 감놔라 배놔라 할 작정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여성들을, 페미니스트들을 모른 채 하고 흘러가던 거대 양당 그들만의 리그를 서서히 박살낼 것입니다. 서울시장 당선자는 당장 오늘부터 공존할 수 있는 평등한 서울을 고민하십시오. 그것이 서울시장 당선자로써 마땅히 해야 할 첫 단계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이 “성평등한 서울! 이제는, 반드시, 성평등 정책 실현하라!”는 주제로 발언해주셨습니다. 김혜정 소장은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 이후 서울시가 마련한 대책의 문제점을 짚는 동시에 오세훈 당선자가 피해자를 거론하며 “우리 모두의 아들 딸일 수 있다”라고 언급하며 내보인 문제점을 지적해주었습니다. 아들 같아서, 딸 같아서가 아니라 노동자이고 동료이고 사회구성원이기 때문에 인권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고 업무관계에서의 안전과 평등은 제도의 확립 및 실행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성평등한 서울! 이제는, 반드시, 성평등 정책 실현하라!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성폭력이 발생하고 피해자가 말하고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여지도록 하고 국가기관이 이를 조사하고 권고하게 하는 그동안의 시간은 쉽지 않았습니다. 서울과 부산에서는 성폭력으로 인한 보궐선거가 어제 있었습니다. 서울시는 그동안 2020년 12월 성차별 성폭력 특별 대책을 발표하고,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이후 대책 TF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4월 발표한 비서 업무 매뉴얼을 보면 겉옷 입혀드리기, 업무외 사적 연락, 사적인 심부름을 비서에게 ‘금지’ 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서가 한 게 아니라 상사가 요구하고 시키고 주변에서 해주길 바라며 그것을 업무로 만들어온 조직문화와 성차별적 분위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비서에게 뭘 금지시키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사의 부당한 행동을 통제하고, 조직 내 성차별과 성희롱, 부당 노동을 근절하고 감시하는 조직으로의 변화, 마음 놓고 신고하고 제대로 처리될 것을 믿게 되는 절차의 활성화, 모든 노동자가 존중되고 합리적으로 일할 수 있는 문화의 변화가 과제입니다.
어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는 당선자 발언에서 피해자를 거론하며 “우리 모두의 아들 딸일 수 있다” “피해자가 오늘부터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업무에 복귀해서 정말 업무에 열중할 수 있도록 잘 챙기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조직 내 성희롱 성폭력 피해자가 일상으로, 일로 잘 복귀하는 것은 반성폭력 법과 정책 제도의 목표이자 제대로 된 가동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바로 미터입니다. 조직 내 성폭력에서 기관장의 책무와 의지는 중요합니다. 조직 내 2차 피해와 잘못된 소문, 부당한 위계질서, 남성중심문화가 방치되면 피해자 보호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것에서 사회변화가 시작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아들 같아서 딸 같아서는 아니어야 하고 노동자이고 동료이고 사회 구성원이기 때문이어야 합니다. 딸 같아서 성희롱 한다는 가해자들의 변명도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입니다. 아들 같아서 특혜나 부당한 노동을 강요하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동료, 업무 관계에서의 안전과 평등이 보장되어야 하고, 제도와 실행에 따라서 이루어져 하는데, 업무가 아니라 가족관계로 이해해야 보호가 가능하다면 우리는 더이상 조직에 책임을 요청하기 어려워집니다.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은 비서의 채용, 업무 배치부터 성차별적으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챙기고 지원하는 어부가 중요하지 않은 일로 인식되고, 덜 중요한 일은 여성이 하고, 여성이 하면 덜 중요한 일로 인식되는 것이 성차별입니다. 반대로 특정일을 칭송하고 띄워주는 듯 하면서 특정 성별에게만 할당하면 그 역시 성차별이 될 수 있습니다. 성희롱 성폭력 문제제기를 하게 된 피해자는 평등하고 동등하고 존엄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 했습니다. 동등하게 존중받으며 일하고 싶다는 당연한 말을 하기 위해 너무 큰 위험과 희생을 겪어야 하는 사회는 더 큰 위험을 몰고 올 뿐입니다.
인권은 정쟁으로 소모되면 안됩니다.누가 시장을 하든, 가해자가 누구고 어느 위치이든 내가 겪은 부당한 일을 말하고 해결을 도모할 수 있는 조직과 사회가 필요합니다. 이 바탕에는 성평등이 있어야 합니다. 성평등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평등하지 못했던, 성차별과 성희롱이 만연하고 당연했던 사회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성권력이 성희롱을 하든 성차별을 하든 날 막지 말고 성폭력을 더 말하는 행위를 멈추고 피해자와 여성과 소수자들을 의심하라는 주장은 평등과 존엄사회에 대한 반대이자 퇴행이고 변화에 대한 거부입니다. 이는 우리가 나아온 방향과 완전히 다릅니다. 성평등한 서울! 이제는, 반드시, 성평등 정책 실현하라! 피해자들, 우리 이웃들, 서울시민은 성평등한 사회와 삶을 원합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서울시장 당선자와 서울시정에 성평등한 삶을 위한 모든 정책, 제도, 지침, 예산, 실천을 요구합니다.
발언을 모두 마친 이후에는 우리의 목소리를 담은 무지갯빛 피켓을 전시하고 함께 구호를 외치는 퍼포먼스를 하며 기자회견을 마쳤습니다.
“성평등한 시정을 원합니다.”
“성평등 없는 서울시에 못 산다!”
“성평등한 서울을 원합니다.”
“성평등이 핵심이다!”
“성평등, 성인지감수성.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이제는 바뀔 때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성폭력에 침묵하고 방관하는 정치인을 원하지 않습니다.”
“정치의 목표는 집권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서울시가 앞장서라!”
“성폭력을 성폭력이라고 말하는 시장이 되십시오.”
“당선자는 매일 매 시간 매 초마다 성평등을 되새김질하시길”
“성평등한 서울! 이제는, 반드시, 성평등 정책! 실현하라!”
“말이 아닌 행동하는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원합니다.”
“성평등 노동정책 실현하는 것이 서울시장이 할 일입니다.”
“위력에 의한 성추행·성폭력 해결책부터 제시하라!”
<이 글은 부설연구소 울림 주리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