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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 변화

성폭력 및 여성 인권 관련 법과 제도를 감시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법 제·개정 운동을 소개합니다.
[후기] 21대 국회토론회 ‘폭행협박에서 동의여부로 형법 제 297조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 쟁점과 정책' 후기
  • 2023-07-31
  • 1489



나는 피해자가 맞을까? 누가 죄인인가?


20대 국회토론회에서도 논의된 강간죄 개정, 2023년 7월 25일, 강간죄 개정을 위한 21대 국회 토론회가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다시 열렸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성범죄 처벌규정은 ‘정조에 관한 죄'라는 이름으로 부녀를 객체로 즉 여성으로 한정된 법으로 만들어졌었다. 정조*란 국어사전에서 ‘여자의 곧은 절개',  ‘이성관계에서 순결을 지니는 일'로 정의되어있다. ‘정조에 관한 죄'는 어떻게 보면 정조를 지키지 않은, 못한 죄로 아이러니 하게도 ‘정조를 지키지 못한 부녀자의 죄'로 이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피해자가 정조를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어떠한 상황, 폭행, 생명 위협 등이 있을 때 이를 죄로 인정한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아니었을 시 피해자는 오히려 죄를 지은 사람으로 여겨졌을것이다.

40여년이 지난 1994년, 1990년대 초 70,80년대 아동 성폭력 피해자, 친족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살해한 사건들이 공론화 되면서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었고 그 다음해에 ‘정조에 관한 죄'는 ‘부녀’에 한정짓지 않는 ‘사람’을 객체로 한 ‘강간과 추행의 죄'로 개정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5대 중범죄는 살인 / 강도 / 강간 / 절도 / 폭행 으로 구분된다. 일반 사람들이 강간에 대해 검색했을 때 볼 수 있는 형법의 문장이다.


형법 제297조(강간)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이 강간죄에서 이야기하는 폭행 또는 협박은 ‘최협의'일것을 요한다고 한다. 폭행과 협박은 정도에 따라 최협의 < 협의 < 광의 < 최광의 로 분류된다.*** 협은 陜 ‘좁을 협', 광은 廣 ‘넓을 광'으로 의미와 범위의 차이를 짐작해볼수 있다. 강간을 이야기하는 문장들에서 항거불능, 심신상실, 도망치지 못함, 반항할 수 없는, 꼼짝할 수 없는  등의 표현을 수없이 많이 보았다. 이런 단어와 문장들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를 입어도 자신은 이런 기준에 맞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신고를 망설이고 결국 포기하기도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할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친밀한 관계, 업무상의 관계, 장애를 가진 피해자 등에 피해자는 연락을 주고받았고, 내가 가해자와 자발적으로 만났다는 사실 등에 큰 죄책감을 가질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10년간 내가 피해자가 맞는지 피해자가 아닌지에 대해 위의 기준들에 빗대어 보며 판단해왔다. 나는 내가 피해자 같은데 법이 나를 피해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과 고통이 괴로웠다.


2018년 #mee too 미투운동은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 협박’이 아닌 ‘동의’여부로 바뀌어야 하는 필요성을 드러냈다.**** 단어 쓰임의 변화와 단어의 정의는 우리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단순 폭력에서 가정폭력, 학교폭력, 데이트 폭력은 사회적으로 특정한 공간이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력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인식시켜준다. 


‘강간죄 동의 여부'를 두고 가장(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이 없는 담론들 중 하나는 ‘이제 성관계 전에 계약서 쓰고 서명해야 하는거냐. 동의여부를 녹취해야한다.’ 와 같은 말들이다. 성관계도 인간관계이며 제안과 거절, 예의와 존중의 영역에 포함되는 것이지 않은가?


이번 토론회에서 좋았던 점은 발제를 통해 현상태를 명확히 볼 수 있었음과 동시에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김한균님과 서울중앙지방법원 김동현 부장판사의 실제 사건 조사 단계와 법원의 판결의 현 상황 및 인식 등을 토론을 통해 들어볼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판결들 중에는 최협의설과 함께 상황과 가해자, 피해자의 관계 등을 고려해 판결을 내린 사례들도 있다는 것. ‘동의/비동의’의 불분명한 정의로 우려되는 사항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적절할지에 대한 고민들이 공유되었다. 자료집에 인용된,


현장의 관점에서 이입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제도와 고통의 언어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제도가 고통을 이해하려면 더 오래 더 자주 당사자와 머리를 맞대는 길뿐. (이지혜, 책상물림은 쉽게 말하지, 한겨례신문 2022.09.08)*****


이 문장은 정말 공감이 갔다. 하지만 제도, 즉 국가는 고통의 당사자를 외면하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검토해보겠다. 고려해보겠다’는 대답 후에 슬그머니 삭제해버린다. 국가인권위원회 성차별시정과의 이수연님도 토론회에 참석하셨다. 이 토론회에 참석해야할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씀하시면서 조심스러운 답변과 국가가 어떻게 하고 있다는 내용을 이야기했다. 

아르바이트생이나 직원이 영업장에서 고객의 컴플레인이 있을 때 보통 상사(매니저님 등)에 여쭤보고 안내드린다고 전한다. 이 때 상사가 대답, 피드백을 안해주고 외면한다면 같은 요청사항이 계속 들어와도 직원은 속이 터질수밖에 없다. 무언가 극단적인 일이 발생해야만 국가는 사과와 수습을 하고 변화하려는 척 하다 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회적 인식과 함께 교육의 영역도 짚고 넘어가고싶다. 몇달 전 고등학생 당시 생활기록부(2010년즈음)를 보던 중 헛웃음이 나오는 부분을 발견했다. ‘성교육 및 순결교육’. 다른 학교들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성'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깨끗함과 깨끗하지 않음으로, 현재도 여전히 언급되는 것 같다. 20살, 성인이 되던 해에도 ‘성적자기결정권'이 뭔지, 가스라이팅, 그루밍이 뭔지 몰랐다. 지금 세대 아이들은 매체의 발달로 과거보다 사건 사고에 대해 알고있고 이야기 한다. 사람들이, 많은 세대가 사회문제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 목소리를 내는 점은 긍정적으로 생각된다. 안타까운 점은 가짜뉴스와 루머들, 범죄, 사건현장의 사진과 현장의 사진, 영상의 확산이다.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함께 울려퍼지는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가치관, 인지, 존중과 이해의 영역도 단단해야함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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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제처 국가법령 정보센터

***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sunsuseongin&logNo=220591056605

**** 21대 국회토론회 ‘폭행협박에서 동의여부로 형법 제 297조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 쟁점과 정책' 자료집 p.51

***** 21대 국회토론회 ‘폭행협박에서 동의여부로 형법 제 297조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 쟁점과 정책' 자료집 p.60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자원활동가 기자단 틈의 태현 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