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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 변화

성폭력 및 여성 인권 관련 법과 제도를 감시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법 제·개정 운동을 소개합니다.
음주에 의한 심신미약 양형인자에 대한 의견서

음주에 의한 심신미약 양형인자에 대한 의견서

성폭력 양형기준에서 ‘음주'는 ‘고려되어서는 안 되는 사유'로 명시되어야 합니다

■ 제출기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경기여성단체연합,경남여성단체연합,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부산여성단체연합, 전북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회, 기독여민회, 대구여성회, 대전여민회, 부산성폭력상담소, 부산여성사회교육원, 새움터, 수원여성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연구소, 여성사회교육원, 울산여성회, 제주여민회, 제주여성인권연대, 충북여성민우회,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포항여성회,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함께하는주부모임,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새세상을여는천주교여성공동체 , 전국성폭력상담소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 탁틴내일

■ 제출일자: 2009년 10월 26일

 

현황

• 가해자가 범행 이전에 술을 마신 정황은 범행의 우발성을 인정하는 주요 근거임.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이라는 표현이 거의 관용적으로 사용될 만큼 술과 우발성은 함께 어우러져 가해자의 책임을 가볍게 하고 있음.

• 조OO 사건의 법정형은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13세미만 강간 등 상해치상죄)임. 1심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택했으나 심신미약을 인정하여 감경된 양형 12년형을 선고함. 성폭력 가해자는 만취 상태였다고 주장하지만, 8세 아동인 취약한 피해자를 지목하고 사람의 눈을 피할 수 있는 화장실로 유인하는 등 계획적인 범행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일련의 행동을 하였음.

• 2008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성폭력 사건 유죄판결문 중 양형이유가 설시된 판결문을 고른 결과, 분석대상 사건 49건 중, 양형이유에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범행한 점’이 감경적인 인자로 표현된 사건은 모두 20(40.8%)건이었음. 판결문 상 피고인이 술을 마신 정황이 드러났는데 이를 감경적 인자로 설시하지 않은 사례는 단 1건(미리 흉기를 준비하고, 신고를 못하도록 나체사진을 찍은 점을 근거로 우발적 범행임을 인정하지 않음)에 지나지 않음.

• 위 분석사례 중 2건의 사례에서 법원은 술에 취해 피고인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는 주장을 배척하면서도, 양형이유에서는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범행한 점’을 감경적 인자로 설시함. 그 중 한 건은 문제된 범행 30분 전에 이미 다른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하고, 그 근처에서 또 다른 피해자를 물색하여 몰래 따라가다가 인적이 드문 곳에서 피해자를 끌고 가 강간하려한 사건이었는데 법원은 이를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았음. 또 다른 사건에서는 심신미약 판단 부분에서 피고인이 술을 2시간 정도만 마셨고, 연고가 없는 오피스텔에 들어가 문이 잠기지 않은 집을 물색한 점, 범행 이후 피고인의 행동 등을 판결문에서 자세히 언급하며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양형이유에서는 ‘피고인은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고’라는 모순된 판단을 함.

• 또 다른 특수강간 사건은 피고인들이 미리 클럽의 VIP 좌석과 호텔 객실을 예약하고 피해자들을 유인하여, 술에 취한 피해자들을 윤간하고, 피해자 핸드폰에 남겨진 자신의 전화번호를 삭제하기 위해 피해자의 핸드백을 절취하고, 판결 당시까지 피해자와 합의도 되지 않은 사건이었는데, 법원은 양형이유에서 ‘젊은 나이의 피고인들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적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을 감경적 인자로 설시.

문제점

• 피고인이 음주상태를 이유로 심신미약을 주장하면 재판부는 마땅히 주취상태가 심신미약을 인정할 만한 수준인지 정황을 종합적으로 면밀하게 판단해야 함. 그러나 면밀한 판단의 과정이나 전문적인 심리기법이 있지 않은 채, ‘음주-욕정-성' 통념에 기반하여 범행의 우발성을 손쉽게 인정하여 양형이유에 반영해 옴.

• 이처럼 모순적이고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가해자의 음주를 감경적 인자로 고려하는 것은, 술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우리 사회의 음주문화와 ‘성폭력은 성충동에 의한 것이다’라는 잘못된 통념에 법원이 결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임.

• 그러나 성폭력은 대체로 아는 관계 중 사회적 권력관계가 뚜렷한 관계(상사-부하직원, 선후배, 교사-학생, 성인-어린이, 양육자-피양육자 등)에서 발생하며 반복적/계획적으로 일어남. 이는 성폭력이 통제하지 못하는 성충동 때문에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취약한 상대에게 행하는 계획된 폭력행위라는 점을 설명함.

• 음주에 의한 억제할 수 없는 성충동이 성폭력 범죄의 원인이라면, 음주량이 많은 요일에 범죄 발생률이 높아져야 하나 실제로는 관계가 없음. 음주와 성충동이 성폭력 범죄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입증함.

제언

• 이처럼 성폭력 범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기존 우리사회의 편견과 왜곡된 통념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으며, 이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 이는 범죄자가 범죄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법과 처벌이 범죄를 예방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결과를 야기함.

• 다른 범죄와 달리 통념과 편견의 영향을 크게 받는 성폭력 범죄의 경우는 왜곡된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함.

• 성범죄 양형인자 중 ‘심신미약(본인 책임 있음)’은 ‘알코올, 약물 등의 복용에 의하여 심신미약 상태가 야기된 경우를 의미’하며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경우는 포함하지 않는다는 단서조항이 있음. 그러나 알코올, 약물의 복용 자체가 대체로 자의에 의한 행동이며 주로 범행을 용이하게 하고 죄의식을 약하게 하는데 이용됨.

• 영국의 성범죄 양형기준을 살펴보더라도 술에 취해 범행한 것은 (‘commission of an offence while under the influence of alcohol or drug') 오히려 가중요소로 규정되어 있음.

• 이에 아래와 같이 양형기준을 수정할 것을 제안함.

• 일반양형인자(감경요소) 중 ‘심신미약(본인 책임 있음)’ → 삭제

• 양형감경 시 고려되어서는 안 되는 요소 : 음주 상태→ 신설

 

<참고자료>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재검토한 성폭력 범죄 양형인자」, <뇌물/배임횡령/성폭력 범죄, 바람직한 양형판단기준을 말한다>, 이경환, 2008

「성폭력 범죄의 바람직한 양형 기준 : 통념과 편견을 넘어서」, <뇌물/배임횡령/성폭력 범죄, 바람직한 양형판단기준을 말한다>, 이윤상, 2008

「양형기준 : 살인, 뇌물, 성범죄, 강도, 횡령․배임, 위증, 무고」, 양형위원회, 2009.4.24 의결

성범죄 양형기준안 검토 의견서」, 한국성폭력상담소, 2009.1.30 발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