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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 변화

성폭력 및 여성 인권 관련 법과 제도를 감시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법 제·개정 운동을 소개합니다.
낙태한 여성을 기소한, 수원지검 안산지청을 강력 규탄한다!
  • 2010-10-18
  • 3010

낙태한 여성을 기소한, 수원지검 안산지청을 강력 규탄한다!

 

 

지난 10월,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임신 초기의 태아를 낙태한 혐의로 고소된 28세 여성을 기소처분하고 벌금형을 내렸다. 이로써 작년 하반기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낙태 시술 의사 고발로 시작된 한국 사회의 낙태 논쟁은 남편의 고발로 고소된 한 여성이 법적 처벌을 받는 것으로 절정에 치닫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 낙태로 고발된 여성과 의사에 대한 유죄 판결이 증가하고 있고 처벌의 수위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에서 낙태죄로 기소되는 일 자체가 적었고, 기소가 되더라도 선고 유예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인 추세이다. 지난 9월에도 울산지방법원에서 이혼하기 전 여성을 낙태한 혐의와 청소년을 낙태한 혐의로 한 의사가 징역형을 선고 받았고, 현재 한 남자가 자신의 옛 여자 친구를 낙태했다며 고발한 사건이 진행 중이다.

 

<임신․출산결정권을위한네트워크>는 이와 같은 현재의 한국 상황을 개탄하며,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사문화된 조항으로 존재해왔던 형법의 낙태죄를 새삼스럽게 강력히 적용해 시술 의사와 여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있는 한국 검찰과 재판부의 연이은 판결에 큰 우려를 표하는 바이다. 이와 같은 판결은 낙태 당사자 여성을 마녀 사냥식으로 비난하고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겠다는 발상에 불과하다.

 

많은 여성들은 자신들이 처한 개인적, 사회적, 경제적 맥락 속에서 낙태 시술을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낙인 등의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런 여성들에게 이처럼 또 다시 사법적 처벌을 가하는 것은 낙태를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 이중적 고통을 덮어씌우는 것에 불과하다.

 

이미 국제 사회에서는 1979년 UN 34차 총회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에서 여성의 인권과 건강권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각국의 법적 조항들을 폐지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후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에서는 여성의 재생산 건강이라는 관점에서 여성들이 안전하게 낙태 시술받을 권리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처럼 국제 사회에서 이미 낙태는 여성의 인권의 문제이자 건강권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OECD 20개 국 중에서 한국보다 낙태 시술이 어려운 나라는 멕시코와 아일랜드 단 두 국가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낙태 범죄화와 여성의 처벌은 결과적으로 여성들을 음성적 낙태 시술로 이끌고, 여성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다. 지난 세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불법 낙태 시술로 인해 매년 7만 명의 여성들이 사망하고 있다. 낙태 수술을 받은 여성을 처벌하는 판결이 늘어나면 한국 역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작년 프로라이프의사회 고발로 낙태 수술비는 몇 백만 원 대로 치솟았고, 해외 원정 낙태도 등장한 상태다. 또한 지난 6월에는 애타게 낙태 시술 병원을 찾던 한 여성이 낙태 시술 병원을 소개해주겠다는 한 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우리는 질문한다. 과연 낙태 범죄화와 여성 처벌 강화가 낙태를 줄이는 대책이 될 수 있는가? 여성들의 인권과 건강권을 현저히 침해하면서 낙태 단속을 강화하는 것을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인가? 여성의 상황과 의사에 상관없이 남편이나 연인의 의사에 따르도록 법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법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는가?

 

<임신․출산결정권을위한네트워크>는 다시 한 번 낙태 시술 여성을 처벌한 수원지검 안산지청의 기소처분을 규탄하며,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한 사회적․제도적 환경을 조성하기에 앞서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낙태의 책임을 묻는 이와 같은 처벌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는 바이다. 현재 낙태를 둘러싸고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이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고, 이미 낙태의 허용 조건을 확대하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이다. 처벌의 강화는 결코 낙태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여성의 재생산권과 건강권,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여성을 사회적 고통과 불법시술의 위험으로 몰아가는 이와 같은 사건은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10년 10월 14일

임신·출산 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

(다함께,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 사회진보연대, 여성주의의료생협(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 전국여성연대, 진보신당 여성위원회/성정치위원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