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 변화
2월 1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84단독 이수진 판사는 조oo 사건의 피해 아동과 그 어머니가 수사 과정에서 검찰의 잘못으로 받은 고통에 대한 국가 대상 손해배상청구를 인정하고 총 13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비록 일부 승소 판결이나, 국가가 성폭력 피해 생존자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이번 판결을 환영합니다. 이번 사건은 8세라는 어린 나이의 여아를 대상으로 한 무자비한 가해, 이후 수사 과정에서 반성이나 뉘우침은 전혀 없었던 가해자, 징역 12년이라는 가벼운 처벌과 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피해 당사자와 주변인 및 시민들이 분노하고 좌절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중에 수사과정에 관련된 수사관 및 공무원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이번 판결은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중요한 계기로 다가옵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성폭력 사건에 의해서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사건처럼, 가해자가 지속적으로 혐의를 부인하고 변명할 때, 수사 기관에서 정말 성폭력을 당했는지를 의심하고 추궁할 때, 재판부에서 피해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미약한 처벌을 내릴 때 성폭력으로 인한 상처는 더 깊게 남습니다. 이러한 피해에 대하여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여성인권단체에서 ‘2차 피해’로 명명하고, 구체적으로 ‘성폭력 피해로 발생하는 직접적인 신체적·정신적 후유증 이외에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에 의해 피해 생존자가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거나 피해생존자 스스로 심리적인 고통을 겪는 것’으로 정의하였습니다. 아울러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2차 피해의 사례를 알리고 관련 법 개정 운동을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피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피해자를 오후 늦은 시간에 검찰로 소환해서 조사를 강행하고자 하여 피해자가 추운 저녁에 외출을 감행했다가 택시를 잡지 못해 오랜 시간 추위에 떨다가 끝내 검찰 출석을 포기해야만 했었습니다. 또한 검찰 조사에서 담당 검사의 비디오 녹화기 조작 미숙으로 피해 아동이 4번씩이나 진술을 반복해야 조사 받는 과정을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인상착의가 재판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판 검사가 이에 대한 증거가 담긴 씨디를 뒤늦게 제출하여 피해자가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폭력 관련 법률에서 전담 검사제를 규정하여 수사 및 재판을 신속히 진행하도록 하여 피해자가 성폭력의 고통으로부터 가능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에서는 검찰이 중요한 증거자료를 뒤늦게 제출하여 불필요하게 법정공방 과정을 지연시킴으로써 피해자의 심리적 고통을 가중시킨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매우 유감입니다.
성폭력 피해로 인한 억울함과 부당함을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을 통하여 해결하고자 경찰에 신고하는 피해자들이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에서 이러한 2차 피해에 노출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2차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운동의 성과로 성폭력 관련법에는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따라야 할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이처럼 법은 있으나 현실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 국가는 반성하고 책임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2차 피해에 대한 주의나 배려는 단순히 피해자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피해자들의 권리로서 국가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시정 요구로 인하여 수사 과정에서 어떠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장 받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보장되어야합니다. 피해 생존자 인격권과 신변보호를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제도의 부재, 증거확보 지원제도의 미흡, 친고죄 조항의 잔존, 정보권 보장의 미흡과 같은 문제들을 꾸준히 정비해 나가도록 하야 할 것입니다.
이 판결을 계기로 성폭력 피해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수사기관에 도움을 청할 때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의 관계자들이 그들의 편의와 통념에 기반 하여 성폭력 피해 생존자를 대하는 대신, 고통에 대한 이해와 민감성을 키우도록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된 사법제도 속에서 행여 성폭력 피해로 인해 고통을 받아도 정당한 처벌과 보상을 통해 누구나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자 하는 바람이 실현되기를 희망합니다.
2011.2.10
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