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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 변화

성폭력 및 여성 인권 관련 법과 제도를 감시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법 제·개정 운동을 소개합니다.
낙태 처벌은 명백한 위헌이다. 임신과 출산에 관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라.
  • 2011-11-09
  • 3023

 [형법 270조 1항 헌법소원 사건 공개변론에 관한 기자회견문]

 

 

 낙태 처벌은 명백한 위헌이다.

임신과 출산에 관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라.

 

오늘 헌법재판소는 지난 해 10월, 6주된 태아를 낙태시킨 혐의로 기소된 조산사의 헌법소원에 대한 공개변론을 연다. 이번 공개변론은 의사 등 전문가가 여성의 청탁이나 승낙을 받아 낙태를 도왔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형법 270조 1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임신과 출산에 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논의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에 우리는 오늘 진행될 공개변론에 주목하며, 헌법재판소가 아래와 같은 우리의 요구를 숙고하여 여성의 건강권과 재생산권, 자기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는 현명한 판결을 내릴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여성의 몸은 국가의 통제대상이 아니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을 통해 진행되는 과정이며 여성의 일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여성 고유의 경험이다. 또한 한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다는 것은 생명의 탄생에서부터 성장까지의 긴 과정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임신과 출산에 대한 선택은 다른 누군가가 대신할 수 없는, 여성의 중요한 권리로써 보장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금까지 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권리가 아니라 인구정책의 측면에서만 다루어왔다. 그리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법적으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강력하게 낙태를 금지하고 있으나 낙태율은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이와 같은 모순된 현상은 성관계와 피임, 가족관계 전반에서 남성의 권위와 결정권이 우선시되고, 임신과 출산이 경력단절, 해고로 직결되며, 양육비와 교육비에 대한 부담 또한 커져가는 상황에서 출산과 양육에 대한 책임이 여성에게 거의 전적으로 전가되어 온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방기된 채, 대한민국 여성들의 몸은 국가주도의 강력한 가족계획 정책이나 저출산 대책을 명분으로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통제되어 왔다. 국가가 여성의 몸을 정책의 도구로, 통제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제10조는 여성들에게 무의미한 조항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낙태 처벌은 여성의 기본권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

 

지난 해 한국프로라이프의사회가 낙태 시술을 한 병원과 의사들을 고발하면서 여성들은 치솟은 병원비와 낙태 시술 거부로 원정낙태, 불법시술을 감행해야 할 정도로 많은 고통을 받았다. 심지어 이와 같은 상황을 이용해 낙태 시술 병원을 알려주겠다며 임신한 여성을 유인해 성폭행하거나 상대방 여성을 협박하여 폭력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이러한 현상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법적, 사회적 통제가 여성들에게 어떠한 현실적 위험을 초래하게 될 수 있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낙태 처벌로 인해 여성들은 때로 원치 않는 관계를 유지하거나 그 결과로 인한 고통을 전적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으며, 사회적 낙인과 공포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 건강까지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또한 낙태에 대한 처벌과 통제는 임신한 여성에 대한 통제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머물게 하고 낙인과 공포를 통해 여성의 행위규범을 규제함으로써 여성 일반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 성적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성적 불평등과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이 여전히 심각하게 존재하는 상황에서 낙태 처벌은 자기 몸에 대한 결정을 범죄로 규정하고, 그 책임을 전적으로 여성에게 지움으로써 여성의 권리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낙태 처벌은 여성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낙태 처벌이 강화될수록 낙태로 인한 여성의 건강권 침해 또한 높아진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통계자료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세계적으로 매년 7만 여명의 여성들이 안전하지 못한 낙태 시술로 사망하고 있으며, 500만 명의 여성이 합병증으로 인해 의료 서비스를 찾고 있다. 심지어 300만 명은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합병증에 시달려야 한다. 낙태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낙태가 음성화 될수록 여성들은 임신의 유지여부와 관련하여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건강 문제 등에 대해 누구와도 상의를 하기가 어려워지며, 의사들 또한 여성의 건강권을 전반적으로 고려할 수 없게 된다. 저소득층과 청소년의 경우 비용이 높아지고 의료적 접근성이 낮아질수록 더욱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불법시술로 인한 피해와 낙인이나 편견으로 인한 사회적 폭력 등은 다시 온전히 여성이 감당해야할 몫이 되고 만다. 이와 같은 상황들을 고려하여 OECD 30개국 중 23개국이 여성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낙태를 합법화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의 대다수가 공공 의료체계를 통해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올해 진행된 제49차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역시 한국 정부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낙태와 관련된 법, 특히 형법을 검토할 것을 고려하고, 안전하지 않은 낙태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 관리를 위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통제를 중단하고 여성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여야 한다.

 

낙태를 처벌한다는 것은 결국 법에서 규정한 최소한의 경우 외에는 임신한 모든 여성들에게 출산을 강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현행법이 여성을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개인의 몸을 국가가 통제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명백하게 침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여성은 성관계, 임신, 임신중지, 출산 등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짐으로써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자신의 몸을 국가나 사회적 통제, 타인의 부당한 압력이나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의사에 근거한 낙태 시술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현행 형법 270조 1항을 명백한 위헌 조항으로 판결해야 마땅하다. 우리는 헌법재판소가 이번 판결이 여성의 권리에 미칠 영향에 대한 진지한 책임감을 가지고 판결에 임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며, 여성에 대한 처벌과 통제 대신 임신과 출산, 여성의 신체와 사회적 관계에 관한 권리가 온전히 보장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올바른 판결을 내릴 것을 기대한다.

 

 

2011년 11월 10일

임신출산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

다함께,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성소수자위원회,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붉은몫소리,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 사회진보연대, 전국여성연대, 전국학생행진,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진보신당 여성위원회/성정치위원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