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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 변화

성폭력 및 여성 인권 관련 법과 제도를 감시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법 제·개정 운동을 소개합니다.
[반성폭력으로 읽는 사회] 촉법소년 논쟁이 가리고 있는 문제들🔎
  • 2026-04-22
  • 145

[반성폭력으로 읽는 사회] 촉법소년 논쟁이 가리고 있는 문제들🔎


 “저 촉법소년이라 처벌 안 받는데요?” 소년 범죄를 다루는 기사의 헤드라인, 관련 예능이나 드라마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문장입니다. 이 한 마디에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속에는 사회의 규범을 벗어난 청소년을 비난하고 이들을 향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목소리도 섞여 있는데요. 사람은 바뀌지 않으니 사회와 격리시키라던지,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 한다던지, 양육자(주로 여성)는 뭘 가르친 거냐며 삿대질하기도 합니다.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한다는 그럴싸한 포장지에 싸여 있지만 사실 혐오의 재생산에 지나지 않는 반응도 여럿 보이지요. 댓글창 스크롤을 계속해서 내리다보면 그 혐오가 마음 속에 쌓이고 쌓여 점차 탐탁잖아집니다.

 2023년 한국리서치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촉법소년 범죄가 심각하다’는 의견이 95%, 촉법소년 연령에 대해 ‘지금보다 더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96%로 나타났습니다.* 이미 촉법소년은 형사처벌에 버금가는 보호처분을 받고 있고, 연령 하향이 범죄 예방 및 재발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가 없음에도 이러한 여론은 유지되고 있지요. 언론과 정치권 역시 현행 제도를 점검하기보다 여론의 분노를 부추기며 ‘촉법소년 연령 하향’만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촉법소년 연령이 낮춰지기만 한다면 억울한 피해자는 사라지고 우리 사회는 정말 더 정의로워질까요? 혹시 촉법소년 연령 하향이라는 의제가 사법 시스템의 여러 문제를 축소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촉법소년을 둘러싼 분노는 어디서 온 걸까요? 이미 많은 글과 성명에서 촉법소년 논쟁을 둘러싼 왜곡을 바로잡고 소년 범죄의 현실을 밝히고 있으므로, 본 글에서 반성폭력운동과 페미니즘의 렌즈로 촉법소년 논쟁이 가리고 있는 문제들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정말로 피해자를 위한다면 주목해야 하는 것들

  | 피해자를 형사 사법 절차의 주체로 세우기
 반성폭력운동 현장에서 피해자의 억울함과 분함을 목격하는 장면은 대부분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배제되었다고 느낄 때입니다.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의 형사 사법 절차에서 피해자는 오랫동안 법적 소송 주체가 아닌 참고인의 위치에 머물러 있는데요. 헌법에 범죄 피해자의 권리가 명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권리의 실현이 수사사법기관의 재량을 너르게 허용하는 방식으로 규정되어 있고, 대체로 피해자의 신청이 있을 때에야 작동하도록 하면서도 충분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현실입니다.** 이에 따라 피해자는 진행 과정이나 수사 결과, 재판 일정 등에 대해 통지받지 못하거나, 그 이유를 명확히 확인하지 못한 채 열람등사를 거부당하기도 합니다.

 소년보호사건에서의 피해자 권리 보장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소년보호사건은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형사재판과 달리 검사나 피해자 변호사, 법정대리인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으며, 가정법원 소년부 판사의 단독 판단으로 진행됩니다. 피해자는 심리 개시 여부나 처분 결과에 대한 통지를 받지 못하고, 재판에 참여하거나 기록을 열람할 권리도 제한되며, 항고 등의 절차가 부재해 처분에 불복하더라도 의견을 낼 수 없습니다.*** 피해로 인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국가와 가해자(피의자) 사이의 일로 다뤄지고 피해자는 그저 증인에 불과한 배제의 경험이 피해 회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너무도 명백합니다.

 형사 사법 절차에서의 피해자 참여권에 대한 실질적 보장은 단순한 권리의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형성하는 것으로 인식하여야 합니다. 통지, 열람, 의견 진술, 불복 등 전체 형사 사법 절차에 걸친 참여권을 재량이 아닌 권리로 명문화하고, 제도적으로 그 실현을 뒷받침해야 합니다.

  | 법의 사각지대를 포착하기
 성폭력 사건에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 또다른 요인은 성폭력을 비롯한 젠더폭력을 바라보는 지금의 법 체계 속에도 있습니다. 많은 젠더폭력 피해자들이 수사·재판 과정에서 젠더 기반 범죄의 특성과 관련된 차별과 통념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짧은 치마를 입어서 그랬다’는 피해자 유발론, ‘앞날이 창창하고 건실한 청년’이라는 가해자에 대한 연민의 태도 등은 마치 피해자를 처벌하는 듯한 인상마저 줍니다.

 이러한 통념은 성폭력이 발생하는 현실의 여러 요인을 담아내지 못하는 현행법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형법상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을 그 구성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데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가 2019년 1월부터 3월까지 총 66개 성폭력상담소의 강간 상담 사례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성폭력 피해사례 총 1,030명 중 직접적인 폭행이나 협박 없이 발생한 피해 사례는 71.4%에 달했습니다.**** 준강간죄의 경우,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는 경우로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어, 그 정도에 대한 판사의 해석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상담소는 오랫동안 강간죄개정연대를 통해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동의 여부로 개정할 것을 요구해 왔고, 피해자를 궁지로 내모는 준강간의 모순적 구조를 짚어 왔습니다. 법이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한 피해자의 경험은 계속해서 제도의 바깥에 머물게 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돌아보기

  | 보호받을 만한 청소년과 그렇지 않은 청소년
 촉법소년 논쟁을 바라볼 때 저는 우리 사회가 어떤 청소년은 보호하고 어떤 청소년은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합니다. 낯설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들어요. 여성인권운동에서 오랫동안 비판해 온 성녀-창녀 이분법과 너무도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순결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의 구분은 그동안 성폭력 사건의 법적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의 행실, 복장, 성적 이력을 심문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습니다. 이는 사건의 본질을 가리고 사회 문제로서의 성폭력을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는 결과를 가져왔지요.

 촉법소년 논쟁에서도 이와 유사한 구조가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말을 안 듣고 사고를 치는 청소년’, ‘모범적이고 순진한 청소년’의 이분법은 청소년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바라보는 시선에 적용되어 사건의 맥락이나 핵심보다 청소년의 평소 행실에 주목하게 합니다. 그럴 줄 알았다거나 당해도 싸다는 식의 납작한 가치평가는 사건 이후 피해자의 회복이나 가해자의 사회 복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가해자의 사회 복귀라는 표현에 거부감이 드는 분도 있을 텐데요. 소년 사건에서 가해자의 사회 복귀는 피해자의 회복만큼 공을 들여야 하는 부분입니다. 소년 사건은 그 발생 원인과 양상에 있어 성인 범죄와 차이가 있습니다. 방임이나 폭력에의 노출, 돌봄의 부재, 학교와 지역사회의 안전망 부재 등 청소년의 생애적 맥락이 범죄에 이르게 된 배경과 매우 밀접하지요. 이를 살피고 사회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채 소년범을 악마화하고 처벌을 강화하기만 하는 것은, 또 다른 취약한 청소년을 소년범으로 양산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이제는 ‘사회가 정해둔 규범을 벗어난 청소년은 보호받지 않아도 된다’는 전제를 깨고, 비행 청소년과 소년범이 안전하게 교육받고 사회화할 자리를 마련하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 가부장제를 답습하는 청소년 또래 문화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가부장제를 ‘가족 내 남성 연장자가 강력한 권한으로 아내와 자녀를 포함한 모든 식솔들을 소유하고 다스리며 보호하는 가족 형태 및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체계’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남성’과 ‘연장자’로, 가부장제를 떠받치는 두 축으로써 성별주의와 나이주의가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부장제 질서 안에서 청소년은 주변화된 위치에 놓입니다. 경제적 자원도 사회적 발언권도 없이 어른의 통제 아래에서 청소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요. 이로 인한 스트레스와 분노 등을 해소하기 위해 또래 집단 안에서 자신의 힘과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청소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주로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방향으로 말이지요.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래윈 코넬은 지배, 통제, 강인함으로 대표되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실현할 수단이나 사회적 인정이 부재한 상황에서 자신의 남성성을 다른 방식으로 주장하려는 욕망을 ‘주변화된 남성성’으로 설명했습니다. 이를 위해 발생하는 폭력은 가해자가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고 금기를 위반했다는 것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데요.****** 규범을 어기는 것, 약한 누군가를 괴롭히고 지배하는 것, 집단 내 서열을 몸으로 증명하는 청소년의 모습은 주변화된 남성성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입니다.

 물론 주변화된 남성성의 실천은 남성 청소년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부장제 문화 내에서 여성 청소년은 ‘여성’과 ‘청소년’의 두 가지 취약성을 함께 겪으며, 사회적 권력으로 인식되는 남성성을 표방하고자 노력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이 취약성이 여성 청소년을 성폭력, 성매매에 유입하는 또 다른 경로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촉법소년 담론이 상정하는 ‘처벌받아야 할 소년범’이기도 하고, 동시에 구조적 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이 지점에서 촉법소년 연령 하향과 처벌 강화가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청소년 또래 문화가 가부장제를 답습하지 않도록 포괄적 성교육을 제공하고, 성차별적 사회 문화를 점검하는 태도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피해자가 고통받고 있는데 가해자가 법망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분노합니다. 저도 성폭력 피해생존자 지원 현장에서 일하며 소년법의 한계 앞에서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주로 어려서 겪은 성폭력 피해를 성인이 되어 고소하려 하였으나 당시 가해자가 촉법소년임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형사 처벌의 길이 막혀 있다는 사실에 생존자는 크게 좌절하고, 지원자인 저도 그런 모습을 보며 답답함과 억울함을 느낍니다.

 이때 생존자 분들은 ‘가해자가 촉법소년이라서 기소가 불가능하대요’라는 한 문장으로 자신의 무력감을 표현하지만, 피해 당시에 문제제기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해자가 협박해서, 양육자가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아서, 피해임을 인지하지 못해서 등 촉법소년 연령 조정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라기에는 그 뿌리가 다양합니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다양한 사회 문화적 뿌리입니다.

 우리는 시민으로서, 자극적인 보도와 콘텐츠에 휘말려 방향을 잃지 말고 이 뿌리의 시작점과 방향을 다각도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억울한 피해자가 없는 정의로운 세상’은 그제야 가능할 것입니다.


* 한국리서치 주간 리포트(제215-2호) 여론 속의 여론 “촉법소년 범죄 해결 여론”(2023년 1월 25일)
** 김정혜, “법적 권리로서 피해자의 형사절차 참여권 보장, 왜 필요한가?”, 『성폭력의 법적해결 백래시에 맞서는 로우LAW킥 - 2차 성폭력 피고인의 방어권 악용, 이대로 괜찮은가?』, 한국성폭력상담소 외 주최, 71p
*** 최란, “형사미성년자 연령 하향보다 소년보호사건에서 피해자 권리 보장 확대로”, 『2026년 제3차 청소년정책포럼 - 형사 미성년자(촉법소년) 연령 기준에 관한 제도적 보완 방안』, 성평등가족부 외 주최, 37p
**** “직접적인 ‘폭행‧협박’ 없이 발생하는 강간 전체 71.4% : 전국 66개 성폭력상담소 2019.1-3. 상담사례 분석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 2차 의견서]”, 강간죄개정연대, 2019년 7월
***** “가부장제”, 이여봉,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추지현, “폭력의 연속선과 남성성’들’”, 한국성폭력상담소 기획, 『폭주하는 남성성』, 동녘, 2025, 32p


이 글은 여성주의상담팀 산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