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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 변화

성폭력 및 여성 인권 관련 법과 제도를 감시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법 제·개정 운동을 소개합니다.
[후기] '동의' 기준 강간죄 개정을 위한 활동가 간담회
  • 2026-05-28
  • 38

[후기] '동의' 기준 강간죄 개정을 위한 활동가 간담회



2026년 5월 28일 오후 2시-5시,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 <'동의' 기준 강간죄 개정을 위한 활동가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이번 간담회는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에서 주최했고, 래모나 C. 알빈 미국 샘포드대 컴벌랜드 로스쿨 교수가 함께해 주셨습니다.

참고로 5월 27일 알빈 교수와 함께 했던 국회토론회 <‘동의’기준의 성폭력 형사법 체계,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나>도 내용이 매우 알찼으니 관심 있는 분은 해당 자료집을 꼭 살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국회토론회 자료집 https://www.sisters.or.kr/data/report/360

간담회의 전 과정은 김혜인 전문통역사님께서 순차 통역을 해주셨습니다.
만약 후기 중에 부정확한 내용이 있다면 전적으로 작성자가 영어 답변 및 통역을 잘못 알아들은 탓입니다.

1부는 참여자들이 각자 소속 단체와 주요 활동 영역을 소개하며 시작했습니다.

알빈 교수는 미국에서 오랜 기간 주 검사 및 연방 검사로 활동하면서 성폭력, 가정폭력 등 강력범죄를 다루었고, 지금은 로스쿨 교수로서 성폭력 피해자를 돕기 위해 증거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일환으로 여러 나라의 증거법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 연구도 한다고 해요. 알빈 교수는 작년 8월에도 한국에 방문했었고, 당시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등과 만나면서 한국 법과 미국 법과의 차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사전 질문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질의응답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미국에서 '동의' 여부로 강간죄를 개정한 법 개정 과정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50개의 주로 이루어져 있고, 주마다 각기 다른 주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마다 상황도 다르고 법 개정 과정도 달랐다고 해요. 알빈 교수는 그중 매릴랜드주의 사례를 말씀해주셨는데요, 매릴랜드주는 2024년에 '동의' 기준으로의 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존자와 활동가들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많은 역할을 하였지만 검사들이 반대 논리('무고 우려', '입증 문제' 등)에 반박하며 주도적으로 법을 바꾸는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성폭력 법 체계가 '동의' 기준으로 바뀌면 어떤 변화가 있을지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습니다.
첫째로 '동의'를 법령으로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쟁점이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 주마다 다른 표현으로 '동의'를 정의하고 있는데, 알빈 교수는 '동의'가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일부 주는 여전히 '동의' 뿐만 아니라 '유형력'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그 경우에도 더는 '피해자의 저항'을 필수로 요구하지 않는 등의 변화를 80년대부터 만들어왔다고 합니다.
둘째로 '동의' 또는 '피해자 진술 신빙성' 등을 제대로 판단하기 위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동의' 여부로 법을 개정하면 입증 책임이 '피의자/피고인'에게 전환된다는 반대 논리가 미국에서도 자주 제기되었다고 하는데요, 알빈 교수는 이에 반박하며 실제로는 입증 책임은 여전히 검사/국가에게 있고, 그러므로 수사재판기관이 수사재판을 잘 할 수 있도록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주고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미국은 '동의' 기준으로 법이 개정되었음에도 여전히 성폭력 사건이 기소율이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알빈 교수가 보기에 이는 대부분 수사재판기관이 성폭력 통념을 근거로 '동의' 여부를 판단하고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의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미국의 경우 배심원들이 재판에서 유무죄를 판단하는데, 아무리 재판부가 배심원들에게 '동의'의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안내해도 배심원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편견을 바탕으로 판단할 때가 많아서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이렇듯 '동의' 기준 법 개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으며, 무엇을 '동의'로 판단할지 법과 사회 전반에서 해석투쟁을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알빈 교수가 국회토론회에서도 발표했듯이 성폭력의 판단 기준을 '동의'로 바꾸는 것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사건의 쟁점을 바꾸고 피해자를 향한 질문을 바꾸고 사람들의 관점을 바꾸는 대단히 중요한 변화의 초석입니다.
마지막으로 알빈 교수는 '유형력' 기준 법 체계는 오류가 너무나 많아서 구조적으로 제대로 작동할 수 없고, 더 많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동의' 기준 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첨언했습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후, 2부에서는 현장 질의응답이 활발하게 오갔습니다. 활동가들이 저마다 상담·지원 현장에서 마주하는 고민을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성년자, 장애인 등의 경우 미국에서 '동의' 기준을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성폭력을 여러 유형으로 나누어서 규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동의 없는 성관계는 3급 강간으로 규정하고, 피해자가 동의할 수 없는 상태(예를 들면 술, 약물 등으로 의식이 없거나 나이, 장애 등으로 자신의 피해를 인지할 수 없는 상태)임을 이용한 성관계는 2급 강간으로 규정하고, 피해의 정도가 중한 경우(흉기 사용, 집단 범행, 상해 발생 등) 1급 강간으로 규정하여 가중처벌한다고 해요. 우리나라처럼 피해자의 나이, 장애의 정도 등을 세세하게 구분하여 별도 법령을 두고 있지는 않고 각각의 사안에 따라 가중처벌하는 체계라고 해요. 소수자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수사/지원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는 관련 인력 또는 인프라가 부족하여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동의' 기준 법 개정 이후 어떤 향후 과제를 남겨두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알빈 교수는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달라서 미국 전역을 아우르는 연방 정부 차원의 성폭력 관련 통계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아직 미국의 모든 주가 '동의' 기준 법 개정을 한 것은 아니므로, 모든 주가 '동의' 기준 법 개정을 하도록 촉구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한편, 알빈 교수는 미국은 피해자의 과거 성적 이력을 재판상의 증거로 제출할 수 없도록 보호하는 '강간방패법(Rape Shild Law)'이 있는데, 한국에는 아직 그러한 법이 없다는 사실을 짚으면서, 한국에서는 '동의' 기준 법 개정 이후 '강간방패법' 제정을 위해 싸워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성매매 현장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에 관한 질문에도 '강간방패법'의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비록 직접적인 '강간방패법'은 없지만, 우리나라의 현행 법 제도는 '형사소송법' 제299조에서 재판장이 불필요한 변론 등을 제한할 수 있도록 소송지휘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성폭력범죄 등 사건의 심리ㆍ재판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칙' 제2조 제2항에는 '법원,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 그 밖의 소송 관계인은 심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권과 특성을 배려하고 당해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의 사생활에 관한 신문 또는 진술이 이루어지거나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 또는 공포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재판부가 위와 같은 소송지휘권을 소극적으로 행사하고, '사건과 관련성이 있다'라는 피고인 측의 주장을 충분한 검토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불필요한 심문을 용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강간방패법'을 도입하고 그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한 논의가 앞으로 더 활발하게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질의응답이 있었는데, 후기에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마지막으로 알빈 교수는 백래시가 심각하지만, 반대 논리보다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배제되어 왔고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멈추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함께 힘쓰자는 격려와 연대로 마무리하였습니다.


* 이 후기는 앎 활동가가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