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 변화
‘계간’의 대체문구가 겨우 ‘항문성교’였나.
- 군형법 제92조의 5(추행) 조항 폐지가 답이다 -
김광진 의원과 권성동 의원이 대표 발의했고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해 대안을 마련한「군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013년 3월 5일에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되었다. 최근 개정된 형법에 맞춰 군형법도 개정되어야 했기에 법안 통과의 시급성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하지만 합의에 의한 동성간 성행위를 유일하게 처벌하고 있는 군형법 92조 5 조항을 존치시키고 ‘계간’ 조항을 겨우 ‘항문성교’라는 문구로 변경한「군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우리는 진일보한 변화라고 평가할 수 없다.
법안제안 설명에는 동성 간 성행위를 비하하는 용어를 정비하기 위해 ‘계간’을 ‘항문성교’라는 용어로 변경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군형법 92조 5항을 존치시키려는 꼼수이자 동성애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다.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용어인 ‘계간’조항이 존재했던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적 접촉조차 범죄와 처벌의 대상으로 둔 것이었다.이처럼 '계간’이라는 용어보다 합의에 의한 동성간 성행위를 계속해서 처벌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것이다. 애초 김광진, 권성동 의원안에도 ‘계간’조항은 삭제되어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물론 성소수자, 여성, 인권, 법률가 단체들은 수 년 동안 군형법92조 5항의 개선과 폐지를 요구해왔다. 국제사회의 흐름도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비범죄화해야 한다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고 각 국에 이 흐름에 맞추도록 요구하고 있다. 2012년에 있었던 유엔 국가별 보편적 인권 정례검토(UPR)에서도 군형법 상 추행죄 폐지 가능성 검토를 받은 바 있다. 국제사회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한국이 ‘계간’을 ‘항문성교’로 용어만 바꾸어 쓰는 편법을 보이며 마치 인권신장을 이루었다고 평가하지는 않을지 심히 우려스럽다.
‘항문성교’가 법조항에 포함된 기이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추행’의 의미의 불명확성은 '계간' 용어 삭제 이전에도 제기되어온 문제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은 국방부가 제시한 '항문성교' 단어를 포함시키자는 의견을 받 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군형법 92조 5항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번 법 개정으로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증명되지 않는 보호법익 앞에 폭력과 협박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적 접촉까지도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처벌의 대상으로 두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군대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당사자의 합의에 기초한 관계까지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한다는 것은 헌법적으로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추행죄를 유지하는 것은 바로 동성애자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평등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동성애를 죄악시 보게 하고,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법적 근거가 되어 왔다. 동성애는 국가가 통제하고 범죄로 규제할 대상이 아니다. 또한 당사자 합의에 기초한 관계까지 복무규율 차원이 아니라 형사적 처벌의 관점에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이제 군형법 92조 5항에는 ‘계간’이라는 말 대신 ‘항문성교’라는 용어가 대신하게 됐다. 하지만 ‘그 밖에 추행’이라는 모호한 규정 속에 담긴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적접촉’도 처벌하겠다는 의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앞으로 군형법 92조 5항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알려나가며 최종 폐지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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