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 변화
평등의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제정이 이루어져야
지난해 11월 김재연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한데 이어, 올해 2월 김한길 의원과 최원식 의원이 각각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함으로써 현재 3개의 차별금지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이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출신학교,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합리적 이유 없이 이루어지는 차별을 구체적으로 금지․예방하고, 불합리한 차별을 겪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구제를 포함하는 기본법이다.
차별금지법은 헌법 제11조 제1항에 규정되어 있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평등의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기본법이 부재한 상황에서 오랜 기간 동안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현재 국내에는 남녀차별, 연령차별, 장애인차별 등 일부 차별금지와 관련된 개별법이 존재하지만 분야와 대상이 제한되어 있거나 구체적인 구제조치가 미흡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조정․권고만으로는 차별받은 피해자의 효과적인 구제가 어렵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던 시민사회단체 뿐만 아니라 법무부 또한 입법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국제적인 요청과 권고 또한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다. 2011년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와 아동권리위원회는 각각 최종견해를 발표하며 한국정부가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한 시급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한 바 있으며, 2012년 8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도 위의 지난 권고들을 상기시키면서 한국정부의 신속한 행동을 촉구하기도 했다. 또한 2008년 4년마다 시행되는 UN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의 한국 인권상황 검토 시 한국정부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그동안 아무런 성과를 내 놓지 못하다가, 2012년 UPR에서 또다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권고를 받자 올해 2월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다시금 밝혔다.
하지만 올해 초 법무부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세 명의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하자 다시금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반인권 세력들의 반발이 거세다. 참교육어머니전국모임을 비롯한 ‘나쁜 차별금지법 반대 국민연합’은 사회적 요구에 근거한 오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과 지속적인 국제사회의 권고와 우려는 무시한 채로, 세 의원이 사회적 합의 없이 차별금지법의 기습적으로 발의했다고 비판하며 차별금지법이 나라를 망칠 것이라는 언사도 서슴치 않고 있다. 특히 2007년 ‘누더기 차별금지법 사태’ 때부터 논란이 되었던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이 차별사유로서 세 의원의 발의안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독소조항’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UPR에서 한국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던 국가들이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 금지’를 명확하게 포함시켜 제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는 바로 ‘성소수자의 인권은 침해받고 차별받아도 된다’는 한국 사회 내 보수집단의 인식이 그만큼 인권침해적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차별금지법은 이미 17대 국회에서 법무부안과 노회찬 의원 대표발의안이, 18대 국회에서는 박은수 의원 대표발의안과 권영길 의원 대표발의안이 있었으나 모두 회기만료로 폐기되었다. 모두 심의와 발의 과정에서 사회적 반대 또한 적지 않았으며, 논란도 많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과 존재가 부정당하고 차별받고 있는지, 한국 사회에서 이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실현하기 위해서 어떤 차별금지법이 필요한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또한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그동안의 차별금지법 입법 논의 과정에서 정부나 국회가 극우보수나 기독교 세력과 다름없이 차별을 방관하거나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2013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차별 없는 사회’을 위해 어떠한 차별금지법이 필요한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우리는 "우리사회는 지난 60년간 급격한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를 겪으며 인종, 학력, 정치적 입장 등이 매우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로 변모했다"는 김한길 의원의 인식에 공감하며,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 인권향상 및 소수자 보호는 물론 국민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이 없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도 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최원식 의원의 입장에 동의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점점 가시화되고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구성원 그 누구라도 차별받거나 배제되지 않을 수 있는 차별금지법안의 필요성과 의미를 사회적으로 소통하고 설득하는 역할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세 의원의 차별금지법 제정 노력이 그동안의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고 모든 국민의 인권 신장을 이루어갈 수 있는 마중물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차별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을 변화시키고 헌법의 평등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인권기본법으로서의 차별금지법이 19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밝히며, 평등과 인권, 다양성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한국사회를 위해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또한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2012년 3월 25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직인생략)
가족구성권연구모임,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동성애자인권연대,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반차별공동행동,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성인종차별반대공동행동, 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 언니네트워크, 연구집단 카이로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유엔인권정책센터, 이주사회연구소, 인권단체연석회의, 인권문화실천모임 맥놀이,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여성공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진보신당, 차별없는 사회를 실현하는 대학생 네트워크 [결],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통합진보당, Transnational Asia Women's Network,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향린교회 여성인권소모임